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47화 (147/185)

<-- 147 회: 6권 - 일촉즉발 -->

                   *     *     *

하재혁 회장에게 큰소리를 떵떵 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노라 언질을 일렀던 노인은 매번 다시 연락을 넣으면서 심한 갑갑함을 느꼈다.

자신이 평소 충성을 바치다시피 하며 갖은 아양을 떨다시피 하며 한 편이 되었다고 생각한 일본의 큰 손이 자신의 연락을 통 받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필요할 때는 그렇게 부려먹고 이용하기 바쁘더니. 정작...”

노인 또한 그네들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라가 다르고 같은 민족이 아닌 자신이다. 그들이 일본과 그 일본 민족의 우월성을 믿으면서 옛날 식민지 지배 시절의 영광을 꿈꾸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노인 또한 모를 만큼 어리석고 아둔하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애쓰고 공헌한 만큼 자신이 필요한 순간에는 보답을 해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여기면서 거의 기다시피 하며 충성을 보여왔는데 정작 자신이 필요해서 연락을 하니 도통 연락이 닿지를 않고 있었다.

“이 작자들이...”

노인은 끓는 속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    *    *

허나 노인의 평소 생각과는 달리 정작 ‘일본의 어르신’은 요즘 다른 문제를 진압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성진에게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가자 그를 추적해서 죽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총재님. 조선의 그 자가 거듭 연락을 청해 왔습니다.”

“뭐라? 적당히 말해서 연락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총재는 귀찮다는 듯이 성을 내며 자신의 부하를 바라봤다.

쿠라마이 류세는 그런 총재의 언짢은 표정을 보자 건장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새가 움츠리듯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이 자가 워낙 끈질기게 총재님께 연락을 드리고 싶다 하며 애를 쓰기에 말려봤으나 건방지게도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감히 조센진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듯 하여 귀엽게 봐줬더니 주제를 모르고 맞먹으려 대드는 모양이로군.”

총재는 기가 막혔다.

애시당초 자신에게 충성심을 보이면서 먼저 접근하기에 잠시 잠깐 상대해주었을 뿐인 놈이었다.

쓸만한 구석이 있어 보여 가끔 귀찮은 일을 떠넘기고 조선 내부의 정보를 긁어모으도록 명령을 내리기는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런 짓을 해도 총재의 눈에는 같잖은 조센진이었다. 

야마토의 정신을 이어받아 그 숭고한 이념을 실현해야 할 자신들이었다. 

그 아득한 옛날 열도를 비추며 문명을 빚어냈다고 하는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믿는 자신들이었다. 

그런 고귀한 혈통을 지닌 자신들과 한갓 조센진이 같이 맞먹으려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심히 건방지구나!”

총재가 성난 목소리로 이를 갈 듯이 외쳤다.

쿠라마이 류세는 그런 총재를 보면서 황송한 듯 다시 고개를 숙였다.

“총재님. 허나 이 자가 조선의 내부에서 행사하는 영향력과 쓸모는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잠시 적당히 달래는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쿠라마이 류세는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총재에게 말을 고했다.

그러자 총재는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지금 나를 가르치겠다는 뜻이오?”

가문의 누대에 걸친 호법이자 자신의 속하 중에서 제일 가는 고수인 쿠라마이 류세였기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의견 표시임을 알기에 총재는 쿠라마이 류세를 총애했다.

그러나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쓸모가 있다 한들 조센진! 주인과 맞먹으려 드는 어리석고 무도한 하인은 쓸모가 없는 법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총재님. 하지만 이 건방지고 어리석으며 무도한 하인은 아직 때리기보다 먹이로 달래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야마토 재건의 거대한 목표를 위해서는 이런 조센진까지도 마땅히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곡한 쿠라마이 류세의 말에 총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대는 어쩔 수 없는 나의 충신이구려. 좋소이다. 그 무도하고 어리석은 조센진의 낯짝을 한번 보아 주도록 합시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대한민국이 독립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총재의 머리 속에는 아직까지도 대 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만주에 괴뢰국을 세웠던 그 시절을 생각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감히 자신이 승낙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시건방지게 몇 번이나 연락을 청해오는 그 놈을 총재는 관대한 마음으로 봐주기로 결정했다.

승낙한 뒤 잠시 후 스크린에 비치는 화상 화면을 통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채로 일본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노인이 공손히 예를 표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 총재님. 그 동안 무사히 강녕하셨는지요.

총재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을 받았다.

“그래. 그대는 무슨 일로 내가 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씩이나 연락을 넣어서 나를 귀찮게 했는가?”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자신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총재였다.

그러자 화면 속의 노인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가 곧 재빨리 표정을 바로 했다.

- 하하하.. 제가 총재님을 꼭 만나 뵈어서 긴급하게 말씀을 드려야 할 청이 있었기에 이렇게 자리를 요청드렸습니다.

너스레를 떨면서 다시 말을 붙이는 노인이 총재는 우스울 뿐이었다.

