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4화 (134/185)
  • <-- 134 회: 6권 - 은신 -->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관할과 주도 하에 일본 방위를 담당하는 자위대가 창설됐다. 

    그 중 육상 자위대는 오늘날 5개 지역을 각각 담당하는 방면대와 자위대 내 특수부대를 통솔하는 중앙즉응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다시 도쿄 도가 포함된 간토 지방을 담당하는 동부방면대 1사단에 나카노 구로 갑작스런 출동명령이 하달 된 시각은 점심이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덕분에 1사단 휘하 병력 중 나카노 구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네리마 구에 주둔중인 1보통과 연대가 즉시 움직여야 했다. 

    오후 일과로 시가전 훈련을 준비 중이던 동부방면대 1사단 휘하 1보통과 연대에 소속된 장륜 장갑차(캐터필러 대신 바퀴가 달린 장갑차)가 모조리 나카노 구 시가로 몰려들었다. 

    예고 없는 장갑 차량들의 출현에 당황하는 교통 경찰관의 호루라기 제지를 무시해버리고 도심 시가지로 장갑차들이 밀어닥친 뒤 주택 골목 입구에 장갑 차량들이 일렬로 멈춰섰다.

    곧 가지런히 정차한 장갑차 문이 열리고 완전무장한 육상자위대 보병들이 소총을 곧추세우며 뛰쳐나왔다. 

    “서둘러라!”

    마흔살의 츠다 시게루 일등육위(우리나라 국군의 대위)는 휘하 병력을 바삐 전개하면서도 사방의 눈치를 살폈다. 

    자위대와 감정적으로 관계가 불편한 경찰이 주변에 있는데다가 자칫 불만을 품은 민간인이 노골적인 방해를 할 경우에는 진압하는 과정에서 문제될 소지가 있다. 

    자위대도 나라의 기관인 데다 가뜩이나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았던 일본 군대의 인식 때문에 만약 번잡한 말썽이 생겨서 사회에 밉보이면 해당 부대는 민원으로 몸살을 앓는다.

    오죽하면 공군 기지 활주로 근처의 주민들 주택에 일일이 방음 처리를 해줄 정도인 게 일본 자위대였다. 

    급박한 실전 임무에 투입된 지휘관이지만 올 해 자식이 중등학교에 입학한 츠다 시게루 개인은 후환이 두려운 평범한 가장에 불과한 몸이었다. 

    당연히 혹시 모를 민원 마찰 부분에도 저절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정작 동네 주민들은 물론이고 경찰관들조차 육상 자위대가 소총을 들고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살풍경한 광경에 감히 제지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자위관들의 긴장된 표정 속에서 그들 또한 만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곧 일본의 sns를 타고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벌한 시가전 분위기의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작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지금 중년 남자 한 명을 등에 업고서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      *     *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등에 업은 성진은 쏜살같이 골목을 달려나가면서도 곧 지축을 흔들면서 밀려들어오는 장갑차 바퀴의 굉음이 희미하게나마 귀에 잡히는 것을 느꼈다. 

    육체 강화를 통해 얻은 강화된 오감을 인공지능 팔찌의 기능으로 차단 중이었다가 전투에 돌입하며 상당 부분 해제해버린 상태인 성진은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모두 전해 듣고 있었다.

    ‘뭐지? 대형 트럭이라도 들어온 건가?’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즉시 지시를 내렸다.

    ‘감각 차단을 최고조로 해제시켜.’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윽고 인공지능 팔찌의 감각 차단 해제와 함께 청각에 좀 더 집중하자 좀 더 구체적인 정황이 청각으로 전해져왔다.

    부하들에게 지시하는 지휘관들의 목소리는 물론 소총을 든 자위관들이 달리면서 흘리는 거친 숨소리, 금속 버클과 총기 몸체가 부딪히며 나는 미세한 마찰음과 땅을 내딛는 군홧발 소리까지 모조리 성진의 귓전으로 빨려 들어와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성진은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자위대가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정부의 요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현재 정치적으로 아주 뜨거운 감자인 방사능 기술 도입 현안을 관장하는 환경성의 장관이다. 

    그러나 그가 사라진 사실만으로 이렇게 신속하게 자위대까지 출동시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신변 문제가 정규 군대를 움직일 정도였던가?’ 

    성진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인근의 무전 교신 내용을 집중적으로 수집해서 모두 파악해.’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곧 통상적인 정보 수집 노력을 주변의 무전 교신 내용을 수집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평상시 인공지능 팔찌는 인터넷을 비롯해 성진이 미리 지시해놓은 정보처로부터 정보를 정기적으로 수집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상 상황을 인식했을 때 원하는 분야에 대해 한정적으로 집중되는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 수집능력은 가공할 위력과 신속성을 자랑했다. 

