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48화 (148/185)
  • <-- 148 회: 6권 - 그물 -->

    소형의 금속 물체 하나가 밤하늘 상공을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찢으며 날아올랐다. 

    세찬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유선형의 작은 물체. 흑색칠이 된 그 물체는 4개의 회전 날개를 달고 도쿄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무선 조종 헬기의 형상. 매끄럽게 상공을 날아오르면서 물 찬 제비처럼 상공을 오르내리는 그 무선 조종 헬기 아래에 성진이 있었다.

    “좋아. 잘 움직이는데?”

    성진은 이곳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이는 와중에 길가 완구점에 들러 비교적 튼튼해 보이는 무선 조종 헬기를 골랐다.

    요즘에는 무선 통신 기술과 항공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무선 조종 헬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나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 중에도 가장 튼튼해보이는 물건을 고른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을 심어 회로를 변환시킨 뒤 상공에 띄워보낸 차였다.

    상공을 헤치며 날아다니고 있는 저 무선 조종 헬기는 지금 사방으로 이전에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몸으로부터 흘러나왔던 발신기 신호를 강력하게 흘러 보내고 있었다.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 주변을 배회하도록 해. 놈들이 몰려올 때까지 말이야.”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지시대로 무선 조종 헬기를 자동으로 배회하게 했다. 

    곧 무선 조종 헬기는 상공을 헤쳐 나가면서 인공지능 팔찌가 주입하는 신호와 명령대로 정해진 위치를 향해 날아갔다. 비교적 눈에 덜 띄는 건물 틈 사이를 향해 날아간 무선 조종 헬기는 보통의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조종하는 데 어려움은 없겠어?”

    - 괜찮습니다 마스터. 촬영 장치가 달려있기 때문에 진행 방향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성진이 고른 조종 헬기는 보통의 조종 헬기가 아니라 헬리캠 모델이었다. 무선 조종 헬기 중에서도 고배율 고화질의 촬영 장치가 달린 헬리캠 모델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무선 조종 헬기를 무리 없이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이제 곧 먹잇감을 노리고 벌떼처럼 달려들 녀석들이 나타날 거야.”

    성진은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발신기 신호가 잡힌다는 것은 분명 적들로부터 함정의 의심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머리가 있다면야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허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노리는 적들의 세력은 절대로 성진이 내는 발신기 신호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이용하려는 세력과, 적어도 적대시하는 것이 분명한 세력이 갈라져 있다는 것을 성진은 기존에 수집했던 정보와 최근의 상황변화로 인해 확실히 눈치채고 있었다.

    ‘두 세력이 부딪히고 있다면 반드시 충돌이 벌어진다.’

    충돌은 경쟁을 부르기 마련이고 서로가 확보하지 못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위치가 노출되거나, 혹은 그 위치로 추정되는 정보가 파악된다면 서로 경쟁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다.

    함정으로 의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 쪽이 목표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무시할 수 있다면 애시당초 나설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여유가 없으니 나서야 하고 당연히 그에 대비해 나름대로 상당한 전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에도 약점이 있다.

    비록 낮은 확률이지만 적대하는 두 세력이 연합할 경우 도리어 성진이 역공을 당해 위험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해도 정면으로 부숴 주겠다.’

    성진은 더 이상 피해다니면서 웅크리고 있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로지 도망만 다니면서 위험을 피할 생각이었다면 애시당초 일본에 발을 디딜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시간을 끄느니 확실하게 반격을 시작해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성진은 이번 기회에 완전한 매듭을 지어놓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상황을 타의에 끌려다니는 일은 끊어내야 한다. 성진은 추이를 기다리는 일은 지겹도록 했다. 

    “주변을 계속해서 탐색해. 적들로 의심되는 자들이 나타나면 즉시 호출하도록 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주변으로부터 생명 대사 반응에 대한 탐색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그 뿐만 아니라 도쿄 상공을 감시하는 해외 국가의 인공위성 데이터링크까지 여전히 해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주변의 모든 상황 정보는 성진의 손아귀에 들어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조작이 필요하다면 서로간의 통신 따위는 성진의 손에 간단하게 와해된다. 

    ‘적들이 아무리 많이 몰려와도 이제는 당해낼 수 있다.’

    성진은 지난 번 자위대의 추적을 따돌린 이후로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 조작 능력에 대해 큰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더 이상은 머리수 따위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면서 구애될 것이 아니라 성진 스스로 유리한 상황을 조성해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었다.

