<-- 149 회: 6권 - 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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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쿠라마이 류세 또한 자신의 병력들을 모래로 가득한 연무장에 한데 모았다.
모두가 쿠라마이 닌자 가문의 비전 절기들을 교육받으며 양성된 최 정예의 무사들.
비록 고수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 햇병아리들이지만 쿠라마이 가문의 권속이라 불리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정예의 부하들을 보면서 쿠라마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우리가 나아가 싸워야 할 전장은 어쩌면 적들의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 역시도 타이밍을 딱 맞춰서 나타난 마츠시마 장관의 발신기 신호가
그러나 쿠라마이 가문의 후손으로서 두려움에 적들을 피한다면 부끄러워 자결을 해야 할 일이라 여기는 쿠라마이 류세다. 그로서는 발걸음을 피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함정이라 해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나 쿠라마이 류세가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쿠라마이 류세는 즉시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소도를 꺼내들었다. 내부의 진기를 끌어 모아 소도에 전하자 소도의 주변으로 마치 빛이 퍼렇게 일렁이는 듯한 기묘한 일렁임이 있었다.
이윽고 쿠라마이 류세는 그 퍼런 기운이 일렁이는 소도를 강하게 내리쳤다.
“흐아아압!”
고함에 가까운 기합 소리와 동시에 소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마치 낙뢰와도 같은 불빛의 형상이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내리는 듯 낙하하며 사라졌다.
허나 가볍게 내리쳐진 듯한 그 바닥에서 갑자기 흙무더기가 연거푸 솟아오르며 깊은 도랑이 파졌다.
쿠라마이 류세의 이름이 류세(별똥별을 뜻하는 일본어)인 이유.
그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면서 동시에 전수받은 유성 도법의 절기가 발현된 것이었다.
유성이 떨어지는 듯한 강력한 절기들로 가득한 유성 도법은 쿠라마이 가문의 후계자가 되면서 전수받을 수 있는 것. 그와 동시에 모든 후계자들의 이름은 별똥별 - 류세가 된다.
쿠라마이 류세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다름없는 유성 도법의 기운을 거두면서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전장을 누벼 보겠는가!”
“하이!”
“가주님께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가문의 부하들은 진중한 목소리로 쿠라마이 류세에게 전의를 맹세했다.
쿠라마이 류세는 자신의 성명절기인 유성 검법의 시연이 부하들의 사기를 끌어 모았다는 점에 만족하였다.
“후후. 좋다! 그대들 모두 대 야마토의 재건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하자!”
“하이!”
온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과 함께 쿠라마이 류세는 손에 들려 있던 소도를 칼집에 넣었다.
티잉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공명음을 울리며 들어가는 소도의 촉감이 쿠라마이 류세는 들을 때마다 매번 만족스러웠다.
‘오늘 이 소도에 짙은 혈향이 머금어질 것이다.’
일전에 마주쳤던 엔도 가문의 애송이가 쿠라마이 류세의 뇌리에서 다시 떠올랐다.
놈은 시건방진 눈동자로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쿠라마이 류세는 그런 놈의 태도에 더욱 짙은 살기를 흘려 보냈지만 엔도 츠요시는 도리어 정면으로 살기를 맞부딪쳤다.
‘엔도 가문의 애송이. 그 때에는 총리 대신에게 전갈을 보내기 위해서 살려두었지만 오늘은 어림도 없다.’
쿠라마이 류세는 흉흉한 살기가 어린 눈을 빛내며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그의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라 나섰다.
* * *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은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일본이 건설한 올림픽 경기장을 주축으로 기념을 위해 설립된 장소였다.
평소에도 도쿄 시민들은 물론 간혹 도쿄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 곳에 심상치 않은 살벌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변을 산책 중이던 일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별안간 출동한 경찰관들의 만류와 제지로 올림픽 경기장 근처에서 모두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강제로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근처를 차단한 장본인은 주변을 살피면서 부하들의 무장을 점검했다.
“발신기 신호는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끊어졌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엔도 츠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이 곳으로 초대한 놈은 아마도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을 전장터로 삼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도심에서 보기 드문 널찍한 곳이니만큼 한 판 싸움터로 삼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민간인들이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주변을 차단하도록 지시하게. 알았나?”
“옛. 경찰관들로 하여금 주변에 출입이 엄금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엔도 츠요시는 무전기를 꺼내 각 위치의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상황에 변화가 있을 때까지 모두 대기하라.”
차량에서 나와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내부 곳곳에 잠복해 있는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무전으로 명령에 답했다.
- 하이! 수신 완료.
그 때 낯익은 목소리가 불쾌하고 음산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울려퍼졌다.
- 엔도 츠요시. 이 곳에서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나?
‘이 목소리는!’
엔도 츠요시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쿠라마이 가문의 그 놈인가?”
- 그 놈이라니! 크흐흐. 애송이 녀석. 어차피 오늘 끊어질 목숨이라 그런지 말을 제멋대로 하는구나.
