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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60화 (6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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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왁자한 갈비집으로 간 성진 일행은 주변이 칸막이에 둘러쳐진 좌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드시고 싶었던 메뉴로 왕창 시키세요. 고기는 무조건 왕창 먹자가 제 신조입니다. 하핫.”

    성진의 농담에 다른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예. 보스 말대로 아주 왕창 먹어보겠습니다.”

    “저도 고기 좋아하는데 오늘 보스 지갑이 위험하겠는데요?”

    “고기 좋아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진만 변호사까지 덩달아 분위기를 맞췄다.

    “예. 마음껏 실컷 드십시오.”

    성진은 웃으면서 메뉴를 주문했다.

    다른 팀원들이 고갈비나 차돌박이 육회 등을 주문했고, 곧 푸짐한 고기들이 딸려 나왔다.

    “실컷 먹어 봅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한창 고기를 굽고, 입안에 넣다보니 어느새 배가 슬슬 불러왔다.

    배가 늘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익자 성진은 슬슬 운을 뗐다.

    “많이들 드신 거 같은데 그럼 이제 슬슬 목이나 축이러 나갈까요?”

    밥을 먹어서 배를 채웠으니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였다.

    “예. 그래야죠.”

    팀원들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진이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성진을 따라 나온 팀원들 중 박윤호가 먼저 나섰다.

    “목 축이는 데는 맥주가 제일이죠. 이 근처에 제대로 된 맥주집을 제가 하나 압니다.”

    “오, 그런가요? 그럼 거기로 가죠.”

    성진의 동의에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박윤호가 안내한 곳은 의외로 한적한 주점이었다.

    여의도 상가 골목길에서도 상당히 후미진 곳에 위치한 주점인지라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손님들이 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간이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가게에서 나이 든 중년의 남자 주인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행이 들어가자 그가 알은체를 했다.

    “아, 오셨습니까.”

    박윤호가 인사를 받았다.

    “예. 아일랜드산 맥주 있죠?”

    “예, 아직 남아있습니다.”

    “다른 맥주도 생맥주로 몇 병 챙겨주세요.”

    “예.”

    박윤호는 몇 번 가게에 왔는지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다.

    성진이 주변을 둘러보니 해외 유명 맥주들이 술병 보관함에 그득했다.

    “해외 맥주를 취급하는 가게인가 보죠?”

    “아 예. 여기 주인이 아주 맥주를 잘 압니다. 맛도 있고,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맥주들을 주로 취급해서요. 은근히 인기가 있습니다.”

    전진수가 웃으며 말했다.

    “여의도가 이런 분위기 멋진 맥주집이 있는 줄 몰랐네요.”

    “저도 이런 곳은 처음 와봅니다.”

    윤진만 변호사도 맥주 맛이 기대되는 모양인지 입맛을 다셨다.

    “다들 만족하실 겁니다. 아주 괜찮은 맥주가 많습니다.”

     박윤호의 호언장담에 성진도 웃으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럼 시원한 생맥주 마시면서 얘기 나눠볼까요?”

    “예.”

    곧 주인이 맥주와 함께 안주를 섞어 내왔다.

    술잔이 몇 번 돌면서 특이한 맥주 맛에 감탄하는 말이 몇 번 오고가자 드디어 성진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오늘 제가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겠다고 했죠?”

    성진의 말에 팀원들 모두 표정을 굳혔다.

    성진이 웃으면서 애써 분위기를 풀려 했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지 마세요. 편하게 얘기하자고 이런 자리를 잡은 거니까요.”

    “예.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박윤호가 성진의 말에 바로 표정을 풀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무한정 솔직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그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저희도 곤란한 질문까지 퍼부을 만큼 분별없지는 않습니다.”

    전진수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저도 그렇습니다. 곤란한 부분까지 질문할 수는 없죠.”

    윤진만 변호사도 동의했다.

    “그럼 이제 질문을 받죠. 박윤호씨?”

    “아, 예.”

    박윤호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곧 입을 열었다.

    “먼저 제가 궁금한 건, 우리…… 가 가진 정보의 정확성입니다.”

    핑크 레터라고 말을 꺼내려던 박윤호는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을 생각해서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슨 뜻으로 말을 하려는 지는 명백했다.

    “제가 드리는 정보가 좀 정확한 편이죠?”

    성진은 웃으며 말했다.

    “예. 사실은 좀 정확한 편이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엄청난 정보들이죠.”

    성진이 핑크 레터를 통해 여의도 증권가나 다른 대기업 정보 담당자들에게 뿌린 정보의 질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사실 그런 정보들을 무한정 공개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공개되는 정보의 양을 지극히 한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핑크 레터를 ‘무시무시한 수준의 정보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그런 정보들을 대체 어디서 얻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정보의 양을 채우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정보의 정확성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

    뛰어난 수준의 정보들을 계속해서, 연달아 가져오는 성진의 정체가 궁금한 박윤호였다.

    “일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정보를 구해오는 창구가 따로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성진은 이들에게 온전히 진실을 나눌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한 인공지능 팔찌의 정체를 남에 불과한 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불성설.

