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97화 (97/185)
  • <-- 97 회: 4권 - 010. 사세 확장 -->

    성진이 돌아온 회사는 늦은 시간임에도 전략사업팀이 모두 모여 있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성진을 기다리던 박윤호 상무는 다른 팀원들을 이끌고 현관에서 성진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방사능 기술이 알려졌다구요?”

    “예. 지금 몇몇 기업이나 연구소 등지에서 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협력이요?”

    “예. 연구나 상품화에 같이 출자하고 싶다는 건데 우크라이나에서도 말을 바꿔서 공동 연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연구 요청을 하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미 연구가 끝나서 완성된 물건인데.”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아마도 돈 냄새를 맡은 기업이나 몇몇 사설 연구소에서 돈을 미끼로 낚아보려는 수작인 모양이었다.

    ‘하긴 되면 좋고, 안 되도 좋을 테니.’

    이미 성진의 방사능 기술이 확실한 성과를 보였다고 알려진 이상 이런 식의 밑밥을 까는 것은 어느 쪽이든 해볼 만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나머지 얘기는 위에 올라가서 하도록 하죠.”

    “예.”

    성진이 걸음을 옮기자 전략사업팀 팀원 모두가 그 뒤를 바삐 따랐다.

    * * *

    “연락을 해온 곳은 모두 다국적 거대 기업입니다. 이 중에는 일본이나 유럽, 미국의 기술 업체도 섞여 있습니다.”

    성진의 집무실.

    박윤호는 급하게 제작한 티가 역력한 ppt 자료를 통해 성진에게 브리핑을 했다.

    “아무래도 그들 입장에서는 이런 기술을 개발한 우리가 자금 사정이 어려울 것이라 짐작한 모양입니다.”

    “그래요?”

    “예. 아무래도 기술 개발을 하고도 자금 회전이 안 돼서 망하는 회사는 많으니까요. 특히 동아시아의 작은 회사라면 더더욱 그렇게 판단했을 겁니다.”

    “음? 우리가 작은 회사인가요?”

    성진으로서는 약간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그동안 플루토 투자그룹으로 개편하고 고속 성장을 거듭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박윤호 상무는 여전히 정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겁니다. 그쪽은 수십 년 넘게, 아니 100년 가까이 거대 기업으로 군림하는 곳도 있으니까요. 총자본량이나 정치적인 영향력도 우리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겁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우습게 봤다는 거군요.”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아마도 그렇게 봤을 겁니다.”

    “흠…….”

    성진으로서는 일고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거 같은데 우리한테는 더 잘 됐습니다.”

    성진의 말에 박윤호 상무는 무언가 눈치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홍보하는 데 써먹읍시다. 이 거래 제안 나중에 외부에 언론 홍보 자료로 쓸 수 있게 잘 정리해두세요.”

    “그럼 우크라이나에서 온 제안은 어떻게 할까요.”

    “글쎄요…….”

    성진으로서는 애매한 일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손꼽히는 방사능오염 지역이다.

    나중에 성진이 기술과 장비를 팔 수 있는 잠정적인 고객이라는 소리였다.

    ‘너무 야박하게 굴면 안 좋겠지.’

    하지만 나중에 다른 국가에 판매할 때는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성진만 손해를 감수하게 된다.

    “그냥 거절하세요. 우리로서는 해줄 건 다 해줬습니다.”

    우크라이나 대사를 통해서 전해준 대학 지원금은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성진으로서는 그 정도로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다 해줬다고 여겼다.

    “우크라이나에서 아쉬워하겠네요. 처음부터 지원금 대신 연구 지분을 요구했다면 하고 안타까워하겠습니다.”

    “하핫. 그랬다면 제가 또 다른 방법을 찾았겠죠.”

    성진은 다른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다들 긴장하시구요.”

    “예. 회장님.”

    성진은 직원들 한명 한명을 번갈아 바라봤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제 시작될 네오 테크비전 사의 창립 멤버입니다. 저마다 새롭게 맡게 될 책임과 업무에 매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회장님!”

    직원들 모두 열의가 넘쳤다.

    그들은 자신들이 황금 동아줄을 잡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번 계약 제의에 들어온 대략적인 액수만 해도 그들로서는 상상치도 못했던 거대한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흥분과 기대감으로 두근대는 직원들을 보면서 성진 또한 성취감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좋아. 어디 세상을 흔들어볼까?’

