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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23화 (12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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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들은 성진은 팔을 놓고 천천히 정광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뇌파 스캔 가동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애당초 들어오자마자 정광호를 심하게 다그친 것은 딴 꿍꿍이 품을 새도 없이 본심을 떠올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인공지능 팔찌가 정광호의 뇌파를 스캔하자마자 성진은 드러나는 정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보처럼 당했구나. 어리석게도 이용만 당하고.’

정광호는 차진석의 의도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도리어 찾아오기 힘든 기회라 여기고 잔뜩 흥분하기까지 했다.

‘순진하게 믿어버리다니.’

다인을 팔아넘기는 꼴이라 갈등도 있었지만 잠시였다. 갈등 속에서도 결국 호텔에 제 발로 들어온 정광호였다.

명백히 부도덕하고 어리석기까지 했지만 성진은 정광호를 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나간 과거까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고생을 많이 하긴 했군.’

빽도 돈도 없었던 가난한 매니저와 외모 하나만 믿는 신인 여배우. 이런저런 설움 속에서도 유혹을 뿌리치면서 악착같이 고군분투해 온 사람들이다.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긴 했지만…….’

성진 자신을 이용하려 한 건 사실이지만 이들은 성진이 먼저 음흉한 속셈을 품은 것으로 착각하고 응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을 해코지하려는 악의가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진은 화가 누그러짐은 물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무작정 욕한다면 교만한 짓이다.’

성진이 나선다면 이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손쉽게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한다면 이들의 인생은 끝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겪은 고통을 알고 있다.’

성진은 자신이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이 자리에 올라섰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자신이 나름대로 고생하며 살아온 이들의 비도덕적인 선택을 무조건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남을 해코지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아니다.’

도리어 갈등 속에서 나름 절박한 선택이라 여겼던 길. 허나 엄연히 잘못된 선택이라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좋아. 용서한다.’

자신을 해하려 들지 않았고 타인의 음모에 휘말렸기에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잘못에 대해서는 엄히 경고해둬야겠지.’

제대로 경고를 해둬야만 이들이 다시는 잘못된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성진은 정광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정광호 씨.”

“핫! 예, 예…….”

정광호는 속으로 다인을 염려하면서도 눈앞에 살벌한 기세를 뿜어대는 성진 때문에 당장 방을 뛰쳐나가지 못했다.

긴장의 빛을 흘리면서도 속으로 다인을 생각하는 정광호를 보면서 성진은 딱한 마음이 들었다.

“정광호 씨. 당신이 지금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을 지키려면 더욱 분명하고 엄격하게 처신했어야 했어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한 의지가 깃들어있는 말이 정광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저, 저는……. 그저…….”

“내가 당신들 잘못을 문제 삼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예옛.”

정광호는 그저 정신없이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잘못 돌아간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정광호는 성진이 왜 이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가? 아니면 대체…….’

당황하는 정광호를 보면서 성진은 분명하게 말해줬다.

“정광호 씨. 나는 이 자리에 사업차 상담을 위해 온 사람입니다. 차진석이가 당신과 다인 양을 지저분한 음모에 끌어들인 거구요.”

“예? 음모라구요?”

음모라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든 정광호가 성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습니다. 차진석이가 어떤 짓을 벌이려 했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다만 중요한 건 이 일이 정광호 씨와 다인 양이 이루어놓은 모든 걸, 아니 인생을 끝장낼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아니 그런…….”

정광호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었다.

이 자리는 온전히 성진이 원해서 시작된 자리로 알고 있었다. 헌데 성진은 생각도 안 했던 자리라니.

‘한성진 회장이 원한 게 아니었단 말이야?“

성진은 당황하며 몸을 떠는 정광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다인 양을 데리고 이 호텔을 조용히 나가요. 당신들은 연루되지 않도록 내가 손쓰겠습니다.”

