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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69화 (6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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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박천중 회장이 말한 장소는 서울 근교의 산자락이었다.

    “남영산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산인데.”

    그 곳에서 이월루라 불리는 암자를 찾아야 했다.

    성진은 박천중 회장이 말한 새벽 2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촉박하게 움직여야 했다.

    최진곤 의원의 비리 문건을 조사하는 것은 인공지능 팔찌가 미리 마쳐둔 상태였다.

    해당 자료들을 인쇄해서 품안에 문서로 간직한 성진은 곧장 산을 올랐다.

    “아직 안 온 건가?”

    산자락에 부는 새벽 칼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성진은 짐짓 주변을 둘러보는 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성진은 사방으로부터 수집되는 정보의 물결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 청각, 시각 정보 수집제한을 해제합니다.

    - 인간으로 추정되는 사물을 탐지 우선순위로 설정합니다.

    인공지능 팔찌는 성진의 강화된 육체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새벽 산속을 날아다니는 작은 짐승들과 풀벌레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헤집으며 부는 바람 소리와 거기에 흔들리는 풀들과 나뭇가지들의 떨림.

    사방 수 십 미터의 상황이 정밀한 시청각 데이터가 되어 성진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희미한 빛이 깔린 새벽 산속을 바라보는 성진에게 드디어 인기척이 잡혔다.

    ‘저긴가?’

    성진은 좌측으로부터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저쪽을 정밀 스캔해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이 힐끗 눈짓한 곳의 에너지 반응을 스캔한 인공지능 팔찌는 즉시 보고했다.

    - 좌측 약 15m 떨어진 산봉우리 쪽으로 인간으로 추정되는 열원 반응이 확인됩니다.

    ‘역시. 미리 감시하고 있었군.’

    놈이 숨어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절벽이 만들어낸 그림자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성진은 그쪽 방향을 향해 귀를 기울였지만 강화된 청각능력으로도 쉽사리 기척을 잡아낼 수 없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놈인데.’

    성진은 가만히 서서 놈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성진은 온 몸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걸 느꼈다.

    팽팽하게 늘어진 활 시위처럼, 성진은 놈이 다가오는 즉시 제압할 심산이었다.

    ‘이번이 유일한 기회다.’

    또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성진은 자신을 믿어준 박천중 회장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실수로 그가 돌이킬 수 없는 불운에 빠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놈은 한참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주변을 살피는 건가.’

    1시간, 2시간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성진은 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지루한 체 하며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반면 놈은 미동도 없이 성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지독한 인내심과 집중력이었다.

    ‘후. 독한 놈이구만.’

    긴장한 상태로 몇 시간을 있으려니 성진도 슬슬 힘이 풀린다.

    바로 그때, 인공지능 팔찌의 경고가 울렸다.,

    - 긴급 위험상황! 인지 가속능력을 가동합니다.

    인공지능 팔찌의 경고성과 함께 성진의 눈앞으로 시간이 서서히 멈추는 것처럼 모든 것이 느려졌다.

    인공지능 팔찌가 성진의 지시 없이 이런 기능을 작동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

    성진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심각한 위협이 다가올 때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이 작동됐던 상황이 있었다.

    적이 성진에게 총을 쐈을 때였다.

    ‘설마 또 총인가?’

    총기 발사음은 없었다.

    그러나 맹렬히 회전하며 다가오는 작은 총탄이 성진에게 짓쳐들고 있었다.

    ‘소음기를 장착한 건가?’

    생각은 잠시.

    성진은 총탄을 피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했다.

    ‘우으으윽.’

    오른쪽 정강이 가운데로 날아드는 총탄.

    다리 근육 조직 전체를 태워버릴 듯한 고통.

    성진은 사력을 다해 몸을 빼냈다.

    아슬아슬한 찰나의 차이로 총탄이 다리를 스쳐가고, 바로 그 순간.

    다시 인지 가속이 해제되면서 막대한 부작용이 성진의 의식을 흐려놓았다.

