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68화 (6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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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성진은 다급하게 말했지만 휴대폰 너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회장님? 회장님?”

    몇 번을 더 되물은 성진은 결국 휴대폰을 끊었다.

    성진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뭔가가…….”

    잘못됐다.

    성진이 아는 박천중 회장은 자신과 통화 중에 멋대로 전화를 중단할 사람이 아니다.

    강한 직감이 성진의 뇌리를 때렸다.

    “젠장!”

    성진은 외투도 챙기지 않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성진은 잠깐의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안 되겠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지.”

    사태가 위급하다고 판단한 성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 예. 112 신고센터입니다. 무엇을……

    “지금 당장 경찰 병력을 출동시켜 주세요. 급한 일입니다.”

    - 예? 실례지만 신고하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나는 플루토 투자신탁의 직원인 한성진입니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사람은 우리 회사 회장님이신 박천중 회장님이십니다!”

    플루토 투자신탁의 직원 신분인 자신의 직함을 대는 것도 모자라 거물인 박천중 회장의 신변 문제가 거론되자 신고 전화를 받는 경찰관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 옛? 알겠습니다. 위치를 말씀해주시면 바로 인원을 보내겠습니다.

    마음이 급한 성진이 자세한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담당 경찰관은 즉시 출동 요청을 넣었다.

    -예. 지금 바로 가까운 위치에 출동 요청을 넣었습니다.

    - 담당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달하는 데 대략  20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위험한 놈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단단히 경계하라고 요청해 주세요. 그리고 되도록 많은 경찰관들을 보내 주십시오.”

    - 예.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무장 강도인가요?

    경찰관의 추가 설명 요구에 성진은 더 해줄 말이 없었다.

    “지금은 일단 빨리 도착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도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납치되셨을 수도 있습니다.”

    - 예. 알겠습니다.

    - 지금 현재 경관들이 긴급 출동 중입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절대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예. 알겠습니다.

    신고 전화를 끊은 성진은 혹시 몰라 회장 비서실에도 연락을 넣었다.

    “저 한성진입니다.”

    - 아, 예. 무슨 일이십니까?

    박천중 회장과 수시로 독대하는 성진이었다.

    특히 박천중 회장은 자신의 부재 시 성진의 요청을 무조건 받아들이도록 비서실에 엄명을 넣어놓은 상태였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회장님 신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회사 이름으로 직접 수사기관에 협조요청 넣으세요. 절대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없게 해달라구요.”

    -예? 무슨 일이십니까?

    “설명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지금 부탁드립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연락드리죠.”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잽싸게 올라탔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차에 올라타기까지 성진은 계속해서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후우.”

    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히려 애썼다.

    “별장까지 최대한 빠른 길로 가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 모든 항공사진 및 지리 정보 종합분석 가동.

    - 최단 교통 거리를 추출합니다.

    인공지능 팔찌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곧 주차장을 떠났다.

    차량은 성진의 급한 마음을 달래듯 최대한 빠른 속도로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저녁시간.

    성진이 도착한 별장은 경찰들이 쳐놓은 접근 경고띠가 인근에 둘러쳐져 있었다.

    사이렌 소리를 내는 경찰관들과 사복 수사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성진은 그들 중 다른 경찰관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형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플루토 투자신탁에서 나온 한성진입니다.”

    성진이 사원증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아, 그러십니까?”

    형사는 플루토 투자신탁에서 나왔다는 말에 바로 협조적으로 대했다.

    신고 당시에 박천중 회장의 신변과 관련되었다는 걸 말해뒀기 때문이리라.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게, 최초 출동한 순경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회장님이 현장에 안 계셨습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박천중 회장은 강제적으로 납치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급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전화까지 했는데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였다.

    성진은 암담한 마음을 감추면서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여기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까? 경호원들과 같이 계셨던 걸로 아는데요.”

    “경호원들은 절반이 넘는 숫자가 의식불명이라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나머지 경호원들은 주변을 수색 중이었다고 하던데 현재 관할서에서 관련 조사 중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사상자는 없었나요?”