    ‘정보를 쥐고 있다면 이기지는 못해도 위험은 면할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손자병법의 유명한 경구를 성진은 이제 실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성진은 그 정보의 흐름을 직접 조작까지 해낼 수 있는 입장이었다.

    성진은 침착하게 적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

                      *     *     *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발신기 신호가 다시 잡히기 시작한 것은 새벽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오매불망 신호를 기다리며 고사를 지내다시피 하며 바라보던 오퍼레이터 팀원이 요란한 호들갑을 떨면서 직속상관인 엔도 츠요시를 호출했다

    “과장님! 신호가 다시 잡혔습니다. 현재 위치 세타가야 구.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입니다!”

    오퍼레이터의 흥분에 찬 고함 소리와는 달리 보고를 받는 엔도 츠요시는 냉담했다.

    “그래? 이거 참 꼭 필요한 순간에 여기 보란 듯이 나타나 주셨구만.”

    엔도 츠요시는 그야말로 극적인 이 변화에 대해 흥분은커녕 냉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부하 직원들처럼 마냥 기뻐하기에는 그가 맡은 책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책임을 맡은 직위이다보니 이 상황에 담겨진 숨은 뜻이 너무도 분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함정이로구나. 알아서 찾아오라는 게로구나.’

    마츠시마 장관을 납치한 주범이 파놓은 함정인지, 아니면 총리 측의 세력이 파놓은 함정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엔도 츠요시의 뇌리에는 마츠시마 장관을 찾으러 간 장소에서 자신을 격퇴한 후드 복장 차림의 의문스러운 고수와 방위청 건물 안에서 마주친 총재의 부하가 동시에 생각이 날 뿐이었다.

    특히 쿠라마이 가문의 후손이라는 그 자는 같은 닌자 가문의 후계자로서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존재였다.

    - 후후.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로구나. 그렇다. 내가 바로 쿠라마이 가문의 후계이자 당대 가주다.

    쿠라마이 가문의 후계자와 엔도 가문의 후계자인 자신이 손을 섞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숙명이었다.

    본래 닌자 가문들은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전국 시대에도 닌자는 세력을 가진 영주들로부터 이용은 당하되 환영받지는 못하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닌자들이 영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순간에는 항상 다른 닌자들이 그 영주와 손을 잡아왔다.

    때문에 닌자의 가장 큰 적은 다른 닌자 가문이었다.

    ‘쿠라마이 가문의 그 늙은이가 보내는 신호일까?’

    엔도 츠요시는 역사적인 내력에 비추어봐도 쿠라마이 가문과 자신의 엔도 가문이 같이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닌자 가문이 남은 시대에서는 구 일본 제국에 충성하며 숨을 죽인 채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해 왔지만 자신의 엔도 가문은 일본 제국군의 무모한 명령에 궤멸당해 버렸고 쿠라마이 가문은 몸을 숨긴 채 세력을 보전했으니 엔도 츠요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원수라 할 수 있었다.

    엔도 츠요시는 지금 자신을 유혹하는 저 발신기의 신호가 정말 마츠시마 장관이 애타게 보내는 구조 신호인지, 혹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준비해놓은 죽음의 신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은 자신이 직접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작전 부서의 팀원들을 모두 무장시켜. 현재 전투 가능한 모든 인원들을 끌고 간다.”

    “옛 팀장님!”

    명령을 내린 엔도 츠요시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도청이 어렵도록 설계된 특수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불감청 폰이었다. 

    - 엔도 상입니까?

    엔도 츠요시가 전화를 건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직속 상관인 총리 대신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엔도 츠요시는 즉각 발신기의 신호가 다시 잡힌 것을 보고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절대 자위대가 출동하는 일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대규모의 자위대 병력이 출동한다면 엔도 츠요시는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라의 최고 통치자인 총리 대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현실이 우습기도 했지만 총리 대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위대가 움직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뼈아픈 사실을 상기했는지 총리 대신은 침음성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 만약 자위대가 출동한다면 즉각 그 자위대 병력을 반역자들로 선포해서라도 막아내겠소. 마츠시마 장관을 보호하는 데에만 최선을 다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총리 대신 각하.”

    총리의 확답을 들은 엔도 츠요시가 전화를 끊은 순간 미리 대기해 있던 부관이 출동 준비를 보고 했다.

    “작전 부서의 모든 팀원들 현재 무장 완료. 출동 차량에 탑승해 있습니다.”

    “좋아. 바로 움직이자.”

    “예. 과장님.”

    엔도 츠요시는 자신의 권총을 챙겨들자마자 나는 듯이 주차장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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