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5화 (135/185)
  • <-- 135 회: 6권 - 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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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터. 헬기 부대가 귀환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지시에 성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뒤늦게 해당 자위관들이 휴대폰으로 연락을 시도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나 지시하자마자 인공지능 팔찌는 해당 인물들의 신상정보까지 자위대 방위청을 해킹해서 얻어낸 뒤 각자 명의로 보유한 휴대폰 주파수까지 일일이 찾아내서 차단해버렸다.

    무척 복잡한 체계를 여러번 들쑤셔야 실행할 수 있는 결과다.

    그 과정이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위대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지독하게 집요하고 치밀한 전파 방해였다.

    ‘잘 했어. 앞으로도 계속 감시하도록 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제는 인류 기술로 구축한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해 데이터와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인공지능 팔찌의 해킹 속도는 날이 갈수록 월등해지고 있었다.

    방금 전 헬기 부대의 귀환을 확인한 것도 도쿄 상공을 감시하는 외국의 첩보위성 데이터 링크를 해킹해서 얻어낸 정보였다.

    사실상 성진은 인근에 위치한 모든 사물과 인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감시하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조작, 차단하고 있으니 성진을 잡으려고 출동한 자위대 병력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멀찍이서 우르르 몰려오는 자위대 병력들을 뒤로 하고 성진은 등에 업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에게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불편한 곳은 없으신지요.”

    “아닙니다. 빨리 서둘러서 벗어나기나 합시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아까 전 총격전에 휘말린 상황 자체가 몹시 당황스럽고 불안한 기색이었다.

    성진의 등 뒤에 업힌 채로 여관에서부터 골목길을 내달려 오는 동안 입을 꾹 다문 채로 말이 없었다.

    아직 주변에 자위대가 출동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만일 상황을 똑똑히 알게 된다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리라.

    그 와중에 성진은 주변을 수색중인 육상 자위대 병력들에게 교란 정보를 보내도록 지시했다.

    ‘엉뚱한 반대 방향으로 수색을 하도록 불필요한 추가 정보를 계속 전달해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지시대로 인근을 수색중인 육상 자위대 병력들에게 지속적으로 엉뚱한 정보를 계속 전달했다.

    덕분에 병사들을 한창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연신 엇갈리는 정보에 더욱 한참을 헤매야 했다.

    정보의 흐름을 꽉 틀어쥐고 있는 이상 성진은 주변을 둘러싼 1개 연대 병력의 수색 작전을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의 포위를 쉽게 무력화시킨 성진은 장관을 업은 채로 인적이 드문 길만 골라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어느덧 주택가를 빠져나와서 도심 상가가 가까이 보였다.

    “장관님. 이제 골목은 빠져 나왔습니다. 이제는 일단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안심? 아직 골목길만 빠져나온 마당에 무슨 안심을 하라는 거요. 그럼 이제 어떻게 이동할 건가가 더 중요한 거 아니요.”

    미심쩍어하는 장관의 말에 성진은 겸연쩍게 웃어보였다.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만 여기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정중하게 부탁한 성진이 어어 하며 만류하는 장관을 두고 상가로 들어간 지 몇분.

    흰색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한 대가 장관의 눈 앞으로 별안간 나타났다.

    “응?”

    “장관님. 어서 타십시오.”

    차 안에서 소리치는 성진을 보면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급한 마음에 서둘러 뒷문을 열고 올라탔다.

    “뭐요. 미리 차를 준비한 거였소?”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부정하는 성진을 보면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눈을 흘겼다.

    “혹시 우리 일본 국민의 재산을 무단으로 훔친 거라면 곤란합니다. 난 이 나라의 장관이요..”

    성진의 보호를 받는 와중임에도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매서운 눈초리로 성진을 쏘아봤다.

    급한 상황인데도 엉뚱한 대목에서 고지식함을 드러내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보면서 성진은 그가 왜 정치적으로 무력했는지 확실히 알 거 같았다. 

