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20화 (12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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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작

    네오 테크비전 사를 향한 전국의 시선이 연일 집중되고 있었다.

    여론몰이를 하기에는 시기도 좋았다. 이렇다 할 특종거리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언론들은 세계가 주목할 첨단 기술을 내놓은 네오 테크비전 사와 그 회사를 이끄는 젊은 CEO의 이미지를 은근히 팔아먹고 있었다.

    모처럼 다시 찾아온 곽정수 기자도 그런 성진의 이미지를 팔아먹을 요량이었다.

    “이번에 저희 대중일보에서 네오 테크비전 사에 대한 장기 특집 연재를 준비 중입니다.”

    “장기 특집 연재요?”

    성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곽정수를 바라봤다.

    그런 성진의 표정을 읽었을 게 분명한 곽정수는 더욱 노골적으로 들이댔다.

    “예. 젊은 나이에 큰 성과를 거두신 한성진 회장님의 괄목할만한 성공, 네오테크 비전 사의 앞날과 발전상을 두루 다루면서…….”

    “저기 그러니까 그거 별로 안 내키는데요.”

    성진은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곽정수 기자는 간절하게 매달렸다.

    “회장님!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간략하게나마 다룰 수 있게 해주십시오.”

    “글쎄요. 영 내키질 않습니다.”

    성진은 자신에 대해 지나친 찬사를 늘어놓는 기사를 원하지 않았다.

    ‘한쪽에서 지나치게 칭찬해대면 다른 한쪽에선 질투를 하는 법이지.’

    사람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모두가 좋은 소리를 해도 개중에는 속으로 반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인데 뜬금없이 무턱대고 칭찬만 늘어놓는 목소리가 생기면 그때는 다수에게 반감을 살 우려가 있었다.

    “아니, 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오히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회장님 같은 분께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주셔야죠.”

    곽정수는 성진에게 계속 매달렸다.

    사실 이렇게 성진에게 나타나 특집기사에 응하기를 요청하는 까닭은 따로 있었다.

    요즈음 성진이 무언가 일을 또 크게 벌이리라는 직감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국가 최고의 권력 기구인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주 오가는 성진이었다.

    ‘뭔가 또 조만간 한탕이 벌어질 텐데…….’

    그간 성진이 터트린 사건이 여간 굵직한 게 아니었다.

    또 한 번 잭팟이 터진다면 미리 성진과 네오 테크비전 사에 대해 특집기사를 준비할 경우 유리한 장삿속을 챙기리라 판단한 대중일보였다.

    그 첨병으로 성진과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곽정수가 발탁된 것은 당연지사.

    다른 신문사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곽정수만큼 성진과의 친분을 갖춘 유능한 기자가 없어 손가락만 빠는 지경이었다.

    “무슨 생각이신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러면 간단하게 적어 주세요. 너무 요란스럽게 다루지는 마시구요.”

    웃으며 말하는 성진의 허락에 곽정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구! 허락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한 회장님이십니다.”

    “에이 괜히 아부하지 마시구요. 뭐 아무튼 가타부타 말도 안 되는 오버스러운 칭찬은 이쪽에서 절대 사절입니다. 그냥 냉정히 비판할 점도 비판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다뤄 주십시오.”

    성진은 곽정수를 냉정하게 내치기가 뭣했다.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는 언론인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궁할 때마다 조금씩 주고받는 게 있어야 했다.

    “곽 기자님 센스 있는 분이시니까 제가 어떤 걸 경계하는지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아이구 예! 제가 한 회장님과 네오 테크비전 사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일침 날리겠습니다. 아하하핫.”

    너스레를 떠는 곽정수에게 한마디 보태는 사람이 있었다.

    “기왕이면 플루토 투자그룹에 대해서도 몇 마디 써주십시오. 이거 요즘 영 뒷전이 된 눈치라…….”

    바로 성진의 제1심복이라 할 박윤호 전무였다. 사실상 플루토 투자그룹에서는 사장 역할을 수행하는 그였다.

    “요즘 네오 테크비전 사에 대해서만 이목이 쏠리니까 플루토 투자그룹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섭섭해하는 거 같습니다. 회장이 같으니까 엄연히 같은 회사라고 생각하거든요.”

    “하핫. 제가 섭섭할 정도였나요?”

    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플루토 투자그룹은 엄밀히 박천중 회장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잠시 맡고 있을 뿐. 언제든 돌려달라면 돌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윤호 전무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직원들이 알면 사기가 떨어질 겁니다. 회장님에 대한 신망이 대단하거든요.”

    “그래요. 그럼 앞으로는 신경 쓰겠습니다.”

    성진은 웃으며 박윤호 전무의 말을 인정했다.

    어찌 됐든 지금은 성진이 두 회사 모두를 이끌어가는 선장이니까.

    “아, 그리고 회장님. 강후 전자에서 사업 협력요청을 해왔습니다.”

    “강후 전자요?”

    “예. 방사능 정화 기계에 대한 전자 부속품이나 완제품 대량 생산에 대한 설비 협약 건입니다.”

    “음. 그래요. 어차피 전자 회사와 협력할 예정이기는 했죠.”

    방사능 정화 기기 <안티 라디오>를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전자제품 생산 설비가 필요했다.

    단일 종류인데다 지속적으로 많은 분량의 제품을 찍어내는 문제도 아니니 설비를 새로 짓는 것보다는 다른 전자 회사의 설비를 빌리면서 관리 협약을 맺는 게 더 유리했다.

