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83화 (83/185)
  • <-- 83 회: 4권 - 001. 신기술 -->

    어차피 회의의 중요 안건은 인공지능 팔찌가 따로 복기해주는 데다가 강조까지 따로 해주므로 흐름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무엇보다 회사 내부의 중대한 투자 결정은 모두 성진이 해왔기 때문에 뻔한 내용이라 지루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사장으로서 성진은 성실하게 회의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다음 분기 투자 계획은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세요.”

    “예. 사장님.”

    간부들이 성진의 지시 사항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음 안건은 홍보부와 투자유치를 전담하는 부서의 차례였다.

    “최근에 회사의 성장세가 자주 노출되면서 거액의 투자금 예치를 신청하는 고객이 다소 늘어났습니다.”

    투자금 유치를 담당하는 책임자는 한껏 고무된 표정이었다.

    성진의 입장에서는 외부 투자금이 크게 구애받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다른 투자사에서 근무했던 책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무능력하게 보일 수 있는 큰 문제였다.

    “덕분에 현재 자사가 유치한 투자금은 조만간 백억 원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백억 원이라는 금액은 크기에, 말하면서도 책임자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현재 회사는 자기 자본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데다가 곧 순자본만 일조 원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외부 투자를 백억 원 유치한 것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지는 감은 어쩔 수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분발해주세요.”

    성진은 그런 점과 상관없이 모든 간부에게 격려를 건넸다.

    어차피 일정량의 외부 투자금을 받는 것도 투자사로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점이었다.

    나중에 성진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면 남의 투자금을 받는 일 따윈 없겠지만, 지금은 남들이 하는 일을 모두 하면서 평범하게 보일 필요가 있었다.

    다음은 홍보부장의 차례였다.

    “회사 홍보와 함께 회사의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회사는 물론, 특히 사장님 개인의 인지도가 크게 늘어난 것이 확인됐습니다.”

    “제가요?”

    성진은 의아스러운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사장님께서 젊은 기업인들 중에서는 가장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계시니까요.”

    “하핫. 그랬군요.”

    성진은 자신이 가진 유명세가 어느 정도일지 구체적으로는 몰랐다.

    간간이 기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서 어느 정도 짐작은 갔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홍보부장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이 정말 유명 인사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제 인기도 연예인 못지않은 겁니까?”

    성진의 농담에 다른 간부들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이 금융투자 계통에서는 사장님의 성과가 매우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 투자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시면서 항상 최대 수익을 축적하시는 사장님의 노하우가 여러 방면에서 크게 궁금해하는 눈치입니다.”

    “허헛. 저 같은 젊은 사람이 무슨 노하우랄 게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장님. 이 회사의 성장이 모두 사장님의 경영수완 덕분이지요.”

    다른 간부들도 입을 모아 성진의 공을 인정했다.

    뻔한 아부가 아니라 모두들 한결같은 진심이었다.

    젊고 잘나가는 사장을 모시고 있으면 질투나 무시를 품기 마련이건만, 이들 증 누구도 감히 그런 마음을 품지 못했다.

    그만큼 성진이 보여준 능력과 성실한 자세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핫. 저를 이렇게 다들 비행기를 태워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아무튼 오늘 회의는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죠.”

    성진의 말에 다른 간부들이 가볍게 목례했다.

    “예, 사장님.”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간부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성진도 회의실을 나가려는데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성진 씨!”

    하얀 치아가 드러나도록 웃는 당당한 미소를 가진 여자.

    날씨가 풀려서인지 짧은 스커트 차림을 한 혜영은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면서 성진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죠?”

    “글쎄요. 저는 꽤 자주 보는 거 같은데요.”

    성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혜영을 맞았다.

    요 근래 혜영은 성진의 회사로 자주 찾아오고 있는 편이었다.

    혜영의 마음을 뻔히 아는 터라 성진은 그녀를 대하는 데 있어서 한결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마침 점심때니까 식사라도 같이하려구요.”

    슬그머니 성진의 한쪽 팔을 빼서 팔짱을 끼려 하는 혜영이었다.

    성진은 부드럽게 팔을 움직여서 팔을 빼낸 다음 앞서 걸어 나갔다.

