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100화 (100/185)
  • <-- 100 회: 4권 - 011. 스포트라이트 -->

    나름대로 닳고 닳은 기자라고 자부하던 곽정수는 한참 어린 성진이 자신을 다루는 솜씨를 보고, 더욱 친분을 두텁게 쌓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건수 생기면 우리도 좀 나눠줘.”

    “에휴.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다시 말하지만 나도 이번 건 정말 운이 좋았어.”

    그렇게 너스레를 떠는데 네오 투자비전 사의 직원이 회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발표 시작됩니다!”

    아마도 성진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곽정수가 시계를 보니 드디어 약속된 기자회견 발표 시간이었다.

    ‘후. 한 회장 발표 솜씨나 감상해볼까?’

    곽정수는 눈빛을 빛내며 성진의 발표 모습을 기대했다.

    * * *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일제히 쏟아졌다.

    단상 위를 향해 쉴 새 없이 번쩍이는 카메라 셔터 플래시가 성진을 향해 번뜩였다.

    성진은 겉으로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담담한 모습으로 모두를 응시했다.

    ‘후웁.’

    가볍게 심호흡을 한성진은 살짝이나마 치밀어 오르려 하는 긴장감을 억눌렀다.

    자리가 중요한 만큼 아직 발표에 익숙치않은 성진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마음먹은 순간, 곧 즉시 몸이 편안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혈류량과 맥박, 근육 경직 상태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모든 상태 정상.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나노 로봇을 작동시켜서 성진의 신체 상태를 최적의 상태로 돌려놨다.

    ‘고마워.’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스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메시지를 읽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비쳤다.

    “오늘 저희 네오 테크비전 사의 신기술 발표를 듣기 위해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진은 한결 차분하고 듣기 좋은 미성으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긴장의 빛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담담한 태도로 말하는 성진은 기자들 앞에서 재치 있는 농담과 기술 개요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서 성진이 박수를 치자 단상 뒤편의 스크린이 위로 올라가면서 특이한 형태의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저희 네오 테크비전 사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방사능제거기 ‘안티 라디오’입니다.”

    큼직한 원통형 장치가 은색 받침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자들은 다시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마침내 공개된 방사능제거기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성진은 그 모습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작동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성진이 리모컨을 누르자 곧 방사능제거기는 모든 기계 면적에서 청백색의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순식간에 발표회장 전부를 파랗게 물들일 지경이었다.

    허나 의아하게도 눈에 불쾌한 자극을 주지는 않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 특수한 에너지 파장은 방사능 붕괴를 일으키는 방사능 핵종들을 강제로 안정화. 즉, 분자 단위로 붕괴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인체에는 절대적으로 무해하고 오직 방사능 핵종만을 붕괴시키는 게 특징이죠. 이제 질문을 받겠습니다.”

    성진이 질문을 허락하자 기자들이 너도나도 잽싸게 손을 들었다.

    성진은 그중 곽정수 기자에게 먼저 질문의 기회를 줬다.

    “거기, 말씀하세요.”

    곽정수 기자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엄청난 성과를 거두신 셈인데,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발표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성진의 성과를 의심하는 자들은 아직도 있었다.

    그중 고정적인 레퍼토리가 구체적인 기술 원리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허나 성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기술 사항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는 최고의 기밀 사항이기도 하고, 특허로도 내지 않을 겁니다.”

    “아니 특허도 말입니까?”

    “예.”

    성진의 호언장담에 기자들은 웅성거렸다.

    특허는 기술 보유업체의 가장 강력한 보호수단이었다.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공격수단으로도 삼을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유사한 기술을 다른 경쟁업체가 사용하면 여지없이 보상 소송을 거는 것이 요즘의 풍조였다.

    “특허를 내지 않으시겠다는 게 도통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러다 기술이 유출되면 어쩌실 셈입니까?”

    곽정수의 말에 성진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 네오 테크비전 사의 기술은 절대 유출될 수가 없습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자신하는 사안입니다.”

    성진의 말에 주변 기자들의 입가에 헛웃음이 퍼졌다.

    방금 전까지 발표회장을 압도하던 성진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었던 기자들이었다.

    허나 특허를 내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말이 이어지자 그 이미지는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젊은 사장의 모습으로 다시 바뀌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곽정수마저 얼이 빠져서 성진에게 물었다.

    “예.”

