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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12화 (11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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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청와대 건물을 나온 성진 앞에 장희원 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얘기는 잘되셨습니까?”

“예. 아주 좋았습니다.”

미소를 지은 성진은 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효자동을 빠져나가는 도로 위에서 성진은 이 자리를 만들기 전에 미리 준비했던 사항들을 생각했다.

적을 알아야 위태로움이 없는 법이었다.

자신의 기술이 가진 영향력을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분석해 본 결과 성진은 가뜩이나 지지도 하락에 시달리는 대통령이 이번 기회를 가벼이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렇게 빨리 대통령과 면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생각보다 더 확실하게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성진은 마음속으로 인공지능 팔찌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부쩍 사념 해석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근에 만난 장희원 부장은 전문적인 심리전 훈련을 거친 국정원 요원이니 그렇다 쳐도 대통령인 육정철은 일반인에 가까울 텐데도 내심을 완벽 파악하기가 일반인에 비해 쉽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심리적인 방어본능을 가진 인간의 경우에는 사념 또한 쉽게 형태를 해석하기 힘든 왜곡된 형태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성진은 사념 해석능력으로 쉽게 타인들의 마음을 간파해왔다.

하지만 정말로 마음의 비밀을 지키려는 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성진의 사념 해석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겠지. 대신 최근 육정철 대통령 지지도나 정부에 대한 여론, 각 정치 정당 반응 같은 걸 집중적으로 조사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이제부터 정치권을 제대로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성진이 구상하는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

*   *   *

“청와대라고?”

“예. 발각 위험 때문에 끝까지 추적은 못 했지만 효자동 방면으로 빠지는 걸 확인했답니다.”

“이런, 이런…….”

하재혁은 혀를 차면서 턱을 긁었다.

국내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강후그룹.

그 모든 것을 총괄하는 회장 총수실은 지금 긴장으로 가득했다.

비서실장의 보고를 전해 들은 하재혁은 요즘 들어 짙어져 가는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뭐가 이렇게 찝찝한가 했더니 기어이 일이 터졌구만.“

예의 주시하던 성진이 청와대와 접촉했다.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이라 할 대통령이 성진과 접촉했음이 분명했다.

‘젠장. 대통령이 벌써 이렇게 나서다니?’

너무 방심했다. 하재혁은 일이 고약하게 꼬였다는 생각에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의자에 몸을 뉘이면서 하재혁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생각했다.

‘정계와는 아무런 끈이 없는 걸로 알았는데.’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이 나라의 정치판은 함부로 외부 인사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돈과 관련된 곳일수록 그렇다.

주는 돈이랍시고 넙죽넙죽 받아먹을 정치가는 아무도 없다.

그 돈이 폭탄이 되어서 돌아올지 따지려면 오래 두고 돈 주는 사람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성진이라는 놈, 정계에 숨은 끈이 있었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확신할 수 있어?”

“철저히 조사했지만,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인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혀를 찬 하재혁은 손짓으로 비서실장을 내보냈다.

혼자 남은 집무실에서 전화기를 꺼내 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번호를 눌렀다.

“어르신? 접니다.”

-오! 하 회장.

비위를 거스르는 느물거리는 목소리.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늙은이는 하재혁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는 속으로 주의 깊게 말을 골랐다.

“어르신. 최근에 한 회장, 기와집이랑 통한 거 같습니다.”

-허허. 하 회장도 이제 아셨나?

그 말에 하재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르신. 알고 계셨습니까?”

-천천히 알려 주려고 했소. 기와집 소식이야 내가 모르겠나?

“아, 예…….”

하재혁은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이런 중대한 소식을 바로 안 알린 것은 큰 실례다.

하재혁이 대놓고 의심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만약 꼬리를 안 붙여놨다면 자신은 아직도 몰랐을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뻔뻔스럽게 자신을 대하는 노인을 생각하니 열이 치솟았다.

‘이 망할 늙은이가…….’

그 꼴을 생각하니 분기가 차오른다. 그럼에도 하재혁은 대기업의 총수답게 마음을 침착하게 억눌렀다.

“어르신. 좀 섭섭합니다.”

-어허. 섭섭이라니. 하 회장 나보다 한참 젊으면서 왜 그러시오? 때가 되면 다 알 일인데.

“지금 기와집에 선이 닿았다는데 빨리 알려주셨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언성이 살짝 올라간 하재혁이 성깔을 드러내자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 회장. 난 하 회장이 걸물인 줄 알았는데 아직 공부가 덜 되셨구만.