    여전히 성진을 노려보는 장관을 보면서 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이 차량의 주인되는 분과 즉석에서 물물교환을 한 거니까요.”

    성진은 급하게 엑셀을 밟으면서 해명했다.

    “물물 교환?”

    “예. 전 돈이 있으니까 즉석에서 돈으로 바꿨죠. 충분한 액수라서 차량 주인도 만족을 했습니다.”

    “흐음..”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 

    눈을 흘기면서 따질 때와는 달리 결국 쉽게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성진 본인이 훔친 게 아니라는데 지금 성진 자신의 보호를 받기로 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뭐라 캐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확한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내용의 해명이었다.

    ‘사실은 이 차가 불법 사채업자들의 재산입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

    성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가 해킹한 첩보 위성의 데이터 링크를 통해서 근처에 가용 가능한 모든 민간 이동수단을 수집, 검색했다. 

    오토바이를 현금다발과 즉석에서 교환한 것처럼 이번 상황에서도 그렇게라도 해서 이동 수단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허나 문제는 있다.

    ‘꼬리가 잡히면 곤란하다.’

    오토바이 주인에게 현금 뭉치를 안겨줄 때에도 변장을 한 상태이긴 했지만 꼬리가 잡힐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었다.

    사실 급해서 그런 수단을 택했지만 특이한 일이다. 

    별안간 길 가다가 오토바이와 돈뭉치를 교환하다니?

    이번에도 일반 시민과 그런 거래를 한다면 꼬리가 잡힐 확률이 더욱 늘어난다.

    인공지능 팔찌의 해킹 능력으로 웬만한 전자 개폐장치는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아무 차량이나 뺐어서 탈 수 있지만 선량한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진의 성격상 꺼려지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성진의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대포 차량들이 검색되다니 아주 좋았어.’

    첩보위성의 데이터 링크를 통해 모든 이동수단의 등록번호를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조회했다.

    인공지능 팔찌는 차량 등록번호를 가지고 사용자 신원과 관련된 모든 차적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출력해냈는데 거기에 실제 등록된 차량의 기타 정보와 다른 차량들이 따로 특이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실제 차량 정보와 등록번호의 행정 등록정보가 다르다면 범죄자들의 애용품임에 분명하다. 

    바로 소위 말하는 대포차 하나밖에 없다.

    의외로 이 근방에 대포차들이 제법 있어서 성진은 그 중에 사채업 사무실 상호와 전화번호가 인쇄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을 찍었다.

    대포차를 사용하는 사채업자들이라면 일반 시민의 차량에 비해 양심의 가책이 많이 덜할 거 같아서였다.

    ‘나도 참 이렇게 일일이 신경을 써대다니.’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해킹 능력으로 해당 사채업자 차량의 개폐 장치를 무력화시키고 주차된 차량을 즉시 몰고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태운 것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일반인들 차량을 무단으로 빼앗아버리는 건 찝찝한 일이다.’

    자위대가 지척까지 쫓아온 상황에 성진이 무슨 결벽증이 있어서 대책 없이 착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힘을 얻고 실제로 많은 힘을 얻은 성진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힘을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건 안 될 일이다.

    ‘내가 급해서, 편하다는 이유로 힘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성진은 자신의 편의대로 남에게, 특히 힘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을 마음 속 깊이 경계했다. 

    남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과 기회를 갖춘 성진 자신이 편하다는 이유로 남의 것을 마음대로 빼앗고 강탈하다 보면 어느새 터무니없이 힘을 남용하게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급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니만큼 만일 주변에 대포차량이 없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면 성진이 무단으로 일반인들의 차량을 강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마음먹은 바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성진의 생각이자 자세였다.

    ‘이 차량을 현재 소유하고 있는 명의상의 주인한테 이 차량의 가격만큼은 지불해줘.’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성진의 비밀 계좌와 연결된 여러 차명 계좌에서 인출을 지시했다.

