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회: 3권 - 재회 -->
“앗! 앗! 이런…….”
모니터 속에서 화려하게 점멸하는 불꽃들.
생사가 결정되는 치열한 한복판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성진의 게임 캐릭터였다.
“아으…… 또 죽어버렸다.”
모든 직원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사장.
그런 성진은 현재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하아, 이거 꽤 어려운데?”
- 마스터. 정 그러시다면 제가 직접 캐릭터를 조정하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응? 네가?”
- 그렇습니다, 마스터.
- 블루투스 무선 입력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제가 직접 업무 문서를 작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 그렇지. 그러고 보니.”
- 때문에 제가 직접 주파수를 해킹해서 게임 캐릭터를 직접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인공지능 팔찌에게 게임 플레이를 직접 맡긴다면 아마 백전백승일 것이다.
성진은 게임을 가끔 즐기는 편이었지만 아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저 가끔씩 머리를 식히거나 심심함을 달랠 때 할 뿐.
기본적으로는 잘하는 편이었지만 성진의 게임 실력은 남보다 아주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음. 그런데 그건 좀 아닌 거 같다. 너한테 직접 시키면 그건 게임하는 재미가 없잖아?”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그러면 대신 다른 게임 캐릭터들 좀 키워줄래?”
-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래. 고마워.”
성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공지능 팔찌가 게임 캐릭터를 대신 키워준다면 이건 누구도 못 따라올 첨단 게임오토나 핵을 쓰는 셈이니까.
그렇게 잠시 게임에 열중하는 사이 사장실 문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잠시만요.”
성진은 하던 게임을 인공지능 팔찌에게 부탁했다.
“흐흐. 부탁해?”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은 바로 모니터 화면을 꺼서 화면을 가렸다.
그 와중에도 인공지능 팔찌가 계속 게임 상황을 예측 분석하면서 조작 신호를 보냈다.
“들어오세요.”
성진의 허락에 사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연 부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들어온 직원은 홍보부를 맡고 있는 사십대 후반의 부장.
그는 특히 박윤호의 적극적인 천거로 추천된 인물이었다.
“사장님. 긴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 올라 왔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그냥 전자 서류로 올려서 보내지 그랬어요?”
“아닙니다, 사장님. 이건 제가 직접 말씀드려야 할 사항 같아서요.”
“그래요? 일단 앉으시죠.”
성진이 권한 소파에 앉은 홍보부장은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세 덕분인지, 외부 언론에서 취재 요청이 끊이질 않습니다, 사장님.”
“음? 그렇습니까?”
“예. 그래서 저희 홍보부에서도 발 빠르게 우리 회사의 발전상을 널리 알리는 한편,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하고 있습니다.”
“음. 그렇군요. 그래서요?”
“예. 다름이 아니라 요즘, 유독 사장님과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곳이 많습니다.”
“제 인터뷰를 말입니까?”
“예. 사장님. 아무래도, 사장님 정도면 상당한 화제성이 될 테니까요.”
성진은 난색을 표했다.
‘흠. 아무래도 너무 노출되면 부담스러운데…….’
성진은 자신에게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조용히, 은밀하게 힘을 키워나가기를 원했다.
이런 식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성진은 현재 고민 중이었다.
홍보부장은 그런 성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재차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정말 좋은 홍보 기회가 될 겁니다. 사실 사장님의 나이가 상당히 젊으셔서, 투자자들이 많이 망설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핫. 예. 그렇겠죠.”
“예. 이번 기회에 회사의 실적도 자연스럽게 널리 알리고 사장님의 뛰어난 능력도 홍보하는 게 좋다는 판단입니다. 그리 되면 외부 투자도 많이 늘게 될 테니까요.”
“흠. 알겠습니다.”
성진은 잠시 고민한 끝에 인터뷰를 결정했다.
슬슬 회사가 커져 가면 그만큼 외부에도 자연스럽게 좋은 이미지를 쌓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다.
“아! 정말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홍보부장은 화색을 띄었다.
사실 홍보부가 생겨나고도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 제대로 된 성과가 그에게는 절실했다.