    “예. 사상자는 없었던 걸로 압니다. 의식불명이라고는 하는데 생명이 위독한 환자는 없답니다. 부상도 경미하구요.”

    “그래요. 천만 다행이네요.”

    성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가 조사한 바로도 박천중 회장의 경호를 맡은 요원들은 거의가 특수부대나 군경 출신의 전문가들이다.

    그런 상당한 수준의 경호원들을 뚫고 박천중 회장을 납치하려면 상당한 유혈사태가 빚어졌으리라 판단했었는데 생각보다 피해가 경미했다.

    ‘무슨 수단을 쓴 거지?’

    성진은 속으로 의아해하면서 형사에게 안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형사는 난색을 표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절차를 밟으셔야 합니다.”

    형사는 성진의 출입을 허락할 마음이 없어보였다.

    ‘하긴 무리한 부탁인가.’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것 뿐.

    이미 수사관들이 진을 치고 있는 현장이니 기초적인 탐문은 이루어졌으리라.

    반대하는 형사를 굳이 뚫고 현장에 들어가서 단서를 얻을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럼 저는 경찰서로 가보겠습니다. 경호원들이 아직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라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성진은 바로 뒤돌아 차에 올라탔다.

    상황을 보아하니 현장에서 알 수 있는 건 없다.

    신속하게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경찰서로 가자.”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차가 다시 경찰서로 이동했다.

    *   *   *

    경찰서 입구에 다다르자 사진기를 든 몇몇 남녀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혹시 기자인가?’

    성진은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박천중 회장이 납치됐다는 소식이 기사화되면 좋지 않은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작은 일 하나만으로도 평지풍파가 일어나는 게 증권 세계다.

    플루토 투자신탁의 최고 수장인 박천중 회장이 납치됐다는 소식이 언론에 흘려지면 회사 운영에 좋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긴. 그딴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박천중 회장의 안전이다.

    회사는 엄연히 둘째 문제.

    박천중 회장이 납치되었다 해서 플루토 투자신탁이 다소 불리해진다 한들,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성진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 경관들에게 물어 수사 부서를 찾아간 성진은 초췌한 행색의 경호원들을 만났다.

    “플루토 투자신탁에서 나왔습니다. 한성진입니다.”

    “아, 예. 면목 없게 됐습니다.”

    경호원들의 사과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실 그들의 실패로 경호대상이 위험에 처했으니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경호임무를 대가로 사례를 받는 프로페셔널들에게 최선을 다했느냐 못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지켰느냐, 못 지켰느냐가 중요할 뿐.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경호원들을 보면서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잘잘못을 따져서 뭘 하겠습니까. 그보다 여러분들은 다치신 데가 없는 거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이죠?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아, 예. 그게…… 사실 저희는 주변 숲 쪽으로 수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따로 수색 중이던 차에 갑자기 비상 신호가 잡혔고, 급히 돌아와 보니 이미 팀원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이 다른 곳에 이동했던 와중에 기습을 당했다는 소리였다.

    “그렇군요. 그럼 회장님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저희가 바로 집 내부를 확인해보니 회장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바로 수색했는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비상벨을 듣고 돌아가기까지 얼마나 걸리셨죠?”

    “대략 10분 정도입니다.”

    “10분이요? 남아있던 인원이 몇 명이었습니까?”

    “예. 두 팀 중 한 팀 전원이 남아있었습니다. 10명이었습니다.”

    “10명을 10분 안에 제압했다라…….”

    성진은 속으로 상황을 추정했다.

    10명이나 되는 정예 경호원들을 제압하고 박천중 회장을 납치해서 사라지기까지 소요된 시간.

    10분.

    “고작 10분 안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침입한 놈들이 몇 명이 왔는지는 파악하셨습니까?”

    “그것이…….”

    경호원들은 말을 흐렸다.

    얼굴에 벌개지기까지 하는 것이 몹시 난처해하는 기색이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건가?’

    성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머지 얘기는 형사님들한테 듣죠.”

    성진은 형사에게 다가가 더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게 현장에서 입수한 CCTV화면입니다.”

    형사의 설명과 함께 노트북에서 CCTV화면이 출력됐다.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갈고리를 던져서 기어오르는 장면이었다.

