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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정복자-54화 (54/185)
  • <-- 54 회: 3권 - 다짐 -->

    연달아  내지르는  주먹.

     관장은  가볍게  손을  내뻗어  성진의  공세를  견제했다.

     가볍게  내뻗는  손길이  성진의  격렬한  공격을  모조리  거둬내기  시작했다.

     성진은  공격을  내뻗는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동시에  인공지능  팔찌도  사용하고  있었다.

     공수  패턴을  실시간  분석,  예측  가동합니다.

     그래픽  정보로  예상  동선을  출력하겠습니다.

     즉시  성진의  눈앞에  관장의  예상되는  동선이  형형색색의  빛깔로  출력되었다.

     과연  몇  번은  인공지능  팔찌의  예상이  관장의

     실제  행동과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 후웁!”

     그런  순간마다  관장도  당황했는지  성진의  공격에  공세를  허용했다.

     짧은  접전이  지나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성진은  예를  취하고  공손히  뒤로 물러났다.

    “ 감사히  배웠습니다.”

    “ 실력이  많이  늘었다.”

     관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진은  이번에도  약간이나마  찔리는  점이  있었다.

     사실  자신의  실력이  순수하게  발휘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팔찌의  예측  분석  능력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진의  실력이  그만큼  상승한  점도  분명  있었다.

     전과  같았으면  인공지능  팔찌의  예측이  아무리  정확해도  무술의  이치를  체화하지  못한  성진은  적절한  수법을  즉시 발휘하기가 힘들어 꼼짝없이 당했으리라.

    “정말 빨리 늘었네. 성취가 놀라워.”

    어쨌거나 표학선 관장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제자가 자신의 빈틈을 찾아 찌를 만큼 괄목할 속도로 성장해 있었으니 전수에 신경을 쓰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우리 태합 유술의 비기와 전통은 자네 손에 맡기면 안심할 수 있겠군.”

    관장의 말에 성진은 겸손부터 보였다.

    “아닙니다, 사부님.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아닐세. 지나친 겸손은 독이야.”

    관장은 진심으로 성진의 성취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관장실에 들어간 두 사람은 조용히 담소를 나눴다.

    성진은 관장의 칭찬에 거듭 감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관장님. 제가 사실 큰 고민이 있는데 한번 들어 봐주시지 않겠습니까?”

    “큰 고민?”

    성진의 표정에 진지함이 담긴 것을 보고 표학선 관장이 눈길을 달리 했다.

    “어떤 고민인데 그러나?”

    “제가 다시 큰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큰 싸움이라…….”

    표학선 관장은 짧게 한숨을 흘렸다.

    성진이 말하는 큰 싸움이 단순히 완력이 필요한 힘겨루기가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싸움이라면 이유가 있지. 뭘 위해서 싸우는 겐가?”

    “저와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오호. 인연자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구만.”

    “예 사부님.”

    “그래. 그랬네만.”

    표학선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자네 고민은 그 싸움 때문인가?”

    “정확하게는 그 싸움을 앞둔 저의 마음 때문입니다.”

    “마음?”

    “예.”

    “어허. 전투를 앞둔 장수가 마음을 못 잡는 게로군?”

    표학선 관장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어떤 마음 때문에 고민에 빠졌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게.”

    “예 사부님.”

    성진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속사정을 고백했다.

    “혹시 사부님은 커다란 권력욕이나 그와 비슷한 야심을 가지신 적이 있으십니까?”

    “권력욕이나 야심이라?”

    “저는 그걸 이룰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대뜸 튀어나오는 오만한 자신감.

    하지만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성진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다.

    그리고 관장은 성진이 이런 자리에서 허튼소리를 뱉는 성격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관장은 말에 담긴 진심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표학선 관장은 진지하게 성진의 이야기 귀 기울였다.

    “힘이 있다면 뭐가 문제인가?”

    “제가 그 힘에 취해서 사로잡힐까봐 두렵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평범한 청년이었던 성진이다.

    소박한 꿈을 꾸고, 가족들과의 평안한 삶을 생각하던 성진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온 세상에 대한 엄청난 욕망이 드문드문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 고민을 솔직하게 말하자 관장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자네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나도 젊은 시절에는 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네.”

    관장은 솔직했다.

    그리고 성진의 욕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지. 그렇기에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있어. 자네는 힘이 있다고 했나?”

    “예. 사부님.”

    “그렇다면 그 힘을 남에게 줘버릴 수 있나?”

    “그건…….”

    성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성진이 가진 인공지능 팔찌의 힘을 남에게 양도할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성진 자신이 그걸 원했을 리 없다.

    “남에게 그 힘을 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힘으로 자네가 뭔가를 이룰 것도 아니라면 그게 무슨 얼간이 짓인가?”

    “예.”

    성진은 표학선 관장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자네에게 주어진 그 힘은 온전히 자네의 책임일세. 힘을 가진 자는 힘을 발휘해야 할 의무가 있다네.”

    잠시 말을 멈춘 표학선 관장은 성진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가진 힘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자네가 추구하는 이상이 자네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야. 가야 할 곳이 확실하다면 적어도 어디로 갈지 몰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네.”

    표학선 관장의 말이 떨어지자 성진의 마음속에 작은 깨달음의 불씨가 지펴졌다.

    “사부님 말씀이 맞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제가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성진은 지금까지 품고 있던 고민과 불안이 한 번에 걷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성진이 불안했던 이유.

    그것이 성진 자신이 무엇을 할지 뚜렷하게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렸다.

    그런 성진을 표학선 관장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네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것부터가 자네 마음이 옳은 길을 가고자 하기 때문일세. 변화하는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걸 보면 자네는 군자의 자질을 갖췄어.”

    “하핫. 과찬이십니다. 군자의 자질씩이나요.”

    “아니지. 무릇 군자는 어진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의 언행과 마음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네. 얼마나 큰 힘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올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한번 바꿔보게.”

    표학선 관장의 응원을 듣고 성진은 마음의 무게감이 한겹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엉뚱하게 느껴지실 만한 말에 큰 가르침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진은 진심으로 감사의 예를 취했다.

    “허헛. 제자가 진심으로 하는 말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스승은 적어도 태합유문에는 없다네.”

    표학선 관장은 껄껄 소리를 터트리며 크게 웃었다.

    “이제 자네가 마음의 짐도 덜었으니 우리 무문의 남은 비기를 내친 김에 오늘 전수하도록 하지.”

    “남은 비기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발경 말고도 태합 유문의 비기가 따로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성진이었다.

    “그건 배우면서 알려주겠네. 본래는 차근히 시일을 둘 생각이었지만, 이미 자네는 발경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한 상태니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표학선 관장은 지금까지 성진의 성취에 굳이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성진의 실력은 그럴 필요가 없을 만큼 일취월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직접 손을 섞어본 성진의 실력은 표학선 관장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만한 수준이라면 이제 남은 비기를 배울 때가 됐네. 나오게.”

    선언하듯 말한 표학선 관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관장실을 나섰다.

    “예.”

    성진도 표학선 관장을 따라 관장실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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