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98화 (98/185)
  • <-- 98 회: 4권 - 010. 사세 확장 -->

    “잘 진행되는 듯해서 다행이네요. 회장님도 한결 더 좋아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나? 자네도 좋아 보이는구만.”

    가벼운 덕담이 오가고 박천중 회장은 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회사 사정이 좀 어렵다면서?”

    아무래도 플루토 투자그룹의 본산인 플루토 증권이 성진의 취임 직후 투자자 유치 부진을 겪는 점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제가 정말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회장님이 싫어하셔도 이 자리 내놨을 겁니다.”

    성진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플루토 투자그룹에 투자자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 투자나 해외 채권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플루토 투자신탁이 실적을 거듭 갱신하면서 이미 회사의 위상 자체가 달라진 지 오래였다.

    어린 회장이 이끄는 회사라는 점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는 많았지만, 이미 실속을 면밀히 계산한 영악한 사람들은 다시 거액의 돈을 맡기고 있었다.

    “그래. 하긴 자네 능력이면 고까짓 것 극복 못할 문제가 아니지. 그런데 말일세.”

    잠시 말을 끊은 박천중 회장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면서?”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분명 성진이 진행 중인 방사능제거기술 사업을 말하는 것이리라.

    혜영에게도 알려준 지 오래이니 박천중 회장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 분명히 아주 대단한 이벤트가 될 겁니다.”

    “허허. 이거 참 자네 갈수록 커가는구만. 이거 내가 상상치도 못할 만큼 거인이 되겠어.”

    박천중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성진이 내미는 사업적 비전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직감했다.

    그러나 더더욱 감탄스러운 건 어린 나이에도 저렇게 태연자약하게 일을 벌이는 대담함이었다.

    ‘하기야 그런 놈인 줄 알고 저 자리를 맡긴 거지만.’

    박천중 회장으로서는 홀가분하게 짐을 떠맡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 역시 자네다워. 허허.”

    박천중 회장이 성진을 칭찬하는 사이 성진은 옆에서 묵묵히 박천중 회장을 호위 중인 김형석을 바라봤다.

    본래 정체는 북한 특수정찰대 대좌였던 차영석.

    그는 성진에게서 새로운 신분을 제공받고 경호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인공지능 팔찌의 강력한 정보조작 능력으로 김형석은 웬만한 신분 조회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완벽한 위장 신분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요즘 지낼 만합니까”

    성진의 물음에 김형석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회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그도 요즘 생활이 익숙해졌는지 체면치레에 제법 능숙해졌다.

    예전의 야생마 같은 위험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쑥한 정장 차림의 평범한 사무직원 같은 느낌이 났다.

    “좋군요. 지금 모습.”

    “감사합니다.”

    김형석은 담담하게 목례했다.

    성진은 그런 김형석을 보면서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감정 상태를 스캔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으로서는 인공지능 팔찌의 스캔 능력이나 사념 해석을 되도록 덜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형석은 너무도 위험한 경력을 지닌 사람인지라 신경이 살짝 쓰이는 게 사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이 금제를 걸어 놨지만 틈나는 대로 봐두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혈류량과 안면 근육의 경직 정도를 측정합니다. 각 신체의 감응 수준을 탐지한 결과 별다른 심리적 변화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높은 확률로 심리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판단됩니다.

    ‘흠. 알았어. 고마워.’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보고를 듣고 안심했다.

    지난 번 김형석의 가족을 빼내오기 위해 건넨 돈의 약발이 먹혀든 모양이었다.

    ‘약간 신경 쓰이는 점만 제외하면 쓸 만한 능력을 지녔으니까.’

    성진은 자신의 발경을 연달아 얻어맞고도 버텨냈던 김형석의 모습을 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다.

    신체의 강건함도 문제지만, 결국 그런 어마어마한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정신력의 문제다.

    차후에 김형석이 성진이 혼자 처리하기 곤란한 물리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하리라 판단이 섰다.

    “언제 같이 만나서 얘기 좀 나누죠. 우린 할 말이 많을 거 같은데.”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형석과 대화를 매듭지은 성진은 다시 박천중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재단 직원 한 명이 들어와 말했다.