    “그럼, 제가 사죠. 가실까요?”

    싱긋 웃으며 걸어 나가는 성진을 보고 혜영은 입술을 샐쭉거렸다.

    “차암. 도통 틈을 안 준다니까.”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혜영은 걸음을 서둘러 성진을 쫓았다.

    * * *

    혜영은 앙증맞은 입술로 고기를 오물거리자마자 성진을 보며 말했다.

    “성진 씨 회사. 최근에 정말 유명해지고 있던데요. 알아요?”

    “그런가요? 그렇지 않아도 회사 간부들이 그런 비슷한 얘기를 꽤 하더군요.”

    “그래요, 돈 냄새 풍기는 곳은 어디든지 금방 알아보는 게 이 세계니까요. 성진 씨 회사가 두각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외부에서도 더 크게 주목할 거예요.”

    “그렇군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영도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이 나라 금융 계통에서 성진과 성진의 회사도 나름대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커요. 그래서 성진 씨 회사에 선뜻 돈을 맡기려드는 큰손들이 적은 거구요.”

    “제 나이가 어려서 그런 모양이군요.”

    성진의 나이는 이제 23살.

    사회인으로서 보기에는 정말 어린 나이였다.

    금융 계통은 보수적이고 깐깐한 것으로 이름이 나 있는 분야였다.

    그런 마당에 아무리 드러난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한참 어린 성진이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 돈을 맡기려드는 투자자는 쉽게 찾기 힘들 것이다.

    “그래요. 성진 씨의 나이가 분명히 아주 어리기 때문인 까닭이 크죠.”

    “상관없습니다.”성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외부 투자금 따위는 성진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어떻게든 투자금을 유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투자사들과는 달리, 성진은 자신이 가진 재산만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올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 성진의 당당한 태도를 보고 혜영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성진 씨는 그런 모습이 성진 씨답죠. 하지만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하고 교분을 쌓아두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할 텐데요.”

    “교분이요?”

    “네.”

    “음……. 인맥을 쌓아두라는 거군요.”

    혜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어차피 성진 씨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기왕이면 젊은 나이에 인맥을 쌓아두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성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혜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혜영은 그리 실없는 여자가 아니다.

    굳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건네는 이유가 따로 있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역시 짐작대로 혜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큰 재계 모임이 있어요. 성진 씨도 같이 참석하지 않을래요?”

    “음…….”

    성진은 가만히 생각하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혜영을 살피니 약간 기대감을 품은 눈빛으로 성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참석하길 바라는 모양인데…….’

    재계 모임이라면 필히 혜영과 인연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 앞에서 성진과 함께 참석한 모습을 보이려는 마음이 짐작되었다.

    그런 혜영의 의도를 눈치 못 챌 성진이 아니었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다.

    ‘흠. 그런 자리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인맥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혜영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비록 사심이 조금 섞였을지라도 유쾌한 성격인 혜영과 대화하는 것은 성진에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좋습니다. 권해주신다면 기꺼이 가죠.”

    “정말이죠?”

    “예.”

    성진의 확답을 받은 혜영이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난 성진 씨가 그런 자리를 싫어할 줄 알았어요.”

    “음? 제가 왜요?”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자리를 주선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가지 못해서 안달인데, 성진 씨는 무심한 태도라서요.”

    “하핫.”

    성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다른 사람이라면 방금 혜영이 한 제안에 기를 쓰고 넙죽 받을 것이다.

    하지만 성진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여유로움과 기백이 넘쳐흘렀다.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신감.

    그 점이 성진의 심리를 파악하기 힘들게 했지만 동시에 혜영에게는 가장 큰 매력으로 비쳤다.

    “아닙니다. 저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럼 몇 달 뒤에 있는 모임이니까 그때 보도록 해요. 아버지도 성진 씨하고 같이 참석하시고 싶어하시는 것 같던데요.”

    “박천중 회장님도요?”

    “네. 사실 전 아버지 심부름을 온 거라서요.”

    혜영이 살짝 혀를 내밀었다.

    “그랬군요. 그러면 그때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기대할게요.”

    싱긋 웃는 혜영을 향해 마주 웃어 보인 성진은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