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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장은 야망이 아주 풍부한 사람일 거 같은데. 지금 이런 자리에서도 그렇게 점잔 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대뜸 말을 던지고 성진을 내리까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만한 여유, 능숙하고 힘 있는 정치가의 미묘한 웃음을 대면하면서 성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거 봐라. 나보고 알아서 패를 꺼내 바쳐라?’
성진은 일전에 여러 기자 앞에서 긴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를 대면하는 이 자리에서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정치가란 존재는 본디 국민들과의 암묵적인 약속과 의무를 통해 힘을 얻는 존재다. 성진의 타깃이 되기만 한다면 그런 존재들이 감추고 싶어 하는 구린내 나는 비리를 얼마든지 밝혀낼 수 있다.
‘이 작자도 그리 깨끗한 사람은 아닌 듯한데.’
아직 사념 해석을 통해 육정철 대통령의 생각이 잘 잡히지 않았다.
성진은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극도의 경계심으로 무장한 상황, 심리적 훈련을 받은 상대방에게서는 가끔씩 사념 해석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았다.
유감스럽게도 육정철 대통령 또한 그랬다.
대신 다른 건 분명히 알았다.
최고 권력을 구가하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어떤 행실을 저질러 왔을지 사념을 통해 여실히 전해졌다.
성진은 최근 여러 번 사념 해석을 거치면서 상대방이 가지는 생각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가 어려운 상황에도 품성과 행태는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대통령은 결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신의 안위와 정치적 이익을 염두에 두는 느낌이 분명하게 잡혀 왔다.
‘어떻게 할까.’
성진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님. 그 말씀은 파트너가 되자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서로 적당히 이용해 보자는 소립니까?”
성진의 말에 육정철 대통령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봐라?’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더욱이 청와대는 자신의 홈그라운드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대통령인 자신에게 정면으로 튕기는 게 가당키나 한가?
“허.”
육정철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크핫. 자네 아주 물건이구만.”
육정철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양 껄껄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진은 피식 웃었다.
“대통령님. 왜 기가 막혀 하십니까? 죄송하지만 대통령님은 상대방의 역량에 대해 아직 파악을 못 하신 모양이군요.”
“뭐? 내가 역량을 파악 못 했다고?”
슬슬 성진의 도발이 시작되자 육정철 대통령의 여유만만하던 표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굳은 눈빛으로 성진을 노려보는 육정철 대통령을 마주 보면서 성진은 조금이나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와의 대면 장소에서 언성이 높아지는데도 기자들 앞에 처음 섰을 때보다는 마음의 동요가 크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을 받아 육체의 피드백을 조율했지만 성진은 지금 분명 달랐다.
‘후우.’
가벼운 심호흡 한 번으로 마음의 부담을 털어버리고 말을 시작했다.
“제가 전달해달라고 했을 겁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그리고 강압적으로 저를 구속하려 드신다면 방사능 기술 그까짓 거 외국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라구요.”
“허!”
육정철 대통령의 입에서 거친 육성이 터져 나왔다.
직설적이고 거친, 어찌 보면 무례한 성진의 말.
하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성진이 나랏돈을 받아 연구개발한 것도 아니니 방사능 제거 기술에 대한 권리를 나라에서 뭐라 간섭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대놓고 이 나라 대통령 앞에서 꺼낼 수 있는 배짱이 어떤 기업가에게 있단 말인가.
남들이 봤다면 어리석다고 비웃었을 테고 성급하다고 한탄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할 정도로 파격적인 성진의 도발에 육정철 대통령은 금세 표정을 가라앉히고 태연히 말했다.
“자네 날 무시하는데 이 나라 통수권자인 내가 만만해 보이나? 세무조사 한 방이면 자네 굉장히 골치 아파질 거야. 잘하면 자네를 한 방에 거지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어. 게다가 듣자하니…….”
말끝을 흐린 그는 싸늘하게 입꼬리를 내밀면서 말했다.
“자네 회사 모기업인 플루토 증권이 창업 과정에서 석연찮은 자금 증가가 있었다더군.”
성진도 그 말에는 살짝 부담을 느꼈다.
박천중 회장이 창업하면서 불법적인 자금을 세탁한 흔적을 결국 발견한 모양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성진을 다루기 위해 약점이 될 만한 부분을 샅샅이 훑어 본 모양이었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다.’
성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님. 여전히 저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셨군요. 기술은 온전히 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분을 인계받은 후임 사장에 불과하구요. 회사가 망해서 알거지가 되어도 핵심기술만 가지고 해외로 넘어가면 됩니다.”
여전히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성진은 해외에 기술을 팔아넘긴다는 공수표를 흔들었다.
육정철 대통령은 그런 성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정말 이놈은 진심인가.’
성진은 쉽사리 외국에 기술을 팔아넘기겠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성진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얼마든지 나라를 등질 수 있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영향력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대목에서 정치가는 때로 불확실한 육감을 믿는다.
쉽지 않은 사람을 직접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여느 애송이가 자신에게 이런 행동을 보였다면 단박에 내쫓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진은 자신이 가진 역량과 입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도리어 자신에게 반격했다.
‘으흠…….’
성진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육정철 대통령의 눈빛을 받아내면서 성진은 마음이 도리어 편했다.
이제 이 면담의 주도권은 슬슬 자신에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대통령님.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통령님과 진정한 파트너쉽을 맺고 싶은 마음에 이런 말을 꺼내게 된 겁니다.”
“진정한 파트너쉽?”
“예. 대통령님께서는 처음부터 저를 무력한 애송이 취급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의 내심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성진의 말에 육정철 대통령은 일부러 불쾌감을 표시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성진을 좋든 싫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좋아. 인정하겠소.”
육정철 대통령은 자신이 부적절했다는 걸 인정했다.
“내가 한 회장을 얕봤구만.”
“저로서는 되도록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저 자신에게도, 그리고 대통령님께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이 치러졌으면 합니다.”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
대통령의 목소리가 확연히 가라앉았다. 귀를 기울인다는 방증이었다.
성진은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기술이 가진 값어치는 그저 돈으로만 끝낼 일이 아니지요. 대통령님께서는 이미 계산을 끝내신 거 같은데 아닙니까?”
“계산? 그래.”
육정철 대통령은 빙그레 웃었다.
“맞네. 이미 참모들과 계산을 끝내뒀지. 자네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 뽑아 먹을 것인가. 국가적 역량을 동원해서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 보자고 말이야. 그럼 이제는 내가 솔직하게 밝힐 차례군.”
성진은 한층 더 진지한 내색을 하며 경청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사실 우리는 자네 기업인 네오 테크비전 사의 이익보다는 우리 국익을 위한 방향으로 그 기술을 판매했으면 하네.”
“그런가요? 구체적인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진의 반응이 부정적일 거라 예상한 육정철 대통령은 의외로 평온한 성진을 보고 살짝 침을 삼켰다.
“간단하네. 어차피 자네 기술을 판매한다면 각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판매를 해야 해. 이런 경우에는 국가의 이름으로 정부 차원에서 장사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이야. 하지만 방사능 제거 기술을 온전히 돈만으로 지불할 수 있는 국가 정부가 몇이나 되겠나? 미국? 중국? 러시아? 지금 당장 방사능으로 난리를 겪고 있는 일본만 해도 돈으로 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라고 하면 아마 난색을 표할 걸세. 그렇다고 헐값에 넘겨서도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