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회: 6권 - 도화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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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이 객실을 나서자 근처에서 대기중이던 국정원 요원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한 회장님? 어디 가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전에 갑자기 사라진 성진의 일 때문인지 요원의 표정에는 살짝 긴장의 빛이 어려 있었다.
“하하하.. 아니 너무 무료하고 긴장이 되어서 말입니다. 이 호텔 아래에.. 카지노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카지노요?”
성진의 은근한 말에 요원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이 어렸다.
“아니 회장님같은 분이 어떻게 카지노에...”
요원은 다급히 성진을 설득하려고 말을 이었다.
“회장님. 회장님은 지금 국가적인 중임을 맡고 협상단과 함께 일본에 오신 몸입니다. 회장님같은 중차대한 직책을 가지신 분께서 카지노, 그것도 이 일본 호텔의 카지노를 이용하는 모습이 알려지게 된다면 좋지 않은 말들에 휘말리실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긴장을 머금고 성진을 말리는 요원의 태도에 성진은 손사래를 치면서 만류했다.
“아하하. 걱정마세요. 심각한 도박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잠깐만 머리를 식히고 나올 겁니다.”
“예에. 물론 그러시겠지만 회장님. 아무래도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정도와 일반인의 생각은 좀 다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요원은 성진의 가볍게 한다는 말의 의미가 일반의 평범한 사람들 기준으로 가볍게 한다는 말과는 다른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거대 기업의 총수이자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금융 계열사들을 거느린 성진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범위 내의 가벼운 도박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에도 교포들 눈이 있을텐데 걸리기라도 하면...’
무엇보다 문제는 카지노 자체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엄연히 불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률은 도박을 금지하고 있고, 잠깐의 오락 정도로 아주 가볍게 즐겼다는 선에서 이해될 정도로 해야 초범에 한해 운이 좋게 재판부에서 정상 참작을 해주는 선으로 집행이 되고 있었다.
성진이 카지노에 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 국정원 요원의 입장에서는 수행원으로서 중대사를 그르칠 수 있는 실수를 두 눈 뜨고 바라만 보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성진 역시 모르지 않았다.
“후훗.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다... 저는 지금 무척 기분 전환이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성진은 눈앞에서 긴장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국정원 요원을 보면서 가볍게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다.
“그럼 요원님. 저하고 가볍게 한 판 하실래요?”
* * *
“자, 골라 골라~ 돈놓고 돈 먹기~ 골라 골라~”
후미진 뒷골목에서도 요즘은 보기 힘든 진풍경이 일본의 최첨고급 호텔 스윗트룸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성진이 그릇을 3개 포개놓고 그 중 딱 하나의 그릇 안에 동전을 숨겨놓은 채로 뒤섞어서 맞추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한판에 오천원씩 걸어서 술 내기를 하는 가벼운 게임이었다.
제안은 성진이 기분 전환을 위해 심심한 피로를 달랠 겸 시작한 게임이었지만 지금까지 매번 승부에서 투철한 호승심을 발휘해 온 성공가도의 인물들이 모인 협상단답게 금새 불이 붙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으으읏. 아아.. 으...”
“어엇. 저, 저기.. 어어..”
성진이 재빠르게 그릇을 회전시켜서 뒤섞을 때마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식과 아쉬움,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진이 인지 가속을 활용할 정도로 무리한 빠르기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진이 이런 게임을 벌린 것은 새롭게 얻은 텔레파시 능력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자, 그럼.... 어디..’
성진은 그릇을 회전시키면서 순간 실수인 척 하며 그릇 하나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게임에 참여하고 있던 젊은 요원 한 명에게 의도한 이미지를 주입했다.
‘자아.. 과연 어떨지..’
성진이 요원에게 주입한 이미지는 동전이 살짝 보였다가 금방 감춰지는 이미지였다.
워낙 찰나의 순간을 담은 이미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원의 얼굴에는 무언가를 봤다는 강한 확신과 희열이 번지고 있었다.
‘좋아! 성공이다.’
성진은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성진은 방금 전 살짝 들어올린 그릇 안에 동전을 두지 않았다.
동전은 지금도 다른 그릇에 담긴 채로 회전 중이었는데 요원 혼자만이 그 동전을 본 것처럼 들떠 있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마침내 성진이 그릇을 섞는 것을 중단하고 좌중을 보면서 질문했다.
“자! 어느 그릇에 동전이 있을까요.”
“어어.. 여기 같은데요.”
“음.. 나도 여기!”
저마다 운을 믿고 찍는 사람들도 있고 각자 나름대로 눈으로 쫓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들 중에서도 방금 자신이 이미지를 텔레파시로 보냈던 요원에게 가장 큰 신경을 썼다.
‘자.. 어디에 거실려나...’
그 요원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아까 전 성진이 가짜 이미지를 보여줬던 그릇에 오천원짜리 지폐를 걸었다.
