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55화 (55/185)

<-- 55 회: 3권 - 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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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에게 전수한 발경은 우리 태합유문의 비기 중 한 축일세. 그와 함께 양축을 차지하는 다른 하나는 바로 보법일세.”

“보법이라면 걷는 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성진은 보법이라는 말에 대번에 무협소설의 보법이 떠올랐다.

‘하긴 발경이 존재하는데 보법이 안 된다는 법은 없지.’성진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무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법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 보법 또한 기를 통해 발현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때문에 먼저, 우리 무문의 발경인 태합경을 완전히 체득시킨 다음 이 보법을 전수하려 했다네.”

“예.”

“보법의 이름은 유룡보. 우리 태합유문의 발경인 태합경과 함께 양축을 이루는 비기이니 철저하고 완벽하게 익혀서 다음 대에 전하는 의무를 완수해주게.”

성진은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그럼 유룡보의 시범을 시작하겠네.”

표학선 관장이 기수식을 취하자 성진은 즉시 인공지능 팔찌를 가동시켰다.

‘지금 바로 사부님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해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에너지 파장 센서 가동.

나노 로봇 센서를 활성화시킵니다.

일전에 표학선 관장의 몸에 넣어둔 나노 로봇이 활동을 재개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단전으로부터 뻗어나온 에너지 기파의 흐름이 다리 쪽으로 쏟아져 내려가면서 곧 새로운 반응이 포착되었다.

그 즉시 표학선 관장의 몸이 두둥실 낮게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어엇?”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인공지능 팔찌의 강력한 스캔 능력과 강화된 동체시력 덕에 포착한 장면이었다.

성진은 순간이나마 비친 놀라운 광경에 깜짝 놀랐다.

찰나의 부유도 잠시, 중력에 끌린 표학선 관장의 몸은 다시 바닥에 내려왔지만 더욱 놀라운 건 다음 순간부터였다.

표학선 관장의 발끝이 바닥에 닿은 순간.

발가락 끝이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 몸 전체를 훌쩍 밀어냈다.

인공지능 팔찌의 도움으로 인해 성진은 확실하게 그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었지만 눈으로는 쫓아도 몸으로는 결코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이건 근접한 거리에서는 총알처럼 움직이겠는데.’

성진이 감탄하는 사이 표학선 관장이 시범을 마치고 성진의 뒤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는 표학선 관장은 꽤나 지친 표정이었다.

성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자 표학선 관장은 애써 숨을 고르면서 태연한 척 위엄 있는 자세로 가슴을 세웠다.

“이것이 유룡보라네.”

십 초도 안 되는 찰나의 사이에 멀리 떨어져 있던 표학선 관장이 성진의 바로 뒤 지척에 나타났다.

표학선 관장은 성진이 크게 경악하며 감탄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부터 폼을 잡았다.

“커흠…….”

헌데 표학선 관장의 눈에 비친 성진의 표정은 경악에는 한참 못 미치는 반응이었다.

표학선 관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응?”

아니나 다를까 성진이 바로 넙죽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봤습니다, 사부님. 그러면 이제 제가 한번 유룡보를 펼쳐 보이겠습니다.”

“유룡보를?”

표학선 관장의 뇌리에 찰나의 불안감이 스쳐갔다.

‘설마…….’

제아무리 천하제일의 심미안을 지녀도 유룡보를 처음 보자마자 익힌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표학선 관장은 성진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이것은 젊은 호승심에 도전해보는 객기라 여겼다.

그의 상식선에서는 반드시 그래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상식을 배반하고야 말았다.

“헛!”

표학선 관장의 눈앞에서 별안간 성진의 신형이 튀어 올랐다.

관장이 빠르게 성진의 종적을 눈으로 쫓았다.

“이럴 수가!”

성진은 분명 유룡보의 기초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표학선 관장의 원숙한 경지에 비하면 한참이나 미숙하고 낮은 경지였다.

하지만 성진이 처음 본 것만으로 유룡보를 저 정도까지 시전 한다는 것이 표학선 관장의 눈에는 충격이었다.

“허어…….”

장탄식을 흘린 표학선 관장에게 한 바퀴를 마친 성진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습니까, 사부님.”

표학선 관장은 대답 대신 천장만 올려봤다.

