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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입
호텔 스위트룸에서 단체로 마약을 흡입한 남성 직장인들. 그것도 같은 대기업 사원들이라는 점이 드러나 저녁 뉴스에서도 상당히 진지한 분위기 속에 보도되었다.
k기업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유감과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한편 국내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대기업의 직원들이 이 같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에 대해 이례적으로 전경련에서도…….
뉴스에서는 이니셜로 표시됐지만 이미 SNS와 인터넷을 타고 이 나라 사람들은 다 안다.
강후전자의 직원들이 호텔 스위트룸을 잡고 단체로 마약을 했다는 식의 사실부터, 여자가 있었다는 루머가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여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동성애자들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난무했다.
“쯧. 애꿎은 동성애 얘기는 왜 하나. 동성애자들이라고 해서 호텔에 투숙해서 마약을 하지는 않는 법인데.”
성진은 자신이 손쓰지 않았음에도 뭉게뭉게 피어나는 갖가지 소문들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흔치 않은데다가 특이한 사건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제법 갖는 눈치입니다.”
박윤호 전무는 뉴스를 같이 보면서도 연신 성진의 눈치를 살폈다.
그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괜찮다 싶어 간 플로티나 호텔에서 저런 사단이 벌어졌으니 필시 어떠한 뒷사정이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그 눈치를 성진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슬쩍 말을 던졌다.
“아까부터 제 눈치를 왜 보시는 겁니까?”
“그게…….”
박윤호 전무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 어제 안 좋은 일을 겪지는 않으셨습니까?”
“안 좋은 일이요?”
성진은 싱긋 웃으면서 가볍게 부정했다.
“아니요. 그런 일 없었습니다. 뭐 가봤더니 나오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돌아왔지요.”
“아. 그러셨군요. 다행입니다.”
박윤호 전무는 반신반의했지만 성진이 괜찮았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데 괜히 신경 쓰지 마시고 일본 쪽 출장 스케줄이나 신경 써 주세요.”
“아! 일본 출장이요. 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 측의 요구 사항이나, 예상되는 계약 조건 등 전부 다 철저하게 점검하셔야 합니다.”
성진은 이번 일본과의 계약에 많은 걸 걸고 있었다.
성진의 요구사항이 절대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중에서도 숨겨진 가장 큰 목표.
그 성과로 윤진만 변호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했다.
비장한 성진의 표정을 읽으면서 박윤호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가서 일 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인사를 마친 박윤호 전무가 뒤돌아서서 집무실을 나가고 성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후우. 강후 전자……. 아니 강후 그룹이 나를 노리는 건가?”
차진석의 뇌파를 스캔하면서 성진은 그 음모가 상부에서 흘러내려 왔다는 걸 알았다.
차진석에게 직접 전달된 지시사항은 절대 외부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거액의 보상금이 약속된 배경에는 분명히 내부 고위인사의 입김이 서려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됐으니 강후그룹 쪽에서도 내가 자신들을 적으로 인식했다는 걸 알 테지.”
이제부터는 성진이 강후그룹의 적의를 눈치 챈 이상 저쪽에서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 성진을 옭아매려 했던 시도는 강후그룹 측에서도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지고 한 시도였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판단했기에 직접 강후전자를 움직여서 성진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해 버렸고 중요한 건 저쪽에서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다.’
성진은 차진석을 제압하고, 마약에 관련된 술책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면서 자신을 철저히 감췄다.
심지어는 CCTV에서도 자신이 촬영된 장면은 모조리 삭제했고 감시하던 국정원 요원들 시야에 잡힌 정보만큼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만 촬영되도록 조작했다.
‘그 와중에 정광호 사장 일도 감춰줬지만 말이야.’
다인과 정광호가 플로티나 호텔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애당초 가명으로 체크인했고 CCTV에서는 존재 자체가 지워졌다.
그들로 인해 성가신 일을 겪은 성진으로서는 과할 정도의 배려였지만 성진은 해줬다.
‘에휴. 왠지 측은해서 말이지.’
고생 끝에 겨우 성공의 끝자락 하나 잡은 모양새인 다인과 정광호는 차진석 같은 작자의 장기 말로 전락해서 인생이 망가질 뻔했다.
성진은 그들이 한 짓을 좋게 평가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노력해온 그들의 인생을 성진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망가뜨릴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어제 일을 생각하면서 강후 그룹의 동태나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비서인 혜영으로부터 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이에요 혜영씨?”
-회장님.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이라구요?”
-예. 성함이 정광호 씨라고 하는데요. 들여보낼까요?
“아. 정광호…….”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세요. 만날 사람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혜영의 전화가 끊어지고 곧 성진의 집무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성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눈치를 조심스레 살피며 들어온 정광호가 먼저 고개부터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됐으니까 고개 드세요. 일단 자리에 앉죠.”
성진이 소파 쪽으로 자리를 권하자 정광호는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러면서 성진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불안하게 기다리는 눈치였다.
성진은 소파에 마주앉자마자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뉴스는 보셨습니까?”
“아, 예. 그……. 차 팀장이, 아니 차진석이가 마약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마약이 어디서 났을까요?”
성진의 물음에 정광호는 침통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마 차진석이가 준비를 했겠지요.”
“다행이군요. 눈치가 빠르신 거 같으니.”
“연예계 밥 먹으면서 눈치 하나로 버텼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는데 아무리 저처럼 아둔한 놈이라 해도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정광호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최대한 미안한 기색을 보이려 했다.
이 상황이 자신의 잘못으로 빚어졌다는 걸 정광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성진이 분노했던 까닭도, 다인과 자신의 인생이 끝장날 뻔했다는 말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정광호 자신과 다인은 모두 차진석의 장기말, 놀이패에 불과했다는 걸 이제 모두 알 수 있었다.
“정광호 사장과 다인 양 모두 날 곤란에 빠트리는 데 일조를 하셨지요.”
성진의 질책에 정광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 해결은 잘 됐습니다. 하지만 반성이 없다면 내가 정광호 사장을 봐줄 이유는 없겠지요.”
협박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정광호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반성하겠습니다.”
성진은 자비를 베푼 입장이었다. 염치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서 감히 뭐라 할 수 없었다.
“정광호 사장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 난 다인 양을 그 정도로 키운 당신 능력이 허술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광호가 다인을 팔아넘기는 데 혈안이 되었거나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면 진작에 다인은 헐값 취급을 받으며 밑바닥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분명히 신의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 점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내가 주제넘게 정광호 씨한테 길게 훈계할 생각도 없고 앞으로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라고 짧게 충고할 생각이었습니다. 기왕이면 사과도 받구요. 앞으로 이번 일은 쭉 함구하세요. 여배우인 다인 양을 위해서라면 이런 추문이 번지는 건 있어선 안 될 일이니까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정광호는 연신 고개만 끄덕이며 성진의 말을 경청했다.
“그럼 이만 가보세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죠.”
축객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