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43화 (143/185)
  • <-- 143 회: 6권 - 도화선 -->

    엔도 츠요시는 자신의 내력을 아는 듯한 백발 장년인의 말에 한층 더 크게 경계를 높였다.

     “아직도 모르겠나? 이렇게 쉽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네가 나를 두려워한다는 증거다. 엔도 가문도 참 한심하군. 이까짓 애송이가 후계자라니.”

    지금껏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돌파해 온 엔도 츠요시를 눈 아래로 내다보는 투로 말하는 장년인이었다.

    그러나 엔도 츠요시는 어리석게 반응을 드러내는 대신 긴장을 유지할 뿐이었다.

    비록 자신의 정체와 내력을 아는 것은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지만 쉽게 반응해서 빈틈을 허용할만큼 엔도 츠요시가 살아온 지난 세월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도발에 넘어가기에는 그 자신도 나름대로 지옥같은 전투를 겪어오며 살아왔다. 

    허나 어떠한 기세를 뿜어내도 눈앞의 장년인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엔도 츠요시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결판을 낼 생각은 없다. 엔도 츠요시. 내 너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기회라고? 무슨 헛소리냐.”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내놔라. 그의 신변을 우리에게 내놓는다면 내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또한 너와 총리가 나의 주군께 저지른 각각의 무례를 모두 용서해주도록 하지. 특별히!”

    “주군이라니.. 그렇다면 너는 총재가 보낸 것이냐?

    “후후. 그 분을 가볍게 부르지 마라. 엔도 츠요시. 네깟 주제에 감히 그분의 존재를 가볍게 언급할 수는 없다.”

    장년인은 성난 숨을 쉬면서 기세를 피어올렸다. 엔도 츠요시 또한 그 기세에 맞서기 위해 온 몸의 전력을 다해 끌어올리며 최대한 차분하게 머리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내놓으라고? 역시.. 장관의 신변을 우리에게서 확보하려다 실패한 게로군. 이들은 적어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신변을 알지 못한다. 그래 그랬던 거야!’

    상황에 있어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아직 눈앞의 적들이 확보하지 못했음을 깨달은 엔도 츠요시는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후후. 장관의 신변은 절대 넘겨주지 못한다. 데려가고 싶다면 전력을 다해서 덤벼야 할 것이다.”

    “뭐라? 감히 엔도 가의 비술을 조금 익혔다 해서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너 따위의 실력으로는 지금 나의 분노를 막아낼 수 없다. 목숨이 두 개가 아니라면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년인의 협박에 엔도 츠요시는 싸늘하게 비웃었다.

    “닥쳐라 늙은이. 내가 아무리 네놈보다 힘이 약할지는 몰라도 협박 따위에 굴복해서야 가문의 영광에 먹칠을 하는 것이지. 천년 세월을 논하는 엔도 가의 역사를 우습게 보지 마라.”

    “크흐흐. 천년이나 이어온 엔도 가의 후계가 무모한 것을 보니 곧 그 역사가 끊어지게 생겼구나.”

    백발 장년인은 엔도 츠요시를 싸늘히 훑어보며 힘을 거뒀다.

    갑작스럽게 줄어드는 기세에도 불구하고 엔도 츠요시는 긴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장년인을 살폈다.

    “네놈이 무얼 믿고 그토록이나 시건방지게 내 앞에서 떠들어대는지는 모르겠다만 자신의 주제도 헤아리지 못해서야 내 손아귀에서 목숨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백발 장년인. 쿠라마이 류세는 엔도 츠요시를 노려보면서 한마디를 더 보탰다.

    “가서 네 주인인 총리 대신에게 전해라. 총재께서는 그간의 노고를 높이 사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데려다 바치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겠다 하셨다.”

    “용서라고?”

    엔도 츠요시는 코웃음을 쳤지만 쿠라마이 류세는 아랑곳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전했다.

    “그렇다. 네 주인이 그간 일처리 하나는 잘 해 왔으니 마지막으로 옛 정리를 생각해서 기회를 한번 더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쿠라마이 류세가 뒤돌아서서 복도를 나서려 하자 엔도 츠요시는 순간 기습을 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자신보다 몇 수 위의 실력임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이 눈앞의 장년인을 이길 자신이 그로서는 솔직하게 없었다.

    ‘젠장. 요즘 들어서 평생 만나 보기도 힘들 괴물들이 내 눈앞에 설쳐대는군.’

    지난 번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눈앞에서 납치해 간 의문의 고수와 지금 만나고 있는 저 눈앞의 장년인이 겹쳐 보였다. 

