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시 정복자-52화 (5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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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두명을 모두 포섭한 성진은 즉시 플루토 투자신탁으로 돌아가 박천중 회장에게 경과를 말해줬다.

    “그래 좋아. 내가 전면적으로 협력하지.”

    “회장님이 박아주신 명함 덕분에 수월했습니다. 역시 간판이 중요하군요.”

    “허허, 자네는 조만간 이 플루토 투자신탁보다 더 좋은 간판을 세울 사람이 아닌가?”

    “글쎄요. 굳이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역시 직접 겪어보고 나니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허허허!”

    박천중 회장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 덕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구명줄을 만난 기분이야.”

    “너무 비행기 태우시지 마십시오.”

    “비행기라니?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어쨌거나 내가 자네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 그런 걸 보면 역시 범상치 않은 인연일세, 우리는.”

    “예.”

    인연을 강조하는 박천중 회장은 성진을 자기 사람으로 완전히 못 박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우. 욕심 같아서는 내 밑에 두고 키우고 싶지만…….’

    성진이 보여준 실력이나 그릇은 박천중 회장의 밑에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보스 기질이 강하기로 소문난 박천중 회장이었지만 그가 보기에도 성질은 감히 품에 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뭐 내 밑에 둘 수 없다면, 사적인 인연으로라도 엮는 수밖에.’

    딸 혜영을 생각하며 조용히 속으로 웃는 박천중 회장은 가만히 차를 홀짝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성진은 묵묵히 차를 마셨지만 속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또.’

    혜영과 자신을 짝지어주려는 마음이 점점 노골적으로 묻어나는 박천중 회장이었다.

    성진은 거북스런 마음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회장님.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제부터 시작이죠.”

    “그렇기야 하지.”

    아직도 적들은 장막 속에 가려져 있었다.

    반면에 그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박천중 회장이 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이제부터 어떤 위협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굳게 드시기 바랍니다.”

    “당연한 일이야. 10년 세월을 견뎌 온 나란 말일세. 내가 여기까지 와서 못 버틸 이유가 없지.”

    “그 마음, 잊지 마십시오. 저도 최대한 회장님을 돕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질세, 허허허.”

    성진을 바라보는 박천중 회장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        *       *

    증권가는 항상 정보에 목마르다.

    ‘찌라시’라는 별명의 비밀스러운 정보지도 정보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수요 때문에 존재했다.

    남들이 알지 못할 것 같은 정보.

    나만이, 혹은 극히 소수만이 보유한 정보일 듯한 환상을 파는 것이 증권가의 정보지다.

    이런 비밀스런 정보지는 정보의 진위나 출처를 책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증권가는 물론 재계의 간부들마저도 증권가의 비밀 정보지를 이용하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이런 정보지들 사이에서 최근 무섭게 떠오르는 비밀스런 정보지가 있었다.

    항상 분홍색 아이콘의 exe. 파일로 유통된다고 해서 ‘핑크레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 정보지의 강점은 바로 다름 아닌 무서울 정도의 적중률이었다.

                        *      *      *

    “하! 결국 또 맞았군.”

    펀드매니저인 그는 입맛을 다셨다.

    매일같이 주가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사는 사정이었다.

    더욱이 최근에는 눈앞에 다가온 호재를 두 번이나 놓쳐버렸다.

    “하아. 일개 정보지 하나가 그렇게 정확할 줄이야.”

    얼마 전 봤던 정보지의 내용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증권가의 유행에 누구보다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펀드매니저.

    은밀한 정보지 공급창구로부터 새롭게 추천받아 시험 삼아 구매한 정보지였다.

    ‘핑크레터? 이게 뭐지.’

    처음에는 분홍색 아이콘이 특이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exe. 파일이었다.

    하지만 파일을 실행하자 갖가지 이미지와 문서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라? 아니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핑크레터에 담긴 내용들은 주변에 떠돌던 루머를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붙여진 살들이 너무나 황당해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노련한 펀드매니저로 자부하던 터라 이 신종 정보지가 눈길을 끌려고 자극적인 허위정보를 양산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 원. 이런 삼류 정보지를 봤나.’

    그 뒤로 몇 번 더 받아봤지만 전혀 신뢰하지를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핑크레터에 게시됐던 기업의 악재가 터져서 해당 기업에 투자금을 넣어둔 그의 펀드에는 엄청난 손실이 그어졌다.

    “후아아아아…….”

    한숨을 내쉰 그에게 이미 핑크레터는 무시할 수 없는 정보지로 깊이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핑크레터는 증권가에서 은밀한 화제가 되어 떠돌았다.

    기타 정보지와는 달리 구체적이고 세세한 디테일은 물론, 그 정보들이 훗날 사실로 확인되는 무서울 정도의 정확성을 보였다.

    혹자는 전율이 일어날 정도의 정확성이라고 했다.

    지금껏 어느 정보지도 증권가에 이만큼 화제가 된 적이 없었고, 놀라움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지나자 핑크레터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은밀한 정보의 바로미터가 되어갔다.

                      *       *       *

    증권거래소 객장 안.

    절망과 환성이 교차하는 이 곳 객장 안에는 고요한 전쟁이 벌어진다.

    “하아…… 또 내려가네, 정말. 아아, 정말이지…….”

    “아이고. 추락하는 건 날개가 없다더니…….”

    한탄이라도 할 정신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행복한 축이다.

    “하아아…….”

    숨이 멎을 듯한 표정으로 주가지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사람들은 분명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을 주식으로 잃은 사람들이리라.

    그렇게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흐음. 내가 이거 이번에 당신한테만 알려 주는 건데…….”

    중년 신사가 옆자리에 친구로 보이는 다른 양복 차림의 사내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니, 그게 정말이야?”

    “그럼. 이게 그 분홍…… 뭐시기에서 나왔다 이거야.”

    “아니, 그럼 그게 바로 그…….”

    남자는 입을 바로 다물고 입모양으로만 상대방에게 뜻을 전달했다.

    ‘핑크레터.’

    얼마 전, 새롭게 떠올라 증권가 정보지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뜬소문의 정보지는 항상 소수에게만 공급됐고, 나머지에게는 정보의 편린만이 떠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소문이 퍼져 주식판의 사람들에게는 경전과도 같은 위치로 올라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냉철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좋아. 원활하게 진행됐군.”

    바로 성진이었다.

    회의실 탁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성진의 주변으로 윤진만 변호사와 박윤호, 그리고 그가 소개한 정보지 유통 제조업자 전진수가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핑크레터의 정보지 시장 공급량은 전체 1할도 안 될 겁니다. 하지만 펀드매니저나 대기업의 정보 책임자 같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에게 집중적으로 뿌리고 있고, 나머지는 약화된 소스만 공급하고 있습니다.”

    전진수의 보고에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핑크레터 자체는 굳이 많이 뿌릴 필요가 없어요. 아래에서 위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돌고 도는 그런 게 정보의 속성입니다. 계속 그 정도 수준으로 관리하세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보스.”

    핑크레터를 직접 제작, 유통한 인물은 바로 성진이었다.

    증권가의 새롭게 떠오르는 강력한 정보지.

    그 핑크레터의 주인, 성진은 여의도 증권가가 한눈에 비치는 빌딩 창가로 다가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진은 자신만만한 눈길로 재력과 권력이 휘몰아치는 한복판, 여의도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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