    “이 사람 말고 다른 범인은 파악됐나요?”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CCTV에 잡힌 범인 모습은 이 한 사람뿐입니다.”

    “한 사람이요?”

    “예.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범인은 한 사람만 잡혔습니다.”

    “그럴 리가요. 남아 있던 인원들은 10명이라던데요. 혹시 저 경호원들이…….”

    조작한 게 아니냐는 성진의 질문에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CCTV 데이터 자체에 조작 흔적은 없습니다.”

    “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참. 바깥에 기자들이 있던데요.”

    성진의 말에 형사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협조 공문이 내려 왔습니다. 수사 자료가 노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다행이군요.”

    그렇다 해도 완벽한 비밀은 없다.

    아마 바깥의 기자들도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자료가 정확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함부로 기사를 낼 수는 없다.

    ‘추측성 기사를 내버리면 바로 법적조치를 취하면 되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해나가는 성진에게 정장 차림의 남성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휴랜 법률사무소의 장동익 변호사입니다.”

    “예. 저한테 무슨 일이시죠?”

    “플루토 투자신탁에서 나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는 금번 경호임무를 맡은 회사의 전임 변호사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마도 경호회사에서 고용된 변호사인 모양이었다.

    “불행한 상황에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 변호사는 아마도 경호원들과 회사의 책임에 대해 합의를 하기 위해 나온 모양이었다.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서 따로 나눌 말은 아닌 거 같네요. 경호 실패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따로 묻겠습니다. 일단 저 경호원 분들도 날이 늦었으니 그만 돌아가시죠.”

    “아! 그러면 그건 회사의 뜻입니까?”

    변호사가 말하는 회사는 플루토 투자신탁이었다.

    달리 말하면 성진의 직책이 어느 정도냐는 말이었다.

    플루토 투자신탁의 입장을 대변할만한 위치인지 묻는 변호사의 말에 성진은 간단히 대답했다.

    “회사가 왜 언급되는 겁니까? 저는 박천중 회장님과 박천중 회장님의 유일한 직계비속인 박혜영 씨에게 이번 일을 위임 받았습니다.”

    “그러시다면, 혹시 명함 정도는 주실 수 있는지요.”

    “예. 그러죠.”

    성진은 자신의 이름이 박힌 명함을 변호사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연락 주시는 데로 보상 절차에 대해 논의 드리겠습니다.”

    “보상이요? 회장님께서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지금 상황에 그런 부적절한 말은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성진의 서슬에 변호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 예. 죄송합니다.”

    사과한 변호사는 몇 가지 서류를 형사에게 건네고 경호원들과 함께 조사실을 나갔다.

    성진은 직접 별장 근처를 살펴보기 위해 형사에게 문의하는 사이,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성진 군인가?

    “회장님?”

    - 아! 목소리를 낮추게.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되는 상황이야.

    성진은 주변을 살피면서 바로 복도로 나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 성진군. 내.말.잘.듣게.

    “아, 예 회장님.”

    박천중 회장의 말투에 성진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자네 지금 어디인가.

    “회장님이 납치당한 곳 근처 경찰서에 와 있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 잘 됐군. 지금 바로 내 사무실에 가서 최진곤 의원의 문서를 가져와주게.

    “최진곤 의원의 문서요?”

    -그래.

    이게 무슨 말인가.

    박천중 회장이 따로 성진에게 최진곤 의원의 문서를 가져오라고 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혹시.’

    성진의 머릿속에 박천중 회장이 처한 상황이 그려졌다.

    누군가의 협박과 위협에 처한 박천중 회장이, 자신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얻었을 것인가.

    ‘이건 적을 속이려는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성진은 바로 말을 맞췄다.

    “결국 그걸 꺼내야 하는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혼자 가죠. 언제까지 가야 합니까?”

    - 지금 바로 출발해주게. 내일 새벽 2시에 도착해야 해.

    박천중 회장은 성진이 나와야 할 위치와 함께 반드시 혼자 나와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 성진군! 꼭 나와 줘야 하네. 부탁하네.

    그 말만을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성진은 즉시 복도를 박차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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