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회: 2권 - 동맹 -->
진상 손님의 블로그에 올라가 있던 성진 가게의 비난글은 지워지고 블로그 자체가 폐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 숫자는 한 박에 회복되지 않았다.
“어허. 이게 오래 가는구나.”
주말 아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시던 아버지는 한숨을 흘리셨다.
바로 여전히 성진과 부모님의 가게를 비난하는 글들이 복사된 채로 올라와 떠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성진이 그렇게 아버지를 위로했지만 사실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사실 인공지능 팔찌가 직접 해킹해서 글을 내리는 수단도 가능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면 문제만 커진다.
때문에 일일이 웹사이트 운영자들에게 항의와 경위를 설명한 메일을 보냈지만 처리되는 건 한참 걸렸다.
“에휴, 문제가 참 심각하구만.”
한숨을 내쉰 아버지는 컴퓨터 전원을 끄셨다.
성진이 웃으며 물었다.
“컴퓨터는 쓸 만 하세요?”
“아유, 그럼. 네가 잘 가르쳐줘가지고 이제는 나도 혼자 웬만한 건 할 수 있지.”
사실 평생 일만 하시느라 컴퓨터나 인터넷에 문외한이셨던 아버지다.
최근 일을 겪으면서 경각심을 가지게 된 아버지는 성진에게 직접 컴퓨터를 가르쳐달라고 하셨다.
“그래도 빠르게 배우셨어요. 사실 나이 드신 분들이 컴퓨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으시거든요.”
“허허. 그러냐? 이거 가르치는 선생이 잘해줘서지. 허허.”
“앞으로도 종종 모르시는 거 있으시면 전화로라도 물어보세요.”
“그래. 고맙다 성진아.”
“에이 고맙긴요.”
성진은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가 열심히 노력하셔서 빨리 배우신 거죠.”
파워블로거가 뭔지 모르셨던 아버지는 성진에게 소상히 인터넷 사용법이나 가게 홍보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등을 물으셨다.
내친 김에 아예 가게 홍보 블로그까지 개설하셔서 직접 리플 답변까지 달면서 소일하시는 모습이었다.
‘나름 즐거우신가보네.’
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가게 손님이 조금이나마 줄어들면서 아버지는 조금 침통한기색이셨다.
어머니도 기분은 안 좋으셨지만 다른 집안 일도 돌보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달랐다.
가게 운영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셨다.
그래서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아버지의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라앉았으니 그 점이 좋았다.
이것저것 다른 부분들을 가르쳐드리고 있는데 성희가 짐꾸러미를 챙기고 방에서 나왔다.
“오빠. 나 짐 다 쌌어.”
“그래. 이제 우리 동생은 학교로 돌아가야지?”
성희는 이제 기숙사 보수공사가 다 되어서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날이었다.
“아빠, 엄마. 나 갈게.”
“공부 열심히 해라.”
“참. 너 이거 가져가.”
엄마가 지갑을 꺼내셔서 지폐를 몇 장 쥐어주셨다.
“배고프면 뭐라도 많이 사먹고. 이는 꼭 닦고.”
“아휴, 엄마도 참. 우리 엄마가 최고라니까.”
성희가 엄마를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아니 저게 나한테 뜯어간 용돈이 얼만데…….’
지켜보던 성진은 조용히 한탄할 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나오고 차를 탔는데 아니나다를까 성희는 바로 성진에게도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이, 오빠. 용돈 줄거징? 잉잉?”
“됐어. 애교 부려도 소용없다.”
이번만큼은 성진도 단호하게 나왔다.
“우아…… 어떻게 오빠라는 사람이 이럴 수가…….”
일이 틀려지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성희였다.
“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이잉. 용돈 좀 줘어.”
“됐거든.”
“치잇. 메에에러어엉.”
혀를 쭉 내미는 여동생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쥐어박아주고는 성진은 학교로 차를 몰았다.
정문에 도착한 성진이 바로 짐을 내려줬다.
“혼자 들 수 있어? 오빠가 같이 올라갈까?”
“여기숙사는 금남의 구역이거든요? 됐어. 잠깐인데 뭐.”
“공부 열심히 해라.”
“어휴, 마지막까지 공부는 참. 아무튼 잘 가 오빠.”
“그래. 나중에 보자.”
작별 인사를 한 성진은 집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슬슬 도로로 나가니 어느새 점심 무렵이 다 되었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속도를 높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음? 무슨 전화지?”
성진은 전화기를 꺼내면서 인공지능 팔찌에게 운전을 맡겼다.
“잠깐 운전 좀 대신 해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 지금부터 차량을 직접 제어 하겠습니다.
인공지능 팔찌가 바로 해킹을 하자 성진이 손을 대지 않고도 차량이 제어되기 시작했다.
성진이 휴대폰을 확인하자 전화한 사람은 바로 박천중 회장이었다.
“예 회장님. 접니다.”
- 허헛. 목소리 좋구만.
호탕하고 걸걸한 특유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별 말씀을요. 회장님 목소리가 더 좋으십니다.”
- 그래,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내가 오늘 퇴원을 한단 말이지.
“아. 그러십니까? 축하드립니다.”
- 퇴원하는데 잠깐 좀 오게나. 같이 점심이나 좀 들지.
“점심이요?”
- 그래. 내가 사겠네.
성진은 선선히 동의했다.
“회장님께서 점심 사시겠다면 당연히 가야죠.”
- 싹싹하구만. 좋아.
“지금 병원으로 갈 테니까 조금 걸릴 겁니다.”
- 알겠네. 내 기다리도록 하지.
“예.”
전화가 끊어지고 성진은 다시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방금 통화 들었지? 병원으로 가자.”
