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64화 (6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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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여행준비를 시작한 성진은 영국여행에서 잘 걸릴 수 있는 풍토병 등이나 현지에서 곧잘 할 수 있는 실수 등을 따로 정리해서 출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당히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조사한 바로도 부모님만을 보내드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영국에 도착하면 입국카드를 써야 하는데 부모님이 영어로 입국카드를 원활히 쓰기는 힘들다.

    잘못 쓰게 된다면 바로 입국거부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구속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흠. 역시 가이드가 직접 따라붙어야 하겠는데.”

    고민 끝에 성진은 비교적 대형 여행사인 홍세관광에 전화를 걸었다.

    예, 홍세관광입니다.

    “영국 여행을 준비중인데요. 혹시 가이드 한명 구할 수 있을까요?”

    아. 가이드요? 손님 그러시다면 저희 여행코스를 이용하시면…….

    “아니요. 여행은 따로 준비해서 가는데, 현지사정을 잘 아는 전담 가이드가 한 명 필요해서요.”

    현지에 사는 전담 가이드라면…… 음…….

    직원의 고민이 길어지자 성진은 대충 안 된다는 것으로 짐작했다.

    “안 되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코스와 관련 없이 자유로운 개별적 여행을 위해 가이드를 구하시는 거라면 영업방침 외의 서비스라 제공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하던 장사와 맞지 않으니 따로 가이드를 중개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성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하긴. 괜히 여행사하고 계약하면 쓸데없이 흔적만 생기지.”

    나중에 놈들이 성진의 부모님을 해코지하려 든다면 필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보려 들 것이다.

    “그렇다고 가이드를 안 구할 수는 없고…….”

    잠시 생각한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현재 여행사 DB를 포함해서 공신력 있는 가이드 신원을 파악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러자 인공지능 팔찌가 곧바로 무더기로 자료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성진은 화면 가득 채운 현직 가이드들의 신원을 조사하면서, 신용 상태는 물론 평판과 전과 기록여부까지 조사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부모님을 몇 달 동안이나 맡겨야 할 사람인데 아무나 쓸 수는 없다.

    성진은 남에게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끼치는 선이 아니라면, 적어도 가족과 자신을 지키는 데는 능력을 아낌없이 상요할 생각이었다.

    결국 몇 가지 인물들을 추린 성진은 선정한 가이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안녕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가이드를 구해서 연락드렸는데요. 지인을 통해서 번호를 알게 되어가지고 전화 드렸습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여행사를 통한 접근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탐탁치 않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흐음. 이것도 쉽지 않네.”

    간혹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사람도 두 달을 개인 가이드를 해달라는 요구에는 난색을 표했다.

    “흐흐. 될 때까지 해 봐야지.”

    결국 성진은 수 십 번을 더 전화를 걸고 나서야 조건을 수락하는 가이드를 찾을 수 있었다.

    정말 가이드 비용은 한 달에 350만원이죠?

    “예, 물론입니다. 체류비용은 물론이고, 기타 잡비 모두 제가 부담합니다. 두 분 모두 점잖은 분들이니까 크게 불편하신 점도 없을 겁니다.”

    음. 좋습니다. 만나서 계약하죠.

    기어이 가이드를 찾아낸 성진은 당일로 카페에서 만나 계약을 했다.

    가이드는 30대 후반의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는데,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폼 하며 깐깐한 태도가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 보이는 듯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성진이라고 합니다.”

    “네. 최인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개인 가이드는 자주 해보셨나요?”

    “그럼요. 요즘은 자유여행 개인가이드들도  은근히 있죠. 물론 비용이 상당하지만요. 아! 참고로 크게 비싸게 잡은 거 아니에요. 저도 두 달을 내내 일하면서 두 사람을 책임진다는 건 각오가 필요한 일이니까요.”“예. 뭐 저도 그 정도 비용은 감당하겠습니다.”

    성진은 웬만한 선의 조건이라면 모두 수용해줄 생각이었다.

    가이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대신, 반드시 서비스의 질은 물론이고 안전을 우선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지불한 비용만큼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니까요.”

    “예. 그럼요. 저도 프로입니다. 받은 만큼 일하는 건 당연한 거죠.”

    여자는 성진의 말에 바로 긍정했다.

    그 와중에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대사 스캔과 뇌파 해석을 통해 여자의 마음이 진심인지를 판별했다.

