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회: 5권 - UN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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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실 텐데 일단 숙소에서 여독을 푸시지요.”
“아닙니다. 혁신적인 방사능 제거기술이 등장했다는 소식에 항시 눈으로 목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핵물리학자들이라면 누구나 고대할 일이죠.”
“그러시다면 회사로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성진이 좌우로 경호원들에게 눈짓하자 알아들은 경호원들이 조금씩 기자들을 좌우로 밀어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취재 욕심에 쉬이 비켜줄 기색이 아니었다.
보다 못한 성진이 단호하게 일갈했다.
“여기 계신 과학자분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반나절 이상을 날아오신 분들입니다. 여기서는 언론인의 품위를 좀 보여주십시오.”
또렷하고 명징한 음성이 좌중들의 뇌리 속에 똑똑히 새겨졌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기자들도 비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더 버틴다면 정말로 언론인으로서의 품위를 저버린 삼류 기자가 되어버릴 판이었다.
결국 아쉬움을 접고 조금씩 물러나는 기자들을 보면서 슈르트 피셔 단장은 자연스럽게 상황을 리드하는 성진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호오. 타고난 사업가 체질인가.’
반백 년 이상을 살면서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봤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열중하면 그에 맞는 성질을 얻기 마련이지만 어린 나이부터 그 성질을 지니는 일은 드물다.
만약 어린 나이부터 특출하다면 결국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셈이었다.
“한성진 회장은 아직 굉장히 젊은 나이로 아는데 어떻게 큰 회사의 수장이 되었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실상 성진이 이렇게 빨리 출세한 데에는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은 물론이고 박천중 회장과의 복잡한 인연도 있었다. 그런 사정을 솔직하게 밝힐 필요는 없기에 적당히 교과서적인 대답을 했다.
하지만 피셔 단장의 뜻은 다른 의도였던 모양이었다.
“부모님께서 하시던 사업이나 재산을 물려받은 건 아닌가요?”
“아. 상속을 받았느냐는 말씀이시군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물론 근면하시고 매우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많은 재산을 물려주지는 못하셨습니다.”
“상속을 받은 게 아니라면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했다는 말인가요?”
“예. 그런 셈입니다.”
“하!”
피셔 단장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로 이 정도 성공을 거뒀다니 엄청난 실력이군요. 앞으로 미래가 정말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성진은 예의 정중한 태도로 피셔 단장에게 대답했다.
“그럼 일단 가실까요?”
“예. 그럽시다.”
앞서 길을 안내하는 성진을 따라 걸으면서 피셔 단장은 복잡한 눈빛이었다.
‘음. 최소한 사기꾼은 아니어야 할 텐데.’
너무 탁월한 기술에 막강한 신기술인지라 피셔 단장은 사기일 가능성 또한 미리 각오해뒀다.
설마 UN 과학자단을 초대까지 해놓고 사기를 칠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과학기술을 빙자한 사기는 그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기 때문에 일류 과학자들이라 한들 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가 보면 알게 되겠지.’
피셔 단장은 다른 과학자들을 인솔하면서도 성진의 뒷모습을 매서운 눈으로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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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테크비전 사의 연구 단지는 철두철미한 보안 검문을 통과한 후에야 이를 수 있었다.
여러 명의 보안 요원들이 갖가지 장비들로 출입객을 철저히 검문했지만 유엔 과학자단들만은 무사통과였다.
성진이 미리 내려놓은 지시사항 때문이었다.
“보안 시스템이 아주 철저하군요.”
“예.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개발한 기술이니까요.”
성진은 일부러 한껏 자부심이 드러나도록 말했다.
미리 막대한 자금을 들였다고 밑밥을 들여놔야 싼 값에 후려칠 생각을 못 하는 법.
어차피 성진의 기술은 세계를 상대로 팔아야 하는 법이다.
당장은 기술을 확인하러 온 과학자단이었지만 이들이 보고 들은 결과가 나중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랐다.
“이만한 설비 속에서 보호되는 기술이니 과연 어떨지 기대가 큽니다.”
단장과 과학자들 모두 성진에게 기대감 반, 의심 반의 눈빛을 보냈다.
성진은 그들이 아직 의심을 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들은 본래 의심이 많은 법.
더욱이 성진의 기술은 너무나 획기적이라 차라리 초월적이다 싶을 정도였다.
사기라고 의심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의심을 풀 방법은 하나뿐이지.’
성진은 즉시 그들을 연구실로 안내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기술진들이 점검 중이던 기기에서 차분히 물러났다.
복잡한 전선들이 가지런히 꽂힌 은색의 커다란 구체.
복잡한 전자 회로들이 외부에 노출된 기기를 보면서 피셔 단장이 물었다.
“이게 그 소문의 안티 라디오입니까?”
“예. 공개 행사장에서 공개했던 것과는 외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래 구동시간과 출력량에 한계가 있는데 현재는 더욱더 대용량의 고출력 모델을 개발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이 제품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도 되겠습니까?”
“예. 자세한 사용법과 진행 사항은 저희 기술진들이 적극 협력할 겁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한 피셔 단장은 즉시 인솔해 온 과학자단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성진이 미리 준비한 고급 승용차들로 나눠 탄 그들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에 묵을 예정이었다.
“박 비서님. 저분들이 묵을 동안 잡음이 생기지 않게 상황을 항시 주의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혜영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성진은 그녀에게 이번 일에서 많은 부분을 위임해놓은 상태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엔 원자력 감시기구의 과학자들을 상대로 대접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불편이 없도록 각자 방을 따로 잡았습니다. 알레르기나 못 먹는 음식이 없는 지도 미리 사전에 연락을 받아서 체크해뒀습니다.”
“좋아요. 철저해서 좋습니다. 역시 저보다는 박 비서님 같은 여성분이 섬세하게 잘 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요. 회장님께서 믿고 맡겨주셨는데 완벽하게 해야죠.”
혜영에게는 성진의 믿음을 얻어서 뭔가를 도맡아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혜영씨만 믿어요?”
성진이 씨익 웃으면서 혜영을 격려하며 돌아서자 혜영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어휴. 여자 마음 자꾸 흔들지 마라니까, 참.’
하지만 이미 마음이 흔들리다 못해 온통 빼앗겨버린 지 오래임을 혜영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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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단은 시차 적응과 준비 등의 문제로 며칠 동안 테스트를 시작하지 않았다.
체류 비용을 부담하기로 한 성진 입장에서는 비용이 증가하는 부분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유엔 과학자단의 인증이 시작되면 성진의 기술은 세계만방에 공인을 받게 된다.
그런 이익이 있는데 고작 며칠간의 체류 비용을 가지고 쓸데없이 왈가왈부해서 감정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더더군다나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성진으로서는 최대한 좋게 상황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나흘을 그렇게 흘려보낸 뒤 드디어 피셔 단장은 과학자단을 이끌고 네오 테크비전 실험실을 찾았다.
“그럼, 본격적인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피셔 단장의 선언과 함께 과학자단이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제반 준비가 다 갖춰진 상태인지라 실험은 일사천리였다.
테스트 실행에 여념이 없는 과학자단의 모습을 직원 몇몇이 특별히 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 카메라에 담긴 화면은 즉시 회사 본 회의실과 기자회견장으로 송출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