    물론 이런 대포차량의 경우 명의마저 엉뚱한 사람 앞으로 되어 있을 확률이 높지만 성진은 그런 불법적인 사정까지 일일이 돌봐줄 생각은 없었다.

    까놓고 말해서 성진은 이 차량을 무단으로 탈취한 셈이고 일반 시민들의 차량을 피해서 사채업자들의 차량을 고른 이유는 결국 성진 자신의 마음이 편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이 탄 차량을 직접 운전하면서 성진의 지시대로 해당 차량 주인의 계좌까지 직접 추적해 자동차 가격만큼의 액수를 입금했다.

    대포차를 쓰는 사채업자들일지언정 성진은 딱 자동차 가격 정도는 지불해주는 정도의 예의만 발휘해준 것이다.

    그 직후 cctv에 최대한 잡히지 않는 경로를 검색해서 차를 몰았다. 

    아까 전 성진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업고 달릴 당시에도 주택 골목을 감시하는 cctv의 저장 화면을 인공지능 팔찌는 일일이 해킹했다.

    그 때마다 성진과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모습을 cctv의 저장 데이터에서 모조리 지워버렸다.

    기계의 전자 감시 장치 체계로는 성진의 모습을 누구도 잡아낼 수 없었다.

    인근의 모든 감시 시스템에서 성진은 말 그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추적해 온 자위대 병력들을 모조리 따돌리고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차량에 태운 성진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은 나카노 구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          *       *

    출동 2시간 뒤 목표 주택가를 모조리 수색한 1보통과 연대는 작전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빌어먹을. 코빼기도 비치질 않는군.”

    한참동안 부하들을 채근하며 골목길을 들쑤시던 지휘관 한명이 이를 갈아붙이면서 성을 낼 정도였다.

    결국 작전 2시간 만에 종료된 상황에서 다시 소집된 지휘관들은 부대 지휘관 앞에서 그 분노를 감당해야 했다.

    “도대체 누가 중간에 자꾸만 엉뚱한 보고를 해댄 거냐! 아무 것도 없는 엉뚱한 지역에 병력들이 자꾸만 집중됐어! 대체 누구냐!”

    극심한 분통을 터트리던 지휘관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귀환을 위해 전 병력을 다시 장갑차에 승차시켰다. 

    그럼에도 분노는 가실 줄 몰랐다.

    지휘 차량으로 돌아가면서도 무전기를 직접 든 채 엉뚱한 보고를 해댄 놈을 색출하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그로서는 성진이 직접 조작된 교란 정보를 보내왔으리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내막을 알게 된다면 억울해서 기절해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분노 어린 지휘관의 고성을 차량 무전기로 듣던 다른 장갑차의 지휘관은 무전기 음량을 줄여놓고 휴대폰을 꺼냈다.

    방위 대학 출신의 유능하다는 평판을 듣는 젊은 지휘관은 옆에서 운전중인 하사관에게 작게 속삭였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사살하는 데 실패했으니 상부에서 실망이 크겠군.”

    “다음 명령을 기다리면 됩니다. 어차피 곧 색출되겠지요.”

    “그래. 그렇겠지.”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살짝 마주치면서 곧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신분은 평범한 자위관 장교와 하사관이지만 사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조직에 속해 있는 입장이었다.

    바로 그들이 바라마지 않는 옛 대일본 제국의 영광, 야마토 재건을 목표로 활동하는 비밀스럽고 위험한 비밀결사 조직의 하수인이었다.

    1보통과 연대의 곳곳에 침투해있는 자신들과 같은 조직원들은 작전을 시행하면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발견할 경우 무조건 현장에서 바로 즉시 사살하도록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허나 목표했던 그 작전은 현재 실패로 끝났고 이제는 조직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은 다음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속으로 다짐하면서 평범한 자위대의 하사관, 장교의 표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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