    혈류량, 안면 근육 움직임 및 기타 감정 징후 모두 변동 없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일은 제대로 할 거 같군.’

    괜찮은 사람을 고른 것 같다는 판단에 성진은 기분 좋게 계약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모님께는 제가 남이 계약한 여행 건수를 대신 싸게 얻어서 보내드리는 걸로 말씀드려서요. 그 점 잘 부탁드립니다.”

    “호호. 부모님께서 절약정신이 강하신가 보네요.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보이시지는 않는데.”

    “예. 뭐 원체 당신들을 위해서 돈 쓰는 건 꺼리시는 분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부모님을 여행 보내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좀 소홀했었나.’

    어려운 형편에 남매를 길러온 부모님들이시다.

    해외 여행은 커녕 국내 여행도 제대로 다니신 적이 없었다.

    “음. 뭐 앞으로 종종 자주 여행을 보내드릴 생각입니다.”

    “그래요. 잘 생각하셨네요. 아무튼 전 말씀하신 출발 예정일에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계약을 마친 성진은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를 나왔다.

    *   *   *

    “잘 놀다 오세요.”

    “그래. 성진이 너도 밥 잘 챙겨먹고.”

    “그럼요 어머니.”

    “참. 너 가게 잘 챙겨야 한다. 마침 휴가도 받았다니 다행이구나.”

    아버지, 어머니는 성진이 휴가를 받았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계셨다.

    “그럼요. 당연하죠. 아버지 아들이 가게 잘 지키겠습니다.”

    “그래. 믿는다, 성진아.”

    “예, 아버지.”

    사실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성진은 기존에 일하던 직원들이나 주방장에게 일을 위임할 생각이었다.

    몇 달 동안 일하면서 직원들도 많이 능숙해졌고 가게에서 지불하는 월급이 후한 편이라 특별한 불만도 없었다.

    ‘돈 계산을 맡기로 한 계산직원한테는 나노 로봇을 심어뒀고.’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데는 그 무엇보다 탁월한 나노 로봇이다.

    만약 수작을 부린다면 성진은 얼마든지 간파해낼 방법이 있었다.

    “저만 믿으시고 잘 부탁드려요. 참, 저기 가이드 분이 오시네요.”

    성진이 가리킨 곳에 감색 코트를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가이드는 성진의 부모님께 특유의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빙긋 웃더니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저는 이제부터 두 달 정도 어머님, 아버님을 가이드하게 될 겁니다. 최인희라고 합니다.”

    “아 예. 잘 부탁해요.”

    부모님도 가이드에게 마주 인사하셨다.

    서로간의 인사가 오가고 간단한 준비물을 점검하는 사이 드디어 출국시간이 다가왔다.

    “성진아, 갔다 온다.”

    “우리 아들내미 몸 잘 챙겨라. 알았지?”

    “예. 안녕히들 다녀오세요.”

    성진은 출국 게이트로 부모님이 사라지실 때까지 지켜봤다.

    “음. 이제는 성희뿐인가.”

    성희는 학교와 기숙사라는 폐쇄적인 생활을 하니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됐다.

    경찰서와 불과 20분 거리에 위치한 학교인지라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책은 심어뒀지.’

    성진은 기숙사로 면회를 가 성희의 몸속에 나노 로봇을 심어둔 지 한참이었다.

    몸속에 극도의 공포심이나 심리적 긴장, 혹은 수면을 제외한 부자연스런 의식 상실 등이 발생할 때 자동으로 특수 파장을 발산하도록 했다.

    혹시 몰라 부모님의 몸속에도 나노 로봇을 심어뒀지만 안전한 해외에 계시는 만큼 큰일은 없을 것이다.

    “성희보고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으니.”

    이제 대입을 앞둔 여동생의 인생을 뒤흔들 수는 없는 일이니 성진 나름대로 최선의 수를 쓴 셈이었다.

    대신 나노 로봇의 혜택도 있었다.

    아마 성희는 공부를 하면서 집중력 촉진이나 기억력 강화 등의 소소한 성과를 얻었을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됐다.’

    성진은 가족들의 주변을 완전히 정리한 상황이 홀가분했다.

    이제 남은 두 달 동안 놈들의 정체를 완전히 밝혀내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본격적인 싸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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