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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57화 (57/185)
  • <-- 57 회: 3권 - 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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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 성진은 바로 차에 올라탔다.

    오래간만에 학교 쪽으로 차를 몰아간 성진은 곧 대학가 한 켠에 자리 잡은 용용호프로 들어갔다.

    호프집이 비교적 한산한 점심 무렵 시간이었지만 안주가 제법 맛있고 저렴하다고 소문이 나서인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서 있는 성진을 보고 한창 서빙 중이던 점원이 다가와 물었다.

    “아니요. 일행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저 아까 전화로 예약을 했는데요. 세 명으로요. 안쪽 테이블에 자리 있나요?”

    “아 예. 자리 있습니다. 한성진 씨 되시나요?”

    “예. 제가 한성진입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점원의 안내를 받아 간 성진은 칸막이가 처져 있어서 주변과 어느 정도 분리된 테이블 좌석에 앉았다.

    잠시 후, 자리에 앉은 성진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진아! 나 왔다.”

    성진이 돌아보자 장난스럽게 히죽 웃는 종연이 서 있었다.

    “왔어? 앉아.”

    “야아. 이게 얼마만이야. 몇 달 동안 죽은 줄 알았다 너?”

    “죽기는. 그동안 내가 좀 바빴어.”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통은 해주지 짜식이.”

    “미안하다. 정말 바빠서 말이야.”

    종연과 가볍게 말을 나눈 성진은 자리에 없는 희진이 궁금했다.

    “희진이는? 같이 안 왔어?”

    “희진이? 아까 온다고 했어. 잠깐 있으면 오겠지 뭐.”

    종연이 피식 웃더니 짓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너 그래도 희진이 좀 챙긴다?”

    “야 챙기기는 뭘.”

    “에이 뭘. 희진이 없으니까 왜 안 왔냐고 하면서.”

    종연의 떠보기에 성진은 웃으며 대꾸했다.

    “어휴.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아는데 그런 거 아니다.”

    “에이.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기는. 짜식이.”

    “쑥스럽긴 뭘 쑥스러워한다고?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그래. 마시자.”

    각자 서로의 술잔을 채워준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히며 건배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머 오빠들? 나 오기도 전에 벌써 시작한 거에요?”

    “어? 희진아.”

    버건디색 코트에 다리에 쫙 달라붙는 스키니한 청바지 차림의 희진이 눈앞에 서 있었다.

    “에이, 오빠들 나 불러놓고 자기들끼리만 술 마시는 게 어딨어요?”

    “야. 우리 방금 시작했다. 안 그러냐 성진아?”

    “그럼. 어서 앉아. 이제 한잔 마실까 하던 참이었어.”

    “그래요. 믿어줄게요.”

    희진이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이제 멤버 다 모였네?”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오빠. 모처럼 호프집에 부르고.”

    “응.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니들한테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요?”

    “할 말? 그게 뭔데?”

    종연과 희진이 궁금함을 담아 성진에게 물었다.

    성진이 대답했다.

    “나 사실 휴학하기로 했어.”

    그 말에 희진과 종연 모두 놀라 입이 벌어졌다.

    “네에?”

    “뭐? 휴학이라니?”

    생각보다 놀라는 반응들에 성진이 재빨리 해명했다.

    “너무 놀라지 마. 따로 할 일이 생겼거든.”

    “따로 할 일? 무슨 일인데.”

    “오빠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갑자기 휴학이라뇨.”

    “그게. 이번에 취업을 하게 됐거든.”

    “취업?”

    취업이라는 말에 종연이 먼저 반응했다.

    “야 취업을 벌써? 졸업이나 하고 하지.”

    “그렇게 됐어.”

    “나도 조기취업 생각 안 한 건 아니거든. 그런데 어느 회사냐?”

    “어. 그게 어디냐면…….”

    성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오빠. 굳이 그런 거 말 안 해도 되요.”

    성진이 뜸을 들이자 희진이 선수를 치며 말했다.

    ‘응?’

    무슨 뜻인지 순간 이해하지 못한 성진은 엉겁결에 인공지능 팔찌의 감정 스캔 능력을 작동시켰다.

    대사 스캔 및 안면근육 움직임 분석.

    염려, 고민 등의 감정 상태가 추정됩니다.

    ‘염려?’

    아무래도 성진이 취업한 회사가 별로 자랑할 만한 곳이 못 되서 말을 못하는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배려해 주는 건가?’

    희진은 성진의 체면을 생각해주는 모양이었다.

    성진은 그런 희진의 마음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배려심이 희진에게 있다는 게 의외였다.

    ‘조금 당돌한 면이 있는 아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런 면도 있었네.’

