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31화 (131/185)
  • <-- 131 회: 5권 - 우발 -->

    ‘어째서 그런 판단이 나오지?’

    -만약 제가 있던 문명과 동일한 수준의 문명이 기술을 제공한 상황이었다면 저처럼 휴대용인 기기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신호 위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다른 예외는?’

    -희박한 확률로는 저를 제작한 문명보다 지극히 뒤떨어지는 수준의 외계 문명의 기술이 제공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너를 만든 문명보다 뒤떨어지는 수준의 외계 문명일 수 있다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성진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위협적인 일이다.

    어떤 변수를 상정하더라도 다른 외계 문명의 기술력이 성진 외에 다른 이에게 입수되었다고 생각하는 상황보다 위협적인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아.’

    성진의 불안감을 인공지능 팔찌는 읽을 수 있었다.

    착용자의 심리적 변화를 육체적 신호로 캐치한 인공지능 팔찌는 최대한 위로와 사과의 말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저의 실수로 괜한 불안을 얻게 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약속드리는데 앞으로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상황은 저의 기능이 모자라서 생겨난 일이 아니라 저의 실수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팔찌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상황임을 최대한 강조했다.

    -주변 모든 상황에 대한 경계 및 대처 능력을 항시 최고조로 정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인공지능 팔찌는 여러번 성진에게 사과를 했지만 정작 주인인 성진의 판단은 달랐다.

    ‘정말로 외계 문명이 개입한 것이라면 이건 엄청난 위협이다.’

    반면에 그게 아니라 해도 잠시나마 인공지능 팔찌를 기만할 정도의 기술 수준을 지닌 과학자가 일본을 돕는다면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일본에 와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군.’

    유사시에는 성진을 위협할만한 수준의 기술이 확인될 경우 파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성진의 판단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마스터의 판단에 입각하여 앞으로 다른 외계 문명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탐지하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계속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부터 해결해야겠지?’

    성진은 사고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면서 준비를 했다.

    ‘인지 가속 속도를 둔화시켜.’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는 막대한 속도로 가속되는 성진의 두뇌 뉴런의 인지 속도를 서서히 떨어뜨렸다.

    곧 정지되어 있던 눈앞의 공간에 조금씩 움직임이 나타났다.

    공기 중을 떠돌아다니는 먼지의 움직임이 확장된 성진의 시력에 고스란히 잡히고 김형석의 긴장한 얼굴 근육과 마츠시마 장관의 표정 변화가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과한 동작으로 인해 부작용을 일으키며 망가진 일부 뉴런의 수복이 나노 로봇에 의해 빛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졌다.

    물론 그 와중에 성진의 시야가 약간씩 뒤틀리는 등의 가벼운 고통은 어쩔 수 없었다.

    ‘크흡.’

    신음을 흘린 성진은 마침내 인지 가속이 끝나면서 마지막 통증을 겪음과 동시에 제 속도로 흘러가는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하아.’

    인지 가속은 성진에게 막대한 우위를 주지만 그만큼 성진의 육체를 갉아먹는 기술임이 사용 후마다 실감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로봇과 성진 자신의 육체, 두뇌 능력이 강화된 탓에 누적되는 데미지는 없었다.

    정지된 세상에서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성진은 긴장한 채로 있던 김형석에게 물었다.

    “바깥의 놈들이 들이닥치면 어쩔 겁니까.”

    김형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싸워야죠.”

    “그래요?”

    “당연한 말씀을 왜 물으시는지…….”

    투기로 이글거리는 김형석을 보면서 성진은 씨익 웃었다.

    “아닙니다. 무조건 피하세요. 마츠시마 장관님도 내가 보호합니다.”

    “예?”

    다소 어이없어하는 김형석을 보면서 성진은 재차 지시하려 했다.

    그 와중에 가만히 듣고 있던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이 나섰다.

    “이봐요. 총리대신이 보낸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습니다. 총리대신은 날 보호해주려는 사람이에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임명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현재 내각 총리다.

    그 사실은 성진도 일본 정계의 내부를 감시하면서 대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내각 총리를 신뢰한다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 말에 성진은 질문부터 했다.

    “장관님은 장관님 몸 속에 발신기가 박혀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성진의 물음에 장관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에? 발신기라니요?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그 말에 성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들은 마츠시마 장관님 몸 속의 발신기를 추적해서 온 거 같군요. 장관님도 모르게 발신기를 넣어서 감시하는 사람들이 좋은 의도일 거 같지는 않습니다.”

    “발신기라니. 총리 대신께서 그런 짓을……. 아니 설사 했다 해도 이유가 있겠지요. 그건 만나서 대화를…….”

    계속 역성을 드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에게 성진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뭐 그건 그렇다 쳐도 저들이 총리대신이 보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요?”

    “그, 그건…….”

    망설이는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에게 성진은 확실히 말했다.

    “선택은 장관님이 하시는 겁니다. 장관님을 살해 위협에서 구해드린 저희의 보호를 받으실지, 아니면 불확실한 저들에게 가실지.”

    “어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그 말에 입을 벌린 채로 망설일 뿐이었다.

    *   *   *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님 거기 계십니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님! 저는 엔도 츠요시…….”

    큰 목소리로 여관 중앙 현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직속 상관, 엔도 츠요시를 보면서 쿠라타 슈헤이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경악했다.

    “과장님. 지금 마츠시마 장관님이 어떤 위기 상황인지 모르는데 우리가 진입한 걸 알리면 되겠습니까?”

    직속 상관인 내각 총리로부터 비밀작전그룹이 받은 명령은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엔도 츠요시는 그런 제약에 얽매여서 소심하게 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흐흥. 모르는 소리.”

    천성이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졸린 건지 금방이라도 하품이 쏟아질 것만 같은 표정을 한 엔도 츠요시는 차분히 반박했다.

    “처음에 마츠시마 장관님은 살해 위협을 당하셨다.”

    치요다구 골목길에서 발견된 사건현장을 비밀작전그룹도 뒤늦게나마 급습했었다. 실시간으로 장관을 추적하고 있었지만 설사 도쿄도 관청이 밀집된 치요다 구에서 사건이 터질 줄은 몰라 방심한 탓이었다.

    뒤늦게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구출하기 위해 진입했으나 정작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곧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장관님은 살아 계시다. 장관님의 몸속에 심어진 뇌파 발신기는 뇌 기능이 정상이 아니면 작동하지 못하니까.”

    “그렇다면…….”

    쿠라타 슈헤이는 뒤늦게 엔도 츠요시가 설명하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장관님은 지금 어찌 됐든 안전한 상황이다. 지금 장관님과 같이 있는 놈들은 장관님을 헤칠 의도가 전혀 없어.”

    죽일 생각이었다면 애초부터 죽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죽이려 했던 세력은 따로 있다. 하지만 현재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은 멀쩡한 채로 이 아담한 여관 방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다.

    “지금 장관님이 혼자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셨든, 다른 놈들과 같이 계시든 적어도 놈들에게는 장관님이 살아 계셔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다.”

    “오호라. 확실히 그렇군요.”

    상대방이 마츠시마 다카시 장관을 헤칠 의도가 없다면 이쪽도 안심할 수 있다. 쿠라타 슈헤이는 주변을 돌아보며 대기중이던 부하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즉시 가지고 있던 총기를 바로 파지한 부하들도 굳센 눈빛으로 화답했다.

    “뜸은 이 정도 들이면 된 거 같고…….”

    그 모양을 살펴본 엔도 츠요시가 자신의 권총을 곧추세우며 지시했다.

    “돌입한다.”

    “옛!”

    곧 이어 여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수십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조를 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