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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72화 (72/185)

<-- 72 회: 3권 - 선공 -->

새벽 땅거미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전진수는 연신 하품을 해대면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핑크 레터 팀원들 중에서는 그가 가장 일찍 출근하는 편이었다.

실상 정보지에 관한 한 그가 가장 많이 아는 만큼, 하는 일도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다.

신원 확인이 완료되었다는 초록색 불이 들어오고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흐아아아암…….”

커피라도 마시려고 탕비실 문을 찾아간 전진수의 눈에 문득 팀장실이 들어왔다.

반쯤 열린 문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전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어제 불을 안 껐나?”

팀장실로 들어간 전진수가 스위치에 손을 얹으려는 그때.

“아! 전진수씨. 일찍 출근했네요?”

성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 전진수가 놀라 쳐다봤다.

“아! 보스.”

그러자 성진의 옆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이 든 중년 남자.

그리고 냉막한 인상을 풍기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 자신을 쳐다봤다.

“누구십니까? 이 분들은.”

의아해하는 전진수를 보고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개하죠. 먼저 이 분은 잘 아실 겁니다. 플루토 투자신탁의 박천중 회장님이십니다.”

“반갑네.”

박천중 회장이 인사하며 가볍게 전진수를 향해 목례했다.

전진수는 성진의 소개에 눈만 꿈벅거렸다.

‘박천중 회장?’

그도 증권가의 인간이다.

적어도 경제지를 정기 구독한다면 플루토 투자신탁의 박천중 회장쯤은 한 두번 보고도 남는 법.

뒤늦게 박천중 회장의 얼굴을 확인한 전진수는 그가 정말

자신이 아는 박천중 회장임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앗!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구만.”

바로 자세가 꼿꼿해진 전진수는 속으로 긴장했다.

‘우와. 진짜 박천중 회장이잖아.’

자신이 섭외될 때 플루토 투자신탁과 연계된 비밀 조직이라는 것은 넌지시 들었다.

하지만 한 번도 플루토 투자신탁의 관련자를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비밀을 유지해야 하니까 전진수는 납득했다.

증권사가 직접 만드는 정보지라면 특급 스캔들이다.

얼마나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을 듣겠는가.

그래서 플루토 투자신탁의 관련 인물이 자신들을 찾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 최고 경영자인 박천중 회장이 자신들의 사무실에 올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그것도 이런 이른 시각에 무슨 일이지?’

당혹해하는 전진수를 보고 성진이 말했다.

“다른 팀원들이 오면 곧 깜짝 놀랄 소식을 듣게 될 겁니다.”

“깜짝 놀랄 소식이요?”

“예. 긴장 하십시오? 하핫.”

웃으며 말하는 성진은 농담하듯 말했지만 전진수의 귀에는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후앗.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전진수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벌써 긴장이 한 가득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김형석씨. 뭐 지금은 회장님의 개인 경호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차후에 자주 만날 수도 있으니 간단히 인사 정도만 해두세요.”

“김형석입니다.”

멀리 서 있던 남자. 청소부라 불렸지만 이제는 김형석이라는 가명을 쓰게된 그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예. 전진수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전진수는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나름 인생 거칠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김형석이라는 사람의 눈빛을 본 순간 어딘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강한 이질감이 들었다.

“자! 이제 잠깐 기다리도록 하죠. 다른 팀원들이 올 때까지 이번 분기 최종 편집본이나 살펴보죠.”

“아, 예.”

전진수는 자신의 책상에서 편집본을 가지러 방을 나갔다.

그런 전진수를 보면서 박천중 회장이 입을 열었다.

“다들 마음 변하진 않겠나? 위험한 일인데.”

“결코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로 꾸렸습니다. 사실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만큼 의욕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알겠네.”

박천중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은 마주 웃어보이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가 먼저 때리게 될 겁니다.”

*   *   *

성진의 말을 들은 팀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먼저 반응한 건 박윤호였다.

“최진곤 의원이라구요? 최진곤 의원이라면…….”

“역시 아시는군요.”

성진은 박윤호를 보며 싱긋 웃었다.

대기업의 정보 담당 책임자였던 박윤호인지라 이런 쪽은 역시나 빠르다.

바로 최진곤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파악한 그는 입을 달싹였다.

“저, 그, 그것이……. 그 사람은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압니다. 대충 파악해 둔 것만으로도 상당하더군요.”

