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45화 (145/185)
  • <-- 145 회: 6권 - 일촉즉발 -->

    성진을 마약문제와 성적 추문 등의 스캔들에 빠트리려 했던 하재혁 회장은 요즈음 부쩍 늘어나는 고민거리에 편두통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으하하하! 도대체가 이렇게나 일이 꼬여버리다니! 이게 말이나 되느냐고오!”

    하도 기가 막히니 분노와 함께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재혁 회장의 기분은 요즈음 연일 최악이었다.

    사방에서 욕을 먹고 회사의 명예가 땅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는 청와대에서도 강후그룹의 존재가 성진을 적대시한다는 것을 깨닫고 전격적인 전방위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다.

    어제는 국세청에서 그 무시무시한 세금 감사관들이 벌떼처럼 들이닥쳤고, 오늘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사가 들어왔다. 다른 양심적이고 건전한 기업주들은 무서워 할 일이 없는 기관들이었지만 하재혁 회장은 달랐다.

    ‘끄응... 이거야 원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그는 지금까지 연달아 편법을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면서 회사를 키워왔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상황은 별로 우호적으로 흐르고 있지 않았다.

    여론까지도 강후그룹의 고질적인 비리 의혹이나 다른 잘못에 대해 사정의 칼날을 높이 세워야 한다며 이를 갈고 있었다.

    세월을 거듭하면서 쌓아온 강후그룹의 잘못된 관행이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허.. 이런.. 빌어먹을!’

    그와 함께 기업 재계 모임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간혹 알랑방귀를 뀌곤 하던 다른 기업의 경영주들은 연락을 끊은 채 감감 무소식이었다.

    물론 이 나라 최고의 저력을 자신해 온 강후그룹이니만큼 그간 쌓아온 힘과 뒷배경이 만만치 않아 믿는 구석은 있었으나 하재혁은 갑자기 변해버린 세상 인심의 저편에 대단히 부담스러운 누군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나를, 이 강후 그룹을 노리고 있구나!’

    본래 정권 초기부터 새롭게 정권을 잡은 육정철 대통령과 묘하게 척을 지게 된 강후 그룹이었다.

    물론 육정철 대통령 본인도 대한민국 경제의 큰 버팀목인 강후 그룹과 굳이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

    그러나 육정철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한민국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강후그룹의 본래 관행과 답습이 서서히 충돌하기 시작하더니 정권 중반에 들어선 뒤부터는 몹시 데면데면해진 상황이었다.

    거기에 강후그룹의 이름을 걸고 성진을 초대한 플로티나 호텔에서 몹시 의심스럽고 뒤가 구린 듯한 추문이 터져나오니 육정철 대통령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했다.

    자신의 임기 마지막을 걸고 추진하는 큰 일의 주도 인물이자 핵심 인물인 성진이 본인도 마침내 가차없이 칼을 뽑아든 상황이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하재혁은 육정철 대통령이 평소 자신을 탐탁치 않게 보다가 이번 일로 여론이 악화되자 구실을 잡은 것이라 여겼다.

    ‘허허허. 속이 타는구만. 속이 탄다. 도대체가 일이 이렇게 되는 동안 그 양반은 뭘 하는 거야!’

    하재혁은 호언장담을 하고서 자신을 이런 난처한 상황에 끌어들인 장본인을 탓했다.

    성진의 명예는 물론 사회적 실추를 통해 사회 전방위로 압박하면 그 틈을 타서 그 문제의 어르신이 내세운 다른 회사로 성진과 거래를 시도한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그 회사는 하재혁의 강후 그룹이 출자한 유령 회사였다.

    졸지에 마약 사범에 성적 추문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파렴치한 인간이 된 성진이 불명예를 피하고 형을 확정되는 것을 면하려면 하재혁 자신의 거래 시도를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본래 성진처럼 가진 게 많고 젊고, 특히 야심만만한 사내라면 명예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 때까지는 제법 괜찮은 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하재혁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의 은밀한 일들을 같이 처리하고 구상하는 참모들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 여겼다.

    정확하게는 성진이 정치권이나 기타 유력 인사들과 돈독한 친분이 없을 거라는 확신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설사 성진을 건드렸다가 실패해도 자신을 향해 되갚아주는 식의 보복을 가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누가 뭐라해도 이 나라 최고의 저력을 자랑하는 강후 그룹의 총수인 자신이 아니던가.

    “망할. 이렇게까지 일을 엉망으로 망쳐놨으면 뭔가 대답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하재혁 회장은 엉망으로 변해버린 현재 상황을 애써 수습하려고 힘을 들이면서 짜증이 폭발했다. 

    일전에는 일본으로 성진이 날아간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금방이라도 처리해줄 수 있을 것인 양 설레발을 치더니 결국 감감무소식이라는 결론에 하재혁 회장은 자신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수단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을 단번에 타개하는 것은 포기했다.

    하재혁 자신이 여기저기 연달아 법조계와 치안 계통의 인맥들에 연락을 넣으면서 비벼봤지만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니 다들 몸을 사리기 바빴다.

