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8화 (138/185)
  • <-- 138 회: 6권 - 속내 -->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입장에서는 독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한 독도 문제가 나오자 회피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독도 문제는 기실 일본 정부의 집착으로 질질 끌어오는 문제라는 것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은 한국 정부의 관할 하에 있으니 뭐 나로서는 할 말이 없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적당히 발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성진은 마저 쐐기를 박기 위해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요. 저는 방사능 제거 기술을 일본에 제공하면서 이 독도 영유권 문제는 물론, 위안부 문제 사과와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고자 합니다.”

    성진의 속내를 알아차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그런... 아까는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거라 하지 않았소?”

    “잘못된 과거와 현재를 바로잡는 일이 부당한 압력입니까?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더 이상 간섭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과거 위안부를 비롯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부당한 일입니까?”

    “하, 한 성진 회장.. 그런 일은... 그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을 빌미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한다는 건 양국간의 외교적인 분란으로 비화될 수 있는데...”

    떠듬거리면서 당황하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보면서 성진은 또박또박 말했다.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분란이 생긴다고 해서 피할 생각이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어차피 지금 일본이 우리 독도를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날조를 들이대며 탐욕을 보이는 이유도 결국 힘의 논리 아닙니까? 우리 한국이 일본에 비해 국력이 약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럼 끝내 그 방사능 제거 기술을 힘으로 삼아서 우리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말이요?”

    “압박까지는 아닙니다. 선택은 일본 정부 스스로 하게 할 겁니다. 우리에게 사과와 잘못을 인정하면서 방사능 제거 기술을 제공받을지, 아니면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오만과 아집 속에 살아갈지.”

    “그, 그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이빨을 딱딱 부딪혔다.

    성진의 요구사항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요즈음 극도로 우경화된 정부라면 성진의 요구사항을 단칼에 거절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성진 회장. 방사능 제거 기술은 우리 일본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요. 조금 달리 생각해서 양보를...”

    “양보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인내를 하면서 살아 왔으니까요. 양보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성진의 말은 너무도 단호했다.

    그 말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성진은 지금 단순히 금전적인 이윤만을 추구하기 위해 일본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자존심과 역사적인 응어리를 해소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허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입장에서는 속이 타는 일이었다.

    성진이 내세우는 역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그로서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위 공무원인 그였지만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관심이 전혀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젊디 젊은 사업가가 바라는 일은 우리 일본 정부가 들어줄 확률은 너무도 희박하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새로운 총리가 들어서면서 그 우경화의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진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성진의 바램과 요구 사항을 일본 정부가 듣는다면 일고의 여지도 없이 거절하리라는 것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생각이었다.

    “한 성진 회장.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나도.. 음. 그래요.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자면, 사실 과거 역사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말이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성진에게 솔직해져야 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성진이 말한 바로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드러냈다는 걸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일본이 독도를 가지려 하는 것도, 위안부에 대한 사과도 그게 한국에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릅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 개인으로서는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큰 중요성을 가지고 인식하는지 솔직히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방사능 제거 기술을 얻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안부 사과 문제와 독도 문제가 한국에 있어서 얼마나 중대하게 받아들여지는지 이 눈앞의 장년 남자는 모른다.

    어차피 성진도 그가 한국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공감하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성진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기보다는 성진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성진의 목적에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의 여론을 찬성쪽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데 선봉에 선 데다가 그 기술 도입 안건을 관장하는 환경성 장관의 신분이다.

    그저 그가 관심사로 가지는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에 있어서 독도나 위안부 문제는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 앞에서는 무의미하거나 훨씬 의미가 작은 일로 비치는 것이 분명했다.

    “한 성진 회장의 뜻이 정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그런 한 성진 회장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장관 자리를 걸고서라도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회의 어린 기색이 담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말에 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공 가능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실패한다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성진의 말을 들으면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사실 나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을 조속히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한성진 회장이 내세우는 조건이 비록 어려워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내 후손이 살아갈 이 일본 열도의 국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소.”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바로 그거면 됩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그저 일본의 공무원이었고 성진이 바라는 독도 문제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결국 일본의 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독도 문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마음 속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방사능 제거 기술 도입이다.