    저 백발 장년인이 자신의 부하를 단신으로 궤멸시킨 그 의문의 고수 못지 않은 실력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명심하도록 해라.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용서를 얻을 기회는 더는 없다.”

    뒤로 돌아서서 걸어나가는 쿠라마이 류세를 보고 엔도 츠요시는 별안간 생각난 듯이 질문을 던졌다.

    “잠깐! 혹시 당신은 쿠라마이 가문의...”

    걸음을 옮겨 딛던 장년인은 살기를 담은 미소를 띈 채로 엔도 츠요시를 향해 돌아봤다.

    “후후. 이제야 눈치 챈 모양이로구나. 그렇다. 내가 바로 쿠라마이 가문의 후계이자 당대 가주다.”

    “쿠라마이가 총재의 하수인이 되었을 줄이야. 전쟁 때 우리 가문을 비롯해서 모든 닌자 가문이 궤멸되었다고 들었는데...”

    “흐흐흐. 너희 엔도 가문처럼 어리석은 것들은 어리석은 황군의 총알받이가 되었겠지만 우리는 본토에서 조용히 힘을 길렀지.”

    “그런...”

    말하자면 다른 닌자 가문들이 전쟁터에서 궤멸되고 있을 때 조용히 숨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배신이라 할 수 있었지만 엔도 츠요시는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자신의 선조들은 어리석게도 일본 제국군의 총알받이가 되어서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후후. 그랬군. 그래 결과적으로는 무척 현명한 짓이었다. 그러나 화가 나는 것은 사실이로군 그래.”

    전의를 불태우는 엔도 츠요시를 보면서 쿠라마이 류세는 가볍게 비웃을 뿐이었다.

    “너희 주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나에게 덤비고 싶다면 나중에 얼마든지 덤벼라.”

    “글쎄. 당신하고는 조만간에 크게 붙을 거 같은 예감이 드는군.”

    “네 놈은 명줄이 짧아질까 두려워하지를 않는구나. 좋을 대로 까불어라. 건방진 애송이 녀석. 흐흐흐흐”

    놀리듯이 말을 던진 쿠라마이 류세는 살기를 흘리는 엔도 츠요시를 뒤에 두고도 복도를 태연자약하게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엔도 츠요시는 속으로 침을 삼켰다.

    ‘말로만 듣던 쿠라마이의 괴물이 튀어나왔구나. 결국 부딪혀야 하는 상대는 저 자인가?’

    긴장으로 타들어가려 했던 전신을 서서히 이완 시키면서 엔도 츠요시는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나 역시 엔도 가문이 자랑하는 강력한 비전 절기가 있다 늙은이.’

    비록 지난 번 의문의 고수와 싸울 때에는 적당한 기운만을 끌어내 무력하게도 패배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확보해야 하는 목적과 사정이 있었다.

    모든 이성이 날아가 버릴만큼 광폭한 광전사의 기운을 끌어내는 비기를 극성까지 사용한다면 눈앞의 괴물도 날려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엔도 츠요시였다.

    ‘다만 딱 한번 절호의 기회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게 문제일 뿐이다.’

    엔도 츠요시는 지난 번 맞닥뜨린 그 의문의 고수조차도 자신의 비전 절기가 극성으로 사용되었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으리라 여겼다.

     극성으로 기운을 끌어내 모든 이성을 사라지게 해서 완전한 광전사의 상태가 되었다면 결국 그 의문의 고수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죽었거나 최소한 동귀어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으로 인지 가속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시간을 거스르는 초월적인 인지 능력으로 엔도 츠요시의 어마어마한 빠른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었다.

                    *     *     *

    한편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로부터 텔레파시 능력의 발동 조건에 대해 서서히 데이터를 전해 받고 있었다.

    텔레파시 능력을 어떻게 발동시켜야 할지에 대해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임의대로 발동시키는 데에 대해서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 팔찌로부터 점점 텔레파시에 대한 정보를 전해 받으면서 이 능력이 만만치 않은 능력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직 이 능력을 발동시키는 방식은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한 건 텔레파시라는 능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성진의 마음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아직 완전한 초상 능력의 단계에 오르지 못해 본격적인 텔레파시라고는 할 수 없는 원시적인 수준이었으나 전설에나 전해져 오는 이 텔레파시라는 능력을 성진이 직접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엄청난 일이었다.

    잘만 사용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상식 밖의 효용을 낳을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 마스터. 감정과 심상 전달에 있어서는 정확한 가동 방식을 파악하지 못 했지만 간단한 이미지 정도는 순간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파악했습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갑작스런 보고에 성진이 질문했다.

    ‘간단한 이미지 정도라니 그게 어떤 것을 말하는 거지?’