“저는 여기입니다!”
성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이거 참...”
그러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릇을 들자 요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성진과 그릇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어? 아니.. 아까 제가 분명히 봤는데...”
“음? 뭘 보셨다구요?”
“아니. 이게... 아니 회장님. 다른 그릇을 어서 들어 보여주십시오.”
믿기 힘들다는 요원의 반응을 보면서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그릇을 서둘러 들어보였다.
그러자 동전은 전혀 엉뚱한 다른 그릇 아래 숨겨져 있음이 드러났다.
“어엇!”
깜짝 놀란 요원은 기함을 질렀다.
분명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본 동전이 다른 그릇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회장님.. 이거..”
요원이 성진과 그릇을 번갈아보면서 속으로 우물쭈물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거 사기 아니야?’
아마도 사기 수법같은 교묘한 속임수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가벼운 게임인데다 상대가 성진이라 대놓고는 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성진은 그런 요원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씨익 웃었다.
‘흐흐. 일단은 성공인가?’
하지만 해당 요원이 단순히 착각했다가 우연하게 성진이 의도한 그릇을 찍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여러번 시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성진은 자신의 새로운 능력인 텔레파시 능력이 제대로 먹힌다는 확신을 가졌다.
“으아아~ 이거 정말 귀신에 홀린 기분입니다.”
성진에게 당한 요원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가벼운 게임이었지만 매번 자신이 직접 보고 눈으로 좇은 결과가 다르니 이렇게 질려버린 것이다.
그 걸 본 성진은 다급하게 한 판 더 하도록 강권해서 결국 요원이 잃은 돈을 모두 돌려주었다.
그리하여 잠시 가볍게 기분전환을 한 기념으로 음식과 다과 등의 룸서비스를 시킨 성진은 자신의 실험(?)을 잘 따라준 대가로 직접 거나하게 주문해서 결재를 했다.
속으로는 다소 미안한 마음에 음식을 주문한 것인데 그런 성진의 속마음을 모르는 요원은 가볍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럼 회장님.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예. 맛있게 드십시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음식에 열중하는 요원들을 보면서 성진은 자신이 깨달은 현재의 텔레파시 능력, 정확하게는 이미지 전달 능력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지를 간파한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이미지를 두뇌 속에 직접 주입하면 상대방의 오판을 유도할 수 있다.’
목숨이 오고 가는 급박한 순간.
바로 그 순간에 결정적인 상대방의 한 수가 엉뚱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보인다면 엉뚱한 동작을 취할 수밖에 없다.
성진은 엔도 츠요시와의 결전을 겨루면서 난생 처음 자신을 위협할만한 진정한 고수와 격전을 벌였다.
성진 자신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어 강제로 인지 가속 능력을 사용하게 한 것은 청소부 김형석이 처음이었지만 그는 가까운 거리에서 권총을 사용해서 그리 한 것이다.
직접 육체 능력만으로, 칼 한자루만으로 성진에게 그토록이나 심각한 위협을 준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성진에게 큰 충격이고 고민거리를 던져 준 문제였다.
그리하여 성진은 텔레파시 능력이 이미지 전달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까지 개발되자 과연 자신의 생각이 실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궁금해서 이런 게임을 벌린 것이었다.
‘일단 결과는 대성공이다. 결국 실전에서는 해봐야 알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수가 될 거 같군.’
목숨이 오고 가는 급박한 순간에 고수의 한 수 싸움일수록 자신의 감각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믿는다.
비록 절정의 경지에 이르면 시각 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에 골고루 트여서 대단한 감지 능력이 활성화가 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인간인 이상 시각에 가장 의존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시각 정보가 두뇌 속에 잘못 전달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눈 앞에서 막강한 실력으로 자신의 안전을 노리는 위험한 적이 주먹 대신 동작이 큰 발차기를 하려 한다면?
그 즉시 그에 걸맞는 방어 대책이 나오거나 도리어 역공을 가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방금 전 본 상황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상대방의 발 대신 주먹이 갑자기 움직인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후우.. 그때의 그 자가 썼던 비술이 궁금하구만.’
성진은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몰아넣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비수를 휘둘러 댔던 그 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때 성진은 상대방이 사용한 비술을 익히고 싶었지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보호해야 하기에 시간이 너무도 부족한 까닭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하지만 다시 만난다면... 이번에는 도리어 내가 압도할 수 있다.’
텔레파시의 이미지 전송 능력이 고수에게도 어느 정도 통할지 아직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성진은 급박한 순간에 사용할수록 자신의 능력이 훨씬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각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상대방이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눈으로 본 사실을 믿고 움직였는데 막상 결과는 정 반대라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후후.. 그때 총리 대신이 보낸 사람들이라 했던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곧 다시 만날 날이 오겠어.’
성진은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으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계획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