“네가 왜 부하의 무전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내 부하는 어떻게 된 것이냐.”
- 크흐흐흐. 하찮은 실력으로 이런 위험한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가볍게 기절시켰다. 네 부하들 모두 이렇게 될 테지만 네 목숨만은 온전치 못할 것이다.
“닥치거라 쿠라마이 가문의 늙은이 녀석. 네 놈의 목숨은 내가 거둘 것이다.”
- 너의 건방진 헛소리가 그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기 전까지 마츠시마 다카시를 내 놓거라.
그 말에 엔도 츠요시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자도 마츠시마 장관을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
그렇다면 확실히 우려는 현실이 된 것이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신변을 데리고 있는 놈들은 따로 있다.’
그때 다시 발신기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다시 잡히는 위치는 바로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내의 실내 구기 경기장.
“하하하...”
엔도 츠요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은 자신이 쿠라마이의 세력과 대치하자마자 새로 신호를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잡힌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엔도 츠요시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즉시 부하들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실내 구기 경기장으로 간다. 곳곳에서 대기 중인 모든 팀원들을 구기 경기장으로 집합시켜.”
“옛! 과장님.”
엔도 츠요시는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과 함께 재빨리 구기 경기장을 향해 이동했다.
* * *
엔도 츠요시와 부하들의 움직임은 경찰들을 피해 가볍게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에 들어와 엔도 츠요시의 부하들을 일부 제합한 쿠라마이 류세의 기감에도 선명하게 잡혔다.
‘저 움직임과 방향은... 구기 경기장인가?’
엔도 츠요시가 사용하는 발신기 신호 추적기는 쿠라마이 류세의 손에도 들려 있었다.
지난번 자위대가 엔도 츠요시가 제압당했던 나카노 구로 출동할 당시에는 엔도 츠요시의 휘하에 자신의 부하들이 숨겨져 있을 정도였다.
비록 그 이후 엔도 츠요시가 첩자로 의심되는 부하들을 모조리 해고하면서 내부의 첩자들은 모두 제거되었지만 정작 해고당하기 직전 발신기를 카피하는 데 성공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흐흐흐. 뛰어 봤자 벼룩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도록 해주마.”
엔도 츠요시가 아무리 뛰어난 닌자라 해도 쿠라마이 류세가 보기에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모두 평범한 군인들에 불과했다.
‘닌자 가문의 후예라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모양새로군.’
하기사 2차 세계대전 이후 엔도 가문이 모두 박살난 상황이니 엔도 츠요시가 제대로 된 부하들을 키워서 세력을 일구기에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 오기 전 쿠라마이 류세는 총리 대신이 스스로 먼저 나서서 총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위대의 출동이 있을 경우 자신도 자위대를 출동시키거나 출동한 병력을 반역자로 선포할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그동안 소심하고 나약하게 굴던 총리 대신의 행적과는 달리 이번에는 지나치게 강하게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총재는 물론이고 쿠라마이 류세 또한 그런 총리의 모습이 비참한 최후를 앞에 두고 발버둥치는 부질없는 모습으로 보였다.
‘자위대가 없다 해도 결과는 변함이 없거늘. 어리석기는.’
총기를 들고 설친다 해도 쿠라마이 가문의 절기를 보유한 자신의 정예한 부하들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
‘크흐흐흐. 네놈은 꼼짝없이 오늘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쿠라마이 류세는 즉시 부하들을 이끌고 구기 경기장을 향해 달려갔다.
은밀한 닌자의 보법을 전개한 그와 부하들은 그림자초자 남기지 않는다는 그 옛날 닌자들을 묘사한 경구처럼 신속하지만 빠르게 구기 경기장을 향해 달려갔다.
* * *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성진은 올림픽 공원 바깥에서 상황을 살피면서 적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었다.
인공지능 팔찌가 해킹해서 파악 중인 인공위성의 화면과, 주변의 모든 생명체들의 대사 신호와 생명반응이 인공지능 팔찌의 감지 센서에 의해 확연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적들로 추정되는 무리들이 모두 실내 구기 경기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확인한 성진은 문제의 발신기 신호를 발산하는 무선 조종 헬기를 경기장 옥상에 숨겨둔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먹잇감들이 우리 안에 모였으니 슬슬 움직여볼까?’
성진이 행동에 나서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인공지능 팔찌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 마스터. 현재 주변에 따로 확인되는 생명반응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다른 생명반응이 있다고?”
성진의 질문에 인공지능 팔찌가 보고를 이었다.
- 그렇습니다 마스터.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팔찌가 수집되는 정보는 성진에게 즉시 수집된다.
때문에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생명반응 스캔과 함께 인공위성이 내려다 보는 감시 화면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움직인 것인데 인공지능 팔찌는 그런 데이터와는 별개로 다른 정보를 출력하고 있었다.