    -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마스터께서 연상하고자 하는 상황이나 모습을 떠올리면 그것을 즉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즉 말 그대로 이미지화된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이미지라.. 그렇다면 겨우 그림 정도 보여주는 것 뿐이잖아?’

    - 아닙니다 마스터. 간단한 그림이 아니라 마스터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상하든 해상도나 세밀함에 관계없이 타인에게 전달이 가능합니다.

    - 단순한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마스터께서 생각하시는 상황이나 움직임 또한 타인에게 전달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보고는 어디까지나 진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고무적인 일이었지만 정작 보고를 듣는 성진은 조금 실망했다.

    ‘흐음.. 내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확실한 텔레파시가 아니라 고작 이미지 정도를 전달한다라..’

    성진의 텔레파시 능력은 아직 지극히 미약하고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그것을 임의대로, 마음대로 가동시키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진전임은 틀림없었지만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텔레파시 관련 보고를 듣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협상과 설득에 훨씬 더 유리해질 수 있을텐데...’

    협상단 구성원들을 단번에 설득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성진은 텔레파시 능력의 효용이 설득과 의견 표현에 있다고 생각했다.

    논리보다 감정적 전달을 직접적으로 가하는 텔레파시 능력이라면 성진의 의견에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한층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 팔찌도 사전에 성진에 대한 호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말해뒀지만 성진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

    ‘그런데 결국 감정 전달을 할 수 있는 방안은 발견하지 못 한 건가...’

    성진의 판단에 인공지능 팔찌는 비관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 본격적인 3차 육체강화를 통해 초상 능력을 개발해서 본격적인 텔레파시 능력을 개발해야만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지만 현재 상황에서 마스터께서 생각하시는 효과를 발휘해내기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 역시.. 쉽지는 않구나.’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비관적인 대답에 다소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 팔찌 역시 성진의 대사 반응을 통해서 실망감을  충분히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주인인 성진의 생존을 위해 경고 조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스터. 하지만 혹시라도 3차 육체강화를 시도하시는 일은 심각하게 고려해보시기를 바랍니다. 3차 육체강화는 현재 저의 기술력과 데이터, 마스터의 종족적 특성을 고려하면 도저히 성공하기가 지나치게 힘든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또한 3차 육체강화를 실패했을 시의 대가는 심각할 경우 죽음이다. 

    인공지능 팔찌는 그 점에 대해서도 강조하려 했지만 주인인 성진의 심기가 불편할 것을 고려해 표현하지는 않았다. 

    허나 성진 역시도 인공지능 팔찌가 정작 무엇을 우려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역시도 네가 걱정하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으니까.’

    성진의 말에 인공지능 팔찌는 다소 안심한 듯한 답변을 했다.

    - 감사합니다 마스터. 

    - 하지만 만약 마스터께서 3차 육체강화를 강행해야 할만큼 절박한 상황이 닥친다면 최선을 다해서 마스터를 돕겠습니다.

    ‘그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인공지능 팔찌의 다짐에 성진은 감사를 표시했지만 정작 인공지능 팔찌는 기계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 아닙니다 마스터. 마스터의 생존을 돕는 것은 저의 당연한 의무이자 존재이유입니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계속 수고해줘. 부탁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불안을 달래준 뒤 텔레파시 발동에 대한 현재까지 연구된 데이터를 모두 출력하도록 명령했다

    ‘텔레파시 능력에 대한 연구 데이터를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배열해 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 현재까지 연구된 텔레파시 데이터와 마스터의 육체 반응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를 출력하겠습니다.

    - 자료 업로드. 

    - 마스터의 학습 능력을 반영한 데이터 편집이 있겠습니다.

    - 편집 가동중 

    이윽고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학습 능력을 세심하게 반영해 꼼꼼하고 좀 더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연구 데이터를 출력했다.

    - 연구 데이터 출력. 

    - 마스터. 데이터를 파악하시는 와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시면 즉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혹시나 미흡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 첨언하는 인공지능 팔지였지만 얼핏 보기에도 이미 강화된 두뇌 능력과 지식을 흡수해 둔 성진의 학습 능력과 수준으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좀처럼 없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겠는데 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준비한 데이터를 단시간 내에 이해하고 습득했다.

    발동시키는 원리를 모두 깨우치자 즉시 새롭게 터득한 능력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흐음.. 정확하게 어느 정도가 가능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니...’

    자신이 떠올리는 이미지를 남이 전해받는다고 해서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가?

    잠시 고민하던 성진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오호. 과연... 그거라면 가능할지도...’

    성진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묵고 있던 객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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