‘청출어람이라는 표현도 민망할 지경이구만.’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나다.

도저히 상식을 파괴해버리는 성진의 수련 속도에 표학선 관장은 한참동안 말을 잃었다.

“사부님?”

한참이 지나 성진이 묻자 그제야 표학선 관장은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처음치고는 굉장히 잘 했네.”

“감사합니다, 사부님.”

성진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인사했지만 표학선 관장은 무섭게 발휘된 성진의 실력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흐, 흐흠. 아직 제대로 된 수준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할 걸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표학선 관장은 애써 놀란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속내는 성진의 눈에 훤히 다 보였다.

성진은 속으로 표학선 관장에게 미안해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이번에도 제가 꼼수를 써서요.’

표학선 관장의 몸속에 집어넣은 나노 로봇이 아니라면 성진이 이렇게 쉽사리 태합유문의 비기를 배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보답으로 성진은 나노 로봇을 통해 표학선 관장의 신체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세포의 노화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작용을 지시해뒀다.

신체 스캔 센서 정지.

나노 로봇의 세포 노화 억제 파장을 다시 발생시키겠습니다.

신체 세포 활성화 지원 가동.

인공지능 팔찌가 표학선 관장의 몸에 심어진 나노 로봇들을 다시 작동시켰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성진에게는 나름의 은혜 갚기인 셈이었다.

“사부님. 혹시 요즘 들어서 몸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시지 않았습니까?”

“음?”

성진의 질문에 표학선 관장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그런 것 같기도 하군.”

표학선 관장의 말에 성진은 빙긋 미소 지었다.

“예. 유독 좋아 보이셔서요.”

“허허. 그래봤자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늙은이지.”

“아닙니다. 사부님처럼 건강하고 정력적인 분은 젊은 사람들까지 통틀어도 별로 없을 겁니다.”

“원, 아부는. 허허.”

표학선 관장의 충격을 달래려 성진은 애교 섞인 아부를 늘어놓았다.

표학선 관장도 한참 만에 거둔 제자와 정담을 나누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방학이 시작될 즈음이로군? 자주 찾아와서 같이 수련을 하는 건 어떤가.”

표학선 관장이 문득 생각나 말했다.

이제 곧 겨울이니 대학생들도 겨울방학으로 쉬게 될 계절이었다.

표학선 관장은 성진의 무서운 재능이 놀랍기도 했지만, 자신의 제자이니만큼 자랑스럽고 더욱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성진은 조심스럽게 난색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앞으로 당분간은 제가 좀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

“음 그런가? 하긴…….”

성진이 누군가와 대적하고 있음을 상기한 표학선 관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네. 자네 사정이 어렵다면 내가 강요를 할 수는 없지.”

성진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항상 송구스럽습니다, 사부님.”

“죄송하기는. 어떤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도움이 필요하거든 나를 찾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지.”

표학선 관장의 말에 성진은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말뿐이 아니라 언제든 행동으로도 보여줄 수 있으니 걱정 말게나.”

마주보며 웃는 표학선 관장을 보고 성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사부님한테까지 폐를 끼치는 일은 없게 할 겁니다.’

성진이 이제부터 슬슬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온 것들만으로도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오히려 인공지능 팔찌의 기능을 과감히 사용하기로 결심한 이상 성진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럼 이만 밤이 늦었으니 돌아가 보게.”

“예, 사부님.”

성진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편히 쉬십시오.”

“그래. 자네도 편히 쉬게나.”

스승과 제자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도장 문을 나서는 성진의 머리 위로 저녁 도시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렸다.

그 아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삼삼오오 재잘거리는 소리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성진은 그 사이를 헤쳐 지나가면서 표학선 관장이 해준 말을 재차 떠올렸다.

- 자네에게 주어진 그 힘은 온전히 자네의 책임일세. 힘을 가진 자는 힘을 발휘해야 할 의무가 있다네.

- 가야 할 곳이 확실하다면 적어도 어디로 갈지 몰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네.

올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바꿔보게.

성진은 속으로 되뇌었다.

‘세상을 바꾼다…….’

잠시나마 불안했던 마음은 이제 고요해졌다.

그 한가운데에 새로운 목표가 머릿속에 조금씩 잡혀갔다.

“그런가…….”

성진은 눈을 빛내며 거리를 바라봤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성진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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