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62화 (62/185)

<-- 62 회: 3권 - 주변 정리 -->

한동안 성진은 계속해서 자금 출처를 조사했다.

‘큰돈은 흔적 없이 움직이기 힘들다.’

웬만한 일이라면 아무런 흔적 없는 불법 자금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초대형 증권사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대충 드러나는 동원 액수만 수천억을 상회하는데 이런 자금을 지하경제에서 퍼 올리려면 어지간한 대가로는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건 어느 정도지?”

현재 동원된 자금 중 출처가 확실히 파악된 규모는 약 삼천칠백억원입니다.

그 중 약 천 백 억원이 라모건설, 이 천 억원 규모가 진관식품에서 지원한 자금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라모건설과 진관식품?”

예, 그렇습니다. 마스터.

현재 이 회사 모두 각각 정치권 인물들과 상당히 친밀한 것으로 판단중입니다.

“한 군데가 아니라 벌써 두 군데가 정치권과 친하다고?”

일이 생각보다 커질 것 같다.

하나도 아니고 다수가 정치권 인사와  얽혀  있다니.

 딱  하나  있다면  정치자금을  마련하러  어설프게  끼어든  걸  수도  있지만,  여러  정치  세력이  얽혀  있다면  의미가  다르다.

‘ 설마  박천중  회장은  이걸  예감한  건가?’

 늘  호탕하고  대범하게  행동하던  박천중  회장이  유독  그  날만은  긴장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성진이  다른  자료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날세.

박천중 회장이었다.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아픈 적도 없어. 오늘 볼 수 있나?

“예. 지금 가죠.”

그래. 회사에서 기다리겠네.

전화가 끊어지고 성진은 바로 외투를 챙겼다.

“이제야 마음을 잡은 건가?”

박천중 회장의 목소리에 떨리는 기색은 없었다.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결심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바로 인쇄해줘.”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인공지능 팔찌의 대답과 동시에 성진의 책상에 있던 프린터가 인쇄를 시작했다.

블루투스 입력이 가능한 무선 프린터였다.

자료를 모두 챙긴 성진은 바로 방을 나섰다.

“나가십니까?”

한창 편집 작업 중이던 팀원들이 방에서 나오는 성진을 보고 말했다.

“예. 잠시 일이 있어서요. 수고들 하세요.”

그 말에 세 사람 모두 살짝 눈을 빛냈지만 바로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예.”

“저는 갔다 오면 늦을 거 같으니까 다들 일 끝나면 퇴근하시기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웃으며 대답하는 팀원들을 뒤로 하고 성진은 사무실을 나섰다.

*   *   *

“내가 잠깐 못난 꼴을 보였어.”

그 말로 박천중 회장은 스스로 흔들리던 자신을 인정했다.

“아닙니다.”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여태까지 맞서신 건 순전히 회장님의 힘 아닙니까.”

“허허. 쓸데없이 칭찬은. 아무튼 내 순간 마음 약해지는 게 어쩔 수 없더군. 나도 늙었나보이.”

재계의 거물이 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성진 앞에서만은 나약한 내면을 스스럼없이 보였다.

“늙으시다뇨. 아직 한참 정정하십니다.”

성진에게는 그런 박천중 회장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그와 거리를 좁히는 게 좋았다.

“이 나이쯤 되니까 가장 걱정되는 게 내 가족이야. 앞서 보낸 내 마누라랑, 혜영이 생각이 먼저 나더군.”

“예.”

“혜영이는 얼마 뒤에 출국시킬 생각이야. 아무래도 계속 이 나라에 두기는 너무 불안하구만.”

성진이 보는 혜영은 내면이 단단한 여자였지만 여자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성진이 생각해도 좋지 않았다.

“제 생각에도 그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성진도 가족 생각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조만간 나도 주변을 생각해야겠는데…….’

성진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박천중 회장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지속적으로 내 곁에 있으면 조만간 노출 될 수도 있어.

“예. 저도 미리 준비를 해 둬야죠.”

그 뒤로 몇 마디 말이 더 오갔다.

성진은 바로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박천중 회장에게 건넸다.

“조금 더 세부적인 보강 자료입니다.”

“음…… 벌써 여기까지 조사를 했나.”

자료를 넘겨 읽는 박천중 회장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다만 전과 같이 큰 동요를 보이지는 않았다.

“허헛. 보면 볼수록 신기하구만. 자네 대체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어오는 겐가.”

“죄송하지만 거기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진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거기에는 단호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박천중 회장은 그런 성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가 괜히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구만.”

“죄송합니다, 회장님. 나중에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면 회장님께 다 말씀드릴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진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위치가 되면.

그리고 그때까지 박천중 회장이 성진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 사실을 말해줄 수도 있으리라.

박천중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네.”

그 뒤로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라고 해서 더 이상의 호기심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가 성진에게서 받은 인상은 능력만큼 자존심도 그만큼 있다는 점이었다.

‘굳이 비밀을 들춰낼 필요는 없지.’

그는 진퇴의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편 그런 박천중 회장의 생각을 성진은 사념 해석으로 대충 읽어 들이고 있었다.

‘후우. 딴 생각은 없는 거 같군.’

박천중 회장이 알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성진은 가족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박천중 회장과 함께해 온 시간이 너무 짧다.

사념해석이라 아주 정확한 생각을 읽어낼 수는 없지만 감정적인 본질을 읽어 들일 수는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가 들춰내려 한다면 성진이 취할 행동은 하나뿐이다.

‘누구라도 용납할 수는 없지.’

지금까지 성진이 발휘하는 능력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이 박천중 회장이다.

그런 만큼, 성진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강하게 품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다.

순간 긴장한 나머지 성진은 좀처럼 쓰지 않던 사념 해석을 박천중 회장에게 사용해버렸다.

‘후우. 이런 건 자주 써서는 안 되는데…….’

성진은 남의 생각을 함부로 읽어 들이는 것에 굉장히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대로 남의 생각을 읽으면 당장은 편해도 결국은 인간관계에 임하는 성진 자신의 태도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정말 중요한 시기에만 써야한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와 자신의 강화된 육체를 통해 얻어낸 능력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다.

누구도 아닌 바로 성진 자신을 위해서.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게나.”

“예. 그럼 조심하십시오, 회장님.”

“그래. 잘 가게.”

가볍게 목례한 성진은 회장실 문을 열려다 바로 뒤돌아섰다.

“참! 회장님.”

“음? 왜 그러나.”

“저,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부탁인데?”

“별 건 아닙니다. 사진 한 번만 같이 찍어 주십시오.”

“사진?”

고개를 갸웃거리는 회장을 보면서 성진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가 휴대폰을 꺼냈다.

“저, 회장님 웃어 주십시오.”

“음? 그게 무슨……?”

성진이 휴대폰으로 셀프카메라 모드를 작동시키자 어색하게 웃는 회장과 성진의 모습이 화면에 잡았다.

“김치이~”

“기, 김치이…….”

찰칵!

“예,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뭔가? 그걸로 된 건가……?”

“예. 사진 아주 잘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흠, 흐음…… 그래.”

웃으며 회장실을 나가는 성진을 보고 혼자 남은 박천중 회장은 허허롭게 웃었다.

“허허, 저 친구도 보기보다 엉뚱한 구석이 있구만. 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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