“뭐요?”

-기와집이 뭐 대수라고 흥분하는 거요?

“기와집이 무슨 대수라니……. 대통령 아닙니까! 가뜩이나 최근에는 저희하고 벌어져 있는 차에…….”

-글쎄 그 대통령이 뭐냔 말이오.

하재혁은 슬슬 짜증이 났다.

“농담 따먹기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하 회장. 대통령은 그냥 공무원이요. 임기 5년짜리 선출직 공무원. 그게 다요.

“허!”

노인의 말에 하재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그도 대통령이 엄격하게 제도화된 현대 민주주의 권력의 일부라는 걸 안다.

그러나 엄연히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통령이 가지는 권력은 막강하다.

가히 단일 정치권력의 정점이라 할 대통령을 그저 임기 5년짜리 선출직 공무원이라 격하시키다니 지나친 만용으로 들렸다.

“말 같지 않은 소리 그만합시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 회장. 나는 엄연한 사실을 말하는 거요. 겨우 5년짜리 공무원 때문에 그리 벌벌 떨 거 없소. 더군다나 육정철 대통령은 이제 임기 2년 남았소. 눈 한번 깜빡하면 조만간 퇴임식 준비한단 말이오.

노인의 오만하고 태연한 말투에 하재혁은 기가 질렸다.

‘도대체가…….’

노인은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분명히 대한민국 대통령을 딱 5년짜리 공무원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럼 대책이 있단 말입니까?”

-비바람은 알아서 물러갑니다. 이번 기와집 임자는 나한테 척을 뒀지만, 다음번에는 확실한 내 사람을 올릴 거요.

노인의 믿는 바는 결국 그것이었다.

다음 대선.

하재혁은 아릿한 두통이 밀려옴을 느꼈다.

“얘기가 틀립니다. 그때는 조만간 일 줄 알았는데요.”

-2년이면 빠른 거요.

“믿어도 됩니까?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아직 저한테 큰 믿음을 주진 못하셨습니다.”

-믿으시오. 하 회장은 날 믿는 수밖에 없소. 대신에, 조만간 놈한테 작은 선물 하나 보내지. 하 회장도 그 꼴이나 구경하시오. 허허.

“흠…….”

머리를 짚은 하재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굳게 닫은 눈두덩이 위로 두통이 밀려온다. 하재혁은 내뱉듯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죠.”

전화기를 끊은 그는 이를 갈며 되뇌었다.

“빌어먹을.”

그러나 지금 그는 노인에게 모든 걸 맡겨놓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사람들은 재벌이 모든 것을 해치울 수 있으리라 믿지만 결국 권력은 정치권력만 한 것이 없다.

핵심 요직의 사람들에게 선을 넣고 움직이게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공교롭게도 지금 대통령인 육정철은 인사개편 때 자신들의 선이 닿은 인사들을 핵심 요직에서 모두 끊어버렸다.

그것은 노인에게도 마찬가지인지라 현 대통령인 육정철은 노인과 자신 모두 공동의 적이었다.

“노인네가 쉽게 포기하진 않겠지.”

공이 자신을 떠났으니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

의자에 몸을 뉘인 채로 하재혁은 한숨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   *   *

언론에서 성진을 다루는 무게감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국제기구의 확실한 인증까지 받게 되자 일말의 의심을 보내던 사람들마저 성진의 신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회장님. 플루토 투자그룹의 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네오 테크비전 사로 인한 테마주 효과가 있는 거 같습니다.”

간부들은 플루토 투자그룹의 주가 상승이 마냥 기쁜 듯 보고를 해왔다.

벌써 며칠 사이에 플루토 투자그룹 전 계열사의 주식 상장사 모두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말 많고 의심이 많은 주식시장에서는 플루토 투자그룹과 네오 테크비전 사의 주인이 성진 한 사람이라는 점에 크게 주목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좀 그렇네요.”

성진은 회사 주가 상승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네오 테크비전 사와 플루토 투자그룹은 최고 경영자가 같을 뿐 엄연히 다른 회사였다.

네오 테크비전 사의 방사능 제거 기술이 뜬다고 해서 그 수혜가 플루토 투자그룹에 가지는 않는 법인데 사람들은 성진 한 사람만을 보고 그나마 주식이 상장된 플루토 투자그룹의 주식을 맹목적으로 사들이고 있었다.

“부담 가지실 거 없습니다. 어차피 주식판에서는 이 정도 이벤트가 필요하던 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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