    “큭!”

    뒤따라오는 고통을 느낀 성진은 이를 악물면서 몸을 굴렀다.

    놈이 총을 겨눌만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잽싸게 몸을 굴린 성진은 바로 아래쪽에 박힌 바위 뒤로 모습을 감췄다.

    “후우…….”

    가쁜 숨을 골랐다.

    전신의 몸을 다시 긴장시키고, 욱신거리는 몸을 최대한 정상화시키기 위해 나노 로봇이 긴급 투입됐다.

    - 오른쪽 정강이와 발목 부근에 가벼운 염좌 증상이 발생했습니다.

    - 현재 나노 로봇의 긴급 수복 치료로 근조직 손실 비율은 0.7% 미만입니다.

    총탄으로부터 몸을 빼내느라 급격한 동작을 취해야 했다.

    강화된 성진의 신체로도 신경세포를 혹사시켜가면서까지 움직인 급격한 신체 가동을 완벽히 감당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좋아. 지금은 문제없지?”

    - 통상적인 신체 활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마스터.

    “오케이.”

    성진은 즉시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즉시 놈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자식!”

    성진은 바위에서 튀어나오다시피 하며 신속한 속도로 놈에게 접근했다.

    태합유문의 비전 절기.

    유룡보였다.

    조준이 어렵도록 주변 지형지물 뒤로 뛰어들면서 재빠르게 거리를 좁혀들었다.

    반면 놈은 그런 성진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거리를 벌리겠다는 건가?’

    아마도 놈은 총기를 든 자신의 이점을 극대화시킬 심산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성진은 더욱 더 접근하는 속도를 높였다.

    이미 인간의 육체가 가진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낼 수 있는 성진이다.

    거기에 유룡보의 절기를 사용하는 성진의 움직임은 복잡한 산속에서 더욱 재빨랐다.

    아예 성진은 일부 안전을 포기하면서 주변 지형지물에 숨기보다 지그재그로 달리기만 했다.

    사격에 노출되면 인지가속으로 버틸 심산이었다.

    - 위험합니다, 마스터.

    - 적의 발사형 무기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괜찮아. 놈을 따라잡으려면 이 수밖에 없어.”

    성진이 몸을 드러내다시피 하며 달리자 금세 놈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드디어 몇 미터 간격까지 따라잡히자 놈은 도주를 포기하고 뒤로 돌아 성진을 노려봤다.

    성진과 놈이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긴장 속에 한참의 시간이 흐른 순간.

    놈이 뒤로 돌아 다시 뛰는 양, 싶더니 갑자기 총을 겨눴다.

    긴장한 성진이 눈을 부릅뜬 순간이었다.

    놈은 총을 쏘는 대신 다시 산길을 뛰기 시작했다.

    “뭐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놈은 총을 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이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성진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멈춰!”

    성진의 고함에도 아랑곳없이 놈은 쉴새 없이 뛰어갔다.

    그러자 성진은 쫓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멈추지 않으면 강제로 세울 수밖에.’

    성진은 주변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을 향해 손바닥을 때렸다.

    태합유문의 비전 이치가 담긴 태합경이 아름드리나무 줄기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툭!

    수 십 미터의 웅장한 나무를 지탱하던 줄기의 외피에 금이 아로새겨졌다.

    투두두둑!

    그러자 균열이 더욱 벌어지면서 놈이 도망치던 방향으로 나무가 꺾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아압!”

    성진은 잽싸게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도 발경을 퍼부었다.

    내부를 두들기는 내경폭발의 원리.

    태합경이 투사한 힘으로 인해 내부가 부서져 내린 나무줄기는 힘을 잃고 그 위의 육중한 몸뚱이를 지상으로 떨궜다.

    십여 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자 그 앞을 뛰어가던 놈은 정신없이 몸을 굴려야 했다.

    쿠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나무들이 쓰러졌다.

    그러자 그 사이에 엎드려 있던 놈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사이를 놓치지 않은 성진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흐압!”