    대신 성진은 이들이 대충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얘기해서 이야기를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그 정보의 창구가 어떤 곳인지는 말씀하실 수 없으신 거군요?”

    다시 이어지는 박윤호의 질문에 성진은 일부러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상당히 엄격한 규칙을 요구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그들의 정체를 모릅니다.”

    성진의 말에 박윤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만한 정보를 취급하고 다루는 곳이라면 아주 엄격하겠지요. 외부인에게 함부로 발설할 수 없으실 테니 이해합니다.”

    “예. 아무튼 그 곳의 정보력은 최고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일을 하면서 진행할 모든 일에는 그 곳에서 나온 정보의 도움이 클 겁니다.”

    “대단하군요. 그런 곳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럼 제가 힌트를 하나 드리죠. 혹시 딥 웹(Deep Web)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딥 웹이요?”

    “예. 단순히는 정보 검색에 드러나지 않는 사이트들을 말합니다만, 속뜻으로는 아주 은밀한 정보를 취급하는 사이트들을 뜻하죠. 간혹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세간에 불법 포르노를 유통시키는 온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핫. 혹시 야한 동영상을 구하려다 알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박윤호의 농담에 성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사실 그 딥 웹이라는 건 정말 값비싼 고급 정보들을 거래하는 몇몇의 사이트들을 감추기 위해 다수의 저질 포르노 사이트들로 자신들을 가려놓은 형태에 가깝죠.”

    “음. 그렇군요.”

    박윤호는 어느 정도 납득한 표정이었다.

    성진의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딥 웹이라는 감춰진 인터넷 세계에 고급 정보 거래 사이트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인공지능 팔찌가 암호화된 정보들을 대량으로 수신한 적이 있다.

    세계에서도 풀기 힘들다는 최고 수준의 암호화 카테고리로 압축된 정보들을 풀어놓자 그 곳에서 가끔씩 정치적, 경제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을 통해 딥 웹에 존재하는 고급 정보 거래 사이트들을 성진이 알게 되어서 변명에 써먹은 셈이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예 그럼요.”

    박윤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계통에서 오래 일을 해온 그는 이런 면에서 이해가 빨랐다.

    일반인이라면 ‘그까짓거 좀 알려주지 그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보의 엄중한 가치와 무게를 아는 그는 알 수 있는 부분과 알아서는 안 될 부분의 경계를 정확하게 긋는 사람이었다.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박윤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게 했다.

    혈류량과 안면 근육의 경직성 모두 지극히 양호합니다.

    납득, 이해의 감정 징후가 파악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제 됐고.’

    다음으로는 전진수가 손을 들었다.

    “그러면 다음은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정보는 힘입니다.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그럼 이제 그 힘으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진수는 핑크 레터가 가진 힘으로 무엇을 할 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음. 이 사람한테는 핑크레터가 중요한 모양이군.’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으로 다시 전진수의 심리를 확인했다.

    정보지 공급책으로 오랫동안 일 해왔기 때문인지, 핑크레터만큼 강력한 영향력과 정확성을 겸비한 정보지를 자신의 손으로 뿌리는 전진수는 앞으로 핑크레터를 가지고 이뤄낼 일들이 무척 궁금한 눈치였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 많은 일 중에서 구체적으로 하나 집어 주신다면요?”

    “음 저는…….”

    성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주 큰 판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큰 판이요?”

    이번에는 박윤호도 눈을 크게 떴다.

    “왜 놀라십니까. 제가 큰 판에서 놀게 해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박윤호는 성진에게 섭외되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포부를 접어 넣은 상태였다.

    속으로는 자신의 능력이 운이 나빠 무력하게 썩히고 있다고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성진은 10억 원을 안겨주면서 자신과 일하자고 했다.

    아니, 놀자고 했다.

    큰 판에서.

    “저는 그 약속을 지키려는 겁니다. 지금은 더 자세하고, 깊숙하게 말씀드리기 애매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기 모여 계신 박윤호씨나, 전진수씨, 그리고 윤진만 변호사님 모두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잠시 잠깐의 불운으로 빛을 보지 못하셨던 분들이죠.”

    전진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그도 성진이 섭외하기 전에는 카드 연체료에 시달리고 있던 차였다.

    증권가에 정보지를 공급하던 그가, 정작 허위 정보에 제대로 걸려들어서 투기하다시피 주식에 전재산을 투자했다가 크게 피해를 본 것이다.

    윤진만 변호사는 어떤가.

    검찰 조직에서 눈 밖에 난 상황에, 표면적으로는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실상 쫓겨난 셈이었다.

    더군다나 사십대의 평검사 출신이라면 그는 권력의 꽃이라는 검찰 조직에서도 권력과는 정말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이런 분들을 모시고 제가 염두에 두는 일은 아주 굵직합니다. 뭐가 됐든 조만간 아주 신나는 일을 하시게 될 겁니다. 장담하죠.”

    호기롭게 말하는 성진을 보고 윤진만 변호사가 허허롭게 웃었다.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도 기대가 됩니다.”

    그러자 성진은 윤진만 변호사 쪽을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윤 변호사님은 아직은 심심하실 겁니다.”

    “예에…….”

    윤진만 변호사는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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