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회: 2권 - 되로 받으면 한 가마니로 -->
* * *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난 진상 손님은 아침부터 가장 비싸다는 레비린 생수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아. 역시 레비린 생수야.”
일반 국산생수보다 훨씬 더 비싸고 외국에서도 가장 인정받았다는 생수라서 그런지 물맛도 아주 좋은 것 같았다.
“후후. 역시 비싸도 고급품을 마셔야지.‘
뭐든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고 소문이 난 음식이라면 그는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좋았다.
때문에 금전적인 소모가 컸지만 그에게는 짭짤한 부수입이 있었다.
“슬슬 일을 시작해볼까.”
그는 바로 pc를 작동시켰다.
왜냐하면 그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맛집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정의의 맛집 칼럼니스트이자 이제는 150만 방문자를 거의 달성해가는 파워블로거였기 때문이다.
그는 휴대폰으로 계좌부터 확인했다.
“약속한 돈이 들어왔는지부터 확인해봐야지.”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으로부터 상당한 액수를 받고 긍정적인 체험기를 써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만 있어보자…… 액수가…….”
금액에 성의가 충분히 담겨있다면 아예 호평을 써줄 마음도 있었다.
액수를 확인한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히히. 아주 제대로 써줘야겠구만.”
그는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둘러보면서 열심히 무조건 좋은 단어만 꼴라 쓰기 시작했다.
적당히 좋다는 식의 호평 글을 써서 올린 뒤 이제는 정 반대의 글이 남았다.
“후훗. 감히 날 무시한 대가는 치러야지.”
성진의 가게에 대해 열심히 부정적인 글을 써서 올린 그는 다른 방문자들의 반응을 기대했다.
댓글 반응들을 살피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글들이 올라왔다.
<블로그 주인장님. 평소에 좋아했는데 정말 돈 받고 글 써줬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러고 보니 저는 괜찮게 먹었던 가게 음식을 아주 이상하게 혹평을 써놓은 적도 많았죠.>
<이거 빨리 해명 좀 해주세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몇몇은 자신이 정말로 거래를 했던 가게들을 거론하고 있었다.
찔리는 마음이 들자, 그는 아주 거칠게 화를 냈다.
“아니, 이 자식들이 감히…….”
감히 150만 방문자수를 보유한 파워 블로거를 의심하다니.
그는 재빨리 해명글을 올렸다.
무조건 부정하고 모함이다, 억울하다는 식의 해명글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의심하고 반대의견을 적은 몇몇 네티즌들의 아이디를 직접 거론해가며 사과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흥. 감히 나를 의심해봤자지.”
증거도 없으니 얼마든지 발뺌을 했다.
실제로 맛집 파워 블로거들 중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엄청난 수준이었기 때문에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소문은 금세 가라앉았다.
“헤헤헷.”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일단은 안도하는 그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 * *
[유명 파워블로거 모 씨 구속. 고액의 수수료 챙겨주고 조작된 평가글 올려 부당이득 취해.]
뉴스 기사까지 떠버린 그의 비리는 전국에 일파만파로 퍼져버렸다.
그런 그는 현재 세금 탈루 혐의 및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하아…….”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찾아와 자신을 체포하더니 심문 과정에서는 계좌 내역을 뽑아 와서 탈세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고서 다시 얼마가 지나고 돈을 지급한 곳이 모두 식당 주인들이라는 걸 밝혀져서 다시 또 죄가 커져버렸다.
“으으으으.”
150만 방문자들 사이에서 추앙받던 파워블로거가 이제는 한 순간에 추락해버린 것이다.
심문을 당하는 와중에 열심히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부정해봤지만 그 열렬히 추종하던 네티즌들도 이제는 비난만 퍼부을 뿐이었다.
<아오 정말 실망이네요. 진짜 믿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진짜 엄청 유명했던 맛집 파워블로거가 저런 인간이었다니.>
<안타깝습니다. 순진하게 믿었던 제가 어리석었네요.>
<그럼 이렇게 됐으니 이제 이 블로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난 댓글들을 보자 그는 더더욱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악!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파워 블로거로서의 자부심이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그 권위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으으으…… 대체 왜 이 꼴이 된 거냐고.”
그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조용히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칼럼이나 쓰던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정말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혹평을 당해서 가게가 망할 지경에 처한 사람들, 실제로 망한 사람들이 모두 피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갈수록 상황이 꼬여가니 매일매일 살이 쭉쭉 빠졌다.
“이렇게 되면 먹는 것 말곤 나한테 남는 위안이 없어.”
그래도 먹는 것이 자신에게는 최대의 행복.
순간이라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그는 밖으로 나가 외식을 하기로 했다.
뚱뚱한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간 그는 피자집에 들어가서 두툼한 대형 사이즈 피자를 시켰다.
피자를 한입 베어 문 순간.
“어?”
경악한 그는 화가 나 소리쳤다.
“아니, 이게 뭐야!”
그의 입 안에서 피자의 질감은 느껴졌다.
하지만 맛이 전혀 안 느껴졌다.
달콤하거나 담백, 고소하거나 하는 그런 맛이 전혀 안 느껴졌다.
“대체 이게 뭐냐고.”
흥분한 그는 다른 메뉴들까지 몽땅 시켜서 먹어봤지만 똑같이 맛이 안 느껴졌다.
급기야 흥분해서 난동을 피우다가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서 현장체포당하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이렇게까지 심해질 줄은 몰랐는데.”
바로 성진이었다.
성진은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들을 조사해서 지나친 호평을 받은 업체 중심으로 관계를 조사했다.