    태합경의 위협적인 기운을 담은 성진의 손속이 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큭.”

    놈은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놈이 손목을 터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소매에서 떨어져 내려와 손에 잡혔다.

    바로 튀어나온 회백색의 칼날이 성진의 손바닥 위로 그어졌다.

    “핫.”

    성진이 잽싸게 유룡보를 밟아 뒤로 물러났다.

    유룡보가 아니었다면 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만큼 신속한 칼질이었다.

    ‘이 놈. 뭐지?’

    칼 든 상대와도 여러 번 맞서 싸워본 성진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놈은 다르다.

    이제까지 상대해 온 일반적인 깡패나 칼잡이를 자처하는 녀석들과도 질적으로 달랐다.

    총까지 바닥에 버린 놈은 양손에 칼을 쥐고 몸을 숙였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사마귀처럼.

    다른 사람이었다면 방금 전 휘둘러진 칼날의 예기만으로도 겁에 질렸겠지만 성진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당랑거철.

    아무리 용감한 사마귀라 해도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다.

    성진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

    놈은 천천히 성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보이는 것처럼 어지럽게 휘두르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성진이 보이는 한순간의 빈 틈.

    그 한순간을 노리는 놈의 눈빛이 성진을 향해 살벌한 빛을 뿜었다.

    “흐…….”

    성진은 일부러 빈 틈을 보였다.

    하지만 놈은 한참을 더 뛰어들 듯 말 듯 거리를 재다가, 마침내 성진에게 비수를 찔러 넣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성진의 어깨를 향해 찔러 넣는 칼날.

    마치 총알과도 같은 속도였다.

    그러나 그 한순간, 성진의 눈앞에 세상이 멈췄다.

    - 인지 가속 발동.

    성진은 칼날을 밀쳐내고, 놈의 복부에 손바닥을 댔다.

    ‘이제 발동을 해제시켜.’

    - 알겠습니다, 마스터.

    멈췄던 세상이 다시 흘러가고, 성진의 머리에 짜릿한 고통이 전달됐다.

    “흣!”

    성진은 고통을 견디면서 놈의 복부에 태합경을 밀어 넣었다.

    “크억!”

    이제껏 말이 없던 놈은 비명을 토하면서 나뒹굴었다.

    하지만 놈은 성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놈이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손에 쥔 칼날을 길게 내리그었다.

    “으앗!”

    성진은 재빨리 피했지만 팔뚝에 긴 자상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놈은 뒤로 굴러 성진과 거리를 벌리기까지 했다.

    ‘하!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태합경에 급소인 복부를 직격 당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죽일 마음은 없었기에 성진은 충분히 힘 조절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을 견뎌가면서 반격까지 가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흐앗!”

    성진은 즉시 뛰어들었다.

    놈의 칼날이 허공에서 번뜩였지만 방금 전과 같은 신속한 예리함은 없었다.

    성진은 가볍게 칼날의 궤적이 닿지 못하는 틈을 뚫고 놈의 어깨를 짚었다.

    “으앗!”

    다시 어깨에 태합경이 직격 당하자 놈은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성진은 즉시 놈의 칼과 총기를 모두 주워들어 품에 챙겼다.

    “후우…….”

    성진과 격전을 치룬 놈은 복면을 쓰고 있느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보니 체구가 작은데?”

    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놈의 체격은 얼핏 봐도 중학생 수준이었다.

    성진은 바로 복면을 벗겼다.

    “크윽…….”

    신음을 흘리는 놈의 얼굴은 의외로 평범하고 연약해보이는 얼굴이었다.

    30대 초반쯤 될까.

    너무 평범해서 길을 가다 마주치면 별다른 기억이 남지 않을 그런 인상이었다.

    성진은 고통에 겨워하는 놈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놈의 멱살을 쥐고 끌어올린 성진은 한 손에 매달린 녀석을 향해 말했다.

    “박천중 회장님. 어디 계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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