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63화 (63/185)
  • <-- 63 회: 3권 - 주변 정리 -->

    *   *   *

    “이제 들어오니?”

    현관을 들어오자마자 어머니가 외투를 받아주셨다.

    “예. 요즘 일이 좀 많아서요.”

    “그래 기왕 휴학했으니까 열심히 해라.”

    신뢰가 가득 담긴 말씀이다.

    어머니의 응원 섞인 말만 들어도 성진은 힘이 났다.

    “예. 그럼요. 참, 아버지 방에 계세요?”

    “어. 안에 계셔.”

    “잘 됐네요. 드릴 말씀 있는데.”

    “아니 또 무슨 말인데?”

    “좋은 거예요. 일단 방에 들어가서 말씀 드릴게요.”

    “좋은 거?”

    “예.”

    그간 성진이 말씀드릴 게 있다고 할 때마다 워낙 벌여놓은 일들이 많다보니 어머니는 단박에 기대 반 불안 반이시다.

    “아유 얘, 안 좋은 일이면 엄마가 확 성질낼 거다?”

    “에이, 울 어머니 참…….”

    성진이 어머니 옆에 붙어 사근사근 애교를 떨었다.

    “제가 언제 실망시켜 드린 적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심드렁하게 대답하시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짓는 어머니시다.

    성진은 그런 어머니를 슬금슬금 밀면서 방 안으로 모셨다.

    “아버지. 저 왔어요.”

    “어, 성진아 잘 왔다. 이 아버지 블로그 추천수가 일만을 넘었다. 허허.”

    “아니, 벌써요?”

    성진이 인터넷 사용법을 알려드린 지가 불과 몇 달 전인데 아버지는 벌써 블로그 관리에 재미가 들리신 모양이었다.

    대신 어머니는 심통을 부리셨다.

    “아이구, 말도 마라. 이 양반이 요즘 아주 이 블로그인가 뭔가에 정신 팔리셔가지고 이 엄마는 뒷전이다, 뒷전.”

    “허허, 우리 마나님이 뒷전이라니 그럴 리가 있나.”

    아버지가 뒤늦게 어머니를 달래려 하셨지만 어머니는 계속 토라진 체를 하실 뿐이었다.

    “흥. 이제 와서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거 같아요?”

    “이 사람아, 또 왜 그래? 내가 블로그가 아무리 좋아도 당신만큼 좋을 수가 있나.”

    두 분 부모님의 사랑싸움을 지켜보던 성진은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저 아버지, 어머니.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시는 게 어떨까요?”

    “응? 여행?”

    “어머니의 물음에 성진이 바로 대답했다.

    “예. 한 두 달 정도 일정으로 잡아놓은 여행 일정이 있는데요. 원래는 다른 사람이 가기로 한 건데 취소를 한다네요. 가이드도 따라붙어서 편하게 여행 다니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어머니는 영 탐탁치않아 하시는 표정이셨다.

    “얘, 해외여행 가면 돈 많이 써야 하는 거 아니냐?”

    “하핫.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하는 건 아니에요.”

    역시 이래나 저래나 어머니는 돈이 문제이신 모양이었다.

    성진 덕에 가게도 얻고, 큰 집으로 이사를 와도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문제에 대해 항상 인색하셨다.

    아직도 그런 마음은 통 변하질 않으신 모양이었다.

    “나는 됐다. 그런 건 뭐 젊을 때나 가는 거지.”

    “에이, 젊을 때라뇨. 지금이나 젊을 때나 뭐가 달라요.”

    대신 이번에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성진아 두 달 일정이나 되면 가게는 누가 보냐?”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가게가 걱정이신 모양이었다.

    “가게는 제가 보겠습니다.”

    “이제 회사 취업했다는 애가 가게를 돌봐?”

    어머니는 표정을 찌푸리셨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성진이 예상한 바였다.

    “에이, 이번에 일 끝나면요 저 휴가에요. 두 달 동안.”

    “아니, 두 달 동안이나 휴가 보내는 회사가 어딨어? 너 혹시 잘린 거냐?”

    “잘리다뇨.”

    성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뭘 말이냐?”

    성진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파일을 출력했다.

    바로 다름 아닌 박천중 회장과 방금 찍어온 따끈따끈한 사진이었다.

    “응? 이 양반은 누구길래 우리 아들이랑 사진을 찍었누?”

    “예. 저희 회장님이세요.”

    “회장…… 뭐?”

    “회, 회장님이라고?”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아니 회장님하고 사진을 찍었단 말이냐?”

    “우리 아들이 회장님하고 사진을 찍어?”

    “예. 방금 찍은 거예요. 여기 사진 보시면 찍은 날짜가 보이시죠?”

    부모님께 보여드린 촬영 날짜는 바로 오늘.

    시간은 불과 몇 시간 전.

    이쯤 되니 부모님의 표정에 미묘한 웃음기가 어렸다.

    “정말 이거 너희 회장님 맞냐?”

    “예. 그럼요.”

    “정말이야?”

    아버지도 웃으시면서도 뭔가 반신반의하시는 표정이시다.

    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아 참. 이거 저희 회사 홍보 자료에요.”

    성진은 내친김에 미리 준비해 둔 회사 홍보 프린트까지 부모님 앞에 보여드렸다.

    회사 홍보 프린트 바로 앞장에 인쇄된 박천중 회장의 얼굴 사진이 보였다.

    사진 속 얼굴과 성진의 휴대폰 속 얼굴을 번갈아 보며 대조해보시던 부모님의 표정이 금방 화색이 되셨다.

    “아이고, 세상에!”

    어머니는 손뼉을 짝 소리가 나도록 치셨다.

