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회: 3권 - 불시 -->
곽희태가 식사중인 고기요리점 안.
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곽희태에게 다가가자 주변에 앉아 있던 정장 차림의 덩치 큰 남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뭡니까?”
살벌한 눈초리에 위압적인 목소리.
성진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모양이었다.
‘경호원인가?’
정상적인 사설 경호업체의 직원들같지는 않다.
요즘은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도 친절과 교양을 기본으로 삼는다.
그래야 일반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 보자마자 깡패처럼 눈부터 부라리는 걸 보니 곽희태의 사적인 부하들로 보였다.
“난 곽희태씨한테 잠깐 볼 일이 있습니다.”
“뭐? 당신이 뭔데?”
성진의 말에 놈들이 더욱 험상 ㅤㄱㅜㅊ은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나름대로 위압감을 주려고 애쓰는 모양인데 성진에게는 우스울 뿐이었다.
“그건 당신들이 알 거 없습니다. 어이 곽희태씨.”
성진은 놈들을 밀치면서 바로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고기점을 입에 넣어서 우물거리던 곽희태는 성진이 보이자마자 화를 내면서 젓가락을 집어던졌다.
“야! 너희 뭐 하냐? 저거 빨랑 안 치워?”
“흥분은 잠시 가라앉히시죠.”
다음 순간 이어진 성진의 말에 곽희태는 잠시 말을 멈춰야 했다
“저는 플루토 투자신탁과 관련한 일 때문에 나왔습니다.”
“뭐?”
곽희태는 바로 눈짓을 했다.
말귀를 알아들은 부하들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주변으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신가?”
“플루토 투자신탁 인수 시도 과정에서 곽 사장님 수고가 컸다고 들었습니다.”
성진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애매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곽희태는 그런 성진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아?”
“저야 곽희태 사장님께 기회를 드리려고 온 거니까요.”
“기회?”
성진은 곽희태의 심리 상태를 계속 파악하면서 이야기를 조율했다.
- 현재 강한 호기심이 판단됩니다.
인공지능 팔찌가 지속적으로 곽희태의 심리를 파악, 보고했다.
“예. 적절한 추가 보상이랄까. 아주 이번에는 그 플루토 투자신탁을 제대로 먹어버릴 기회죠.”
“당신 어디서 왔는데?”
계속 자신을 의심하는 곽희태를 보고 성진은 계속해서 애매하게 눙쳤다.
“뭐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 곽희태로부터 플루토 투자신탁과 관련된 기억들이 사념으로 뻗어 나왔다.
- 박 사장. 이번에 일 좀 도와.
- 아, 어디서 나왔냐니. 여의도야, 여의도.
- 여의도 몰라? 아 나 이 사람 참…….
- 그러니까 그게…….
거기까지 읽어들인 성진은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
- 그 분이란 말이야, 그 분.
- 최 의원님.
문제의 최 의원에 대한 곽희태의 세부 기억까지 딸려 나왔다.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쪼록 생각 있으시면 나중에 또 뵙죠.”
“아니, 벌써 가려고? 아니 이 사람아…….”
곽희태는 성진의 이야기에 회가 동한 듯 이야기를 좀 더 끌려고 하는 눈치였다.
“이봐. 혹시 최 의원님이 나한테 실망하신 건 아니지?”
곽희태의 말에 성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 최 의원이 문제인가.’
성진은 내심을 감추면서 태연히 대답했다.
“설마요. 나중에 긴히 박사장님을 부르실 날이 올 겁니다.”
“아하. 그래?”
박 사장은 성진을 그쪽에서 온 사람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비록 완전히 의심을 푼 것은 아니니 따로 알아보겠지만 별 상관은 없다.
‘이미 알 건 다 알아냈지.’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몸을 돌렸다.
저런 악덕 사채업자를 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당장 혼을 내줄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성진은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진 않는다.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면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
어차피 곽희태 한명을 지금 당장 혼내준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곽희태는 최진곤 의원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
마주치는 벌레를 죄다 찍어 누르기에는 현재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면, 권력이 있어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당장은 박천중 회장을 위협하는 무리를 제거하는 것이 성진이 권력을 향해 다가가는 첫 걸음이 되리라.
성진은 바로 차에 올라탔다.
“사무실로 가자.”
- 알겠습니다, 마스터.