    어차피 각자의 이익과 목적이 일치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거래.

    서로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친 지금 이 순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과 성진은 더없이 진솔하게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바로 목적이 일치하는 파트너쉽에 의한 신뢰관계.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더 들을 수 있겠소? 아까 일주일 안에 이 상황을 해결하겠다 했었는데 말이오.”

    “그렇습니다. 일주일 안에 이 상황을 해결해야지요. 장관님의 안전은 물론이구요.”

    “어떻게 말이오?”

    “총리를 만날 겁니다.”

    성진의 말에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눈을 치켜떴다.

    “총리가 우리와, 아니 나와 같은 편이리라 생각하시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직감으로는 적어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님을 암살하려 했던 세력과 총리는 같은 편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진은 자신감있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설득하려 했다.

    말로는 직감이라고 했으나 실은 인공지능 팔찌가 미리 각종 도청과 해킹을 통해 최근 총리를 억압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든 판단이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분명 총리의 가호 속에서 겨우 장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직 장관을 암살하려들 정도로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세력이라면 힘과 권력이 있을 것이고, 현재 절대적으로 보이는 일본 극우 세력 속에도 갈등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총리 대신께서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단 말이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으로서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렸다.

    그가 보기에 총리 대신은 강력한 지도력과 카리스마로 일본 내각에 그 누구도 도전할 자가 없는 정치적 맹주였다.

    그런 인물에게 감히 누가 도전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정치적인 분야에 대해 절대 무지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과는 달리 성진은 따로 수집한 정보에 판단할 때 총리의 입지가 그렇게 안정적이고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곧 총리 대신을 만나면 이 상황을 어렵지 않게 타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으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일주일이라고 약속했소. 일주일 안에 상황에 대한 진전을 보여주여 줄 거라고 믿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저도 이런 상황이 너무 길어지면 곤란해 집니다.”

    성진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에게 굳게 약속했다.

    그렇게 서로 앞으로 해야 할 일과 계획을 나누던 중이었다.

    - 부아아아앙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 모터 사이클의 엔진 음과 함께 성진은 육안으로 멀리서 누가 다가오는지를 알 수 있었다.

    “왔군요. 앞으로 일주일동안은 김형석 씨가 장관님을 계속 보호하고 있을 겁니다.”

    모터 사이클을 타고 창고 근처로 다가온 김형석은 신속하게 성진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회장님. 이제 앞으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여기 계신 마츠시마 장관님을 앞으로도 계속 잘 보호해드리도록 하세요.”

    “그렇다면 어디에 가 있을까요.”

    “장소 판단이나 이동은 모두 김형석씨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내가 미리 지급했던 대포폰으로 추후에 보고하도록 하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넙죽 고개를 숙이는 김형석에게 성진은 타고 있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차는 대포 차량입니다. 어차피 신고가 되었을 리도 없고 적어도 한번은 더 이용해도 상관이 없을 겁니다. 추적될 염려는 일단 없으니까 안심하고 이 차로 장관님을 모시도록 하세요.”

    “대포 차량이라면 괜찮겠군요. 알겠습니다. 한번 이동한 후에 버리면 감시를 피하는 데는 용이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타고 왔던 모터 사이클은 내가 다시 타고 가겠습니다. 다시 돌아가면 장관님이 어디 계신지, 상태는 어떠신지 간단하게 문자를 보내도록 하세요.”

    “예,”

    “지시는 내가 계속해서 내려줄테니 필요한 시기에 차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무한정 대기하도록 하십시오.”

    “옛.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지금 바로 떠나세요. 최대한 도쿄를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예.”

    부동자세로 응답한 김형석은 즉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태우고 차를 몰았다. 

    차량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성진은 김형석이 타고 온 모터 사이클에 올라 타서 다시 협상단이 묵고 있는 트래블랜딩 호텔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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