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65화 (65/185)
  • <-- 65 회: 3권 - 불시 -->

    “보스. 이번 분기에 나갈 최종 편집본입니다.”

    전진수가 핑크 레터의 최종 편집본을 인쇄해 성진에게 건넸다.

    “음. 벌써 다 됐나요?”

    “예. 이번 분기는 지난 분기에 비해 별달리 추가된 정보가 적습니다. 다만…….”

    말 끝을 흐리는 전진수를 보고 성진이 물었다.

    “다만 뭡니까?”

    “이번 분기에는 새로 추가된 정보가 적은 만큼, 기존 이용자들이 핑크 레터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하. 그런 문제라면 절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전진수는 아마도 핑크레터에 새로 추가된 정보가 없는 게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성진은 그런 걱정이 기우라고 판단했다.

    “정보지라고 늘 새로운 정보가 채워질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우리 핑크 레터를 신뢰 하느냐죠. 전진수씨는 우리 핑크레터가 현재 어떤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성진의 말을 들은 전진수는 바로 성진이 발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하긴. 핑크 레터의 신뢰성이야 이미 최고 수준이니 같은 정보를 재확인 하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에게는 가치가 충분할 겁니다.”

    “예. 설사 정말로 선호도가 감소한다 해도 핑크레터의 시장 영향력은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보스.”

    전진수는 바로 수긍했다.

    그런 전진수 앞에서 간단히 내용을 훑어본 성진은 곧 자신이 강조하거나, 생략하라고 지시한 내용들이 모두 적절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됐네요. 이 정도면. 이번 분기에 바로 내십시오.”

    “아니, 벌써 확인을 마치신 겁니까?”

    “예. 어차피 제가 익히 아는 내용들이니까요.”

    “대단하십니다. 보스.”

    분량이 상당한데 순식간에 확인을 마친 성진을 보고 전진수는 감탄의 표시를 했다.

    “대단하긴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분기는 이걸로 푸시고, 다음 소스 드릴 때까지 쉬세요.”

    “예.”

    성진에게 편집본을 돌려받는 전진수는 깎듯이 예의를 취했다.

    어린 나이인 성진을 상사대접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팀원들 모두 성진에게 존대하는 것에 불편해하지 않았다.

    이 팀 자체가 애시당초 성진이 없어서는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성진은 자신이 팀원들에게 상사로 뚜렷이 각인되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지나치게 친근하게도, 너무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손짓,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위압적이거나 불쾌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리더로서 신뢰감을 갖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온 성진이었다.

    ‘내 나이가 어리니 겉으로라도 믿음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신경을 써줘야지.’

    성진은 팀원들 전부가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거나, 깊이 존경하게끔 하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은연중 성진의 지시에 거부감을 갖거나 불쾌해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조직에서 중대한 하극상이 벌어지면 그건 결국 리더의 책임이기도 하다.’

    작은 조직을 먼저 운영해 나가면서 성진은 자신이 추구하는 리더십을 실험해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최종 편집본을 승인하고 성진은 다시 하던 일에 마저 집중했다.

    인공지능 팔찌가 수집하던 놈들의 계좌추적 정보는 물론, 플루토 투자신탁의 인수 공작에 직접 대리인으로 나선 인물들의 근황까지 모두 조사가 이루어졌다.

    ‘좋아. 이 정도면 시작해볼만 한데.’

    수집된 자료들의 면면을 검토한 성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마워. 수고했어.’

    - 감사합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의 정보수집이 정확한가 싶어 몇 번씩 중복 확인을 해봐도 자료는 정확했다.

    ‘좋아. 이걸 인쇄해줘.’

    - 예. 마스터.

    무선 프린터에서 다시 자료가 출력됐다. 자료를 모두 챙겨든 성진은 바로 집무실 문을 열었다.

    “전 나갑니다. 모두들 편하실 때 퇴근하세요.”

    성진이 집무실에서 나오자 다른 팀원들이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보스.”

    “예. 수고하십시오.”

    사무실을 나온 성진은 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플루토 투자신탁으로 가자.”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가 운전하는 성진의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   *   *

    박천중 회장은 성진이 가지고 온 자료를 찬찬히 살펴봤다.

    “으음…….”

    짧은 탄식을 연신 흘리던 박천중 회장은 마침내 자료를 모두 읽고 탁자 위에 던지듯 자료를 놨다.

