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회: 6권 - 새로운 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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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의대 의과병원.
일광이 잘 드는 단독 입원병실에 한가운데 놓여진 침상 위에 한 건장한 중년 사내가 누워 있었다.
침상 패찰에 적힌 환자의 이름은 쿠보 ㅤㅅㅠㄴ이치였지만 실제 그의 정체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환자의 정체는 바로 엔도 츠요시.
일본 내각 총리 휘하의 조직인 제 10과 내각업무지원실이라는 패찰을 걸어놓고 지원예산을 받아먹고 있지만 실상은 강력한 정예 특수요원들을 모아 놓은 첩보 조직.
바로 비밀 조직인 비밀작전그룹의 수장이자 최고 지휘관인 엔도 츠요시가 눈을 감은 채로 햇빛 아래 눕혀져 있었다.
미동조차 없는 고요한 병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그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년 나이의 남자가 있었다.
말끔한 신사복을 입고 입가에는 일본 국민들이 좋아하는 유쾌한 이미지의 웃음이 곧잘 걸리던 호감 가는 정치인의 모습인 남자.
바로 현재 일본 내각의 총리이자 일본 정치 권력의 1인자인 타치바나 케이타였다.
그는 침상 위에 눕혀져 있는 엔도 츠요시를 쓱 훑어보더니 놀리듯이 말했다.
“깨어 있는 거 압니다. 언제까지 누워서 쇼를 할 참인가?”
그러자 어떠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침상 위에 누워 있던 엔도 츠요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을 뜬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내각 총리를 바라봤다.
“과연. 혹시나 해서 찔러 봤는데 정말 미동조차 없길래 긴가 민가 했소이다.”
“아시겠지만 저는 닌자 가문의 비술을 전수받은 몸이니까요. 이렇게 안락한 침대에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당연히 별 일도 아닙니다.”
말을 마친 엔도 츠요시는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양 발을 교차시킨 채로 앉아 좌정했다.
그리고서 공손히 머리를 숙여 총리 대신에게 인사했다.
“이 어리숙한 범부가 감히 문안 인사 올립니다. 총리 대신께서 이 누추한 병실에는 어찌 황송한 발걸음을 하셨습니까?”
“허허. 내 앞에서 그렇게 공손하게 굴다니. 처음이로군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엔도 츠요시가 공손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매섭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엔도 츠요시를 쏘아보았다.
그러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모습을 보고 엔도 츠요시는 씨익 웃어 보였다.
“작전에 실패한 죄인이 시건방을 떨 수야 없는 노릇이지요.”
“알기는 아니까 다행이구료.”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성난 음색을 일부러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내가 엔도 츠요시 그대를 휘하에 거두기로 한 뒤에 처음으로 이렇게 실망합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찾아 보호하라는 명령이 그토록 어려웠소? 아니 애시당초 마츠시마 장관을 경호하라는 임무만 확실하게 수행했어도 일이 이토록 어처구니없이 꼬이지는 않았을 거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엔도 츠요시를 향해 사정없이 다그쳤다.
물론 그 말을 듣는 엔도 츠요시는 변명하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표정의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총리의 성화와 비난, 질책을 그저 경청하며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엔도 츠요시를 바라보던 내각 총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투를 바꿨다.
“물어볼 게 있는데 애시당초 왜 그대가 나를 찾아와 거둬달라고 사정했었던 거요?”
엔도 츠요시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저를 비롯한 엔도 가문이 명망 있는 닌자 가문으로서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총리 대신의 힘이 필요했으니까요.”
엔도 츠요시의 말에 총리 대신은 미간을 꿈틀거렸다.
방금 전 나온 그의 말대로 엔도 츠요시의 가문은 닌자 가문이었다.
언제 어느때부터 시작된 가문인지는 모르지만 전해 듣기로는 대충 천년을 헤아린다고 했다.
오랜 세월 주인을 바꿔가며 닌자 가문으로서 활동하고 존재해 왔지만 그래도 단 하나, 대를 이어가며 개발하고 지켜 온 닌자 가문의 전통과 기술은 늘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 일본 역사 곳곳에 암약하며 실력을 드러낸 엔도 가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엔도 가문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채 전성기에 비하면 극히 소수의 인원만으로 겨우 숨을 이어가며 연명하는 처지였다.