- 현재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근처에서 바깥쪽으로 좀 더 떨어진 곳에 특이 반응으로 의심되는 생명 반응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특이 반응이라고? 특이 반응으로 의심되는 생명 반응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 제가 직접 마스터께 전달해드리는 생명 반응 정보는 어느 정도 정해진 패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라면 아무리 특별한 기술이나 기 에너지로 자신을 감추려 해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패턴 정보가 있습니다.
피와 내장, 뼈와 살갗으로 구성된 생명체라면 인공지능 팔찌가 미리 선별해놓은 패턴과 규격에서 벗어나는 생명 정보를 낼 수 없다.
허나 지금 인공지능 팔찌는 그런 생명체들의 보통 반응으로는 잴 수 없다는 의심스러운 생명반응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특이 반응으로 의심된다는 그 생명 반응은 무슨 뜻이지?’
- 아주 희미하고 미미한 생명 반응입니다. 보통은 가사 상태로 의심할 수도 있지만 집중적으로 스캔한 결과 사람의 덩치로 의심되는 생명 반응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덩치?’
- 그렇습니다 마스터. 성인 남성 수준의 체격으로 의심되는 여러 명의 인간형 생명체들이 현재 올림픽 공원 근처에서 정지해 있습니다.
‘허어? 아주 희미하고 미미한 생명 반응이라니... 그 말이라면 거의 호흡이나 맥박이 없다는 소리잖아?’
인공지능 팔찌가 가사 상태를 의심할 정도라면 해당 생명체는 생명반응이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의미였다.
해당 생명체에 대한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가 자신에게 즉시 전달되지 않은 이유를 성진은 알 수 있었다.
‘그렇군. 계속해서 관찰한 결과 특이 반응을 내는 생명체로 의심된다 이거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하나의 반응이라면 의심을 거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비슷한 반응을 가진 생명체들이 다수 몰려져 있어서 따로 보고를 올린 것입니다.
인공지능 팔찌는 미리 설정해놓은 정보 기준 대신 자신 스스로 의심이 되는 사항을 성진에게 따로 보고한 것이었다.
스스로 판단하고 판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답게 기존의 정보체계 대신 스스로 성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래? 잘 했어. 그렇다면 그 놈들의 정체는 아마도 인간이라는 뜻일텐데...’
순간 성진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예전에 중학생 시절 보았었던 무협 영화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한참을 적들에게 쫓기던 주인공이 주변 지형지물에 숨어서 인기척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기를 바탕으로 뛰어난 오감을 가진 상대편의 고수를 속이기 위해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로 숨을 멈췄다. 호흡이 멈춤과 동시에 적들로부터 기척을 완전히 숨기는 장면.
그때 대사 속에서 그 기척을 완전히 숨기는 기술의 이름이 나왔었다.
‘귀식 대법...’
성진은 오래 전 어린 시절 봤었던 무협 영화의 기억이 지금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귀식 대법인가? 설마 그 무협 영화에서나 나오던 그 기술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건가?’
성진은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최근 엔도 츠요시와의 일전을 겪으면서 새로운 무공 절학과 기술을 습득하는 데 극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 성진이었다.
태합 유문의 절기들도 훌륭하지만 태합 유문은 보법과 발경만을 최고조로 발달시켜 완성했을 뿐 다른 여타의 기술이나 다양한 기술들은 만들지 않은 문파였다.
특히나 귀식 대법같이 매복이나 적으로부터 속여서 몸을 지키기 위한 기술같은 것은 평화로운 심신 수양을 목표로 흉악한 위협이나 전면적인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이 기본 목표인 태합 유문에는 정서적으로나 근원적으로나 맞지 않는 기술이었다.
오죽하면 분근 착골같은 수법조차도 성진이 인공지능 팔찌의 기 에너지 분석을 바탕으로 스스로 응용해서 만들어 낼 정도였다.
‘분명 우리 문파의 역사와 전통과는 맞지 않는 기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진은 여러 위협에 노출되면서 스스로를 다양한 상황에 대처 가능하도록 준비해놓을 필요를 느꼈다.
‘직접 상황에 맞서는 나는 다양한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어.’
성진은 지금 다양한 위협에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진 역시 자신의 문파가 특별히 부족함이 있는 문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싶다는 마음은 도전 정신과 탐구심에 가까웠다.
문파에 대한 자부심과 별개로 다양한 종류의 기술을 익혀서 여러 상황에 대처하고 싶은 마음은 직접 위협에 대처하는 성진으로서는 생존 욕구와 통하는 일면이 있었다.
‘그 특이 반응의 생명체들이 있는 위치가 어디지?’
- 지금 바로 위치를 표시하겠습니다.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요청에 따라 근처의 지형 지물을 표시한 작은 지도 화면을 출력했다.
그 화면에 표시된 위치를 확인한 성진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지금 바로 가자.’
- 알겠습니다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