최진곤은 여당과 야당을 오가면서 강력한 정치세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더더군다나 무서운 건 그러는 와중에도 여론에 부정적으로 노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이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정치인은 여론에 노출되는 순간, 비난도 따라오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정치 생명을 갉아먹게 된다.

하지만 최진곤 의원의 이력에는 그런 약점이 없다.

“아주 영악한 사람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있으십니까?”

최진곤 의원을 치겠다는 성진의 선언에 핑크레터 팀원들은 모두 경악했다.

그리고 그가 박천중 회장을 납치까지 하려 들었다는 말에는 설득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성진의 패가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추가로 보여드릴 건 이거 하나입니다.”

성진은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올렸다.

“읽어 보십시오.”

팀원들은 의아해하면서도 서류들을 한 장 한 장 훑어보기 시작했다.

곧 감탄 섞인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건…….”

“모두 최진곤 의원의 중대한 비리와 범죄 개입여부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그것도 상세한 디테일과 정확한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일부는 이미 드러나 세상을 시끄럽게 한 일도 더러 있었다.

성진의 말에 이번에는 전진수가 말했다.

“이걸 여론에 흘리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리 유력한 정치가라 해도 이런 불명예스런 일에 연루되었다면 뒷감당이 안 되죠.”

이번에는 윤진만 변호사가 반문했다.

“하지만 보스. 이런 자료가 있다 해도 과연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 주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윤진만 변호사의 눈에는 복잡한 뜻이 담겨 있었다.

진실을 주장하고 캐내려 했지만 권력의 앙갚음을 당해 검사직을 그만둬야 했던 그다.

그런 세상의 부조리를 뚫어낼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예.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복안이 있습니다.”

성진은 그런 윤진만 변호사의 질문을 회피할 생각이 없었다.

“먼저, 우리 핑크레터의 점유율을 살펴볼까요? 현재 우리 핑크레터는 정보 시장의 점유율 6할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예. 그건 맞습니다.”

전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6할은 모두 우리가 스스로 자제한 결과일 뿐. 이미 가장 유력한 투자기관과 대기업의 정보 관계자 등은 모두 우리 핑크레터의 소스를 절대적으로 참고하고 있죠.”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렇다면 보스께서는 이 핑크레터를 통해서 말씀하신 비리자료들을 유포시킬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성진은 좌중을 돌아보며 힘차게 말했다.

“핑크레터가 적에게 탄환을 쏘아 보내는 우리의 총이 될 겁니다. 이미 유력한 정보 관계자들은 우리 핑크레터가 전하는 정보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윤진만 변호사는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증권가 정보지는 아무리 정확해도 유력 일간지 등의 중앙 언론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증권가 정보지가 아무리 치명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해도 세간에서는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친다.

“핑크 레터가 아무리 정확했다 해도 우리 고객들이 언제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쪽에서 우리 핑크레터에 대한 추적이 들어오면 부담을 느낀 고객들이 구매를 중단할 수도 있겠지요.”

약점을 정확하게 짚는 윤진만 변호사의 말에 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변호사님의 말씀이 모두 옳아요. 하지만 그 역시도 제가 모두 생각해 둔 복안 중 일부입니다.”

자신 있게 말한 성진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요즈음 중앙의 언론이 아무리 강력해도 SNS와 인터넷 등지에 음성적으로 떠도는 인터넷 여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 알고 계십니까?”

“맞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윤진만 변호사는 여전히 다른 의견을 말했다.

최진곤 의원이 인터넷 여론의 먹이감이 되기에는 다른 이슈들도 많다.

게다가 기존에 악명을 떨친 것도 아닌 사람이 갑자기 엄청난 비리의 주인공이 된다면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조작 의심부터 한다.

“그렇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그때에는 윤진만 변호사님이 직접 나서주시면 됩니다.”

성진의 말에 윤진만 변호사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게…….”

“윤진만 변호사님은 정의를 원하신다고 하셨지요?”

“그건 당연합니다.”제대로 된 법조인이라면 정의를 꿈꾸기 마련이다.

윤진만 변호사는 왜 새삼 당연한 소릴 하느냐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봤다.

“정의를 실천할 겁니다. 최진곤 의원을 법정에 세울 겁니다. 핑크레터는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한 소모품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큰 판에서 놀게 해드리겠다고 저는 약속드렸습니다. 최진곤 의원을 법정에 세우고 나면 새로운 판을 시작할 겁니다.”

이어지는 성진의 말에 모든 팀원들은 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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