    성진은 희진이 조금 달리 보였다.

    사실 성진에게 희진은 그저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여후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희진도 상당히 예쁜 편에 속하는 외모를 가졌지만 내면에서 우러나는 여성스러운 면모로 매력을 느끼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이런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 희진이 성진에게는 유독 이성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희진아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네?”

    놀라 반문하는 희진에게 성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취업한 회사 괜찮은 곳이야. 아마 너희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걸?”

    “어디인데요?”

    “그래. 어딘데? 빨리 말해봐.”

    종연까지 재촉하자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플루토 투자신탁.”

    “플루토…… 투자신탁이면…… 오오.”

    회사 이름을 되뇌던 종연이 웃으며 성진을 바라봤다.

    “플루토 투자신탁이면 진짜 괜찮지.”

    “오빠 왜요? 아는 데에요?”

    희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희진아. 너 플루토 투자신탁이 뭔지 몰라?”

    “모르겠는데요? 투자회사인 거 같긴 한데.”

    희진이 재차 질문하자 종연이 말했다.

    “우리나라 증권사 중에서 상위 5개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곳일걸? 거기가 아주 규모가 큰 증권사거든.”

    “어머. 그러면 대기업이네요?”

    “어. 대기업이라고 볼 수 있겠네.”

    희진이 손뼉을 쳤다.

    “오빠 대기업에 취업한 거예요? 잘됐네요.”

    희진의 말에 종연이 짓궂게 웃으면서 딴지를 걸었다.

    “에이, 뭘. 보나마나 인턴이겠지.”

    “어머, 인턴이면 어때서요? 요즘은 인턴 들어가기도 얼마나 힘든데요.”

    희진의 핀잔에 종연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그래, 그렇긴 하지. 성진이는 1학년 마치고 인턴 합격한 거니까 얼마나 대단하냐.”

    그 말에 성진이 대꾸했다.

    “인턴 아닌데?”

    “네?”

    “뭐?”

    희진과 종연 모두 깜짝 놀라 물었다.

    인턴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럼 설마…….”

    “오빠. 그럼 혹시 거기에서도 비정규직 써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보고 성진이 웃음을 지었다.

    “하핫. 나 정규직이야. 정식 사원이라고.”

    “뭐어?”

    “네에?”성진의 말에 두 사람 모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참 힘든 세상이다.

    아직 취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인 종연과 희진이었지만 취업에 실패한 선배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성진이 1학년을 마치자마자 대형 증권사에 취업을 했단다.

    당연히 인턴 사원일거라 생각했는데 정규직이라니 두 사람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오빠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거짓말 아니야. 내가 그런 거짓말해서 뭐하겠니.”

    “이야. 진짜 굉장하다. 내 절친이 벌써 취업이라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종연이 맥주를 단번에 들이키더니 말했다.

    “에이 씨! 야! 잘나가는 놈이 취업턱 한번 크게 내라!”

    “그래. 내가 오늘 한턱 쏠게.”

    “어? 너 진짜지?”

    “그럼.”

    “으음, 그럼…….”

    종연이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우리 동아리 애들하고도 이 기쁜 소식을 나눠야지?”

    “아하!”

    종연의 속셈은 동아리 후배들까지 몽땅 불러낼 작정이었다.

    “그래. 까짓 거 뭐. 애들 올 수 있는 만큼 다 오라고 해.”

    “어? 정말? 다 부른다?”

    “그래. 올 수 있는 만큼 불러. 기왕이면 좀 더 큰 데로 옮겨서 놀자.”

    “오! 역시 성진이 너 갑자기 통이 커졌는데?”

    “통이 커지기는 뭘.”

    성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사실 동아리 후배들과도 종연과 희진 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는 후배들이었다.

    학교를 휴학하게 된 만큼 마지막에 한 턱 내고 헤어지는 것도 괜찮을 성 싶었다.

    “좋아. 그러면 내가 네 말대로 다아~ 불러주마.”

    그런 종연에게 조용히 경고를 날리는 사람은 희진이었다.

    “종연 오빠. 성진 오빠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마요.”

    아무래도 희진은 종연 때문에 성진의 주머니사정이 악화될까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야아. 이거 희진이 너, 점점 노골적이다?”

    종연은 그런 희진을 보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어머, 노골적이라뇨! 이상한 소리하고 그러네요 오빠.”

    바로 반응하는 희진을 보고 종연이 뭐라 더 놀려대자 희진은 입을 꾹 다물고 딴 곳을 바라봤다.

    “흥! 종연 오빠 마음대로 생각해요.”

    그러면서 희진은 슬쩍 성진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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