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93화 (93/185)

<-- 93 회: 4권 - 008. 성과 -->

“우크라이나 대사관과 논의를 해봤는데, 그곳 국립대학의 연구원들 협조를 받아서 시료를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원활하게 협조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철저히 해주세요.”

박윤호 상무가 이리저리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선이 닿은 곳은 우크라이나 대사관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말하는 게, 국립대학에 어느 정도 일정액의 기부를 요구하는 눈치였습니다.”

“기부금을 달라?”

“예. 대놓고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원활한 협조를 위해서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성진은 혀를 찼다.

사실 우크라이나에서 방사능오염 물질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산지 불명의 채소를 구입하면, 십중팔구 방사능오염 지대에서 재배했다는 농담이 퍼질 정도였다.

허나 남의 나라에서 방사능 실험을 하는데 재료 출처가 분명해야 나중에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좋습니다. 거기에서 요구하는 기부금이 지나치지 않다면 바로 지원하죠. 아쉬운 건 우리 쪽 아니겠습니까?”

“예. 그리고 이 문제로 조만간 우크라이나 대사와 식사라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밥 한 끼부터 먹이자는 거군요.”

“예. 뇌물을 줄 수는 없으니까요. 하핫.”

일전에 지적당한 일을 가지고 농담을 하는 박윤호를 보고 성진도 마주 웃었다.

“그렇죠. 하핫.”

* * *

우크라이나 대사를 만나기로 한 자리는 일류 호텔의 양식당이었다.

예약해둔 식당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성진은 제 시간에 맞춰 오는 우크라이나 대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님.”

성진의 인사에 우크라이나 대사는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 회장님께서 아주 젊은 분이라고 들었는데 저희 나라 말을 아주 잘하시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성진은 겸양을 보이며 대꾸했다.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와 비슷하지만 동슬라브 쪽 억양이 강하다.

얼핏 비슷하게 들려도 엄연히 다른 언어였다.

기실 대사 자신의 모국인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은 아니기에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만난 현지 기업의 대표가 구사하는 우크라이나어는 완벽한 수준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저희 나라 말은 언제 배우셨습니까?”

“평소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꾸준하게 배우다 보니 듣기에 괜찮아진 모양입니다.”

성진은 은근슬쩍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까지 어필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 말에 대사는 겉으로나마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어 실력이 뛰어난 만큼, 오랜 시간 관심을 가졌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성진은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우크라이나 대사의 심리적인 변화를 모두 확인했다.

‘음. 역시 만만치 않겠는데.’

겉으로는 긍정적이고 온화한 반응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긴장과 경계심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성진의 유창한 우크라이나어에 마음이 다소 풀어지는 효과는 있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다.

‘역시 외교관인 건가.’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허나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성진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성진은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 * *

“오늘 식사 매우 즐거웠습니다.”

즐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나선 우크라이나 대사는 성진에게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건넸다.

“예. 대사님.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말씀하신 일은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성진을 일별하고 떠나는 우크라이나 대사를 보면서 성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뇌물을 요구하지는 않는군.’

동유럽 외교관들의 부패 지수가 심각하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라 성진과 마주한 자리에서 뇌물을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허나 다행히 저 외교관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애초에 생각했던 기부금 액수를 조금 올려야 했지만 성진으로는 크게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좋았어. 이제 문제될 일은 없겠지.”

성진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결벽증을 가진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 짓만 아니면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대처할 마음도 있었다.

허나 생각해 보니 나중에 자신에게 덤빌 지도 모르는 승냥이들이 성진의 과거 이력을 찾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쓸데없는 빌미를 남길 수는 없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각하자면 조금 부정한 수법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유혹이 많다.

특히나 사업하는 이들은 더더욱 그런 일을 많이 겪기에 법조인들이나 정치권으로부터 약점을 잡힐 수밖에 없다.

“난 그런 건 딱 질색이야.”

성진은 그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차라리 남들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라면 모를까, 모두 기록이 남게 되는 공식적인 일에서는 절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탄 성진은 엑셀을 밟았다.

* * *

우크라이나로 떠난 현지 연구원들로부터 실험 데이터가 전송된 것은 몇 달 후였다.

“회장님.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시로 연구소장에 임명된 강석천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토양, 채소류에 실험한 결과 세슘과 플로토늄 등이 완전 소멸, 아울러 내부피폭이 된 강아지나 고양이에도 실험해 본 결과, 재검사 이후 방사능 물질이 불검출 되었습니다.”

스스로 읽으면서도 강석천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인간의 기술로 방사능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더군다나 생명체 속에 있는 방사능 물질까지 제거한다는 게 더더욱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이 기술이 발표만 된다면 노벨물리학상도 꿈이 아니었다.

“회장님. 이거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결과입니다.”

“믿기지가 않는 결과라도 엄연히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만드신 결과물입니다.”

성진은 담담하게 연구원들을 진정시켰다.

시작 단계부터 방사능 물질 자체를 소멸시키는 기계를 연구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하지만 이들은 이 정도로 효과를 보이는 기구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회장님.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이 방사능제거기구를 현지에서 당장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당장 구매하겠다구요?”

“예. 아무래도 방사능오염 정도가 심한 국가니까요.”

박윤호 상무의 말에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 사정은 이해하겠는데 정식 제품이 아닌 걸 계약할 수는 없죠. 아직 국내 등록도 안 된데다가 사후 지원 문제도 있고.”

실상은 너무 일찍 팔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제대로 공개한 뒤, 세계적으로 이슈를 터트린 다음 높은 가격을 책정해서 공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 정식으로 제품 홍보도 하기 전에 헐값을 넘기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

성진은 딱 잘라 말했다.

“해당 시제품은 절대 판매할 수 없다고 하세요. 그리고 시제품이라서 몇 달 안 가 못 쓰게 될 물건입니다. 대신 정식 판매가 이루어지면 일정 부분 혜택을 주겠다고 말씀하시구요.”

“음. 예, 알겠습니다.”

박윤호 상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정 안 돌려주겠다면 작동을 정지시키면 그만이지.’

핵심 부품에는 인공지능 팔찌의 나노 로봇을 변형시킨 물건이 담겨 있었다.

비록 인공지능 팔찌가 직접 실시 가능으로 통제할 수는 없지만, 작동 중지 명령을 담은 전파를 발산하면 지구상 어디에 있든지 얼마 안 가 작동을 멈추게 된다.

혹시 모를 불미스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성진의 안배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네오 테크비전의 창립 사원들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갈 네오 테크비전의 영광을 실현하는 데 여러분의 도움이 크게 필요할 겁니다.”

성진의 감회를 담은 격려에 직원들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이 자리에서 발표된 성진의 새로운 회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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