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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58화 (58/185)
  • <-- 58 회: 3권 - 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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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축하드려요.”

    “오빠! 축하해요.”

    좀 더 넓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성진은 전부는 아니었지만 열댓 명의 후배들로부터 열렬한 축하인사를 받았다.

    “그래. 고맙다.”

    동아리 후배들은 성진이 플루토 투자신탁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그런 다음에는 이렇게 나란히 환호성을 지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형. 혹시 비결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맞아요! 비결 좀요!”

    어린 후배들은 성진에게 대기업 취업 비결을 알려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성진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결 같은 거 없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에에. 말도 안돼요.”

    “그래요. 오빠 비결 좀 가르쳐주세요.”

    잠시 성진에게 비결을 알려 달라 조르는 것도 잠시.

     후배들은 얼마 안 있어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역시 성진이 형 대단하시네요.”

    “그래요, 역시 성진 오빠 영어도 잘하시더니 뭔가 다르시네요…….”

    “참! 그럼 성진이 형이 취업해서 나가니까 이제 우리 동아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후배 중 한명의 물음에 모든 시선이 성진을 향했다.

    성진은 안주를 씹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내가 나가니까 이제 우리 동아리는 종연이가 책임져야지.”

    성진이 옆에 앉아있던 종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종연이 놀란 듯 말했다.

    “야 갑자기 왜 나를 걸고 넘어져.”

    “우리 동아리 만든 게 어차피 네 제안 때문이잖아. 잘 부탁한다, 앞으로. 알았지?”

    성진이 종연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지만 종연은 난처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동아리의 운명이 이제…….”

    “후우…….”

    장탄식을 흘리는 후배들을 보고 종연이 천장을 바라보더니 양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래!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다시피, 오늘부로 이 동아리는…….”

    잠시 뜸을 들인 종연은 선언하듯 말했다.

    “망해버렸다!”

    “허얼…….”

    후배들은 종연의 그 말에 어이없어했다.

    “뭐예요,형.”

    “어머, 오빠 너무 무책임해요.”

    그러면서 깔깔 웃는 후배도 있었다.

    “짜식. 그게 동아리 회장다운 할 소리냐?”

    성진이 핀잔을 줬지만 종연은 도리어 당당하게 말했다.

    “야. 어차피 너 나가면 망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서 씨익 웃는 종연을 보고 있자니 성진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답기는 하다 정말.”

    성진은 미소를 지은 채로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 오늘 다시 만나서 반갑고, 앞으로 당분간 못 보겠지만 다들 건강하고 잘 지내기 바란다. 청춘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가 잔을 들어 올려 건배를 하고 술을 들이켰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고 시간이 흐르자 후배들이 성진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덧 저녁 무렵이 다 되자 마지막 남은 사람은 성진과 희진, 종연. 세 사람뿐.

    성진이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갔다.

    지갑을 꺼내는데 종연이 다가왔다.

    “반절은 내가 낼게. 얼마래?”

    “네가 왜 계산을 해? 내가 사기로 했잖아.”

    “야. 친구한테만 덤터기 씌우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고서 억지로 계산서 액수의 반절을 내민 종연이 성진을 보며 말했다.

    “야. 진짜 이 나쁜 자식. 갑자기 연락하더니 휴학계를 낸다질 않나. 취업을 해버렸다지 않나. 너 없으면 나 혼자 무슨 재미로 학교 다니냐.”

    섭섭해 하는 종연을 성진이 토닥이며 말했다.

    “자주 보자. 기회 닿는 대로.”

    “에휴. 그래.”

    계산을 마친 성진이 짐을 챙기고 가게 박으로 나갔다.

    미리 나가서 기다리고 있던 희진이 성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성진 오빠. 저 집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주실 수 있으세요?”

    “어. 당연히 그래야지. 종연이 넌 어떻게 할래?”

    “난 알아서 간다. 그럼 잘 들어가라 얘들아.”

    종연이 손을 흔들며 떠나고 성진은 조수석 문을 열었다.

    “타, 희진아.”

    “네, 오빠.”

    희진이 성진의 차에 올라타고 곧 차가 출발했다.

    희진의 집으로 가는 내내 차 안의 분위기는 적막했다.

    희진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뭐라 말할 화제를 고르는 듯 했고 성진은 운전에 집중하는 척하면서도 그런 눈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려나.’

    희진은 이미 고백을 했다.

    확실하게 성진을 좋아한다고.

    그런 마음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진은 그래서 희진을 대하기가 약간 난처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희진에게 뭔가를 약속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연애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들만큼 끌리는 여자는 없는데…….’

    희진이 나중에라도 성진의 마음을 확 휘어잡는 여자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 성진은 연애문제에 대해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희진이었다.

    “저기요, 오빠.”

    “응?”

    “제가 오빠 좋아한다고 했던 말이요.”

    “희진아…….”

    성진이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희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오빠. 저는요…….”

    희진은 성진을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성진의 첫인상은 영어 잘하는 오빠 딱 그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모습에 강한 호기심이 들었고, 결국 계속해서 성진을 눈여겨 본 희진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었다.

    “제가 한 말 때문에 오빠가 저한테 부담 같은 건 갖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희진의 말뜻을 성진은 알아차렸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게.”

    “고마워요 오빠. 사실 저 오빠가 왜 저한테 부담 가지시는지 알아요.”

    “응?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제가 힘들까봐 그런 거죠? 제가 오빠 좋아하다가 혼자 지쳐서 힘들어할까봐.”

    희진의 말에 성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핫.”

    “전 그런 거 상관없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거 알아요, 오빠?”

    “뭘?”

    “일편단심 민들레는 잡초과거든요. 잡초는 질겨요.”

    희진의 반짝이는 눈이 성진을 담았다.

    “그러니까 괜히 제가 힘들까봐 걱정 같은 거 안하셔도 되요.”

    “응.”

    성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희진은 마음이 참 강한 여자였다.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치도 빨랐다.

    ‘흐음…….’

    성진에게도 그런 희진에게 조금씩 끌리는 면이 생기고 있었다.

    단순히 외모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내면으로도 희진은 예쁜 점이 많은 여자였다.

    “그래. 아무튼 고맙다 희진아.”

    “고맙기는요. 제가 오빠를 좋아하는 건데요.”

    희진은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차가 어느새 도심을 빠져나와 주택가로 들어왔다.

    희진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성진에게 말했다.

    “오빠. 여기서 세워주세요.”

    “그래.”

    길 한 켠에 차를 세운 성진은 희진을 배웅하러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희진이 성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오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헤에. 오빠는 나한테 뭐가 고마운데요?”

    희진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뭐…… 취업 축하 해줘서 고맙고, 밤 늦게까지 같이 놀아줘서 고맙고.”

    “음, 나도 고마운데.”

    “음? 희진이 너는 뭐가?”

    “저는요…… 이런 오빠라서 좋아요. 마음 따뜻한 오빠라서요.”

    그러고서 다음 순간, 희진이 얼굴을 가까이 디밀었다.

    “헙.”

    성진은 자신의 입술과 맞닿은 희진의 입술에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희진이 입술을 내밀던 순간.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피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희진의 부드러운 입술이 성진의 입술을 타고 촉감을 전했다.

    잠시 그렇게 찰나의 입맞춤이 벌어진 직후.

    “희, 희진아.”

    부끄러움이 역력한 표정의 희진이 붉어진 뺨을 양 손으로 가리고 골목길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진의 얼굴도 약간이나마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희진의 입술이 남긴 촉감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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