“청이라? 결국 나의 힘을 빌리고 싶어서 연달아 연락을 시도했다는 말이로군.”

-예에.. 황송하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됐네. 됐으니까 이쯤 하지. 자네가 청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무슨 소리인지 알 만 하군. 결국 자네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니 나의 힘을 빌려서 호가호위를 해보겠다는 게 아닌가?”

한 마디 한 마디가 노인의 자존심을 건드는 말투와 단어였다. 그 말에 화면 너머 노인의 표정이 일순간 다시 흔들리는 듯 했다가 다시 표정을 바로 잡았다.

총재는 그 뻔한 속내를 건드는 것이 재미가 있는 모양인지 비릿한 웃음을 입술 양 끝에 걸고 노인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나는 지금 따로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허튼 청은 적당히 하도록 하게. 알았나?”

총재의 일방적인 통보가 떨어지자 노인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 어, 어르신...

“쯧쯧...”

총재는 쩔쩔 매는 노인의 표정을 보자 만족스러웠는지 그제서야 너그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관대하게 말투를 고쳤.

“그래 무슨 청인지 말이나 구체적으로 해 보도록. 내 여유가 된다면 따로 신경을 써주도록 하지.”

총재의 말에 노인은 그제서야 구체적으로 말 할 기회를 얻었다.

기회를 잃을 새라 노인은 다급하게 본론을 꺼냈다.

- 다름이 아니라 요즈음 저희 나라에서 다소 소란을 피우고 있는 한 성진이라는 아이를 제거해주십사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성진이라고?”

- 예. 그러합니다. 

“한성진이라는 아이가 어떤 작자이길래 그대가 직접 제거해달라 부탁까지 올리는 것이지?”

- 그것이, 한성진이라는 아이는 방사능 제거 기술을 개발해서 현재 일본에 판매를 하러 협상단을 꾸린 아이입니다.

“음? 한성진이 방사능 제거 기술을 개발했다고?”

총재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방사능 제거 기술이라면 요즈음 그의 심중을 들쑤시는 요란스러운 소동의 원인이 아니었던가. 

“한성진이가 방사능 제거 기술을 개발했다면 응당 우리 나라에 판매를 하러 왔겠군.”

- 그렇습니다 총재님. 한성진 그 아이는 지금 협상단을 꾸려서 일본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아이를 나에게 처리해달라 부탁하는 것인가.”

-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총재님. 그 아이를 제거해주시면 그 아이의 회사를 제가 요리하여 총재님을 위하여 일본 국에 방사능 제거 기술을 유익하게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나에게 방사능 제거 기술을 제공해준다?”

총재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후후후. 결국 그것이었군. 그대는 그 방사능 제거 기술을 통한 이익에 크게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로군? 그렇지 않나?”

총재의 지적에 노인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 그렇습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 역시 그 방사능 제거 기술을 통한 이익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감히 총재님께 이런 청을 올리는 이유도 그 점이 가장 큽니다.

“후후후후...”

총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더니 점차 그 웃음소리는 미묘하게도 비웃음으로 변해갔다.

총재의 눈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의 표정은 미묘하게 불길함을 느낀 표정으로 변했다.

- 초, 총재님..

“후후후후. 그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상황을 타개하고 여유로워진다면 그때 천천히 이루어주도록 하지.”

- 초, 총재님! 그 아이가 일본 내에 있을 때 처리를 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그대가 이익을 독차지할 수 있어서인가?”

- 초, 총재님!비명성을 지르는 노인의 표정에 실망과 절망이 동시에 어렸다. 

총재는 노인을 잠시 놀렸을 뿐 결국 그 청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대화는 여기까지로 충분하겠군. 나는 그대의 이야기에 아주 약간 흥미가 있었네. 하지만 방사능 제거 기술을 위한 협상은 빠른 시간 내에 종료가 될 걸세. 그때 가서 여유로워진다면 그대의 청을 들어주도록 하지.”

- 초, 총재님! 조금만 더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발..

노인의 다급한 표정을 무시하면서 총재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었다.

곧 스크린 화면이 검어지고 대화를 종료한 총재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쿠라마이 류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떤가?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오?”

“저로서는 무척 흥미로운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후. 그러한가? 좋아.. 저 작자의 청을 들어줘서 우리가 그 방사능 제거 기술 또한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총재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긴급하게 처리한 다음 여유가 생긴다면 성진을 제거할 방법 또한 감안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성진이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조사를 해두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총재님.”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제거한 즉시 아이들을 그 한성진이라는 아이 주변에 배치하도록 하시오!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지 칼을 뽑을 수 있도록 말이야!”

“하이! 알겠습니다 총재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쿠라마이 류세는 절도 있는 자세로 예를 올린 뒤 총재의 방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총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후. 이거 잘만 하면 단숨에 일거양득을 하겠구나.”

두 마리 토끼가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 것도 아주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토끼들이다. 

그러나 그 두 마리 토끼 모두 한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 토끼를 가지고 있는 성진은 총재의 그물 안에 잡히기는커녕 도리어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