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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25화 (125/185)

<-- 125 회: 5권 - 영입 -->

그러나 정광호는 입술을 달싹이며 엉덩이를 쉽게 떼지 못했다.

“어? 왜 그러시죠?”

성진은 정광호의 눈치가 이상하자 혹시 후환을 걱정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광호의 다음 행동은 성진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회장님!”

정광호는 성진 앞에서 무릎부터 꿇었다.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성진은 표정을 굳히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하지만 정광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회장님! 제가 정말 못나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라 제가 정말 소중한 걸 팔아치우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회장님. 제가…….”

정광호의 간절한 말이 이어지자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끊었다.

“일어나세요. 여기서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성진은 정광호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은 성진이 받아줄 생각이 없는 말이다.

“회장님! 이 못난 놈. 목숨 좀 받아주십시오!”

정광호가 집무실이 떠내려가라 목청껏 외쳤다.

하지만 성진은 냉담할 뿐이었다.

“내가 정광호 씨 목숨 받아서 뭐에다 씁니까. 이런 짓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방금 분명히 말했습니다.”

성진은 결코 남에게 선선히 이용당해주곤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딱한 마음이 들어 정광호가 성진에게 보인 허물을 용서해주기는 했다. 허나 성진의 사람으로 받아주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통사정한다고, 목숨 바치겠다고 하면 감동해서 아무나 받아주는 사람 같습니까? 그렇게 만만해 보였습니까?”

“회장님!”

차디찬 성진의 음성에 정광호는 입술을 핥았다.

그런 정광호를 보면서 성진은 계속 표정을 굳혔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얻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준도 있어요. 적어도 동고동락하던 사람을, 그것도 여자를 하룻밤 장사에 넘기는 사람은 내 사람으로 들일 기준에 맞지 않습니다.”

“회장님! 실수였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습니다.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간절한 정광호의 말에 성진은 차갑게 대꾸했다.

“용서는 아까 했어요. 그런데 지금 정광호 씨는 전혀 다른 걸 요구하네요. 더 이상 무례 저지르면 봐주지 않겠습니다. 나가세요.”

“회장님!”

정광호는 일어서는 대신 말을 이었다.

“저 정말 다인이 최고로 키워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능력도 없고, 뭣도 없고 진짜……. 앞으로도 뾰족한 수도 없고, 더 힘들어질 텐데……. 뭐 나아질 만한 구석도 없어서 제가 그만…….”

정광호는 조금씩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 울음이 억지로 쥐어짜내는 소리라면 성진은 당장 밖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서러워 울어대는 정광호에게 야박하게 굴기에는 성진이 그의 진심을 본 적이 있어 마음에 걸렸다.

‘후…….’

성진은 정광호가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품고 찾아왔을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베푼 자비를 보고 자신의 그늘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분명했다.

‘잠깐 뇌파 스캔을 가동해봐.’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다시금 읽어들인 정광호의 뇌파에는 절박하고 지친 마음이 가득했다.

다인이 올라갈수록 경쟁은 힘들어지고, 돈도 줄도 없는 광호는 점차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좋은 마음만 먹으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그만큼 정광호의 심신이 지쳐있기에 성진처럼 의지할만한 사람을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긴 것이었다.

‘딱한 마음은 들어도 내 사람으로 받아주는 건 다른 문제다.’

정광호가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는 능력 있고 신의도 있는 남자라는 건 안다. 뼈저리게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것도 성진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를 부릴만한 구석이 성진의 계획에는 없다.

성진은 정광호가 투신한 엔터테인먼트 사업 분야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강후그룹이라는 새로운 적수까지 나타난 마당에 대외적인 식구를 늘린다는 건 지켜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흠…….’

성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좋아. 그렇게 하지.’

이윽고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그만! 그만해요.”

“회장님…….”

성진은 정광호를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정광호 씨. 용서를 비는 것도 모자라 거둬달라 의탁까지 하려 드는 건 염치없는 짓입니다. 알죠?”

정광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무작정 찾아와서 엎드리고 빌고 한다고 뭐가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 아주 싫어합니다. 정광호 씨가 내 도움을 바랐다면 태도를 달리해야 했어요.”

성진의 말에 무언가 희미한 가능성을 느낀 정광호가 고개를 들었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무릎 따위 함부로 꿇지 말고, 당당히 서세요.”

