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6화 (136/185)

<-- 136 회: 6권 - 속내 -->

“실패입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하는 백발의 장년 남자 앞에서 일본 내각 현 제1 정당이자 여당의 총재인 노인은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어찌 그렇게 허술했는가! 충분한 병력을 투입했다고 들었거늘.”

자위대 병력이 전시가 아닌 상황에 도쿄 도심의 시가지로 투입되었다.

상당한 잡음이 섞일 수 있는 무리였지만 그렇기에 노인은 확실하게 목표를 처단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랬는데...’

결국 사라져버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두고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해당 부대에 섞여 있는 아이들의 재주가 부족했는가?”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엄선된 정예들을 따로 추린 인재들입니다.”

도쿄 도 안에 배치되어 있는 자위대 정규 육상병력인 동부방면대 1사단 1보통과연대에는 유사시 도쿄에 투입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까이 있는 병력이다.

세간의 인식은 평범한 보병부대에 불과하지만 노인은 비상 상황을 생각하며 해당 부대에 휘하의 정예들을 다수 배치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요즘 들어서 자신에게 은근슬쩍 반기를 들고 자신 몰래 휘하에 첩보 요원들까지 따로 부리는 총리 대신이 문제였다.

그런 총리 대신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경고를 일러둘 겸 오히려 총리 대신이 가진 직속 부하들의 정보를 역이용해 자위대를 출동시켰다. 

자위대법에 따르면 내각과 의회는 물론 총리의 승인이 필요한 절차가 바로 자위대의 출동임에도 노인은 자위대의 정규 부대를 자신의 뜻대로 출동시켰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인은 실질적으로 열도 전체를 관장하는 초법적인 지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데 모양새가 좋지 않군. 그토록 엄선된 정예들을 넣어 뒀는데도 결국 잡히질 않다니? 내가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두라 하였을텐데?”

노인의 미간이 좁아지자 장년인은 급히 말을 이었다.

“헬기 부대까지 출동시키도록 조치했지만 수송 헬기 대신 목표물을 확보할 정찰 헬기가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해서 뒤따라 출동하기로 했던 수송 헬기도 적절한 시기에 출동을 못 했다 합니다.”

“뭐라?”

노인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지? 설마 항명은 아닐 것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해당 헬기 부대의 지휘관이 귀환 명령을 들었다 합니다. 게다가 그 즉시 전파가 끊어져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군요.”

“대체 누가 그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

노인의 분기 어린 고성에 백발 장년인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허나 분명 헬기에는 수신 기록이 있었고 옆에 있던 부조종사도 들었다 합니다. 그 수신 기록에는 그들의 지휘관과 목소리가 일치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지휘관이 항명을 한 것인가? 감히?”

“아닙니다. 지휘 기지에서는 귀환 명령을 내린 송신 기록이 없습니다. 해당 시간에 그 지휘관은 다른 여러 동료들과 같이 있었던지라 증인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뭐라?”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명령은 내려졌는데 정작 그 명령을 한 놈이 없다니! 이건 필시 그 놈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어 철저히 심문 중입니다. 헌데 무척 이상합니다.”

노인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대답을 독촉했다.

“뭐가 이상한지 어서 말을 하게!”

“분명 지휘관과 목소리가 일치하는 명령이 기록에 담겨져 있는데 기지에서 같이 목격하던 사람들은 해당 명령을 그 지휘관이 내린 적이 없다 합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헬기 부대 뿐만 아니라 출동한 육상 병력들도 이상한 전파를 들었다 합니다. 그것도 하급 지휘관과 병사, 상급 지휘관의 목소리와 꼭 같은 무전 기록들이 있습니다. 헌데 그들은 모두 그런 무전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뭐라고?”

노인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건가?”

장년인은 고개를 숙였다.

“모두 사실입니다 총재님.”

“하!”

기함을 토한 노인이 손을 들어가며 언성을 높였다.

“그럼 뭔가. 허깨비라도 나타났다는 건가? 귀신이라도 나타나서 1개 연대나 되는 병력을, 그리고 여러 대의 헬기 부대를 가지고 놀았다는 건가?”

“송구합니다 총재님.”

“하핫..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꼬여버리다니. 이토록 어렵게 될 일이 아니었을텐데.”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린 뒤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어찌 된 일인지 철저히 진상을 파악하고,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도록. 필요한 보고는 즉시 하시오.”

“옛. 총재님!”

백발 장년인이 고개를 숙인 뒤 총재에게서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총재는 그런 장년인을 보면서 한 마디를 보탰다.

“필요하다면 그대가 직접 나서도록 하시오.”

그 말이 떨어지자 잠자코 반즘 닫혀 있던 백발 장년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눈가에 힘이 들어간 그의 두 눈에서 형형한 정광이 터져 나왔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뿐만이 아니라 임무를 성공시키겠다고 맹세를 하시오. 반드시!”

노인의 단호한 음성이 떨어지자 장년인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앉아 예를 취했다. 

그 옛날 사무라이와 닌자들이 판을 치던 일본 전국시대의 군례였다.

“하이! 불초 소인 쿠라마이 류세. 쿠라마이 가문의 인법(닌자들의 기술)을 전승한 몸으로서 반드시 주군의 명령을 이행하겠나이다.”

“믿겠소.”

그 말에 다소곳이 일어나 목례를 한 장년인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간 뒤 노인은 뒤돌아서서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 

몇 걸음 발을 떼는데 순간 격심한 흉통이 심장 부근을 섬칫하게 찔렀다.

‘흡!’

노인은 순간 닥치는 고통에 짧은 숨을 삼켰다. 

‘빌어먹을.’

갈수록 그의 건강은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야마토의 뜻을 이을 커다란 인재가 없거늘..’

그는 쓸만한 후계자가 없는 현실에 긴 한숨을 쉬었다.

한 번도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이 없지만 그는 구 일본제국과 현재의 일본 우익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명분으로 끊임없이 주장하는 옛 대동아공영의 영광을 떠올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골수 깊도록 침략 전쟁을 지지했던 유력 가문의 후계자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구 일본 제국의 정의로움과 영광을 세뇌되다시피 교육받으며 자랐다.

잔혹한 학살과 전쟁범죄로 얼룩진 구 일본 제국 군대인 황군의 잔학함에 대해 기록한 실제 역사는 모두 노인 자신이 믿는 위대한 대 일본 제국을 시기한 자들의 거짓말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가 이상향으로 꿈꾸는 그 상상 속의 대 일본 제국의 모습만 떠올리면 그는 저절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아아 대 일본 제국이여!’

노인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그 옛날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도쿄 거리를 배경으로 위풍 당당하게 승전보를 울리는 황군에 대한 상상이 끊임없이 아른거렸다. 

주변국가와 동북, 동남아시아의 전쟁에 휘말렸었던 국가 모두가 증오해 마지않는 구 일본 제국이 그의 머릿속에서는 극도의 환상으로 뒤범벅된 이상향이었다.

그러한 환상에 취해 있던 노인은 문득 심장 부근의 가슴을 움켜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노인은 점점 잦아지는 통증과 고통이 자신에게 찾아드는 죽음의 그림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대 일본 제국, 야마토의 기상을 재건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노인은 일본인들이 이상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생각하는 벚꽃이 지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의 마지막도 그렇게 아름답고 숭고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야말로 평생을 야마토 재건에 바친 구국의 투사가 아닌가?‘

허나 일본의 극우 세력이 구 일본 제국에 대해 갖는 환상과는 달리 세계가 구 일본 제국의 최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다른 이치처럼 노인의 최후 또한 그의 바람처럼 이루어질 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