    “세상에나! 세상에 우리 아들이! 아이고…….”

    어머니는 순간 흥분하신 나머지 연달아 손뼉을 치대셨다.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시며 성진에게 말씀하셨다.

    “성진아! 회장님하고 어떻게 사진을 찍은 거야?”

    “예에, 제가 회장님하고 좀 가까운 부서에서 일합니다.”

    슬슬 거짓말을 시작하려니 마음이 찔리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성진도 능숙해졌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칭찬을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같이 사진 한번 찍어주신 거예요.”

    이제는 현란하게 살을 붙여대니 부모님은 그저 껌뻑 속아 넘어가시면서 웃으실 뿐이었다.

    “그래! 역시 우리 아들내미다.”

    “잘 했다 성진아. 그래. 남자는 열심히 일을 하는 거야.”

    아버지는 성진의 어깨를 다독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셨다.

    “오늘이 정말 기쁜 날이다. 우리 아들이 직장에서 인정받았으니까 앞으로 정말 걱정 없다.”

    “에이, 아버지도 참. 이 정도로 뭘 그렇게 기뻐하세요.”

    “아니, 이게 기뻐하지 않을 일이 아니면 뭘 가지고 기뻐하냐? 회장님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데.”

    아버지는 마냥 기뻐하셨다.

    어머니도 연신 손뼉을 치시더니 성진을 껴안으셨다.

    “아이고, 우리 아들내미. 장하다 장해.”

    “에이, 울 어머니도 참.”

    성진은 그런 어머니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지면서 웃음을 지었다.

    ‘흐흐., 역시 사진 찍어오길 잘했다.’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난감했는데 순간 박천중 회장과 사진을 찍어갈 것이 생각났다.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부모님께는 이게 가장 효과가 좋은 최적의 수였던 모양이다.

    “회장님한테 직접 일 잘한다고 칭찬 들었으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아버지는 성진에게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고 당부를 내리셨다.

    “그럼요. 열심히 해야죠.”

    “아이고 우리 아들내미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엄마는 그저 대견하고 장하다.”

    “예. 제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그래. 장해. 우리 아들 정말 장하다.”

    어머니는 연신 고개만 끄덕이실 뿐이었다.

    “저 아버지, 어머니. 그러면 이제 여행…… 가실 거죠?”

    “으응?”

    그 말에 어머니는 얼굴을 긁적거리시며 말을 흐리셨다.

    “그거 돈은 얼마나 드는 거니?”

    “에이, 어머니이이.”

    성진은 다시 애교를 부리며 어머니를 안았다.

    성진의 애교에 어머니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뭐 까짓거. 우리 아들내미가 여행 좀 가달라는데 가줘야지.”

    “그럼 허락하신 거죠?”

    “그래, 그래.”

    성진은 잽싸게 아버지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버지두요?”

    “으음…… 나는 가게를…….”

    그 말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째림을 받으셔야 했다.

    “당신은 나보다 가게가 더 소중해요?”

    “아이고 참. 아니 그게 아니라…….”

    아버지도 어머니 앞에 결국 어쩔 도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실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가야지. 응.”

    “호호. 그러면 이제 채비해야겠네.”

    어머니의 결론에 일사천리로 결정되는 모습을 보니 성진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역시 우리 집 최고 권력자는 어머니라니까.’

    그런 성진을 보면서 아버지가 눈짓으로 눈치를 주셨다.

    ‘성진아. 그런데 정말 가게는 어쩌려고 그러냐.’

    성진도 눈짓으로 속마음을 표현했다.

    ‘아버지. 가게는 제가 알아서 잘 돌볼께요.’

    결국 아버지는 어쩔 도리 없이 한숨을 한번 쉬실 뿐이었다.

    “으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성진은 속으로 말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별안간 두 분께 여행을, 그것도 해외여행을 보내드리려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제 놈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건 시간문제다.

    맞붙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혹시라도 성진이 놈들에게 노출되면 여러 모로 곤란해진다.

    그때 가장 난처해지는 것은 가족들의 안전 문제였다.

    “여행지는 어디니?”

    “예. 영국입니다.”

    성진이 여행지를 영국으로 잡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무비자 협정을 맺어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다면 관광비자만으로 최대 6개월을 체류할 수 있었다.

    “영국? 영국이라…….”

    어머니도 다행히 만족하시는 눈치셨다.

    “영국 정도면 뭐 선진국이고 볼 것도 많겠지.”

    아버지도 수긍하셨다.

    “다행이네요. 뭐 영국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곳으로 바꿀 수 있나 알아볼게요.”

    “아니야. 영국도 괜찮아. 기왕이면 좀 잘 사는 나라 가는 게 편하겠지.”

    “예. 그러면 가시는 걸로 알고 그렇게 말해둘게요.”

    “그런데 정말 돈은 얼마 드는 거야?”

    어머니는 끝내 돈 문제가 걸리시는 눈치셨다.

    “돈 얼마 안 드니까 걱정 마시구요. 나머지 문제는 제가 알아서 준비할게요. 참. 그러면 가서 입으실 옷이라도 사가야죠?”

    “아이고, 옷은 얘, 됐다. 꼭 필요한 거나 준비해 가야지.”

    “괜찮아요. 한 두 벌 사 입으세요.”

    “됐다니까 그런다. 참, 언제 가는 거니?”

    “예. 아마 다음 주 쯤이요?”

    “그렇게 빨리?”

    “그 안에 제가 준비 잘 해놓을게요.”

    “흐음. 그래 뭐 알았다.”

    어머니의 만류에 성진은 결국 옷을 사드리는 건 포기하고 다른 여행준비를 알아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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