    ‘그렇다고 이대로 모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하재혁 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박살이 나더라도 실패로 끝나버린 그 일만은 되돌리고 싶었다.

    ‘한성진. 그 놈만은 내 어떻게 해서든 묻어야겠다.’

    하재혁 회장이 성진을 우습게 본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곧 커다란 실수였음이 드러났음에도 하재혁 회장은 성진을 운 좋은 행운아 내지 버릇없는 애송이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버리고 방사능 기술 수출 거래라는 커다란 업적을 곧 자랑하게 생겼다.

    모르기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일본을 상대로 한 거래였으니 성진이 성공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명성을 떨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재혁 회장은 그런 성진의 성공가도를 달리게 될 미래가 몹시도 부담스러웠다.

    지금도 이렇게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물질적 성공은 물론 명예와 명성까지 걸치고 국내로 돌아오면 대체 자신이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놈은 분명히 내가 그 녀석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플로티나 호텔에 성진을 끌어들이는 데에 강후 전자의 이름을 팔았다.

    강후그룹의 최고위자이자 총수인 자신의 뜻이 닿아있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화해는 불가능하니 어떻게든 싸워서 치명타를 안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재혁 회장은 인터폰으로 비서실을 호출했다.

    “비서실장 들어오라고 해!”

    -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낭랑한 젊은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얼마 안 있어서 집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회장님. 비서실장입니다. 찾으셨습니까?”

    문 밖에서 들려오는 비서실장의 목소리에 하재혁 회장은 바로 들어올 것을 명했다.

    “그래! 어서 들어오게.”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얼굴 위로 잔뜩 상기된 기운을 걸친 채로 숨을 몰아쉬는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하재혁의 들어오라는 지시를 비서실로부터 전달받자마자 뛰어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하재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 멀리 나갔다 있었나보지?”

    “아하하. 아닙니다 회장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변명하는 비서실장을 하재혁은 못 미덥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어르신께 연락이나 넣게. 내가 한시라도 빨리 대화하고 싶다고 전해.”

    “어르신께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보고 한성진이를 플로티나 호텔에 끌어들이라고 부추기면서 이 지경으로 상황을 만든 그 늙은이 말일세!”

    하재혁 회장은 비서실장에게는 완전히 존칭을 생략한 체 그를 불렀다.

    하재혁의 노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비서실장은 즉시 연락을 취했다.

    본래 연락하자마자 곧바로 닿지는 않는 고약한 버릇이 늙은이에게 있었음에도 이번에는 곧 바로 즉시 응답이 왔다.

    “앗! 어르신께서 받으셨습니다. 여기 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든 비서실장에게서 전화를 건네 받은 하재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러나 목소리에 으르렁대는 낮은 서늘함을 담은 채로 어르신에게 일갈했다.

    “무슨 말을 할 지는 잘 알 거라고 생각하십니다. 스스로 판단하시기에 어떻습니까? 이 강후 그룹 이름을 함부로 팔아서 그 한성진이를 잡으려 했다가 도리어 내가 올가미에 잡혀 버린 꼴입니다. 이제 어쩌실 거냐는 말입니다.”

    수화기르 받자마자 연신 고성을 쏟아내는 하재혁 회장의 말에 수화기 너머의 어르신은 의외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나온 첫마디는 뜻밖에도 사과였다.

    - 미안하군 하 회장. 내 강후 그룹에 누를 끼친 점은 인정하리다. 진심으로 사죄하겠소.

    ‘허!’

    하재혁은 속으로 기가 질렸다. 

    자신 앞에서 늘 오만가지 폼은 다 잡으며 감 내놔라 배 내놔라 갖은 잘난척은 다 하던 늙은이가 이제 와서 겸손을 떨며 사과하니 도리어 경계심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풀릴 리는 없었다.

    애시당초 하재혁 회장은 이 문제의 수화기 너머 어르신과 전혀 친밀감이 없었다.

    언젠가는 서로를 밟고 넘어가야 할지 모르는 잠정적인 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서로의 필요를 위해 잠시 손을 맞잡은 관계. 그런데 어르신이란 자는 자신과 강후 그룹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필요로 인해 잠시 동맹을 맺은 관계에서 한쪽이 전혀 존재가치를 증명하기는커녕 도리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줬으니 이는 어마어마한 실책이다.

    하재혁 회장은 그 점을 대놓고 따지고 들었다.

    “어르신께서 일본으로 간 그 녀석을 제대로 처리해주신다고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그 녀석 어디에서 뭘 한답니까? 이제 그 녀석이 일본에서 대형 계약을 맺고 돌아오면 저와 어르신은 손가락만 빠는 채로 있다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다. 그는 애시당초 성진이 일본으로 협상단을 이끌고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하재혁 회장에게 이렇게 언질을 주지 않았던가.

    -실망이 크겠지요. 이해합니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넉넉해요. 이번에 그 아이 일본에 간다고 합니다.

    “일본이요?”

    -그래요. 해외라면 손을 쓸 기회가 풍부합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때처럼 쉽게 들어오기도 힘들 거고, 더더군다나 일본이라면 나와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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