    * * *

    성진의 방사능 기술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는 아니었다.

    발빠른 정보력을 자랑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성진의 실험 정보를 접하고 투자 제안까지 넣었지만, 국내 언론들은 의외로 무감각했다.

    아직은 과학자들과 관련 학계 그리고 업계와 대기업들 사이로 풍문만 떠도는 정도였다.

    “슬슬 언론에 터트릴까요?”

    한창 몸이 달은 박윤호 상무는 언론에 소식을 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다.

    하지만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언론에 터트릴 타이밍은 아닌 거 같습니다.”

    “회장님. 너무 늦으면 김이 새버릴까봐 우려가 됩니다.”

    “걱정 마세요. 다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성진은 박윤호 상무의 걱정이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따로 생각하고 있는 성진의 그림은 달랐다.

    ‘좀 더 확 불이 붙을 만한 시기를 노려야 해.’

    확실하게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초특급 뉴스로 주목받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야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권력자들의 입김이 닿지 않으려면 모두의 주목을 강하게 받는 것뿐이다.

    성진으로서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얻어서 혹시 모를 쓸데없는 수작을 차단할 생각이었다.

    “좀 더 시기를 조정 중이니까 당분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윤호 상무가 나가자, 옆에 있던 혜영이 따뜻한 차를 타 와 건넸다.

    “성진 씨. 용정차에요. 피로 회복에 좋대요.”

    “음? 이런 귀한 차는 언제 구했어요?”

    “회장님의 간식거리를 챙기는 것도 비서의 업무 중 하나랍니다.”

    혜영이 방긋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혜영의 헤어스타일이 달라진 게 눈에 보였다.

    전에는 단발 커트 머리가 섹시하고 도도한 느낌을 풍겼는데 요즘 들어서는 살짝 웨이브를 친 생머리였다.

    “머리 스타일 바꿨네요?”

    “아! 이거요?”

    혜영이 어깨 부근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수줍은 듯 웃었다.

    “알아봐주시네요? 요즘 들어서 통 무심하시더니.”

    “하핫.”

    성진은 헤영의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 건 사실이니 일정 부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일부러 피해왔던 게 사실이었다.

    “혜영 씨. 회장님은 요즘 잘 지내세요?”

    박천중 회장은 남은 재산을 처분해서 복지재단 설립에 열심이었다.

    플루토 투자그룹의 명칭을 본떠, 플루토 나눔재단이라 명명된 재단 설립 인가를 시도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게 얼마 전이었다.

    “네. 아버지 요즘 활기차게 일하시는 게 어느 때보다도 좋아 보이세요.”

    “그렇군요. 저도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좋네요.”

    성진은 박천중 회장이 회사를 물려주고 나갔을 때 곧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친자식도 아닌 성진에게 물려준다는 것이 일시적인 판단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천중 회장은 이후로도 회사 운영에 대한 간섭은 물론, 성진에게 연락조차 해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분 나름의 배려겠지.’

    성진은 기왕 일도 매듭지어졌으니 박천중 회장을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회장님 시간 나실까요? 한번 찾아가 뵈었으면 좋겠는데.”

    “어머. 그러면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예요. 요즘 성진 씨 안부 많이 찾으시더라구요.”

    “그래요? 그러면 더더욱 찾아봬야겠네요. 편하신 시간에 한번 물어봐주세요.”

    “저야 좋죠.”

    혜영은 살포시 웃었다.

    ‘음?’

    성진은 그런 혜영에게서 묘한 생경함을 느꼈다.

    늘상 느껴지던 혜영의 당당함, 자신만만한 태도와 달리 어쩐지 여인의 단아한 매력이 느껴졌다.

    “흠, 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 성진이 용정차를 단숨에 들이켜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 이거 아주 맛이 좋네요. 고마워요, 혜영 씨.”

    그러고서 바로 집무실을 허둥지둥 나서는 성진을 보며 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저러시지.”

    * * *

    박천중 회장의 플로투 나눔재단 설립은 인가가 끝난 상태였다.

    가뜩이나 정부의 복지 예산이 부족해지는 마당에, 재정 능력이 튼실한 자선사업가가 복지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선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밖에 없다.

    “의외로 인가가 쉽게 났어. 자선사업은 이거 의외로 아주 쉬운 게 우리나라더라고. 허허허허.”

    박천중 회장 특유의 굵직한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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