    곧 새로운 정보가 파악되어 성진에게 들려왔다. 

    - 마스터. 인근에 헬기 부대가 출동했습니다.

    ‘헬기 부대라고?’

    성진은 깜짝 놀라 인공지능 팔찌에게 반문했다.

    - 그렇습니다 마스터. 확보된 무전 교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 가까운 군부대의 헬리콥터 부대가 비상 출동한 것 같습니다.

    곧 인공지능 팔찌가 군부대 간의 무전 교신 내용을 성진에게 들려줬다. 

    교신 내용을 전해 들은 성진은 혀를 찼다.

    ‘자위대가 출동하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데.’

    지금 출동한 육상 자위대 병력은 도쿄 바로 옆에 주둔 중인 1사단의 기계화 장갑차 보병들이다.

    ‘그쯤이야 어차피 손쉽게 따돌릴 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헬기다. 비상 출동 명령을 받은 헬기는 도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치기 현, 우쓰노미야 시에서 이제 막 날아올랐다.

    차를 타고도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니 헬기가 도착하는 데에는 20분도 안 걸릴 것이다.

    하늘에서 육안으로 수색 정찰을 한다면 성진은 기계를 속일지언정 사람의 눈은 속이기 힘들다. 

    ‘하... 정말 난감하군.’

    성진은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 변화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껏 인공지능 팔찌의 막강한 정보 수집능력과 기능으로 수월하게 활동해 왔고 그에 기초해서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 왔다.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나 그로 인해 초래되는 위기는 철저히 피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은 성진의 예상이 빗나가면서 철저하게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하긴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이나 다름없으니 이 정도 몰리는 건 당연한가.’

    한 국가의 첩보기관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나서고 최고의 무력집단인 군대가 동원되었다.

    아무리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을 받아도 성진 일신의 힘만으로 국가의 공권력, 그것도 일본같은 강대국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게 당연하다.

    ‘어찌 해결하나..’

    성진은 아주 잠깐의 고민 뒤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자위대의 교신 내용을 수집했다고 했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렇다면 반대되는 교신을 전송할 수 있을까? 헬기에 귀환 명령을 내린다든지.’

    인공지능 팔찌는 즉시 대답했다.

    - 가능합니다. 음성 파장을 해당 인물들의 목소리로 변조시켜서 다시 해당 주파수로 송신하겠습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대답에 성진도 안도했다.

    ‘좋아. 그럼 헬기는 물론이고 해당 부대의 지휘소에도 각각 반대되는 내용을 넣어. 헬기에는 귀환 명령을, 지휘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성진은 한 가지를 더 지시했다.

    ‘귀환 명령을 넣은 다음 출동한 헬기들에는 각 주파수에 맞춰서 집중적으로 교신방해를 하도록 해. 아예 차단될 정도로 말이야.’

    정상적인 군인이라면 출동 명령을 받고 가다가 갑자기 귀환 명령이 떨어지면 확인 교신을 넣기 마련이다.

    그 상황에서 통신마저 두절된다면 결국 어쩔 수 없이 확인을 위해서라도 기지에 귀환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확실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성진은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사용할 요량이었다. 

    - 알겠습니다 마스터. 지금 바로 명령을 실행합니다.

    곧 인공지능 팔찌의 조작된 귀환 명령과 함께 강력한 교신 방해가 멀리서 다가오는 헬기부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정을 모른 채 성진의 등에 업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달려나가는 성진의 등 위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     *     *

    도쿄 방어가 최선의 목적인 동부방면대는 모든 게 시가전에 특화되어 있다.

    1사단과 함께 한 축을 담당하는 12여단의 역할은 사실상 헬기 강습부대. 

    일본도를 움켜쥔 독수리 형상의 부대마크처럼 이들의 역할은 헬기로 신속하게 전쟁터를 접수해버리는 데 있었다.

    그런 12여단의 헬기 부대 가운데서도 오직 정찰이 주요 목적인 소형 헬기들이 목표 지역 수색을 위해 날아올랐다. 

    삼등육좌(대한민국 국군의 소령)이자 올 해 4,000시간에 빛나는 비행시간을 자랑하는 베테랑 헬기 조종사로서 근무하면서 정찰헬기대 편대장인 카토 유우지는 나이 오십을 갓 넘도록 헬기를 몰았다.

    허나 이렇게 실전 임무 출동을 받은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목표물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으나 나이 든 주요 정부인사를 납치한 채로 도주 중인 신원 미상의 남자를 추적해야 한다고 들었다.

    평상시 일과였던 재난 구조나 훈련 비행 대신 투입된 최초의 실전 임무가 고작 납치범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게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월급으로 받아먹은 세금만큼은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다시 진이 빠지는 명령이 들려왔다.

