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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109화 (10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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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한 날짜가 되자 성진은 오후 4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업무를 보는 와중에도 조금씩 시간 가는데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내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자 인터폰에서 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장희원 부장님이십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성진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장희원 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반갑습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장 부장님.”

    “가시죠. 모시겠습니다.”

    “예.”

    장희원을 따라 방을 나선 성진은 곧 회사 정문 앞에 대기된 석 대의 차량으로 안내됐다.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여럿이 모여 곧 뒤쪽 차량 후문을 열었다.

    성진이 뒷좌석에 올라타자 곧 차량이 출발했다.

    바로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장희원 부장이 뒤를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성진의 여전한 자신만만한 태도에 장희원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 장희원 부장이 기사를 돌아보며 출발을 지시하자 곧 성진이 탄 차를 가운데에 두고 차량 세 대가 순서대로 출발했다.

    *   *   *

    성진은 차량이 이동하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동 위치는 GPS와 글로나스 좌표 정보를 수신 중인 인공지능 팔찌가 모두 기록 중이었다.

    ‘적의나 긴장 상태가 보이지는 않지?’

    혹시라도 성진에게 해코지를 할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신체 반응에서 드러나기 마련.

    인공지능 팔찌는 바로 보고했다.

    -현재 주변 인물들 모두 심리적인 적의나 긴장 상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차가 곧장 달려 나가자 곧 행선지가 명확해졌다.

    성진이 짐작했던 정부 청사가 위치한 세종로 방향을 지나쳐서 염두에 뒀던 행선지 중 한 곳으로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성진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자 장희원 부장이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이쯤 왔으면 행선지가 어딘지 짐작이 가십니까?”

    “음. 짐작은 가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인 것 같습니까?”

    “효자동 맞습니까?”

    장희원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렇군요.”

    일말의 미동조차 없는 성진의 반응에 장희원 부장은 혀를 내둘렀다.

    “예상하셨나 보군요.”

    “글쎄요. 굳이 누구라고 해도 무슨 상관일까 싶었습니다. 대통령이라면 그만큼 기대를 더 걸어도 되겠지요?”

    “하하핫. 이거 정말 한 회장님 배포는 짐작도 할 수가 없군요.”

    장희원은 성진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 어린 나이에 대규모 기업의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이 순간에도 당당하다.

    사실 성진이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당일에 알게 된다면 어느 정도는 동요할 거라 생각했다.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대놓고 요구할 때야 젊은이의 치기로 생각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닥쳤는데도 저렇게 태연하다는 건 보통내기가 아니다.

    남들은 몰라도 심리전 훈련을 받은 자신들은 성진이 감정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저도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거든요.”

    싱긋 웃는 성진을 보면서 장희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청와대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차량이 드문 도로로 빠지자 곧 차량은 속도를 더욱 높였다.

    *   *   *

    청와대에는 금방 도착했지만 성진은 응접실에서 한참을 더 앉아 있어야 했다.

    테이블에 올려진 다과를 만지작거리면서 가만히 있었지만,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았다.

    ‘지루한데…….’

    슬슬 하품이 나오려 할 즈음 응접실 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단정한 검은 정장 차림의 여직원이 서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성진은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성진은 여직원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붉은색 주단이 깔린 복도를 따라 한참 걸으니 경호원들 서넛이 진을 치고 지키고 있는 문 앞에 다다랐다.

    ‘여긴가…….’

    곧 대기 중인 경호원들이 성진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양측에서 경호원들이 문을 열자 곧 널찍한 집무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안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중년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오. 한성진 회장.”

    중후하고 나직한 목소리.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자신감에 차 있는 이 나라의 현재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있는 남자.

    그가 바로 현재 이 나라의 대통령인 육정철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성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지나치게 비굴한 태도를 싫어한다던가.’

    성진은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면서 육정철의 거동을 살폈다.

    행선지가 청와대라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인공지능 팔찌를 이용해서 육정철의 사상이나 정치 행보,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공통점에서 오는 대인 관계, 심리 등을 대략 분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진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는 육정철의 마음을 크게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졌다.

    “미안합니다. 갑작스럽게 긴급회의가 잡혀서 바로 만나질 못했어요.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성진은 육정철 대통령의 사과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최고 권위에 오른 남자가 상대방에게 공손한 태도를 바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탈권위, 소탈함을 강조하는 시대라 한들 기업가와의 일대일 접견에서 막상 정말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대통령은 지구에 없을 것이다.

    육정철 대통령 역시 크게 다른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성진을 보며 가볍게 미소 짓고는 눈짓으로 문을 닫게 했다.

    곧바로 문이 닫히자 육정철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피차 바쁘니까 본론부터 갈까요?”

    “예. 대통령님.”

    “툭 까놓고 말하겠소. 한 회장의 기술 수출.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리다.”

    성진이 끌어내리라 다짐했던 대답.

    그러나 이렇게 손쉽게 한방에 나올 줄은 몰랐던 말이었다.

    성진은 육정철 대통령의 내심을 살피면서 사념 해석을 시작했다.

    동시에 인공지능 팔찌에게 모든 심신의 피드백을 접수하도록 지시했다.

    -대상의 신체 대사를 스캔하겠습니다.

    -혈류량 안정, 호흡량 안정. 감정의 변화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성진이 사념 해석을 시작했다.

    그러자 육정철 대통령의 내심이 어느 정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날 완전히 애송이 취급하는 건가.’

    육정철 대통령은 성진의 어린 나이를 파악하고 딱 전형적인 그 나이 대 청년 수준으로 생각했다.

    성진의 집안이 평범한 것도, 성장 과정이 평범했던 것도 모두 알았다.

    갑자기 박천중 회장 밑에서 초고속으로 성장한 운 좋은 애송이.

    그것이 육정철 대통령이 내리는 성진에 대한 기본적인 인상이었다.

    ‘그래도 이 영감. 방심은 하지 않는다.’

    성진을 깔보면서도 편하게 마음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과연 이게 수십 년 세월을 정계에서 버티면서 정점까지 치고 올라온 인물의 관록일까 싶었다.

    육정철 대통령은 경계와 의심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었다.

    “방사능 기술에 대해 기대가 큽니다. 정부 차원에서 협조할 테니 확고한 관계를 형성했으면 좋겠군요.”

    “예. 저도 그러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육정철 대통령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뉘앙스인지라 성진은 일부러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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