    “강후 전자라면 대기업이니까 나쁘지 않네요. 공급도 안정적일 거고.”

    “예. 그래서 말인데 강후전자 사장이 직접 회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그 말을 마친 박윤호 전무가 슬쩍 옆을 돌아봤다.

    귀를 쫑긋 세운 곽정수 기자가 솔깃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곽 기자님. 안 바쁘십니까?”

    박윤호 전무가 노골적으로 축객령을 내렸지만, 곽정수는 뻔뻔했다.

    “에이, 바쁘긴요. 저 사실 오늘 오후는 아주 한가합니다. 아하하하핫.”

    너스레를 떨면서 능글맞게 굴었지만, 당연히 닳고 닳은 박윤호 전무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회장님, 이제 그만 곽 기자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성진에게 고개를 돌린 박윤호 전무를 보면서 곽정수 기자는 고개를 긁적였다.

    “에이 박 전무님 저 그래도…….”

    “저희가 이제 슬슬 업무를 봐야 할 거 같아서요. 곽 기자님. 배웅은 생략하겠습니다.”

    엷은 미소를 걸쳤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곽정수도 더 이상 뭉갤 염치가 없었다.

    “예에. 나중에 기사 초고 작성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일어선 곽정수가 가볍게 목례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아쉬움 섞인 표정을 잊지 않는 곽정수를 보면서 성진은 실소를 지었다.

    “곽 기자가 알아서 잘 해주겠죠?”

    “그런 실력은 갖춘 친구 아닙니까. 회장님이 고른 인재이니 알아서 잘 분발할 겁니다.”

    박윤호 전무는 미소를 지었다.

    실상 곽정수 기자를 회사에 들어오게 한 것도, 방금 전 미묘한 사업상의 떡밥을 흘리도록 한 것도 성진의 지시였다.

    곽정수 기자도 눈치는 챘을 것이다.

    이런 중대한 사항을 박윤호 전무가 외부인 앞에서 함부로 발설하도록 놔둘 성진이 아니니까.

    “그나저나 강후전자같은 대기업에서 갑자기 우리한테 전격적으로 협력 요청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단순 생산 계약이라 이익도 많지 않을 텐데요.”

    성진의 말에 박윤호 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별로 큰 이익을 바라고 제안해온 건 아닐 테죠. 다만 최첨단 방사능 제거기기를 생산하는 업체라는 홍보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뭐든지 이용하기 나름이니까요.”

    “글쎄요……. 겨우 그 정도를 생각하고 이렇게 전격적으로 요청해왔을까요.”

    성진은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강후 전자는 그 명성과 위용, 입지 면에서 국내에서 적수가 없는 전자기업이었다.

    ‘그런 회사가 겨우 하청 생산이나 하려고 접촉하려 한다?’

    성진의 미간이 좁아지자 그 눈치를 본 박윤호 전무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회장님. 처음부터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시는 건 불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맞는 말입니다.”

    박윤호 전무의 말을 받으면서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결코 마음을 풀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생각이 드는 게 지나친 노파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진은 가볍게 행동할 입장이 아니다.

    쉽게 쉽게 만사를 재단하기에는 성진이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곽정수 기자를 불러 미리 떡밥을 푼 것이다.

    “이런 일은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수작 부리기가 어려워지죠. 대기업과의 접촉은 항상 언론에 흘리세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박윤호 전무는 공손하게 대답한 뒤 준비한 서류를 올렸다.

    “강후 전자에서 사전 제출한 계약 제안서입니다. 보면 문제 될 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즉석에서 검토한 성진은 만족스러운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괜찮네요.”

    “다만 강후전자에서 특별히 한 가지 요구한 게 있습니다.”

    “특별한 요구요?”

    “예.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뉘앙스로 요구했습니다. 강후전자 사장과 회장님이 독대했으면 하더군요.”

    “독대? 왜죠?”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를 않았습니다. 다만 파격적인 조건이 보장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파격적인 조건이라……. 겨우 하청 계약 하나 맺으면서 파격적인 조건까지 보장할 이유는 없을 텐데 의아하네요.”

    성진의 말에 박윤호 전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좋게 생각하자면 장기적으로는 우리 네오 테크비전 사와 강후전자가 협력관계를 맺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겠지요. 그쪽은 가전, 그리고 우리는 특수한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박윤호 전무는 나날이 커지는 네오 테크비전 사의 위상에 자부심을 가지는 눈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강후전자같은 대기업 전자 회사에서도 한 수 접어주며 손을 내미는 거라 여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성진의 생각은 달랐다.

    ‘과연 그렇게 순순할까.’

    반세기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이 나라 최고의 자리를 지켜 온 기업이다. 이제 막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회사를 상대로 좋은 조건을 선뜻 제안할 만큼 사심이 없을까.

    ‘하긴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일한 박 전무님도 괜찮은 쪽으로 생각하시는 눈치니…….’

    성진은 자신의 노파심이 지나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예. 박 전무님 말씀이 맞는 거 같네요. 저도 이번에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 회장님. 사실 우리 네오 테크비전 사 정도면 앞다퉈 손을 내밀만 합니다. 제가 지나친 자부심을 가지는 게 아닙니다. 회장님. 하하핫.”

    성진을 대신해 외부와 많이 접촉하는 박윤호 전무였다.

    그러다 보니 네오 테크비전과 플루토 투자그룹의 위상 변화를 누구보다 더 실감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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