“한 회장님. 죄송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조용히 돌아가면 곧 알게 될 겁니다. 지금은 모든 걸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성진은 얼떨떨해하는 정광호를 움직이도록 방 밖으로 떠밀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 모든 일이 정리되면 반드시 나에게 용서를 빌러 오세요. 알겠습니까?”

“아, 알겠습니다.”

정광호는 당황하면서도 방 밖을 서둘러 나갔다. 다인이 있을 스위트룸을 향해.

그런 정광호의 뒷모습을 보면서 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눈꺼풀 위로 비치는 햇살에 의식을 차리자 뒷골이 땡겼다. 차진석은 목을 부여잡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어?”

차진석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번져갔다.

분명 성진과 다인을 엮으려 했던 스위트룸이다.

이 널찍한 방 안에 자신의 부하들이 여기저기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면서 차진석은 갑작스럽게 끊긴 필름을 떠올리려 애썼다.

‘분명히 내가 한성진이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거기까지는 기억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후부터가 문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아파왔다. 동시에 차진석의 뇌리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도대체 뭐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불안감에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물 생각이 간절해진 차진석이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한 발을 바닥에 내디딘 순간 발이 제멋대로 풀렸다.

“끄앗.”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린 차진석이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스위트 룸의 문 쪽에서 덜컥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꼼짝 마! 경찰이다.”

권총을 들이대면서 뛰쳐 들어온 사복 차림의 남자들. 뒤이어 따라 들어온 경찰복 차림의 장정들이 우르르 스위트 룸에 뛰어 들어왔다.

“겨, 경찰?”

신음 섞인 경악을 내지르면서 차진석은 일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빌어먹을!’

이를 악문 차진석이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는 차마 일어서지도 못한 채 버둥거릴 뿐이었다.

한창 주변을 수색하던 형사가 그런 차진석을 발견하고 잽싸게 다가갔다.

“이거 약을 얼마나 했길래 몸도 못 가누는 거야? 어이 주형사 빨랑 와서 이 사람 좀 같이 잡아.”

형사의 말이 떨어지자 차진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약이라니……. 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를…….”

떠듬거리면서도 차진석의 당황한 말이 새어나오자 형사가 혀를 찼다.

“어허. 확실하게 다 알고 왔으니까 시치미 뗄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부름을 받고 다가선 젊은 형사가 차진석의 옆구리를 같이 잡으면서 거들었다.

“이 사람 팔뚝에 주삿바늘이 한두 개가 아닌데요?”

“그래?”

처음 차진석에게 다가든 중년 형사가 팔뚝을 잡아 살폈다.

과연 검붉은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하게 여러 개가 박혀 있었다.

‘주사 바늘 자국?’

순간 차진석은 성진에게 주입하려던 마약 주사기들이 떠올랐다.

‘설마!’

경악해버린 차진석을 보면서 형사들은 죄를 인정한 것으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확실하네. 가서 검사받으면 다 나오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자백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미란다 원칙을 읊어주는 형사 앞에서 차진석은 자신이 마약을 한 현행범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아니야.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라고.”

“말이 안 되기는. 지금도 약에 취해서는 몸을 못 가누면서 참.”

휘청대는 차진석을 보면서 형사는 혀를 끌끌 찼다.

“몸도 힘든 거 같은데 조용히 갑시다. 정 억울하면 결과 나오고 말합시다.”

“자, 가요.”

형사들이 차진석을 양옆에서 끌고 방을 나서는 동안 차진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이건 절대 아니라고……. 난……. 나는…….”

지금쯤이면 거액의 수고비를 받아 챙겨서 해외로 가는 비행기 객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경찰에게 잡혀가야 한다니?

그런 차진석을 보면서 연신 혀를 차던 형사가 은색 수갑을 꺼내 들었다.

“조용히 갑시다. 제발 좀.”

수갑이 팔에 채워지자 차진석은 비명 섞인 통곡을 내질렀다.

“끄아악! 이건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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