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회: 3권 - 휴학 -->
다음 날 성진은 부모님께 긴히 말씀을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꼭 말씀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성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좀처럼 보지 못하던 성진의 무거운 태도에 부모님들은 염려부터 하셨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데 그렇게 얼굴 표정이 안 좋아?”
부모님들은 대번에 성진의 걱정부터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성진은 말씀드리기가 더욱 고민스러워졌다.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겠지.’
다시 마음을 다잡은 성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이제 몇 달 뒷면 복학을 하게 되잖아요.”
“응. 그래. 그런데 왜?”
“복학하는 대신, 휴학을 했으면 합니다.”
“휴학?”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니, 휴학이라니. 대체 왜?”
“성진아. 휴학을 대체 왜 하겠다는 거니.”
특히 어머니가 성진을 다그치듯 물으셨다.
순간 목소리가 높아지신 게 적잖이 흥분하신 모양이었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제가 휴학을 하려는 이유는 중요한 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아니, 글쎄 중요한 할 일이 대체 뭐길래 그러냐.”
어머니는 휴학이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못마땅하신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제 돈이 없어서 등록금을 못 내는 것도 아니잖니?”
“예. 그렇죠.”
“남들은 다니고 싶어도 사정이 안 돼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대체 왜 휴학을 하겠다는 거야?”
“어머니, 그게요…….”
성진이 말을 이어나가려는 찰나에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성진아! 배움에는 다 때가 있는 거다.”
“예 그럼요. 어머니 말씀이 맞습니다.”
성진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일단은 맞장구를 쳤다.
기세를 올린 어머니가 계속 말씀을 이어나가시려는데 아버지가 제동을 거셨다.
“허허 참. 당신은 당신 말만 하지 말고 성진이 말 좀 들어봐요.”
“으음. 그,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라.”
아버지의 말에 그제야 어머니는 말씀을 멈추시고 성진에게 말할 기회를 주셨다.
성진이 그런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했다.
“휴학을 하고, 대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일? 아니 무슨 일?”
어머니의 물음에 성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취직을 해서요. 당분간 그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취직? 네 나이에 취직이라니?”
어머니는 다시 마뜩찮아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취직이라니 좀 이른 것 같구나.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언짢아하시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성진의 말에 일단 다른 질문부터 하셨다.
“그래. 그러면 그 회사가 어떤 회사냐?”
“예. 플루토 투자신탁이라는 곳입니다.”
“플루토 투자신탁?”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 의아해하셨다.
“거기가 뭐하는 회사니?”
한번이라도 주식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회사가 플루토 투자신탁이다.
하지만 평생 증권투자에 인연을 맺어본 적이 없으신 부모님들께는 낯선 회사였다.
“제법 규모가 큰 투자회사입니다.” 그러면서 성진은 미리 준비한 종이 묶음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다.
제법 두툼한 a4용지 묶음이었는데 그 안에는 플루토 투자신탁의 외부 홍보용 인쇄자료들이 담겨 있었다.
“대체 무슨 회사길래…….”
아버지가 종이 묶음을 몇 장 넘겨보자 눈을 크게 뜨셨다.
그 안에 담겨있는 몇몇 내용들에 놀라셨기 때문이었다.
[보유 자금규모 6조원]
[최우수 증권사 선정]
단순한 내용들이 아니라 모두 실제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한 자료들이었다.
놀란 아버지가 성진을 바라보며 물으셨다.
“회, 회사가 6조원짜리냐?”
“예. 아버지.”
놀란 부모님들이 눈을 꿈벅 거리셨다.
그러다 대번에 표정이 환해지면서 성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고! 장하다!”
“우리 아들이 출세했구만. 이런 큰 회사에 들어가고.”
회사 규모가 크다는 걸 알게 되자 부모님들의 반응이 달라지셨다.
“됐다. 이런 큰 회사라면 마땅히 들어가서 일을 해봐야지.”
