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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74화 (74/185)

<-- 74 회: 3권 - 새로운 시작 -->

달빛이 아늑한 초저녁.

아름드리 정원수가 늘어져 있는 교외의 한옥 집으로 자동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차의 주인은 바로 성진.

성진의 대형 세단 차량 안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윤진만 변호사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성진이 윤진만 변호사에게 물었다.

“예. 저도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윤진만 변호사는 그런 성진에게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들이 도착한 눈앞의 한옥집은 평범한 가정집 같은 곳이 아니었다.

바로 일명 ‘요정집’이라 불리는 고급 술집 중에서도 상당한 유력가들이 출입하는 장소였다.

성진이나 윤진만 변호사는 예약조차 쉽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박천중 회장의 이름을 대야만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고급 술집들의 용도가 대개 그렇듯, 성진과 윤진만 변호사가 이곳을 찾은 이유도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 교섭하기 위함이었다.

“신영만 검사장과 윤진만 변호사님이 막역한 사이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어쨌거나 대학 선후배 관계 아닙니까. 그리고 미리 밑밥을 뿌려 놨으니까요.”

“예…….”

성진은 윤진만 변호사의 입가에 걸린 쓴웃음을 보고 덩달아 쓰게 웃었다.

‘그 밑밥을 얼마나 관심을 두느냐가 문제인데…….’

신영만 검사장은 현재 중앙 검찰조직의 실세 중 실세.

한창 잘나가는 검사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연은 기본이고,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다.

성진은 신영만 검사장이 관심을 둘만한 중대한 소스를 윤진만 변호사에게 일부분이나마 흘리게 했던 것이다.

“그럼. 가보도록 하죠.”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호기로운 발걸음으로 요정집 대문을 향했다.

*   *   *

성진이 가볍게 술잔을 나누길 잠시 후.

선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들어와 다소곳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말씀하신 신영만 검사장님이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윤진만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제가 가보겠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고해주십시오.”

성진은 눈빛으로 응원의 뜻을 보냈다.

성진의 눈을 본 윤진만 변호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습니까.”

대문으로 들어오는 신영만 검사장을 보고 윤진만 변호사가 다가가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하! 왔구만?”

인사를 받는 신영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영만 검사장은 아직은 호리호리한 몸매에, 날카로운 턱선이 살아있는 오십대 초반이다.

그와 연차로는 얼마 차이나지 않는 윤진만 변호사였지만 이미 신분은 까마득한 차이가 났다.

평검사를 하다 나간 40대 평범한 변호사쯤 대학 동문이라는 인연을 거론해도 그가 개인적으로 만나줄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윤진만이 그에게 건넨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지.”

신영만이 사람 좋은 미소로 윤진만의 어깨를 툭 치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이게 그건가?”

윤진만이 건네는 봉투를 받아든 신영만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습니다.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합니다.”

“으음…….”

봉투를 열어 한 장, 한 장 내용을 확인한 신영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이건 내가 잘 받아두지.”

“검사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진만 변호사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성진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윤진만 변호사는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긴장하신 모양이군요.”

“허허. 검사장이라는 자리가 제가 만만히 상대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나중에는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진의 말에 윤진만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나중에는 그 검사장님이 도리어 윤진만 변호사님 앞에서 쩔쩔매게 될 수도 있죠.”

“에이.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피식 웃는 윤진만 변호사를 보면서 성진은 웃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신영만 검사장이 반드시 수사를 강행할까요?”

“예. 그럴 겁니다.”

성진은 확신했다.

“신영만 검사장은 최진곤 의원과 연계한 검찰 세력과 묘하게 척을 지고 있습니다. 이번이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되겠죠.”

성진은 검찰 조직의 미묘한 계파 간 알력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둔 상태였다.

검찰청 내부 인물들의 메신저 프로그램과, 문자메시지, 그리고 건물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파들을 인공지능 팔찌를 이용해 장시간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만약 윗선에서 수사를 막는다면요?”

윤진만은 검찰 조직의 생리를 잘 알았다.

수사를 하고 말고는 결국 윗선의 의지에 달린 일이었다.

“만약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그 때는 제가 나섭니다. 걱정 마세요.”

최진곤 의원의 비리 자료까지 간단히 찾아낸 성진이다.

