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02화 (102/185)
  • <-- 102 회: 4권 - 013. 폭풍 전야 & 014. 어둠의 손길 -->

    성진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특히 정치권이나 재계의 관련 인물들이 성화를 부려댔다.

    허나 성진은 그런 접촉을 모두 거부한 채 유유자적 지낼 뿐이었다.

    “회장님. 정재계 실력자들이 저렇게 성화를 부리는데 딱 잘라 끊으면 좀 안 좋을 거 같습니다.”

    박윤호는 성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간언을 올렸다.

    기실 그만큼 힘 있는 사람들의 생리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기업 정보부서에서 일했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알아요. 저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한테는 윤진만 변호사님 일도 있지 않습니까?”

    “아!”

    박윤호와 전진수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이 스스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윤진만은 현재 인권 변호사 및 방송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재야에서 명성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제가 그쪽 인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윤 변호사님한테도 힘을 끌어다 드릴 수 있겠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윤 변호사님에 대한 지지도가 꾸준히 상승 중이더군요. 아마 이번 대선이 끝나고 다음 시기가 되면 유력한 대선 후보로 성장하고도 남을 겁니다.”

    실제로 윤진만 변호사의 지지율은 꾸준하게 상승세였다.

    여러 정당에서도 러브콜을 보내왔지만, 윤진만 본인은 아직도 정치활동 대신 변호사 활동만을 고집했다.

    그 뒤에는 성진의 복안이 깔려 있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우리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될 겁니다. 재력은 물론이고 전 국민적인 신망을 얻는 기업으로 거듭날 겁니다. 이번 방사능제거기술뿐만 아니라 앞으로 혁신적인 사업 아이템을 잔뜩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문제는 이번 일을 통해서 저는 윤진만 변호사님을 성공적으로 정계에 데뷔시키고 싶습니다.”

    “예? 아니 어떻게 말입니까.”

    “글쎄요. 그건 아직 말씀드리기에는 일러서 말입니다.”

    성진이 말을 흐리자 박윤호와 전진수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또 비밀이신 겁니까?”

    “견마지로를 다하는 저희한테는 말씀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허헛. 이거 두 분 성화가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성진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이야기를 풀었다.

    “지금 방사능오염 문제로 골치를 앓는 국가가 우리나라 옆에 떡하니 있지 않습니까?”

    “일본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바로 그 일본에서 윤진만 변호사님을 더 엄청난 정계의 스타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은 성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후 이어지는 성진의 말에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 * *

    국내 굴지의 기업인 강후그룹.

    강후그룹이 몸살을 앓으면 국내 경기마저 곤두박질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수많은 종업원과 하도급 업체들을 거느린 전형적인 대재벌이었다.

    대가집 권세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처럼, 돈의 힘이면 세상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

    재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후그룹의 총수 하재혁은 노호성을 지르면서 책상을 내려쳤다.

    “도대체가!”

    그의 노기가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도대체가 아직도 구실하나 잡질 못했어? 자네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분노로 씩씩대면서도 싸늘한 눈길로 방안을 훑어본다.

    그 눈빛이 스치고 간 직원들은 절로 몸을 사렸다.

    무거운 중압감이 집무실 전체를 내리누르는 가운데 중년의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회장님. 한성진 회장 본인이 접촉을 극구 거부하는데다가 법적으로도 문제될 소지마저 없는 상황이라, 법조계 인맥으로도 엮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재혁의 날카로운 눈길에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저희 힘만으로는 한성진 회장과 접점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뭐야!”

    하재혁은 눈을 부라리면서 일어나 소리쳤다.

    “방사능제거기술이 얼마나 커다란 금덩이인지 모르겠나? 지금 가까운 일본이 저렇게 되고 세계에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고 있어. 이런 마당에 저 기술! 우리가 확보하지 못하면 이건 앉아서 금싸라기를 태우는 짓이야. 알아?”

    “송구합니다. 회장님.”

    중년 남자의 거듭된 사과에 하재혁은 가까스로 노기를 풀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월급 받아먹었으면 토해내라고!”

    화를 쏟아낸 하재혁은 귀찮다는 듯 한손을 휘휘 저었다.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방을 떠나는데 중년 남자가 머뭇거리며 방에 남았다.

    “응? 할 말이 있나?”

    “회장님. 사실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전해드리려고 남았습니다.”

    “음?”

    “회장님. ‘어르신’께서 한성진 회장 일로 회장님과 만나고자 하십니다.”

    “뭐? 어르신?”

    하재혁은 자신 앞에서 어르신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 몇이나 있나 생각해봤다.

    이 나라에서 자신에게 어르신 소리를 들을 만한 인물이 있던가.

    “호오. 그러면 혹…….”

    얼굴색이 밝아지는 하재혁을 보면서 중년 남자가 입술 끝을 올렸다.

    “예. 바로 그분께서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 거 같습니다.”

    “좋아. 바로 약속 잡아.”

    방사능제거기술이 매스컴에 대서특필 될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문득 관심이 가서 회사 기획실과 산하 경제연구소에 보고서를 지시하자 그 예상되는 수입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강후그룹의 주요 사업 매출규모 몇 개를 가뿐히 합쳐놓은 수익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독점성이었다.

    독점적인 기술이기에 따로 경쟁할 만한 대상도 없고, 후발주자들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었다.

    ‘어린놈이 주제도 모르고 큰 걸 혼자 먹으려들면 크게 체하는 법이지.’

    하재혁은 책상을 탕탕 두들기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왠지 엉뚱한 데서 실마리가 생길 듯한 예감이었다.

    * * *

    “흐압!”

    날카로운 기합성과 동시에 잔혹한 손속이 허공을 갈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교환되는 연수 공격.

    급소를 노리는 살벌한 공격을 연거푸 막아낸 성진은 섬전 같은 손놀림으로 정권을 찔러 넣었다.

    “큽!”

    그 공격을 복부에 고스란히 맞은 김형석은 짧은 신음을 흘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으…… 굉장하군요, 이거.”

    “엄살 피우기는. 견딜 만한 거 다 아니까 일어나지 그래?”

    성진은 실소를 흘리면서 김형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력이 약간 실린 발경이었지만 김형석이라면 이 정도로 사지가 풀릴 정도는 아니다.

    성진은 그와 간단히 대련을 하면서 그가 가진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역시나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면서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솔직히 놀랍습니다. 분명히 가벼운 동작인데 무게가 실리는 거 같지도 않은데 이런 파괴력이라니. 당할 때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신기한가?”

    “당연히 신기합니다. 공화국에서 거의 모든 살인 기술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내려와서 이런 기예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김형석은 성진에게 제법 고분고분하게 행동했다.

    성진이 그에게 해준 답례도 있었지만 악연으로 만난 것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감정이 남아 있을 법도 했다.

    허나 김형석은 최근 성진에 대해서 간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에게 보여준 성진의 능력이 너무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신분 제공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그거 말인가? 별 거 아니야.”

    성진은 가벼운 투로 말했지만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인위적인 신분을 손에 넣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김형석은 남파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배웠기에, 성진이 자신에게 준 새로운 신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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