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17화 (117/185)
  • <-- 117 회: 5권 - 포석 -->

    육정철 대통령은 공권력이 손댈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총동원해서 성진의 이력과 신변을 샅샅이 조사했다.

    중대한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해야 할 인물이니 당연한 절차이기도 하거니와 혹시라도 약점을 삼을만한 문제가 튀어나온다면 유리한 협상 카드로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가공할 성공을 거뒀다면 필시 다른 이들처럼 부끄러운 치부 한두 가지쯤은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깨끗해.’

    정말로 성진은 꼬투리 잡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라도 조작되었거나 감춰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샅샅이 조사했지만 티끌만 한 오점조차 나오질 않았다.

    ‘약점도 없고 똑똑하고 배짱도 두둑하다. 삼박자가 두루 갖춰졌으니……. 하핫.’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성진의 모습은 자신이 예전부터 꿈꾸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지도자로서, 아니 그 이전의 본질적인 남성상에 닿아 있었다. 성진의 모습은 육정철이 상정한 목표 그 이상이었다.

    자신은 저 나이 때 성진만큼 했던가? 자문해 본 육정철 대통령은 순간 자신이 없어졌다.

    ‘흐흣.’

    퍼뜩 정신이 든 육정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진을 완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저 완벽하고 젊은 패기에 드문드문 압도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다.’

    육정철 대통령은 다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곧추세웠다. 자신은 아직 성진에게 밀려선 안 되는 몸이었다.

    ‘난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성진을 노려보면서 육정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 내가 노리는 바를 성취하려면 반드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알고 있지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성진이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도 제가 그리려는 그림에 꼭 필요한 문제입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우리도 전력으로 부딪혀볼 생각이지만 한 회장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육정철 대통령은 ‘그 문제’를 성진이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이 문제는 그들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존심과 생존 중에서 뭐가 중요한지는 그들도 잘 알겠죠. 더군다나 말이 되는 자존심도 아닙니다. 순전히 자신들만의 억지죠. 곧 그걸 납득시키는 날이 올 겁니다.”

    성진은 예의 그렇듯 확고한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육정철 대통령은 그런 성진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 마주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어스름한 저녁 무렵 청와대를 빠져나온 성진의 차량이 도로로 접어들었다. 사방은 캄캄한 밤이 되고 순환 도로 위에는 조금씩 퇴근 차량이 밀려들었다.

    그 안에서 성진은 차분히 의자에 기대 앞일을 점검했다.

    ‘이번 일로 윤진만 변호사의 이미지를 상승세로 만든다면, 그리고 육정철 대통령의 정치적 조력을 얻는다면 판은 필승이다.’

    그리고 그 모든 구상의 방아쇠가 저 현해탄 건너 일본에 걸려 있었다.

    일본이 성진의 뜻대로 움직일 것인가?

    솔직히 말해서 방금 전 육정철 대통령이 뭔가 확실히 준비된 카드를 요구했다면 다소 민망했을 것이다.

    성진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준비된 게 없긴 하지.’

    그러나 언제는 준비가 되어서 상황을 끌어왔던가? 언젠가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되고, 탁월한 한 수가 마련된 상황에서 접근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다.

    ‘난 신이 아니다.’

    때문에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회는 수두룩하게 마련되어 있다. 성진은 일희일비할 만큼 여유가 없지 않았다.

    든든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고, 계속 부딪힐 힘이 남아 있다.

    ‘이게 바로 내가 목표한 상황이지.’

    이제 또다시 커다란 난관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어느새 인공지능 팔찌가 운전대를 원격조종으로 잡은 성진의 차가 부드럽게 시가로 진입했다.

    네온사인이 즐비하게 뿌려지는 화려한 도심 야경 속 거대한 전광판에서 프라임타임 메인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그 안에 귀국하는 성진과 윤진만 변호사의 모습이 선명했다. 직후 아래에 흐르는 자막을 확인한 성진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한성진 회장, 윤진만 변호사 일행 우크라이나 협상 타결 후 귀국]

    자신이야 이미 필요 이상으로 유명해졌다지만 윤진만 변호사는 아직 인지도에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협상 이후 자신과 나란히 언급될 만큼 중요 인물로 격상된 형태로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좋았어!”

    물론 이렇게까지 다뤄지게 된 데에는 미리 보도 자료를 뿌리고 기자들과 교섭해놓은 성진의 노력이 있었다.

    성진은 내친김에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모조리 검색했다.

    언론에 어떻게 노출되었는지 확인한 성진은 그럭저럭 만족했다.

    “앞으로도 윤진만 변호사에 대해 조금씩 옹호 여론을 조성해줘.”

    성진의 명령에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이미 성진의 명령으로 조금씩 여론에 윤진만 변호사에 대한 우호반응을 조성 중이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국면전환이 이루어져야 했다.

    “좀 더 세밀하게 반응을 확인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줘. 조만간 일본에 다시 들어가게 되니까 그때까지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스터.

    이제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대중심리에 대한 접근 방안을 연구 축적해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진 못한다.