만약 검찰 고위인물들이 막아선다면 그때는 성진이 직접 그들을 칠 것이다.

‘걸리적거리면 치우면 그만이지.’

성진은 여유롭게 술잔을 들었다.

“자! 건배나 하죠.”

“그럴까요?”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히며 건배했다.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   *   *

- 검찰은 오늘, 최진곤 의원에 대한 중대한 비리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 최진곤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현재 국회에 상정된 가운데 여야간의 격렬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TV화면 어디를 둘러 봐도 최진곤의 비리 화제뿐이었다.

노인은 리모컨을 들어 화면을 꺼버렸다.

“최진곤이는 버려.”

싸늘한 일갈.

노인의 말에 좌우에 시립한 자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노인에게 최진곤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감흥은 그 정도였다.

어차피 쓸 만한 말 중 하나일 뿐.

차차기 대선후보라는 말은, 결국 후보들 중 하나라는 말일 뿐.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은 창가로 다가갔다.

늦겨울이다.

먹구름이 낀 하늘 아래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노인은 차분히 생각을 갈무리했다.

불현 듯, 노인이 말했다.

“박천중이는?”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런가?”

노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박천중이를 치는 데, 최진곤이 이름을 팔았었지?”

“예. 어르신.”

“그래…… 그랬는데 이제 최진곤이는 죽고, 박천중이는 살았나?”

노인은 다시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박천중이는 일단 놔둬. 대신 계속 지켜보도록.”

“예.”다시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에 서늘한 기운이 어렸다.

*   *   *

결국 최진곤 의원은 구속되었다.

정치권은 체포에 동의했고 사실상 최진곤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성진은 박천중 의원의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고맙네.”

“아닙니다, 회장님.”

“이제 어쩔 건가?”

“어쩌다니요?”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됐으니, 자네 다음 일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다음 일이라…….”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다음 일도 생각해야죠.”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투자사를 설립할 생각입니다.”

“투자사를?”

박천중 회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렇습니다. 기업 투자위주의 벤쳐 투자사를 설립할 생각입니다.”

성진의 말에 박천중 회장의 머리로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성진군.”

“예. 회장님.”

“비용은 충분한가?”

“물론입니다.”

성진의 통장에는 수천억원이 있다.

비록 잘게, 천천히 꺼내서 의심의 눈길을 사지 않도록 귀찮은 조절이 필요하지만 성진에게 비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진 군. 나도 자네 사정을 대충은 조사해봤다네.”

박천중 회장은 솔직히 고백했다.

하지만 성진은 개의치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맡기시려면 제 신상 정도는 알아두셨겠죠.”

“그래서 말인데, 자네 집안이나 형편은 가난한 편인데 투자사를 설립할 정도의 거금이 갑자기 생겨나면 의심의 눈이 생기지 않겠나?”

박천중 회장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성진은 수긍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다소 귀찮은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박천중 회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네 투자사를 우리 플루토 투자신탁의 계열사로 만드는 게 어떤가?”

“계열사요?”

“그래. 간판은 플루토 투자신탁이지만, 회사 자체는 온전히 자네 것으로 하는 거지. 지분이나, 경영권 모두.”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를 위해서 애를 써줬는데 이 정도 보답이야 당연하지.”

“회장님.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반대하지 않을까요?”

“허허. 성진군. 이 회사의 주인은 나야. 다른 회사야 경영지분이다, 대주주다 해서 널려 있지만, 우리 회사의 지배구조는 나한테 전부 달려 있어.”

박천중 회장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말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시군요.”

다른 대형 증권사들은 경영주의 지분이 생각보다 적다.

외부의 투자를 받아 유지되는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루토 투자신탁은 온전히 박천중 회장 개인의 힘으로 세워진 회사.

정말로 그가 마음대로 한다 한들 변하는 건 없다.

“좋군요.”

“반대는 있을 걸세. 주변 눈도 안 좋겠지.”

“아니요. 상관없습니다.”

성진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정보를 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실감했다.

회사 경영에 대한 제반 지식 모두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직접 머리에 각인해 놓은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조만간 출근하는 걸로 해 놓지.”

“예. 회장님.”

“기대하겠네.”

박천중 회장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성진은 그 손을 마주 붙잡았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성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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