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01화 (101/185)

<-- 101 회: 4권 - 012. 협력 -->

성진은 집무실로 남자를 데려갔다.

중년에 접어드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는 중간키에 평범한 용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흔한 인상이었다.

첩보원 하면 007이나 액션 배우 같은 인상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아무런 특징이 없는 남자의 모습은 너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마치 금방 잊어버릴 듯한…….’

성진은 그런 점이 오히려 정보 요원으로서는 장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성진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정보 요원은 씨익 웃더니 말했다.

“제가 좀 평범하게 생겼죠?”

“음. 글쎄요. 국정원 요원하면 생각하던 인상하고는 좀 틀리네요.”

“뭐, 영화와 현실이 같겠습니까. 사실 저희 쪽 사람들은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바쁘실 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특허 등록을 포기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 확실한 보안 대책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 쪽에서도 성진의 기술을 예의 주시한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정보기관에서 직접 접촉해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다 성진이 특허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자마자 바로 접촉해 오는 것은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발표회장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 어느 누구도 저희 네오 테크비전 사의 기술을 넘볼 수는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밀하기 때문이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희 국정원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실험 결과가 나온 순간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성진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허나 정보기관이 인지할 것이라는 점 정도는 미리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저희 국정원이 그럴 정도인데, 유럽이나 일본, 미국 등의 정보기관에서는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더욱이 해외 다국적기업에서도 곧바로 투자 제안이 줄을 이었다고 하더군요.”

“음.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늘 한성진 회장님과 네오 테크비전 사의 동향에 대해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방사능제거기술, 그 ‘안티 라디오’라는 기술이 엄청난 국익과 직결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요원의 말에 성진은 표정을 굳혔다.

“혹시 국가가 저희 회사에 간섭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아! 그럴 리가요. 오해이십니다.”

요원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사실 저희 국정원에서는 기업의 고부가가치 기술과 정보들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는 한성진 회장님께서 해당 기술을 원활히 보호하실 수 있도록 지원을 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접촉해 온 이유는 뭐죠?”

“바로 특허를 포기한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죠.”

“특허가 아니더라도 기술을 보호할 방법은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고부가가치 원천 기술은 아예 특허 등록을 하지 않고 독점적으로 기술을 관리하는 것으로 압니다.”

“예.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기업의 정보와 기밀을 관리하는 부서의 베테랑 요원이기에 성진이 하는 말을 잘 알았다.

특허에 등록되는 고부가가치 기술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특허 등록은 출원 후 20년 정도가 지나면 독점권을 상실한다.

하지만 과학 선진국들은 많은 원천 기술을 아예 특허 등록하지 않은 채 반백 년 이상 독점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엄청난 보안 유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국가적인 지원은 절대적으로 필수라고 할 수 있죠.”

국가의 지원을 특히 강조하는 요원의 말에 성진은 얘기가 복잡해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사 스캔을 가동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요원의 신체 대사 반응을 포착했다.

성진과 대화하는 그의 신체 반응은 놀랍게도 별다른 이상 반응을 찾을 수 없었다.

‘역시 노련한 첩보원인 건가.’

중년의 나이임을 감안하더라도, 기자회견장에 찾아와 내용을 듣고 곧바로 성진에게 접촉해올 것을 스스로 결정하려면 어느 정도 권한이 있다는 소리였다.

때문인지 만만한 인물은 아닌 모양이었다.

“음. 국가의 지원이라…….”

성진은 말을 끌면서 이번에는 사념 수신을 작동시켰다.

온화한 미소로 일관하는 요원의 내심을 파악하려면 사념 해석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요원의 심리 상태를 담은 사념이 성진의 뇌리 속에 들려오자 대화는 한결 쉬워졌다.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기관은 막대한 국익을 창출하는 첨단 기술 보호가 당연한 업무니까요. 거기에 대해서 네오 테크비전 사나 한성진 회장님께 부담을 끼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요원의 심중을 계속 살폈다.

‘흠. 다른 생각은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성진이 신경 쓰는 부분은 정보 보호를 목적으로 성진의 기술에 대해 간섭하는 점이다.

혹시 국가가 성진의 기술을 활용하는 일을 간섭하기 시작한다면 지극히 불쾌한 상황이 벌어진다.

눈앞의 정보 요원에게는 다행히도 그러한 의중은 읽혀지지 않았다.

“좋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요한 제조 공정이나 핵심 기술을 관리하는 부서는 따로 있는데, 이건 국정원 측에도 알릴 수 없습니다.”

“흠. 이건 제가 결정할 만한 사안이 아니네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요원에게서 순간이나마 난처한 빛이 흘러나왔다.

성진이 생각보다 비협조적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저희로서는 방사능제거기술의 가치가 높은 만큼 할 수 있는 감시는 지속적으로 할 겁니다.”

“저희는 그저 좋습니다. 그걸 저희가 막을 이유도 없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죠. 다만 국정원 측에 기밀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성진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네오 테크비전 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능력껏 알아봐야지, 성진 스스로 제공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이었다.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던 직원에게서 순간이나마 당혹스런 기색이 흘러나왔다가 바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성진이 생각보다 비협조적이라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보안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국정원에서 나서준다는 말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다만 회사 입장상 어쩔 수 없는 부분, 이해해주십시오.”