* * *
캄캄한 새벽 2시.
자택에서 나온 박천중 회장은 경호원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국도로 빠지게.”
“예. 회장님.”
경호원이 무전기로 연락하면서 앞서 달리는 검은색 미니밴이 방향을 틀었다.
미니밴을 따라 운전을 맡은 경호원이 따라 달렸다.
운전석과 보조석, 그리고 박천중 회장의 옆에 2명의 경호원이 동승했다.
거기에 앞뒤로 달리는 검은색 미니밴이 모두 경호 차량이었다.
“너무 요란한 게 아닌가 싶구만?”
“아닙니다, 회장님.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위험도나, 회장님의 신분에 따른 경호등급을 고려하면 이 정도로도 부족합니다.”
경호원들을 인솔하는 책임자 격의 경호원이 수시로 무전 보고를 받으며 대답했다.
“그래. 알겠네.”
이들은 모두 외국계 자본이 투자된 VIP 전속 경호회사의 요원들이었다.
군경 경력자 출신이 대부분인 데다 오랜 시간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천중 회장은 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국도를 타면 대략 6시간 정도 소요될 겁니다. 중간에 휴게실에서 약 3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갖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게.”
이동 계획을 들은 박천중 회장은 의자 시트에 몸을 뉘였다.
차들은 신속하게 서울 도심을 빠져나갔다.
그 뒤편으로 낡은 구형 승용차 한 대가 은밀하게 따라붙고 있었다.
* * *
“최 의원이 이 사람이었구나.”
성진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현역 국회의원들의 프로필 일람과 박천중 회장의 자료를 비교해가면서 곽희태의 사념 속에서 떠오른 인물을 확인했다.
“최진곤 의원…….”
- 4선 국회의원으로, 당 내에서 상당한 세력과 인맥을 결집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지? 이 사람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나?”
- 차차기 대선 후보군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차차기 대선 후보?”
- 그렇습니다, 마스터. 때문에 최진곤 의원을 비롯한 당 내부의 5명의 차차기 대선 후보들은 ‘잠룡’이라는 은어로 통칭됩니다.
“잠룡. 잠룡이라…….”
차차기 대선 후보로 통하는 수준의 정치가라면 대단히 유력할 것이다.
성진은 최진곤 의원이 적어도 ‘머리’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는 판단이 섰다.
나머지 다른 세력들과 접촉한 의원들도 모두 최진곤 의원의 휘하에 있는 정치가들이었다.
“좋아. 최진곤이 머리라는 건가.”
성진은 다른 관련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플루토 투자신탁의 인수 공작과 관련한 인물들 중, 특히 현재 형편이 좋지 않은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들이라면 비교적 수월하겠는데?”
성진이 핑크 레터 팀을 꾸리면서 신경 쓴 점은, 어느 정도 입장이 아쉬운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스스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라면 성진의 제안에 혹할 이유가 없다.
지금 보고 있는 사람들도 어려운 입장 상 불만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좋아. 바로 이 사람들 현재 거취를 파악해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즉시 자료를 조사했다.
출력되는 사항들을 읽어 들인 성진은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 * *
“천기남, 박희균, 문휘영…….”
성진은 자신이 물색한 인물들을 모두 만나봤다.
그들의 사념을 읽어 들인 성진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최진곤 의원의 지시를 받았단 말이지?”
알면 알수록 최진곤 의원이 관여한 정도는 깊고 방대했다.
차차기 대선후보쯤 되면 이만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성진이 봐도 최진곤이 숨긴 저력은 만만치 않았다.
“차차기 대선 후보라고 하니 돈이 많이 필요한 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노리는 입장이라면 정치자금이 탐이 났을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 때문에 최진곤 의원은 결국 임자를 만났다.
“좋아. 이 양반만 해결하면 되겠어.”
성진은 일이 한결 쉬워질 것으로 판단했다.
정치가라고 해도 국민들의 선택과 지지를 받아야만 힘이 있다.
일부는 뒤로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지만 대놓고 저지르지는 못한다.
공식적으로 실태가 밝혀지고 나면 비리정치가로 낙인 찍힌 인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 행세를 할 수 없다.
결국 정보력 싸움이다.
그리고 이 정보력 싸움에서 성진은 절대적으로 우위였다.
“좋아. 이젠 다 끝났어.”
성진은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박천중 회장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