성진의 말에 정광호는 서둘러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가슴을 펴고 말하세요. 정광호 씨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어떻게 앞으로 행할지, 내가 정광호 씨를 도우면 어떤 결과를 얻을지 당당하게 설명을 하세요.”

차가운 말투였지만 성진의 말 속에는 자비가 깃들어 있었다. 정광호는 성진의 주문대로 당당하게 말하려 애썼다.

“저, 저는 그러니까…….”

그러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난 불알 두 쪽만 가지고 여기까지 큰 정광호다.’

이를 악문 정광호는 마지막 기회라고 되뇌며 성진에게 또박또박 자신이 업계에서 쌓은 노하우와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   *   *

설명이 끝난 직후 성진은 혜영을 호출해서 투자 계약서를 가져오게 했다.

공증 절차를 밟은 이후 그 자리에서 20억을 송금해주자 정광호는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정광호를 보면서 성진은 냉정하게 말했다.

“확실히 해둘 게 있어요. 이건 내 개인적인 투자지 정광호 씨가 내 사람이 된 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투자했다는 사실은 절대 감추세요. 알겠습니까?”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20억이면 쓸 만한 엔터를 꾸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외부 출자를 받아 시작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초창기 규모가 보통 10억이다.

20억이라면 정광호로서는 상상만 했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액수.

“정말 최선을 다해 보답하겠습니다. 우리 다인이, 아니……. 우리 회사 꼭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뜻대로 해보세요. 그럼 한동안 못 볼 텐데 열심히 하시고 나중에 봅시다.”

“예. 회장님.”

감사를 표한 정광호는 계약서를 소중히 챙겨 들고 회사를 나섰다.

그런 정광호를 보면서 박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장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뭐 관심까지는 아니고 그냥 묘한 인연 때문에 마음이 좀 쓰여서 투자했습니다.”

성진은 대충 둘러댔지만, 박혜영은 다른 쪽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혹시……. 성진씨 주변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네?”

그 말에 어쩐지 성진은 침대 위에서 널브러져 있던 다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게슴츠레 노려보는 혜영 앞에서 마음이 찔린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아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흐응…….”

혜영은 영 미심쩍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씨익 웃어 보였다.

“하긴 뭐 아무려면 어때요. 성진씨가 알아서 할 일이죠.”

새침하게 웃는 혜영의 얼굴을 보면서 성진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자신의 얼굴이 살짝 붉어질까 봐 신경이 쓰인 성진이 헛기침을 하는데 혜영이 손을 뻗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넥타이 삐뚤어졌다.”

성진의 넥타이를 조심스럽게 당겨서 손질을 한 혜영은 귀엽게 미소를 지었다.

“헤헤. 다 됐어요.”

“아……. 고, 고마워요. 혜영씨.”

“고맙기는요 뭘. 비서로서 당연한 책무랍니다.”

윙크를 하는 혜영의 선명한 이목구비, 특히 연분홍 루주를 바른 입술이 오늘따라 더욱 귀엽고 도발적으로 보였다.

성진은 저도 모르게 돌아선 혜영의 어깨를 잡고 자신에게 돌려세웠다.

“혜영씨!”

“네?”

깜짝 놀라 두 눈을 끔벅거리는 혜영을 보면서 성진은 조금씩 혜영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상황을 파악하고 긴장한 혜영이 마른 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띠리리리리리

성진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최면에 걸린 양 묘하게 젖어들었던 분위기가 깨져버렸다.

성진이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집어 들며 혜영의 눈치를 살피자 혜영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묵례한 뒤 혼자서 앞을 걸어갔다.

“이런…….”

뒤늦게 후회하는 성진이었지만 엎어진 물을 어쩌지 못하고 울려대는 휴대폰이나 받아야 했다.

“여보세요?”

-한성진 회장님이십니까?

익숙한 목소리. 성진은 곧 목소리의 주인공이 성진의 회사에 위장 취업했던 국정원 블랙 요원. 장희원 부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장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청와대에 한번 와주실 수 있을까요? 위에서 내려온 요청입니다.

그가 말하는 위라면 오직 대통령 한사람밖에 없다.

안 그래도 일본과의 계약 협의를 앞두고 대통령에게 사전에 여러 가지를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당연히 가야죠. 오늘 중에 찾아뵙겠습니다.”

-예. 그럼 저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몇 시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지금 바로 가도록 하죠. 바로 오실 수 있나요?”

-그럼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예.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성진은 곧 바삐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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