    “이사장님. 한성진 회장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음? 자네를 찾는다는데.”

    성진은 누가 자신을 찾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을 찾을 사람은 없었다.

    회사 직원이나 혜영이라면 전화를 하면 그만이니까.

    “누구죠? 그 사람이.”

    “예. 대중일보의 곽정수 기자라는 사람입니다.”

    “곽정수 기자요?”

    그 순간 성진의 뇌리에 스쳐가는 얼굴이 있었다.

    “사진 촬영을 맡은 대중일보 곽정수 기자입니다.”

    성진이 성폭행 위기에서 구해줬던 여학생 정혜주가 기자가 되어서 같이 나타난 선배 기자였다.

    성진의 인터뷰 장소에서 사진 촬영을 맡은 노련한 인상의 젊은 기자의 모습을 떠올린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나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성진은 박천중 회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나섰다.

    * * *

    아래층으로 내려가 로비에 들어서자 휴게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한성진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곽 기자님.”

    성진은 곽정수에게서 일전에 받은 인상과는 다른 태도를 느꼈다.

    ‘응?’

    그것은 긴장감이었다.

    일전에 신임 사장이었던 성진을 대할 때와 회장이 된 자신이 달라서일까.

    그도 아니면 대체 어떤 부분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인지 궁금했다.

    ‘웬만해선 안 써야겠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상대하는 데 방심할 수는 없는 일.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사념 파장을 수신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곽정수의 사념을 수신하자 성진은 그 안에 담긴 정보를 해석했다.

    ‘아하. 이거였구만.’

    곽정수가 긴장한 이유는 바로 성진이 가진 방사능제거기술 건을 기사로 따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사람도 그걸 노리고 온 건가.’

    성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곽정수 씨. 제가 기회를 드리죠.’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한성진은 곽정수 기자에게 태연히 말을 걸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예에…….”

    곽정수는 침을 한 모금 삼킨 다음 바로 본론을 꺼냈다.

    “바쁘신 분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크라이나 방사능 제거 실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 그거라면…….”

    “예. 취재 요청을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성진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렵다는 거 알고 계시죠?”

    “회장님. 꼭 좀 부탁드립니다.”

    곽정수는 염치 불구하고 뻔뻔하게 매달렸다.

    애당초 사전에 약속도 잡지 않은 사람이 찾아와 취재 요청을 한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리하다는 걸 알고도 곽정수는 성진에게 취재를 부탁했다.

    정말로 방사능제거기술이 확실하다면 이건 세계적인 화제가 될 가망이 높다.

    ‘월드 이슈를 최초로 기사화한다.’

    기자에게는 큰 영예라고 할 수 있었다.

    곽정수는 무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성진에게 찾아온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성진이 곽정수의 꿈을 채워줄 의무는 없었다.

    여기서 칼자루는 성진이 쥐고 있었다.

    성진은 먼저 다른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저는 그게 먼저 궁금하네요.”

    “제가 경제부 기자인 거 아시죠?”

    “음. 알고 있습니다.”

    “무역 쪽에 있는 인맥이 우크라이나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방사능 정화기계가 엄청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랬습니까?”

    “예. 솔직히 풍문으로만 들리는 단계라 긴가민가했는데 제가 뭐 운이 좋았습니다. 딱히 하는 일이 없어서 그쪽 정보를 좀 더 파봤죠. 아니 그랬더니…….”

    잠시 입술을 달싹인 곽정수는 씨익 웃었다.

    “한성진 회장님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회사가 나오더군요. 네오오 테크비전.”

    “훗.”

    성진은 곽정수의 운인지, 끈기인지 모를 성과에 작게 감탄했다.

    분명 국내에 아직 네오 테크비전에 대해 아는 인물은 곽정수뿐일 것이다.

    기자로서의 후각은 쓸 만한 인물임에는 분명했다.

    “훌륭하십니다. 뭐 거기까지 찾으셨으니까 까짓것 선심 쓸까요?”

    “취재 허락하시는 겁니까?”

    곽정수가 반색했다.

    허나 성진은 팔짱을 끼고 여유를 부렸다.

    “조건이 필요한데요.”

    “조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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