    그는 긴 한숨과 함께 소파에 파묻히듯 기댔다.

    “이제 거의 다 찾아낸 모양이군.”

    “예. 관련자들의 거취 또한 알아냈으니 제가 직접 움직일 생각입니다.”

    “자네가 직접?”

    박천중 회장의 눈길이 성진을 향했다.

    “예. 이제는 제가 나서야죠.”

    “아니, 그건 너무 성급하지 않나? 자네를 벌써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네.”

    박천중 회장은 성진이 직접 나선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직접 움직이면 필시 놈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야.”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 나름대로 준비도 해뒀으니까요.”

    “흐음…….”

    성진이 고집을 피우자 박천중 회장은 한숨만 흘릴 뿐 더는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저는 회장님이 걱정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은 돌볼 수 있지만 회장님이 위험에 처하시면 달리 도리가 없을 거 같습니다.”

    “나 말인가? 그래. 자네 말이 일리가 있어. 사실 그렇지 않아도 혜영이를 미리 외국으로 보내놨다네.”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성진은 혜영이 국내에 없다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인 박천중 회장의 거취가 문제였다.

    “회장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나도 몸을 숨길 생각일세. 이제 우리가 반격을 시작하면 놈들이 날 가만두지 않겠지.”

    박천중 회장은 이미 각오를 굳힌 상태였다.

    “시골에 별장이 하나 있네.”

    “별장이요?”

    성진은 웬지 탐탁하지 않았다.

    “국내에 머무르시는 건 위험합니다. 그 별장의 위치를 놈들이 모르겠습니까?”

    “모를 걸세. 내가 아주 비밀리에 마련한 곳이니까. 비상시에 은신처로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곳일세.”

    박천중 회장은 별장의 보안을 자신하는 눈치였다.

    “더군다나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서 내가 해외로 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도망친다는 뜻이야. 내 싸움에서 자네만 남겨두고 내가 도망을 가버릴 수는 없지.”

    “후우…….”

    성진은 한숨을 쉬었다.

    거기까지 말하니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뜻을 말릴 수 없었다.

    이미 박천중 회장은 국내에 남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예.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대신 불의의 사태가 생기면 꼭 저에게 연락을 취하셔야 합니다.”

    “허허. 걱정 말게. 확실히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둔 은신처니까.”

    “예. 회장님이 자신하신다면 확실하겠지요.”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바에야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박천중 회장은 뚜렷한 자신감까지 보이고 있었다.

    성진이 이런 부분을 간섭해서 감정적으로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꼭 조심하십시오.”

    “그래. 나는 오히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게 자네한테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회장님.”

    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성진에게는 차라리 박천중 회장이 안전한 곳에 숨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조만간 제가 어느 정도 상황을 호전시키고 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매번 말하지만 난 자네만 믿네.”

    박천중 회장은 성진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   *

    곽희태는 사채업자 출신의 악명 높은 대부업체 대표였다.

    그는 금융권 구분에 따르면 제2금융권의 소비자금융 업체 대표였지만 그의 회사는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소비자금융 회사가 아니었다.

    불법적인 빚 독촉은 기본.

    대출계약시 조건을 애매하게 설명해서 속이거나, 불필요한 이자를 감당하게 하는 수법 등이었다.

    사리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애시당초 걸려들지 않거나, 중간에 위법성을 판단해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지만 그들이 목표하는 건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려운 서민들이다.

    결국 눈덩이처럼 쌓여버린 커다란 이자에 어쩔 줄 모르고 노예처럼 뜯기다보면 생활은 망가지고 삶의 이유마저 사라진다.

    그런 상태까지로 떨어진 상태에서 빚이 남아있으면 더 악랄한 짓을 한다.

    남아있는 채권을 그보다 더 아랫단계의 소규모 사채업자들에게 채권을 넘겨버리거나 헐값에 쪼개 파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을 때까지 빚의 노예로 살게 하는 것.

    그런 곽희태의 내력을 대충 살펴본 성진은 기가 막혔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플루토 투자신탁의 인수자 명단에 끼어 들었길래 직접 살펴봤는데 아주 가관이다.

    이런 몹쓸 군상까지 써먹은 걸 보면 결코 중요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역시 직접 뛰어들게 한 대리인은 얼굴 마담에 불과한 건가.’

    직접 나서게 한 인물인 만큼 어느 정도 수준이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악질 대부업체 사업주인 곽희태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는 힘들 듯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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