“그래. 남들은 대학 졸업하고도 한참 취업 못해서 난리인데 우리 아들은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했네. 호호.”
부모님의 흔쾌한 반응에 성진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런 부모님의 반응은 성진도 예상하기는 했다.
사실 웬만한 부모님은 자식이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하면 다들 기뻐하시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아직 대학도 졸업하기 전의 어린 나이인 성진이 휴학을 한다는 게 속상하실까봐 조심스러웠다.
‘괜한 걱정이었네.’
쓸데없이 마음을 졸였나 싶어 성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대기업에 취업을 했으니까 이거 잔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아, 하다마다. 우리 아들이 남들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기업에 떡하니 취업을 했는데 당연히 해야지.”
부모님들이 집안 잔치까지 말씀하시자 성진은 재빨리 부모님을 말렸다.
“에이, 아니에요. 잔치할 만큼 제가 큰 성공을 한 것도 아닌데요.”
“어머, 얘는?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시절에 취업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딨니?”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셨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들이 이런 번듯한 회사에 취업까지 하고. 이 아버지가 여한이 없다.”
“제가 앞으로 더 기쁜 일이 많으시게 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성진은 생각보다 쉽게 부모님이 승낙해주신 점도 좋았지만, 오히려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래. 우리 아들이 이제 대기업까지 취업했으니까 앞으로 걱정 없다.”
“이 엄마도 우리 아들만 믿어.”
“예. 걱정 마세요.”
성진은 웃음꽃이 활짝 피신 부모님이 기쁨을 나누시는 동안 성진은 휴학계를 내러 학교에 가기 위해 방을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고 올라 탄 순간, 막상 휴학계까지 내려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차! 종연이.”
방학 전 같이 여행을 가자고 꼬드기던 종연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좀 소홀했네.”
그간에 워낙 복잡한 일이 많다보니 종연은 어느새 잠시 잊혀져 있었다.
종연이 생각나니 희진도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미리 말은 해줘야겠지?”
성진은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성진의 한 학기 복학생활 동안 가장 친하다고 할 만한 인물들이었다.
이대로 휴학계를 내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종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전화기 너머에서 졸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냐…… 여보세요오오?
“뭐야. 아직도 잠자고 있었어?”
뭐? 누구길래…… 가만! 성진이냐?
“그래, 나다.”
야, 임마! 한성진!
종연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났다.
성진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만날 수 있어?”
얘가 또 한참 만에 전화해서 형님을 오라 가라 하는구만? 그래 간다. 어디? 몇 시?
“글쎄. 가까운 데서 보자. 우리 학교 근처에 용용호프라고 있지?”
아 용용호프? 좋지.
“그리고 혹시 희진이는 어떻게 지내는 지 알아? 괜찮으면 같이 불렀으면 하는데.”
희진이? 그래. 희진이도 불러야지. 걔도 요즘 따로 하는 일은 없는 거 같던데? 희진이는 내가 부를게. 괜찮으면 같이 갈 거야.
“그래. 지금 오전 열한시니까 오후 한시쯤? 그때 용용호프에서 보자.”
오케이.
전화를 끊은 성진은 일단 호프집에 전화해서 자리부터 예약했다.
여보세요. 용용호프입니다.
“거기 삼인용 테이블 하나 예약 가능한가요?”
아 예. 저녁은 안 되고, 낮 시간에는 가능합니다.
“그러면 오후 한시에 세 명이요.”
예, 알겠습니다. 손님. 손님 성함이요?
“저는 한성진이라고 합니다.”
예. 예약했습니다.
“얘기 나누기 좋을 만한 자리로 안쪽에 부탁합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사실 호프집은 낮 시간에 한산한 편이라 예약을 굳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용용호프가 대학가 근처에서 인기가 제법 있는 술집인지라 혹시 또 몰랐다.
“내가 부르는 자리니까 예약은 확실히 해둬야지.”
모처럼 친구들을 볼 생각에 성진은 마음이 약간이나마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