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2화 (132/185)
  • <-- 132 회: 5권 - 우발 -->

    *   *   *

    “움직입니다.”

    날카롭게 경계를 하며 서고 있던 김형석이 주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성진은 주변에 나노로봇을 펼쳐놓은 인공지능 팔찌의 감시 능력으로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지만 직감만으로 상황을 파악한 김형석에게 감탄했다.

    “감각이 대단하군요.”

    “전장에서 견딘 부수입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형석은 쓰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모두 김형석같은 감각을 얻는 건 아니다. 김형석이 이런 감각을 얻은 건 모두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의 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진은 이런 재능을 지닌 김형석을 차후에 더 중히 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김형석 씨. 방금 내 지시 명심하도록 해요.”

    현장을 피하라는 명령. 싸우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라는 지시에 김형석은 속으로 불만을 품었다.

    “정말 제가 피하더라도 회장님 혼자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아…….”

    한숨을 내쉰 김형석은 성진의 지시에 순응했다.

    “알겠습니다. 저들이 들이닥치는 대로 곧바로 이곳을 이탈하겠습니다.”

    “좋아요.”

    말을 받은 성진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관님. 잠시 이 방에 계십시오. 저희를 신뢰할 수 없다면 나오셔도 좋습니다.”

    성진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에게 가볍게 경고하듯이 말하며 선택권을 주는 듯 말했지만 정작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확인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외부에 몰려온 사람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징후를 인공지능 팔찌가 파악해서 성진에게 보고했다.

    -해당 인물의 혈류량과 심박수가 미세하게 증가했습니다. 다소의 불안감과 의혹으로 판단되는 감정 징후가 판단됩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확실한 심리 판단을 얻은 성진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내 정체를 알았으니 저들에게 넘어가서 진술한다면 곤란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될 줄 모르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지만 사실 어차피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없다면 방사능 기술 협상이 벌어지지도 않을 상황이니 어차피 밝혀야 할 상대이기도 했다.

    “정말 무사히 빠져나갈 자신이 있습니까? 바깥에 한두 명이 온 거 같지가 않은데…….”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오며 진입하는 발소리가 거세지자 일반인에 불과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도 눈치로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다.

    김형석 또한 여기서 목숨을 잃을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오직 성진만이 태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성진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시야 한 곳에는 여관 건물에 적들이 진입해오는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머리에 펼쳐지고 있었다.

    *   *   *

    3층 구조로 된 여관 건물 1층으로 몸 전체를 통째로 가리는 방패를 든 요원들이 앞장을 섰다. 그 뒤를 기관단총을 든 요원들이 받쳤다. 바짝 밀착한 상태로 움직이는데도 움직임은 지극히 신속했다.

    투숙객과 주인들을 다른 요원들이 내보내는 와중에도 신속하게 계단을 점거하고 사방을 총구로 경계하는 와중이었다.

    3층 계단을 지나 복도로 막 들어서는 선두 요원이 복도 끝을 들여다본 순간. 등 뒤로 오싹한 한기가 훑고 지나갔다.

    ‘핫!’

    반사적으로 반대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벌써 상대방은 눈 앞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크앗!”

    마치 철퇴같은 주먹을 맞은 요원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계단으로 올라서는 요원들 위로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동료가 떨어지는 난데없는 상황. 허나 그 와중에도 요원들은 우왕좌왕 당황하는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라!”

    탄환을 들이붓는 기관단총의 연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지근거리에서는 방탄복도 뚫는 최첨단 기관단총의 파괴력이 벽면을 훑었지만 정작 목표물이었던 남자는 그 사이를 놀라운 속도로 비집고 들어왔다.

    어느새 요원들의 한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온 남자는 일본어로 장난스럽게 읊조렸다.

    “원한은 없습니다.”

    이윽고 양 손과 발을 풍차처럼 휘둘러대자 계단에 몰려있던 요원들은 신음도 못 지르고 아래로 튕겨져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아래에서 지켜보던 엔도 츠요시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빌어먹을. 내가 들어간다.”

    “과장님!”

    부관인 쿠라타 슈헤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엔도 츠요시는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권총으로 원호해라, 쿠라타! 놈은 전문가다.”

    그의 입에서 전문가라는 인정이 나오려면 지극히 위험한 존재라는 의미였다.

    쿠라타는 입술을 앙다물고 권총을 양손으로 살포시 말아 쥔 채 겨누었다.

    그 앞으로 바삐 뛰어올라간 엔도 츠요시는 쥐고 있던 권총을 먼저 사격하며 뛰어들었다.

    -타앙!

    -타앙!

    권총 발사음이 두어 번 울렸지만 계단 위의 남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조준과 사격 자세 모두 정확했고 연사 속도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남자는 아랑곳없이 권총탄을 가볍게 피했다.

    하기사 이런 극단적으로 좁은 곳에서 부하들의 기관단총 사격을 견디고 궤멸시켜버린 적이다. 자신의 권총탄에 맞아주는 것은 갑자기 눈이 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리라.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칠 정도로 강하다.’

    요원들이 쓰러진 계단 한가운데에서 가볍게 발걸음만을 옮겨서 총탄을 피하는 모습을 보자 엔도 츠요시는 마치 지옥에서 부활한 악귀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

    “하아…….”

    입에서 단내가 절로 났다. 눈앞에서 총탄을 피하는 괴물과 대적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같이 강력한 남자. 성진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엔도 츠요시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속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이 곳은 적진 한복판이다. 지원을 부르면 얼마든지 올 수 있고 소란이 길어지면 반드시 경찰이 들이닥친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일본 경찰이 서둘러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고 있는 사내 역시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 명백해 보였다.

    ‘경과 시간 5분. 앞으로 5분 안에 상황을 끝낸다.’

    김형석은 안에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데리고 있다가 성진이 길을 뚫는 즉시 탈출할 예정이었다.

    반면 성진은 어느 정도 적을 와해시킨 뒤 자신의 완력으로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들쳐 업고 도보로 탈출할 생각이었다.

    몸무게의 2배 정도를 짊어진 상태에서 전력질주를 해도 큰 무리를 느끼지 않는 성진이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일단 눈앞의 장애물부터 치워야지.’

    성진이 성큼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자 엔도 츠요시는 움찔한 상태에서 몸을 긴장으로 곧추세웠다.

    ‘내가 아직도 긴장이란 걸 하다니…….’

    엔도 츠요시는 헛웃음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비밀리에 파견한 지옥 같았던 전쟁터를 떠돌면서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으며 긴장감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깡그리 소멸한 지 오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긴장감, 두려움이라는 낯익은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엔도 츠요시는 도리어 즐거움을 느꼈다.

    ‘하하. 신선한데?’

    입술을 깨물고 자세를 곧추 세운 그는 한쪽 손에 바로 품속의 비수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성진은 엔도 츠요시와 달리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성진에게는 막강한 능력인 인지 가속이 있고 자신의 사문인 태합 유문의 발경과 경공 보법이 있다.

    방금 전에도 눈앞에서 기관단총이 탄환을 쏟아내기 전에 인지 가속으로 잠시 총구의 진행 방향을 미리 확인하고 경공술로 들이닥쳐서 가볍게 적들을 와해시킨 성진이었다.

    총을 든 상대도 그럴진대 하물며 접근전이라면 일방적으로 패배를 안겨줄 뿐이다.

    ‘고통은 없도록 한방에 기절시켜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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