- 예, 알겠습니다. 마스터.
자동으로 핸들이 다시 꺾어지고 차가 방향을 틀었다.
* * *
병원에 도착한 성진은 바로 박천중 회장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 문을 열어놓은 박천중 회장은 말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다 나으신 거 같네요.”
성진의 말에 박천중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아! 오셨는가.”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박천중 회장은 성진을 반갑게 맞았다.
“가지. 자네 기다리면서 배고픈 거 참느라 혼났어.”
“아니 그러면 간단하게라도 드시지 그랬습니까.”
“예끼. 손님 불러놓고 나 혼자 먹을 수는 없지. 허허.”
농담을 하면서 병실을 나간 박천중 회장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비서의 안내를 받아 차에 탔다.
성진도 박천중 회장을 따라 옆 뒷좌석에 올라탔다.
“오늘 내가 아주 괜찮은 집으로 예약해놨네.”
“회장님이 괜찮다고 하시니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럼. 아주 맛있는 집이라고. 출발해.”
“예. 회장님.”
차가 출발하고 도착한 곳은 아늑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유럽풍 디자인을 한 식당은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편안하고 고아한 분위기였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들어가자마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나이 든 사람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어, 지배인. 여기 내가 키핑해 놨던 와인으로.”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간 자리에 성진과 박천중 회장이 마주 앉았다.
“뭘 먹겠나?”
“음. 글쎄요.”
메뉴판을 골라 뒤적이는데 모두 낯선 음식들이었다.
아예 외국어로 씌여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음. 뭐가 맛있으려나.’
외국어를 인공지능 팔찌에게 입력받으면서 유명한 음식문화에 대해서도 각국별로 대충 알게 된 성진이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송아지가 들어간 스테이크 요리를 고른 성진은 바로 웨이터에게 메뉴판을 넘겼다.
“음. 난 이걸로 하지.”
박천중 회장도 메뉴를 고르고 웨이터가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곧 에피타이저로 간단한 음식과 차가 나왔다.
“자네 말일세.”
박천중 회장이 차를 머금으면서 입을 열었다.
“예.”
“그 때, 나한테 했던 얘기 말일세.”
“아. 그 얘기요.”
성진은 박천중 회장이 하는 얘기를 직감했다.
병실에서 박천중 회장이 성진의 비밀을 의심하자 성진도 지지 않기 위해서 마주 쏘아붙였던 얘기였다.
성진은 웃으며 말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해본 말이니까요.”
“음. 그런가?”
박천중 회장은 차를 들이키면서 다시 말했다.
“실은 오늘 보자고 한 얘기는 그거 때문일세.”
“예?”
“자네가 했던 그 얘기 말이야. 왜 그들이 하필 나를 그렇게까지 노렸는가에 대해서지.”
박천중 회장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만큼 무게가 담긴 말을 하려는 것이다.
“꼭 말씀하셔야 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그러면서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에게 지시했다.
‘대사 반응을 스캔해줘. 감정 변화를 알고 싶으니까.’
- 알겠습니다, 마스터.
곧 인공지능 팔찌가 박천중 회장의 신체를 스캔했다.
- 혈류량의 이상 저하가 확인되었습니다.
- 고민, 갈등 등의 심리 상태가 추정됩니다.
‘고민과 갈등이라…….’
박천중 회장은 말을 꺼내고 나서도 상당히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호기심이 든 성진은 인공지능 팔찌를 통해 뇌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곧 박천중 회장의 생각을 읽어 들인 성진은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이건…….’
피상적으로 떠오르는 사념을 읽어 들이는 방법이다.
전부는 알 수 없었지만 겉핥기로 알게 된 사실로도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성진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하기 힘드시다면 굳이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진의 말에 박천중 회장은 결심한 듯 눈을 부릅떴다.
“음. 아닐세.”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서 눈을 감았다.
“자네 우리 회사의 역사가 규모에 비해 짧은 건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보유 자본량 6조원.
말이 6조원이지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자금력이었다.
성진도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액수쯤 문제가 아니었지만 현재 대한민국 증권시장에서 플루토 투자 신탁이 갖는 무게는 그 6조원 이상의 가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제 본론이 나오겠군.’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이제 생겨난 지 겨우 10년쯤 되어가는 회사가 이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 뭐겠나?”
“글쎄요. 그야 회장님이나 다른 직원 분들의 노력 덕분이겠죠.”
성진은 방금 알게 된 사실이 있었지만 시치미를 뗐다.
박천중 회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 노력. 그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말이야. 이런 말이 있다네. 보통 부자는 노력으로 되지만 큰 부자는 권력 없이는 안 된다.”
“권력이요?”
“그래 권력. 사실 나는…….”
박천중 회장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나는…… 예전 주가조작에 관여한 적이 있다네. 속된 말로는…… 작전 세력이라고들 하지.”
미리 알고 있던 성진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했다.
“아니 그런…….”
“내 가장 더러운 과거일세. 부끄러운 일이지.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성진은 박천중 회장의 이런 고백이 무슨 의미인지가 고민스러웠다.
최고의 증권사 회장 자리에 올라와 있는 그가 왜 이런 약점을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일까.
‘다시 뇌파를 수신해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박천중 회장의 심리상태와 사념이 다시 성진의 머릿속에 읽혀지기 시작했다.
다시 박천중 회장의 뇌파에서 비쳐지는 내심이 느껴졌다.
‘불안, 초조라…….’
박천중 회장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이유.
그것은 왠지 모를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런 말씀을 저한테 굳이 꺼내시는 건 그만한 이유가 따로 있으시겠군요.”
“그렇다네.”
박천중 회장은 굳은 얼굴로 성진을 바라봤다.
“성진 군. 나를 좀 도와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