결국 뒤로 수수료를 주고받은 흔적을 알아낸 성진은 액수가 상당한 것을 보고 바로 국세청과 경찰에 신고를 해버렸다.
“세금 과징금이나 좀 받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본래는 세금 과징금을 터트리고 성진이 음식 속에 다량으로 섞어 놓은 나노 로봇을 섭취하게 해서 천천히 미각을 뺏어버리는 정도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탈세혐의를 받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연히 딸린 죄가 줄줄이 튀어나왔다.
“하긴. 지은 죄가 있으면 그만큼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거지.”
성진은 별로 동정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렵게 돈을 모아서 가게를 내는 자영업자들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게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저런 기생충 같은 자가 중간에서 장난을 친다면 정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뇌물까지 요구하다니.”
저 정도 선에서 끝나는 걸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 일이었다.
성진이 남은 여죄를 밝혀내려고 했다면 형량은 훨씬 무거워졌을 것이다.
일이 어떻게 됐나 확인하러 주변으로 찾아왔는데 피자집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을 목격한 성진은 마음이 안 좋았다.
“에휴. 난 진짜 너무 착한 거 같아.”
성진은 딱 한 번 더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탈세 과징금에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하고 나니 하루하루가 고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였으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었다.
“으으으…….”
하지만 무엇보다 더욱 더 고통스러운 건 뭘 먹어도 맛이 없다는 점이였다.
“으흐흑…….”
빵을 한 입 베어 문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일평생을 먹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는데 뭘 먹어도 맛이 없다는 게 그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뚱뚱한 남자가 길 한복판에서 빵을 들고 울고 있는 모습이 어지간히 궁상맞아 보였다.
“아아! 부처님, 하느님, 알라 신이시여. 어떤 신이시든 간에 제가 다시 미각을 좀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
병원에 가서도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에 정말 깊은 고통을 가눌 길이 없었다.
“어흐흑…….”
그런 남자의 뒤에서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면 지금까지 저지른 짓을 반성할 텐가?”
“응?”
뒤를 돌아보니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쓴 수상해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누구인지는 몰라도 되고. 지금 다시 빵 씹어봐.”
“네?”
“아 어서.”
남자의 말에 빵을 씹어보았다.
바로 그 순간.
“우오옷!”
크림과 설탕의 단맛이 입에서 마구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미각에 남자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어흐흑. 그래. 이거야 이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글라스를 낀 남자.
성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아니, 먹는 게 저렇게 좋나.’
하지만 먹는 것이 세상 사는 즐거움의 전부인 사람도 엄연히 있는 법이다.
성진은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나노 로봇을 작동시켜줘.’
- 알겠습니다, 마스터.
성진의 지시에 나노 로봇이 재작동하고 미각이 다시 사라졌다.
“헉!”
표정이 다시 굳는 남자를 보고 성진이 말했다.
“착하게 산다고 맹세하면 미각을 되살려 주지.”
“예?”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하라고. 솔직히 지금까지 사악하게 살아왔잖아.”
성진의 말에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 뭐야. 내 뒷조사라도 했어?”
“뒷조사는 무슨. 미각을 되찾고 싶다면서. 맹세하기 싫어?”
그 말에 남자의 표정이 간절해졌다.
“예! 미각을 찾고 싶습니다.”
“후우. 그럼 맹세해. 앞으로 누구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고 정말 착하게 살겠다고.”
“흐흑.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눈물까지 한 방울 떨궜다.
“좋아, 그렇다면.”
성진은 다시 나노로봇의 작동을 정지시키도록 했다.
- 나노로봇의 작동을 정지하겠습니다.
“이제 먹어 봐.”
성진의 말에 남자는 다시 남은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오옷!”
입 안 가득 느껴지는 단맛에 남자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맹세를 깨면 미각은 또 사라질 거야. 명심해.”
경고를 남긴 성진이 피식 웃고 사라지려는데 남자가 재빨리 물었다.
“저기, 이봐요! 당신 대체 정체가 뭐요!?”
미각을 사라지게 했다, 다시 되돌렸다 하는 사람.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가 수상한 사람에서 이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성진에게는 귀찮을 뿐이었다.
“미각만 되찾으면 된다며? 신한테도 빌어놓고 내 정체가 왜 중요해?”
그 말을 남기고 성진은 재빨리 남자의 시야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성진이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남자의 머릿속에 천둥 같은 깨달음이 울렸다.
“아아! 그렇다면 저 분은!”
남자의 머릿속에 깨달음의 종이 울려 퍼졌다.
‘내 기도에 신께서 응답하신 것인가.’
갑자기 멀어져가는 남자가 신의 사자처럼 보였다.
그러자 자신의 미각을 되돌려놓은 능력도 이해가 되었다.
“아아!”
감격한 남자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빌며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때 아닌 독실한 종교인이 한명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 모습을 멀리 떨어져 가면서 지켜보던 성진은 혀를 찰 뿐이었다.
“왜 저래?”
- 저 남성은 극도의 감탄이나 존경, 경외의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뭐? 감탄은 그렇다 치고…… 존경, 경외는 또 뭐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인공지능 팔찌가 대답할 수 없었다.
- 근거가 부족하여 원인을 추정할 수 없습니다.
“하긴. 내가 봐도 원인을 모르겠다.”
가까운 거리라면 뇌파를 읽을 수 있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성진은 아마 법의 처벌을 받게 된 나머지 절망해서 충격을 받은 거라 생각해버렸다.
“아무튼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혀를 찬 성진이 뒤돌아 걸어가는 동안,
진상 손님은 한참을 더 거리에 엎드려 빌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신의 은혜를 찬양했다.