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회: 6권 - 새로운 가능성 -->
성진이 묵고 있는 트래블 랜딩 호텔 스윗트룸과 각 객실은 국정원 요원들과 협상단 요인들이 수시로 상주하며 지키고 있었다.
협상 주요 요원들이 스윗트룸에 모여 회의를 진행할 때에는 국정원 요원들이 각 객실을 돌아가며 지키기로 했는데 회의 소집 시간에 맞춰서 요인들을 소집하는 역할도 사실상 국정원 요원들이 맡고 있었다.
헌데 성진의 모습이 객실 어디에도 보이지 않자 요원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한 성진 회장님 어디 계신지 파악했나?”
상대적으로 책임자 위치에 있는 부장이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부하들을 채근했다.
하지만 표정들은 밝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파악이 안 됐습니다.”
“풀장이나, 카페, 기타 부대시설들 모두 점검했는데 아직 소재가 파악이 안 됩니다.”
부장은 혀를 찼다.
“이런, 젠장.”
성진은 이번 협상단에서 핵심적인 중책을 맡은 인물이었다.
기술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협상 조건에 대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까지 받은 입장이었다.
사실상 협상단의 영수라 할 수 있는 성진이 갑자기 사라지자 경호 책임을 맡은 국정원의 요원들은 애가 탔다.
“소재 파악 안 된 지 얼마나 됐나.”
“처음 소재 파악 시도 시각부터 약 50분 남짓 됐습니다.”
젊은 요원의 보고에 부장은 복잡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참..”
부장은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혹시 협상을 방해하려는 세력이 수작을 쓰는 거라면..’
그렇다면 당연히 협상은 사실상 진행이 어려워진다.
어쩌면 훨씬 더 불리하고 어이없는 조건으로 계약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안 되겠다. 객실에는 최소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인력은 전부 호텔 내부 수색해. 최대한 신속하게 빨리..”
그렇게 서둘러 지시하는 와중에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혹시 저 찾으시는 겁니까?”
그 목소리가 성진의 목소리라는 걸 깨달은 부장과 요원들은 반사적으로 뒤쪽을 돌아봤다.
“아니 한 회장님!”
그들의 시선 끝에는 부스스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성진이 있었다.
“아니 어디 계셨습니까. 한참을 찾았습니다.”
“아.. 그게.. 저..”
성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호텔 내부를 산책 중이었는데 구석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혹시 오래 찾으셨나요?”
“예에? 아니 잠이 드시다니.. 허허 이거 참.”
부장은 순간 허탈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성진에게 뭐라 화낼 수도, 추궁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한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잠이 드셨다구요? 그렇다면 혹시 없어진 물건은 없습니까? 누군가가 회장님께 의도적으로 냄새가 없는 수면제 스프레이를 뿌렸다든가 하는 식의 수작을 걸었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성진은 도리어 속으로 당황했다.
‘큭. 역시 정보 기관 요원이라 그런지 사소한 것 하나를 그냥 놓치지 않는구나.’
호텔 밖을 나가서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장관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뒤쫓아 온 자위대 병력들을 따돌리는 파란만장한 격전을 벌인 성진은 변장한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그런 뒤에 다시 변장을 한 채로 호텔에 들어와 화장실에 들어가 변장을 지운 성진은 cctv에 자신의 모든 출입 기록을 지우고 감쪽같이 객실로 돌아오려 했다.
헌데 자신의 위치를 일찌감치 파악하려 했는지, 국정원 요원들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대충 변명을 둘러댔는데 그 변명이 국정원 요원에게는 정작 의심스러운 징후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니에요. 벤치에 있었는데 햇볕이 좋아서 그만..”
“야외에서 혼자 있다면 얼마든지 각종 다양한 마취제에 노출이 될 수 있습니다. 마취제가 급격하게 의식을 잃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들게 할 수 있는..”
“저기 부장님.. 그게 아니고..”
기타 각종 첩보 작전에 사용되는 마취제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부장앞에서 성진은 별 게 아니라는 해명을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 * *
요원들 몰래 약 몇 시간을 나갔다 돌아온 성진은 결국 한참동안 부장을 달래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 뒤에야 없어진 물건이 없는지 이 것 저것 꼼꼼히 확인을 하고 나서야 다시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번 협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일본 정부의 입장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이 사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협상단의 각 전문가들이 조용히 의견을 개진하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난 회의에서 점검한 사안들을 재점검하는 지지부진한 내용일 뿐.
정작 회의를 진행시킬만한 결정적인 핵심이 없었다.
성진은 지난 내용의 답습에 불과한 회의가 진행되자 분위기가 소강된 틈을 타 돌직구를 날렸다.
“여러분. 각자 노력들을 많이 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회의가 진행이 어려운 거 다들 아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성진의 말에 좌중은 침묵으로 동의할 뿐 모두들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뾰족한 수단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어느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였다.
성진은 그런 협상단의 구성원들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성진의 말에 협상단 중 가장 최고령이자 외교관으로서 잔뼈가 굵은 고위 공직자가 질문을 던졌다.
“그게 뭡니까? 한 회장님.”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사안입니다. 다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총리 대신과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가 중의를 모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총리 대신과 직접 만나시겠다구요?”
성진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총리 대신과 대면하셔야 할 이유가 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진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일을 총리와의 거래에 활용할 작정이었다.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주실 수 없다니 저희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협상단 구성원들은 성진이 총리를 직접 만나겠다는 점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는 눈치였다.
사실 자신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총리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진에게 그런 의심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성진은 아까 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설득하는 데에도 애를 쓴 마당에 이번에도 여러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심리적으로 피로를 느꼈다.
한마디로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후. 뭐든지 쉬운 게 없군.’
사람의 심리를 설득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일은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일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기업을 이끌고 여러 직원들을 다독이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항이지만 이럴 때마다 성진 스스로 느끼는 피로감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내 뜻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
그것이 성진의 가슴속에서부터 솟아나 목구멍을 타고 전해져 넘어왔다.
“여러분!”
성진의 단호한 음성이 떨어졌다.
그 안에 뭔가가 깃들어져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좌중은 성진의 얼굴을 향해 저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제가 총리 대신을 만나 무엇을 내놓고 어떻게 협상할지는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게 밝힐 수 없습니다. 그 점은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진이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 듣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뭔가 미묘한 동요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요한 스윗트룸 안, 회의용 책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사람들.
그 가운데에서 홀로 말하고 있는 성진의 웅변에 귀기울이는 와중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2단계 육체 강화를 토대로 마련된 발달된 발성 기관과, 최근에 급속도로 성장한 성진의 두뇌 능력이 복합적인 작용을 통해 발현된 텔레파시 능력이었다.
비록 원시적인 수준의 텔레파시 능력이라서 인공지능 팔찌도 그것이 초상 능력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3단계 육체 강화를 이루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는 초상 능력 중 일부인 텔레파시 능력이 원시적이나마 지금 성진에게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