    - 부대 귀환하라. 다시 반복한다. 부대 귀환하라.

    방금 전까지 지휘 교신을 내린 직속 상관의 목소리였다. 

    츠다 시게루는 황당해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출동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귀환하라는 거야?’

    목표 지역 상공에 막 도착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도 당장 귀환하라는 명령에 김이 팍 샜다.

    갑작스럽게 바뀐 명령에 츠다 시게루는 확인을 위해서 다시 교신을 넣었다.

    “지휘소. 귀환이 확실한가? 방금 귀환 명령을 들었는데 확실한 지시인가?”

    그러나 다음 명령은 들려오지 않았다.

    -찌이이이이잉핑츠으으으으앙

     “크악!”

    귀를 찌를 정도의 소음이 터지면서 굉음에 가까운 노이즈가 고막을 흔들었다.

    츠다 시게루와 그 옆의 부조종사는 급히 통신 헤드폰의 음성 신호 출력을 줄였다.

    “크윽. 갑자기 통신 장비가 고장이라도 난 걸까요.”

    편대장인 츠다 시게루보다는 10년이 어리지만 그 또한 3,000시간이 넘는 비행 경력의 베테랑인 부조종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뒤에 따라오는 다른 기체들도 이런지 물어봐.”

    츠다 시게루의 지시에 부조종사가 즉시 명령을 따랐다.

    “알겠습니다. 각 기체 지금 통신이 들리나?”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어서 다시 응답을 독촉했다.

    “각 기체. 지금 즉시 호출 순서대로 응답하라.”

    그러나 이번에도 응답은 없었다.

    인공지능 팔찌는 헬리콥터 정찰대의 각 기체 주파수마다 동시에 일일이 통신 방해를 넣어서 아무런 송수신이 안 되도록 막아 놓고 있었다. 

    “망할..”

    츠다 시게루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통신 장비가 고장났거나, 아니면...”

    혹시 모를 일이지만 전파 방해 공작이 의심스럽다는 직감이 츠다 시게루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츠다 시게루가 굳은 표정으로 부조종사를 돌아보며 지시했다.

    “자네 빨리 휴대폰 꺼내! 휴대폰으로 통화 시도해봐.”

    “핫! 예. 알겠습니다.”

    자위관들도 평상시 휴대폰 정도는 지참하고 다닌다.

    고속으로 상공에서 움직이는 헬기 안이지만 기지국이 많은 도쿄 근처니 당연히 통신이 터질 것이다. 

    부조종사가 곧 같은 편대 동료의 휴대폰으로 전화번호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뚜르르 통화연결음만 들릴 뿐 통화 신호 자체가 잡히지 않았다.

    “빌어먹을. 알겠군. 역시 전파 방해였어.”

    오랜 군대 경력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어 찍어 본 생각이 전파 방해였다. 

    그러나 여기가 살벌한 전쟁터도 아니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도쿄 근처 상공에서 전파 방해를 건다는 게 지나친 망상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으로 확인을 명령했다. 

    허나 휴대폰이 통화가 안 될 정도라면 전파방해가 확실했고 그만한 장비는 결단코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쪽이든 이 상태로는 임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가 없다.”

    같은 편대끼리도 교신이 안 되는데 임무 지역에 출동해봤자 지상의 육상 자위대에게 정보를 줄 수가 없다. 

    정찰 수색을 위해서 출동한 헬기들이 지상에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면 반푼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어쩐담.”

    고민하는 사이에도 편대는 도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츠다 시게루는 혹시 방금 전해진 명령이 잘못 전달되었거나 조작된 명령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들었지만 잘못 전해진 명령이라 해도 일단 접수된 이상 따라야 한다.

    고작 삼등육좌에 불과한 자신의 현장 판단보다는 상관이 지시한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 자위대라는 조직이 강조하는 군기이자 최고의 덕목이었다.

    “망할. 귀환한다.”

    결심을 굳힌 츠다 시게루는 즉시 조종 손잡이를 비틀어서 기수를 돌렸다. 

    부조종사가 뒤에 따라오던 편대의 다른 기체들을 보면서 물었다.

    “교신이 안 되는데 저 친구들 설마 우왕좌왕하지는 않겠죠?” 

    츠다 시게루는 코웃음을 쳤다.

    “그딴 건 걱정 마라. 편대장이 가는데 지들이 안 따라오고 배겨?”

    설사 잘못 전달된 명령이라 해도 기지에 귀환하고 나서 깨질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귀환하자.“

    츠다 시게루가 모는 편대장기가 방향을 틀자 뒤에 따라오던 헬기들도 곧 순서를 맞추면서 방향을 틀었다.

    방금 전 이륙했던 우쓰노미야 시의 주둔 기지를 향해 헬기 부대는 소득도 없이 다시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