“전쟁터에서 몰락해버린 우리 가문이 닌자 가문의 전통과 정체성을 되찾으려면 총리 대신의 수하가 되는 것보다 나은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비전 절기를 이어받은 엔도 가문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 속에 투입되었다.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온 국민과 나라 전체가 전쟁의 광기 속에 빠져들었던 당대 시기 속에서 엔도 가문은 가문의 이익과 번역을 꿈꾸며 일본 제국의 침략 첨병인 일제 육군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전황이 어려워지면서 전쟁에 자원한 엔도 가문의 정예들은 당시 자폭명령이 상식적이었던 일본 육군의 명령 체계 때문에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지극히 무모한 각종 작전과 명령 속에 소모된 것이다.
가문의 절기를 빼어나게 익힌 정예들은 모조리 죽거나 불구가 되고 거의 사망하다시피 했지만 늙은 장로들과 어린 아이들이 남아 가문의 명맥을 이었다.
“그 타격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 했습니다. 저희 가문이 닌자 가문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고 옛 저력을 다시 길러내기 위해서는 총리 대신의 휘하에 드는 게 제일이라 판단했지요.”
“후후. 그렇소. 엔도 츠요시 당신과 나는 공통점이 참 많지.”
내각 총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갈했다.
“바로 야마토 재건이니 대 일본 제국의 영광이니 하면서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얼간이들을 혐오한다는 점!”
내각 총리 대신은 결코 정의롭거나 한 인물이 아니었다.
남들이 받는 뇌물 못지 않게 그도 뇌물과 어느 정도의 부패를 당연시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남보다 뛰어난 통찰이라든가 고고한 기품이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외교관 출신이기에 세계 속에서 일본이 어떤 처지에 서 있고,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절절히 알고 있는 입장일 뿐.
“야마토 재건을 꿈꾼답시고 오늘날 이 일본을 과거의 똥물 속에 잠기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늙은이들을 나는 지극히 혐오합니다. 이 점은 그 옛날 세계 대전 때 가문이 절단나버린 엔도 츠요시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엔도 츠요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옛날 구 일본 제국 육군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작전과 명령 속에서 자신의 선조들은 속절없이 궤멸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 공산품을 수출하고,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산업 속의 핵심 부품을 수출하면서 첨단 기술의 기술 로열티를 바탕으로 지탱하는 것이 이 나라의 경제요. 헌데 우리가 구 일본 제국, 야마토의 영광을 되살려보자? 허.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비명을 질렀지.”
그는 외교관으로서 전 세계 곳곳에서 근무를 했다.
세계 정치의 급변하는 무대를 지켜보기도 했고 일본이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살아남아 최대한 유리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했다.
“수출 경제와 함께 당장 옆에 있는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에도 미국의 힘이 절실한 게 우리 일본입니다. 지금도 중국은 센가쿠 열도 등으로 우리 일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고 위로는 러시아가 우리가 마땅히 되찾아야 할 쿠릴 열도를 점령 중인 상황이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말하다보니 자신이 일본의 장래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애국자가 된 양 살짝 흥분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미국인들에게서 진주만 사태를 연상하게 하는 야마토 운운이 튀어나오면 우리 일본은 중대한 동맹을 놓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물건을 수출할 시장까지 놓치게 된단 말이지.”
요즘 들어서 러시아와의 쿠릴 열도 분쟁이 갈수록 자주 상정되는 안이었기 때문에 그는 피부로 느끼는 사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쿠릴 열도는 애시당초 일본 땅도 아니었고, 일본 정부로부터 탄압받던 아이누족의 영토였다.
그렇게 모호하던 차에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이 사실상 포기해버린 상태의 땅인지라 영유권을 인정하기 애매한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애시당초 쿠릴 열도가 일본 땅이라 여겼다.
일본은 멀쩡히 한국의 국토에 속해 있던 독도를 불법적인 주권 침탈과 함께 은근슬쩍 자신들의 영토에 포함시킬 정도의 나라임에도 옛 역사를 가지고 고민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땅이라 믿는 곳에는 반드시 일장기를 꽂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어쨌거나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 나름의 애국적인 고민을 담은 연설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세계는 우리 일본의 옛 역사인 일본 제국 시절에 대해 불안해하고 꺼려 함에도 불구하고 그 노인네와 작자들은 야마토 재건의 기치니 뭐니 하면서 나를 압박하고 있으니... 나는 그저 웃음만 나올 수밖에 없소.”