    “특허를 통한 기술 보호를 전혀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아니 오히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특허 등록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뭐가 됐든 저희는 특허 등록을 할 생각이 앞으로도 없습니다.”

    현재 이 방사능제거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성진뿐이다.

    그리고 이 방사능제거기를 분해하더라도 현재 인류의 분석기술로는 작동 원리조차 파악할 수 없다.

    그런 마당에 친절하게 ‘특허 심사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기술 설명을 첨부해가며 특허를 내는 건 시간 낭비이자 오히려 위험한 일이었다.

    ‘특허라는 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보호받을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뿐이 아니다.

    특허라는 것도 결국 해당 국가가 인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성진의 방사능제거기술은 단순히 엄청난 이익 창출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방사능제거기술은 핵무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강대국이 성진의 특허 내용을 빼돌려서 카피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

    “더 이상 질문 있으십니까?”

    성진은 경악에 빠진 기자들을 둘러보며 태연하게 질문을 받았다.

    이후로 몇몇 질문이 흘러나왔지만 성진의 특허 포기 선언보다 더 충격적인 사안은 없었기에 흐지부지 묻혀버렸다.

    발표를 마친 성진은 태연하게 발표회장을 빠져 나갔지만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타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으아앗! 이거 진짜 골 때리는데?”

    “그러게요. 특허 포기 선언이라.”

    “분해해서 카피하지 못하는 기술은 없는 법인데. 너무 물정을 모르는 거 아니야?”

    각양각색의 품평이 이어지는 와중에 단상을 내려온 성진에게 박윤호 상무가 다가왔다.

    “이거 또 시끌벅적하겠습니다.”

    “뭐, 그렇겠죠? 아무래도.”

    가볍게 웃은 성진이었지만 주변의 직원들은 특허를 포기한다는 것이 영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성진은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너도나도 성진의 기술을 카피해보겠다고 덤벼도 결국 손해만 잔뜩 보고 나가떨어질 터였다.

    “그런데 아직 학계에서 기술 수준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확실하게 쐐기를 박아야 할 거 같습니다.”

    박윤호 상무의 말에 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확실하게 매듭지어야죠. 지금 해외에서는 어떤 반응이죠?”

    “기술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그야말로 혁신이라고 평가합니다만, 아직 국내보다는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확실하게 좀 더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확실한 걸 보여줘야 한다라…….”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세요.”

    “예. 회장님.”

    직원들이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고 성진의 근처에 남은 것은 혜영이었다.

    업무 시간이 되면 놀라우리만치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혜영이었다.

    묵묵히 성진의 지시만을 기다리는 비서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한 모습이었다.

    “혜영 씨. 오늘 수고했어요.”

    “아니요 회장님. 저는 수고라고 할 건 없죠. 회장님이 고생하셨습니다.”

    혜영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성진에게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붙였다.

    “고생은요, 뭘.”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혜영은 조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푹 쉬세요. 앞으로 할 일도 많으시니까요.”

    “네. 혜영 씨도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예. 회장님.”

    인사를 나눈 성진은 즉시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주차장에 있는 성진의 차는 아직까지도 학생 시절에 샀던 국산 세단이었다.

    차는 튼튼하고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인지라 아직까지 다른 사업가들처럼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과시욕이 있거나 순수하게 자동차를 좋아하거나 해야 외제차 구매를 생각해 볼텐데, 성진은 아직 그런 쪽에는 관심이 가질 않았다.

    “하핫. 오늘은 부모님이 깜짝 놀라시겠는데.”

    성진의 기자회견은 각계에서 예의 주시 중인 이벤트였다.

    아마도 tv 화면에서는 기자회견 장면을 계속 송출할 것이다.

    아들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본 부모님들 입장에서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니 성진은 다른 점보다 그런 점이 뿌듯했다.

    “우리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운전이 제법 익숙해진 요즘은 슬슬 귀찮아져서 대다수는 인공지능 팔찌에게 운전을 맡기고 있었다.

    가끔씩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브를 나갈 때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지만 대부분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착실한 대리기사 노릇을 시키고 있었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응?”

    한손을 흔들면서 성진의 차를 가로막은 남자는 멈춰선 성진의 차량을 향해 다가왔다.

    성진은 차량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무슨 일이죠?”

    “실례했습니다 한성진 회장님.”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남자는 품속에서 목에 건 패찰을 꺼냈다.

    그 패찰에 새겨진 글씨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국정원…….’

    다시 패찰을 품에 넣은 남자는 다시 말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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