    사람의 심리는 저마다 다르고 타인이 유도한다 할지라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눈에 보이는 무언가다.

    답은 하나.

    “결국 현해탄을 건너야 확실해지겠지.”

    움직여야 한다. 성진의 목표를 위해서는 그들을 성진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제 각오했던 또 다른 승부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성진의 차량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 사라지는 모습이 고스란히 망원렌즈에 잡혔다.

    “타깃이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좋아. 교대조 보낼 테니 계속 주시하도록. 변동 상황은 바로 보고해.

    “예. 알겠습니다.”

    무전기로 보고를 끝낸 인물 옆에서 대형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인물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교대까지 얼마 남았지?”

    “30분 남았습니다. 이제 슬슬 오겠지.”

    “좋아. 이제야 한잠 자겠구만.”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던 남자가 쏟아지는 졸음이 괴로운지 하품을 해댔다.

    그 옆의 무전기를 든 채로 대기하던 인물이 다른 한 손으로 운전대를 만지작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비좁은 소형차 안.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차량 안에서 이 둘은 성진을 감시할 요량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교대조가 올 때가 되어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숨 돌리려던 찰나.

    -똑똑

    어느새 나타난 정장 차림의 몇몇 남성들이 차 주변을 둘러쌌다. 그들이 창문을 손등으로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당장 나와 봐!”

    살벌한 남자들의 기세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들 둘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차량에 급하게 시동을 걸려 했다. 그러자 노려보던 남자들이 어느새 꺼내 들었는지 손망치를 손에 쥐었다.

    뾰족한 손망치가 단 한방에 유리창을 부숴버리자 가루가 된 유리창이 떨어져 내렸다.

    “끄악!”

    공포에 질린 두 남자가 허둥대며 차 시동키에 손을 뻗었지만, 목덜미에 확 솟는 섬뜩한 쇠의 감촉이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 살려주십쇼.”

    권총을 들이댄 정장 차림의 포위자들은 손짓을 하며 두 남자를 내리게 했다.

    “뭐하는 놈들이냐?”

    “그, 그게 저희는…….”

    떠듬거리며 말을 더듬는 남자를 보면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은 카메라부터 챙겨 사진을 확인했다.

    “증거는 확보.”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두 남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을 지휘하던 책임자가 피식 웃었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어차피 취조 들어가면 싫어도 말해야 할 텐데 뭘.”

    혀를 차면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은 두 남성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

    *   *   *

    “우리 애들이 당한 모양입니다.”

    “젠장.”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감시가 눈에 띌 줄은 몰랐다.

    망원경 너머에서 반사되는 빛이 선명했던 수갑. 아마도 경찰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수사기관이 분명했다.

    “저렇게 멀리서 감시했는데도 알아차리다니…….”

    아무래도 더 이상의 감시는 너무 위험하다. 이미 잡힌 녀석들이야 대충 얼버무리면 되겠지만 더 이상 꼬리가 밟히는 건 상부에서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제기랄.”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곧 전화를 받은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이상이 생겼습니다. 일선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 애들이 체포됐습니다.”

    -체포?

    “공권력이 개입한 거 같습니다.”

    -뭐?

    공권력이라는 말에 상대방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빌어먹을. 철수해.

    나직이 전해진 명령에 선글라스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괜찮겠습니까? 철수해도…….”

    -멍청한 질문하지 말고 철수해. 내 직권으로 책임진다. 되도록 빨리 튀어. 그 친구들 내가 봤을 때 국정원이야.

    “예? 국정원이요?”

    -그래. 설마 설마 했는데 타깃을 경호 중인 친구들이 있는 게 틀림없어. 당장 튀어.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선글라스 남자는 부하들을 채근해 재빨리 철수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교신 내용은 성진의 집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   *   *

    -당장 튀어.

    -예. 알겠습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전파 교신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던 인물들이 체포된 상황 또한 마찬가지로 레이더에 들어왔다.

    -신원 미상 남자 두 명 체포했습니다.

    -가까운 거점으로 이송하고 잔류인원 계속 임무 충실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현재 상황 이전무.

    바로 성진을 경호 중인 국정원 직원들의 업무 보고였다.

    사실 성진으로서는 자신을 감시 중인 인물들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중요한 대상은 철저하게 암호를 사용하는지라 누가 배후에 있는지는 아직 접수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확실히 파악하고 있던 찰나였다.

    국정원이 자신의 경호를 위해 나서면서 그들을 체포한 것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이거 본의 아니게 세금을 축내게 생겼는데…….”

    성진으로서는 딱히 경호가 필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 경호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결국 한동안은 국정원의 경호팀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날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린 놈은 누굴까?”

    이런 일이 생기니 성진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뒤꼍에서 잔챙이들을 보내는 상황이니 성진도 참아주지만, 만약 자신에게 직접 시비를 건다면 기필코 보복을 가할 작정이었다.

    “뭐 일단은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니까…….”

    생각도 잠시 성진은 다시 인공지능 팔찌가 시야 가득 제공하는 업무 현황에 집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