성진은 혹시라도 정보기관과 감정적으로 척을 지을까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연히 입장상 어려움이 있으시겠지요. 차후 보안 업무에 있어서도 원만하게 조율되었으면 합니다.”

인사를 나눈 요원이 나가고 성진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국정원이라…….”

정보기관이 나섰다는 것은 결국 정부에도 보고가 올라갔으리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말하자면 정부에서도 성진의 방사능제거기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거 이용할 수 있겠는데?”

손가락을 튕긴 성진은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 * *

과학기술에 대한 이 나라의 인식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리고 방사능제거기술은 분명 돈이 되는 기술이었다.

“방사능제거기술은 분명히 크게 성공할 겁니다.”

성진의 맞은편에 앉은 50대의 중년인.

그는 대한민국의 수출을 지원하는 한국무역공사의 간부였다.

성진은 국정원 요원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자신의 기술 수출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다른 공식적인 정부 부서 대신, 그나마 공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무역공사의 간부가 직접 성진과 대면했다.

“어느 정도로 성공하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진의 물음에 중년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이 기술의 등장으로 일단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위상 자체가 변할 수가 있으니까요.”

“과학기술의 위상이요?”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세계적 수준의 최고 원천기술이라고 할 만한 기술을 별로 보유하지 못했으니까요.”

“음. 우리나라는 반도체나 조선업 같은 데서 세계 최고라고 하지 않나요?”

“후후. 그렇지요. 우리나라가 최고인 분야입니다. 아직까지는요.”

무역공사의 간부, 50대의 중년 남성인 그는 스스로를 장희원이라고 소개했다.

장희원은 성진의 해외 수출 지원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파견한 얼굴마담인 셈이었다.

등 떠밀려 왔으니 싫어할 법도 한데, 오히려 성진의 방사능제거기술에 대한 감탄을 연신 늘어놓는 와중이었다.

“‘아직까지는’이라면, 차후에는 변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현재 반도체, 조선업 이런 분야를 중국 같은 후발 주자들이 맹렬하게 따라붙고 있으니까요. 특히 중국 같은 경우에는 정말 그 힘이 무섭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미국 유학 1세대들이 중국으로 되돌아가서 힘을 보태고 있어요. 중국 반도체 회사들의 성장세는 엄청난 수준입니다.”

열변을 토하는 장희원은 은근슬쩍 성진에게 칭찬을 덧붙이는 모양새였다.

성진도 그 눈치를 살폈지만 짐짓 시치미를 뎄다.

“그래도 현재는 우리나라가 최고 아닙니까?”

“최고지요. 지금은 그렇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최고라고 장담 가능할까요? 지금 저렇게 후발주자가 맹렬히 따라붙으면 그 자체로 부담입니다. 경쟁이 생기죠. 그러면 수입이 감소합니다. 이익률이 떨어지니까 여차하면 인건비 깎아먹으며 덤빌 수 있는 후발 국가들하고 쉽지 않은 경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제 기술을 높이 사시는 거군요. 경쟁 자체가 안 되니까요?”

“그렇습니다.”

장희원은 성진의 팔을 붙들고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어어…….’

성진은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떼어낼까 말까 망설여질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기술 강국이 되려면 남들이 결코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의 원천 기술을 보유해야만 합니다. 지금 일본이 가전업체가 망해간다 어쩐다 해도 아직도 저렇게 경제대국인 걸 보십시오. 반도체만 해도 생산 공정설비를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옵니다. 의존률이 90%나 됩니다.”

한창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장희원은 성진을 보며 더더욱 눈을 빛냈다.

“진짜 고부가가치 기술이라는 건 바로 그런 겁니다. 애초에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술. 경쟁 자체가 안 되는 거죠. 후발주자들이 감히 뛰어들 수도 없는 그런 기술. 그게 바로 한성진 회장님이 보유하신 방사능제거기술인 겁니다!”

고함에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던 장희원은 물을 벌컥 들이키더니 성진에게 다시 열정적으로 말했다.

“저는 이번 일에 제 무역맨 인생의 사활을 걸어볼까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의 수출입을 도왔습니다만 이번 일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이 없습니다.”

“아하핫.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단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구요…….”

성진은 장희원의 어깨를 잡아 자리에 앉히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장희원…… 씨께서는 부장 직함을 맡으셨다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만년 부장이죠. 허허허.”

껄껄 웃어대는 장희원 부장에게 성진은 악수부터 내밀었다.

“그럼 장 부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열의와 열정을 품으신 분인 거 같아서 좋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희원 부장은 깍듯하게 성진과 악수를 나눴다.

실실 웃는 사람을 앞에 두고 마주 웃어 보인 성진이었지만 속으로는 왠지 모를 난감함을 느꼈다.

‘왠지 좀…… 많이 특이한 사람인데.’

해외 수출에 정부 지원을 끌어낼 요량으로 받아둔 사람이다.

두고두고 협조를 얻어내고 부려먹을 구석이 많은 사람인지라 신경을 써야 했다.

성진은 장희원 부장의 독특한 개성에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