“사장님이라면 현재 메이저 언론이나 공중파 방송사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유력한 언론사에서도 제법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가요? 어떤 언론사들이죠?”
“아! 예. 여기 제가 기자들한테 받은 명함들이 있습니다.”
홍보부장이 지갑에서 급히 꺼낸 함들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졌다.
명함들을 살펴보니 제법 대형 신문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 명함 한 장을 살핀 성진의 눈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정혜주?’
성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술 마신 채로 인사불성이 된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서 구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찾아와 자신과 종연에게 식사를 대접했었던 지적인 느낌의 모습이 인상 깊었던 생각이 난다.
성진은 그 이름이 박힌 명함을 집어 들었다.
“이거 전해 준 사람이 누구였죠?”
“아! 대중일보에서 나온 여기자였습니다. 아주 차분하고 참한 아가씨던데요.”
“음. 그 아가씨 나이가…… 저와 비슷하던가요?”
“아! 예. 한 20대 초중반쯤 되는 젊은 아가씨였습니다.”
홍보부장의 말에 성진은 미소를 지었다.
‘흠. 이거 이렇게 다시 만나는 인연인가.’
성진은 대중일보의 기자들 목록을 즉시 검색했다.
- 작년 겨울 입사.
- 추원대 신문방송학과 출신.
- 현재 수습 기자입니다.
성진과 같은 추원대 출신이라면 바로 그 정혜주 양이 틀림없었다.
사진까지 살펴보니 역시나 같은 인물이었다.
성진은 홍보부장에게 말했다.
“이 분에게 인터뷰 날짜 잡도록 하죠.”
“아! 예. 대중일보면 굉장히 영향력 있는 신문이니까 홍보 효과도 좋을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인터뷰 일정 잡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다시 만나면 어떤 모습이려나.’
그 짧은 시간에 신문기자가 되어 나타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성진은 정혜주와의 인연이 이렇게 다시 이어지는 게 재밌었다.
“그럼. 날짜 잡히면 보고해주세요.”
“예. 사장님.”
홍보부장은 다시 인사하고 사장실을 나갔다.
성진은 정혜주의 이름이 박힌 명함을 매만지다 지갑에 챙겨 넣었다.
* * *
“사장님. 대중일보 정혜주 기자가 도착했습니다.”
홍보부장이 사장실 문을 노크하며 문 밖에서 말했다.
“예. 들어오도록 하세요.”
성진의 대답과 함께 천천히 사장실 문이 열렸다.
그 앞으로 젊은 여성이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단정한 짧은 머리에 정중한 느낌이 드는 갈색 정장.
어깨에 맨 자그마한 서류가방이 전형적인 기자의 차림새였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를 맡은 대중일보 정혜주 기자라고 합니다.”
그녀의 뒤로 사진촬영 전문기자인지 큰 카메라를 든 기자도 따라 들어왔다.
“사진 촬영을 맡은 대중일보 곽정수 기자입니다.”
성진은 두 사람 모두에게 마주 인사하면서 악수를 건넸다.
“플루토 자산운용사 대표 한성진입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번갈아가며 악수를 건네는 사이.
성진의 악수를 건네받은 정혜주는 얼굴을 붉히며 악수를 받았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성진 사장님.”
“별 말씀을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데요.”
성진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 기자가 호기심을 보였다.
“엇! 우리 정혜주 기자와 아는 사이셨던가요?”
“예. 같은 대학이기도 하고, 약간 인연이 있었습니다.”
성진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이번 인터뷰, 아주 좋은 분위기로 진행될 거 같네요. 아! 혹시 그러시면 이번에 저희 신문사가 사장님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정혜주 기자 덕분인 거 같네요.”
“하핫. 예. 그런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
“아! 이거 정 기자한테 저희가 감사해야겠습니다. 하하핫.”
남자 기자는 너스레를 떨면서 분위기를 맞춰갔다.
그 옆에 있던 정혜주는 선배 기자의 앞이라 그런지 아직은 다소 굳어있는 느낌이었다.
성진은 정혜주를 배려하며 말했다.
“편하게 하시죠.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요.”
“아,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정혜주는 그런 성진의 마음을 알았는지 작은 미소를 띄우며 인터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