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회: 2권 - 헤드헌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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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성진이 찾아간 장소는 낚시터였다.
겨울바다 낚시터에 잔뜩 몰려든 낚시꾼들이 저마다 낚시줄을 드리운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다가간 성진이 웅크리고 앉은 채 찌를 바라보는 낚시꾼 한명에게 말을 걸었다.
“좀 잡힙니까?”
“글세, 오늘은 영 별로네요.”
대답을 하면서 옆을 돌아본 낚시꾼은 성진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아는 사이던가?”
“아뇨.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응? 그런가?”
“예.”
낚시꾼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허허,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거슈?”
“꼭 알아야 말을 거는 건 아니죠. 그리고 저는 귀하께 할 말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어라? 이거 나를 아는 양반이셨구만.”
낚시꾼은 코웃음을 치더니 낚시대를 감아서 바늘을 거둬들였다.
그러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시려구요?”
“나한테 얘기할 게 있어서 찾아왔다며? 바닷바람 부는 데서 얘기할 거요?”
성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박윤호씨.”
이름을 불린 낚시꾼, 박윤호는 입술 한쪽 끝을 올리며 성진을 쳐다봤다.
‘뇌파를 수신해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즉시 박윤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뇌파 사념을 확인했다.
‘흐음. 다른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온 모양이군.’
박윤호의 감정은 매우 귀찮음이었다.
동천그룹의 정보 관리자였기에 알음알음 주워 듣게 된 기자들이 특종을 기대하고 찾아와 인터뷰를 거듭 요청했던 것이다.
성진은 곧바로 그 점부터 확인해줬다.
“전 기자가 아니니까 괜히 인터뷰 의뢰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음?”
박윤호는 생각이 들킨 것 같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내가 기자 싫어하는 건 어찌 알고?”
“그거야 박윤호 씨께서 과거에 하시던 일이 아주 흥미진진한 일이니까요. 기자들이 오죽 찾아왔겠습니까.”
“후훗. 기자는 아니어도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이로군.”
“자세한 얘기는 일단 따끈한 식사라도 하면서 하시죠. 바닷바람이 찹니다.”
“그럽시다, 그럼.”
박윤호가 앞장서고 성진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낚시터 인근에 위치한 매운탕집에 들어간 두 사람은 구석 테이블을 차지하고 서로를 마주봤다.
“자. 그 할 얘기라는 게 뭡니까?”
“간단합니다. 박윤호 씨가 제 일을 도와주는 거죠.”
“일을 도와달라고?”
박윤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애매하구만. 다짜고짜 일을 도와달라니.”
“애매한 얘기가 아닙니다.”
성진은 명함부터 건넸다.
“플루토 투자 신탁의 한성진입니다.”
“오. 플루토 투자신탁이라.”
익히 알법한 이름이 나오자 박윤호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플루토 투자신탁에서 나를 섭외 하시겠다?”
“그렇습니다.”
“왜? 나같은 퇴물을 어디에다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박윤호의 태도가 바로 정중해졌다.
하지만 명함에 박힌 플루토 투자신탁의 간판이 크게 다가왔는지 그의 말투에 성의가 담겨졌다.
“제가 사실 박윤호씨에 대해 많이 조사를 하고 왔습니다.”
“음. 그거야 그러시겠지.”
박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성진의 말에 바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천그룹 비자금 관련 비리에 얽히신 죄로 징계 처분을 받으셨더군요. 해직사유도 결정적으로는 그 일 때문이셨구요.”
“아니, 고작 사람 불러다 한다는 게, 남의 아픈 과거 찌르는 거요?”
몹시 불쾌해하는 박윤호를 성진이 웃으며 바라봤다.
“아픈 과거라고 말씀하시는 거 보니 아직 안 잊으신 모양이군요. 다행입니다.”
“다행?”
“예. 제가 지금부터 박윤호씨에게 아주 소중한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소중한 기회라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복수할 기회죠.”
“음?”
박윤호의 표정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복수…… 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그 비리 사건에서 박윤호씨는 오히려 사전에 윗선에 보고하고 위험을 최소화하자고 제안하셨다죠. 그런데 그걸 아니꼽게 본 그룹의 후계자이자 비리의 당사자인 동천화학공업 사장이 당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렸구요.”
성진의 말에 박윤호의 한쪽 입 꼬리가 밀려올라갔다.
그리고 말투도 바로 험악해졌다.
“무슨 헛소리야? 내가 버림을 받았다고? 아니 그럼 버림받은 승냥이 주워다 탕이라도 끓여 드시겠다는 건가?”
자조적인 박윤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승냥이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배반한 원수들에게 이빨을 들이밀 수 있는 근성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흠…….”
성진은 몸을 앞으로 당겼다.
“제가 그 기회를 드리겠다는 겁니다.”
박윤호는 성진에게 경계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난 그런 일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볼 거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박윤호의 어깨를 성진이 내리눌렀다.
“앉으세요.”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나가면 당신은 평생 후회할 겁니다.”
성진이 강렬한 눈빛으로 박윤호를 노려봤다.
박윤호는 그런 성진의 눈빛을 마주보다가 결국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리에 도로 앉아버렸다.
‘훗, 넘어왔군.’
인공지능 팔찌의 뇌파 사념 수집으로 박윤호의 심리상태를 읽어 들이고 있던 성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정보 계통에서 근무하던 박윤호인지라 속마음과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따로 놀았다.
아마 인공지능 팔찌의 뇌파를 읽는 능력이 아니었다면 성진은 박윤호를 다루기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자리에 도로 앉은 박윤호는 속마음과 다르게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당신 말대로 내가 배신당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치지. 그러면 당신은 나한테 어떤 기회를 주겠다는 건데?”
“작게는 당신이 아직 가슴에 품고 있는 포부를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겠죠.”
“흠. 그리고?”
“크게는 당신이 지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벌이는 당사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엄청난 일이라고?”
박윤호의 눈길이 가늘어졌다.
“왜? 사회정의라도 실현해 보시게?”
“정의도 좋죠.”
“난 정의로운 거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하, 이봐요. 박윤호씨.”
성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정의는 내가 세웁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능력만 제공하면 됩니다.”
오만하고 건방진 말이었다. 하지만 박윤호는 지금 성진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말에 그만한 자신감과 실력이 깔려 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예감의 신호가 머릿속에서 강하게 번뜩였다.
‘이 인간…… 정말 진품인가.’
말만 살아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지금 당장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박윤호는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어떻게든 침착함을 가장하면서 성진을 냉정하게 재려 했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심리상태를 성진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훗. 이제 끝내야겠군.’
성진은 가방에서 통장 하나를 건넸다.
“받아보세요. 계약금입니다.”
“음?”
통장을 펼쳐든 박윤호는 깜짝 놀랐다.
‘시, 십 억원…….’
0이 무려 9개.
아무리 대기업의 정보 담당자였다고 해도, 실상 어디 가서 써먹을 수도 없는 경력이다.
각 회사마다 그런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꽉 차 있기 마련이고, 주변의 눈치가 보여서 고용하지도 않는다.
사실상 그의 경력은 회사에서 쫓겨나는 순간 절단 난 셈이었다.
헌데 지금 눈앞에 있는 10억을 보니 그의 마음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진에게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그래, 인간 박윤호. 여기까지 와서 더 튕겨 뭣하겠냐.’
인간은 못 믿어도 돈은 믿을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10억으로 책정한 인간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박윤호는 통장을 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 하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당신한테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팔짱을 낀 성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