청렴결백하지도, 국민을 자신의 몸보다 아끼지도 않은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였지만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계를 조금만 돌아봐도 명백한 현실 인식을 외면하고 옛 야마토의 영광을 꿈꾸면서 옛 일본 제국의 재건을 해내자고 연호하는 은밀한 정치 세력과 그 일당들을 생각하면 현실감각이 마비된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 자신도 힘이 없던 시절에는 그들에게 최대한 잘 보여서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총리가 된 지금은 확실히 알았다.
자신이 그들의 뜻대로 야마토 운운하는 일본 제국 망상 놀이에 동참하게 될 경우 자신을 비롯한 일본 정부만 바라보는 열도 전체의 국민들은 커다란 곤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가 총리 자리에 오르고 깨달은 것은 좋든 싫든 일본 정부의 발표와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판단에 전부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허나 그 무엇보다 더욱 더 그를 목마르게 했던 것은 총리 자리에 올라도 결국 총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권력욕로부터 전해진 좌절감이었다.
“내가 이 나라의 진정한 1인자가 되려면 바로 그 총재부터 제쳐둬야 하거든!”
바로 그렇기에 일본 정계의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 맹주로 군림해 온 제1여당의 총재를 상대로 반기를 품을 마음을 감히 품을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당신, 엔도 츠요시 군을 만난 건 확실히 행운이라 생각하오.”
한창 총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총리였지만 막상 휘하에 두고 부릴 인물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찾아온 엔도 츠요시는 그가 도박을 꿈꿔볼만한 인물이자 키워드였다.
똑같이 옛 야마토 재건에 대한 망상을 품는 작자들에 대해 염증을 앓고 있었고 둘 다 기존의 정치 권력을 뒤엎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야욕이 있었다.
그래서 총리는 그 반격의 첫 신호로 성진의 방사능 제거 기술을 적극 도입하려 최대한 애썼다.
마츠시마 다카시라는 인물을 애시당초 인선 물망에 올려 염두에 둘 때에도 그가 비정치적이고 나중에 반골 기질이 잠재적으로 충실한 인물일 거라는 판단이 들어 물색한 인사였다.
거기에 결정적인 것은 방사능 문제에 대해 중대한 관심을 자주 표명했다는 점이었다.
장차 성진의 방사능 제거 기술을 도입해서 현재 일본 국민들이 알음알음 불안증을 호소하고 있는 방사능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버리면 총리의 지지도는 만만치 않은 수준이 된다.
총재에게 있어 지금까지 소심한 모습만 보이면서 최대한 나약하고 어리석게 보이려고 나름 치밀하게 연출해 온 총리에게 커다란 정치적 야욕과 포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드러나기 시작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 등의 모양새로 인해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어느덧 총재의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정보가 샜는지 모르지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이대로 잃게 된다면 우리에게서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습니다.”
엔도 츠요시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도대체 마츠시마 장관을 납치한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아시오?”
엔도 츠요시가 닌자로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는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 자신 또한 아주 잘 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오기 전 이미 자위대의 특수 작전 부서와 첩보기관의 해외 작전에 지원해서 전설적인 전공을 수십여 회나 올린 인물.
그 자체로 일본 정부와 자위대가 보유한 군사 기밀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엔도 츠요시를 패퇴시키고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끝내 납치해 간 세력이 누구인지 오리무중이었다.
엔도 츠요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당연히 총재의 부하들이겠지요. 저 역시 저를 패배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숫자에서 밀린 전략적인 패배라면 모를까 일대일의 승부에서 맛본 패배였다.
지금도 그 가공할 위력을 보인 의문의 남자를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과 두드러기가 일 지경이었다.
“아니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난 그들이 총재의 수하들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예? 그게 대체...”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의 말을 듣던 엔도 츠요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엔도 상이 당한 그 와중에 자위대가 출동했소.”
“자위대가요?”
엔도 츠요시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흘렀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엔도 츠요시를 보면서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총리 대신인 내 동의도 받지 않고 누군가의 명대로 움직여버렸지. 이 나라에서 행정부의 최고 권한자인 내 명령도 없이 말이오.”
“그럴 수가.. 자위대 병력이 출동하려면 내각과 의회는 물론 최종적으로는 총리 대신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엔도 츠요시의 탄식어린 말에 타치바나 케이타 총리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나에 대한 협박인 것이오. 더 이상 까불지 말라는 총재의 명령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